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도 훔치지 못한 것
히틀러가 분홍토끼를 훔치던 날/주디스 커 글,그림/김선희 옮김/북극곰
2024.04.17 6기 윤정애
제목만 듣고는 읽고 싶어져서 상호대차까지 하며 빌려다 놓았지만 이상하게도 몇 주 동안 손이 가지 않았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어린나이에 가족과 함께 난민으로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았던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나치나 히틀러와 관련한 불편한 사실들이 연상 되어서였던 것 같다. 예쁘장한 표지에 비해 꽤 묵직한 두께 또한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데 한 몫 한 것 같다. 하지만 마감에 쫓겨 읽기 시작한 책은 의외로 쉽게 읽혔다.
인류 역사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인 히틀러가 막 정권을 잡으려던 그 시점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9살 애나는 유명한 아빠 때문에 자신이 유명해지지 못할까봐 슬프다고 생각하는 약간은 엉뚱하기도 한 평범한 아이였다. 아빠가 먼저 스위스로 떠나고 남은 가족도 짐을 꾸려 떠날 때에 짐을 줄여야 했기에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분홍 토끼를 두고 갈 수밖에 없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빠와 함께 집안 구석구석에 대고
인사하는 모습에서 순수한 아이다운 모습이 느껴졌다. 이 후 애나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난민 생활은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지쳐가는 어른들의 모습이나 극단으로 치닫는 독일의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애나와 맥스는 나름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조금씩 성장한다.
낯선 환경, 낯선 언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지만, 가족을 위해 항상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준 부모님 덕에 애나와 맥스는 밝고 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듯하다. 어디에 있든 가족 모두 함께만 있다면 정말 괜찮다는 애나의 말대로 애나의 가족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힘든 시기를 견뎌낸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유대인 수용소의 잔인한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거짓말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속여서 아들을 지켜내는 장면들을
눈물 콧물 쏟으며 보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비슷한가보다.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지켜낸 동심들이 있었기에 주디스 커 자신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었으리라.
히틀러가 훔친 것은 분홍토끼 만이 아니었다. 애나 가족의 평범했던 삶을 송두리째 훔쳐서
돌려주지 않았다. 어디 애나 가족의 삶 뿐 이던가...
하지만 그런 히틀러도 훔치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끈끈한 가족애의 울타리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