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오늘 여섯번째 발걸음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52-4 갑마장길에 다녀왔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가을 햇살에 일렁이는 억새꽃이 만발한 대록산이 나왔다. 대록산은 표고 474.5m, 비고( 125m)의 정상을 중심으로 두개의 굼부리를 갖고 있는 오름이다.
대록산의 명칭은 2개를 가지고 있는데, 큰사슴이오름(대록산), 족은사슴이오름(소록산)은 형상이 사슴과 비슷하다 하여, 예전에 사슴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면 왜 갑마장길이지? 조선시대에 목장을 갑마장, 을마장 병마장으로 나누었고 그중에 제일 우수한 말을 키우던 곳이 갑마장이라고 한다.
대록산과 소록산 일대를 녹산장(鹿山場)이라고 했으며. 조선시대 이 일대가 목장의 최적지로 목마장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제주도에는 녹산장을 포함하여 10개 소장(小場)과 3개의 산장으로 나눠서 관리했다고 하는데 문헌을 찾아보니 1소장은 구좌읍, 2소장은 조천읍, 3소장 제주시, 4소장 제주시.애월읍, 5소장 애월읍, 6소장 한림, 한경면, 7소장 안덕면, 8소장 서귀포시 중문동, 9소장 남원읍, 10소장 표선면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 첫 번째 쉬는 타임 ☞ 이삭여뀌: 마디풀과로 붉은색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 식물
발걸음을 옳겨 전망대에 이르렀다. 제주유채꽃프라자와 일대를 관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산림청의 관리기준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해 정리가 안되 안타깝게도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부분들이 기관간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제주의 말은 몽고가 제주로 160필을 가져와 기르기 이전(제주의 삼성(고, 양, 부씨)가 벽란도 세공주와 결혼할때 가져온 말 등)부터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말은 과하마로 과수원 나무보다 낮은 말이었지만 온순하고 아무것이나 잘 먹고 특히 제주마의 걷는 형태가 진동없이 편하게 걸어서 말타고 활쏘기(기사(騎射))에 좋은 이점을 지녀 몽고가 관리하던 시기에 몽고말과 교배하여 우수한 말을 양성했으며 이때 거세술이 발달하였다 한다.
몽고가 떠난 후 다시 농업용으로 쇠퇴하였다가 조선시대에 말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감목관(사또가 겸직함)을 두고 관리하였고 이후 제주는 개인(의귀출신 김만일(1550년~1632년))에게 관리권한을 주어 230여년간 세습하였다 한다.
★ 두 번째 쉬는 타임 ☞ 대록산을 오르다가 동쪽을 바라보면 백약이오름,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높은오름, 영주산, 문석이 오름 등이 장관을 이루고 멀리 성산 일출봉 옆 수마포(몽고가 말 160필을 가지고 왔다는 곳)도 보이고 남양나일론에서 중산간 지대에 식재한 삼나무(사이프러스) 와 리조트골프장이 보인다.
다시 발걸음은 정상(작은 굼부)으로 향하였다. 편백나무에 발걸음을 멈췄다. 편백과 측백나무의 차이점이 궁금한 찰나에 교수님께서 편백은 잎이 납작하고 가지가 옆으로 뻗고, 측백은 가지가 위로 향한다고 설명하여 주셨다. Y자는 편백, W자는 측백이라는 말은 근거없는 낭설이었다.
우리 발걸음은 작은굼부리로 향했는데 천남성 열매가 빠알갛게 올라와 있었다. 열매는 예쁘지만 옛부터 독약으로 사용된 약재인데. 장희빈을 사사할때 이 약재로 사약을 만들었다 한다. 한라돌쩌귀(투구꽃: 한방에서 초오라고 불리며 뿌리에 아코니틴 등 치명적인 독성을 지님)도 보인다.
마지막 등성을 오르니 정석비행장과 한라산 백록담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성널오름과 물오름이 보이고 그 옆으로 516도로가 있다고 한다
가시리는 녹산장 일대를 지금까지 잘 지켜 풍향기 설치 등으로 수익을 얻고 있으며, 빈집 임대사업으로 예술가를 마을로 이끌었으며, 문화공간 조성 등 수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벗꽃구경하기 위해 찾는 녹산로지만 왜 녹산로인지? 그리고 왜 큰사슴이오름이라고하고 대록산이라 하는지? 막연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유래에 대해 오늘에야 아하! 하게 되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길에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에 들렀다.
김만일은 본관은 경주, 자는 중림으로 제주도의 정의현 의귀리 출생으로 그 선대는 김인찬과 김검륭 등이다.
김인찬은 1388년(고려 우왕 14년) 위화도회군에 참여하고, 조선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태조 이성계의 총애를 받았고 사후에 개국 일등공신 익화군으로 봉해졌다.
김검룡은 김인찬의 셋째 아들로 제주도에 건너와 경주김씨의 입도조가 되었으며 김만일은 김검룡의 7대손으로 한라산 일대에서 수많은 말을 기른 대목장의 경영인이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년이 지난 1594년(선조 27년)부터 수백 필의 전쟁용 말을 헌납하고 1620년(광해군12년) 말 5백 필을 바치자 임금이 지중추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에 임명함과 아울러, 헌마공신의 칭호도 내려주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셋째 아들 김대길이 초대 감목관으로 임명되었고 그 후손 83명이 1895년(고종 32년)까지 230여년간 세습했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11~14시를 제외하고 체험(스크린 승마(무료, 키 130cm 이상 만 가능, 키고리 만들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끝.
첫댓글 와우~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김만일 헌마공신 일대기도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
슬피 우는 으악새 간데없고
찬란하게 피어나는 억새들이
우릴 신나게 반겨주었지요 ㅎㅎ
멋진 가을입니다~
을마장 병마장은 갑마장을 설명하기 위한 양념이었고 실제로는 있지 않습니다ㅎㅎ
제일 우수한 말을 키우던 갑마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니 착오 없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어요~!!
😂
아~~하!! 이해력 1/2이었습니다. 죄송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