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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1)
여기서 '감동하심을 받은(φερόμενοι, pheromenoi)'이라는 헬라어는 돛단배가 강력한 바람에 이끌려 항해하는 모습을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존 오웬은 성령의 영감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게 한 단순한 구술(Dictation)로 보지 않았습니다.
성령은 선지자들의 지성, 기질, 교육적 배경, 그리고 문학적 문체를 조금도 파괴하지 않으시면서도(유기적 영감), 그들의 마음과 입술을 완벽하게 통제하시어 오류가 전혀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축자적 영감)을 산출해 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의 입술을 빌렸으나, 그 말씀의 원저자(Primary Author)는 철저히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3. 그리스도를 향한 구속사적 조명: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나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메시지의 심장부에는 '오실 그리스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베드로전서 1:10-11)
싱클레어 퍼거슨은 이 본문을 강해하며 놀라운 신학적 진리를 제시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안에서 활동하신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셨습니다. 성육신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선지자들의 영혼에 임재하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미리 조명하셨습니다. 이사야가 53장에서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아니라 그 안에서 활동하신 성령의 초자연적인 계시 사역 덕분입니다.
4. 직분과 신정통치(Theocracy)를 위한 성령의 부으심
구약 시대에 나타난 성령 사역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은 신정 국가 이스라엘을 이끌어가기 위한 '직분적이고 선별적인 기름 부으심'입니다.
지도력의 수여: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임하여 민족을 구원할 초인적인 지혜와 군사적 능력을 발휘하게 하셨습니다. (사사기 6:34 등)
왕권의 확립과 예언적 직무: 다윗에게 성령이 크게 임하여(삼상 16:13) 그로 하여금 메시야 왕국의 모형을 세우게 하셨고, 영감 어린 시편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J.I. 패커는 신약의 보편적 성령 내주와 비교할 때, 구약 시대의 성령 강림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임하는 특성을 띠었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특별한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차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새 언약(New Covenant)의 날을 준비하고 대망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5. 제5강 결론: 말씀과 성령의 불가분리성(Inseparability)
구약에 나타난 계시와 영감의 역사는 오늘날 교회를 향해 중대한 결론을 촉구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입김(Theopneustos, 딤후 3:16)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성령과 기록된 말씀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울타리를 벗어나 직통 계시나 주관적인 신비 체험을 추구하며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존 오웬이 강력히 경고하듯,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계시의 완성)을 떠난 성령 운동은 필연적으로 광신주의나 이단으로 전락합니다. 참된 성령 충만은 우리를 성령께서 친히 영감하신 그 영원무오한 '말씀의 깊은 샘'으로 인도하여, 그 말씀 앞에 전 인격적으로 엎드리게 합니다.
(제6강 예고: '제2부: 기독론적 성령론과 구속사적 경륜 - 성육신과 성령: 동정녀 잉태의 신학적 필연성과 의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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