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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5-21) 오발탄과 불발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오발탄과 불발탄>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오발탄과 불발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중에 핵심 되는 구절은 19절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다 이루어집니다.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는 하나도 말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몰랐을 것이에요. 그런데 사무엘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말한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의 그 비밀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 머물면서 늘 하나님이 자기를 불러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앞부분에 보면 엘리제사장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너를 세 번씩이나 부르셔서 너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냐? 내게 그대로 고해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엘리제사장 집안의 죄악 때문에 제사장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망할 것이라는 예언적 내용 아니었습니까? 말하기를 꺼려했지만 엘리제사장이 하도 강하게 다그치니 다 말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사무엘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나님께 듣는 말만 하게 됩니다. 듣는 말만.
이러한 사람의 생각과 말, 생각하고 말하게 되지 않습니까? 생각도 이미 마음에서부터 쏴 올린 것이지요. 말도 입 밖으로 쏘는 것입니다마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총으로 총알을 쏘듯이 쏘는 것입니다마는, 이미 생각자체도 마음에서 쏴 버린 것이에요.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은 ‘떠오른다.’라는 장소의 이동이 있지 않습니까? '생각이 생겨났다. 생각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이 생겨났다.'라고 표현을 쓰는 것이 다 '쏜다'고 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사무엘과 같이 살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이라고 하는 것, 오발탄과 불발탄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발탄'이라고 하면 1959년에 이범선 소설가가 발표한 단편소설이 생각 나실 겁니다. 61년에는 영화로도 상영이 되었습니다. '송철호'라고 하는 주인공이 가난한 계리사인데 이북에서 피난와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사회적 시대상은 6.25전쟁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정신이상자로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가자, 가자.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가자, 가자고 외치는 어머니가 계시고, 만삭의 아내를 두고 있었는데 그만 동대문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서 애기를 날 때 애기는 나왔는데 아내는 난산으로 인해서 죽어버리고 맙니다. 동생이 하나 있는데 제대한 후 상이군인과 어울려 다니다가 도저히 찌든 삶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에서 권총을 구해서 은행 강도짓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먹고 살길이 없으니까 미군들이 있는 기지촌을 들락거리면서 콜걸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아들 하나 있는 것은 신문팔이를 하면서 거리의 아이로 살아가게 됩니다. 송철호 주인공이 이빨이 너무너무 아파서 치과에 가서 이빨을 뽑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뽑다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어떻게, 어떻게 생긴 돈으로 이빨을 뽑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 택시를 탑니다. 누이동생이 있는 해방촌으로 가려다가 아내 생각이 나니 "동대문 병원으로 갑시다."라고 했다가 동생 생각이 나서 종로경찰서에 갇혀 있잖아요? 은행 강도짓 하다가. "종로경찰서로 갑시다."라고 합니다. 택시운전사가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라고 하면서 택시 운전사가 하는 말이 "오늘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려들었구나."라는 이 말을 송철호가 듣습니다. 듣고 하는 말이 "그래 나는 네 말대로 조물주가 잘못 쏜 오발탄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조물주가 잘못 쏜 오발탄이다.'
도대체 아들에 남편에 형에 오빠의 아빠의 역할을 하는데, 이 모든 역할들을 하기 위해서 해방촌으로 가야되는지 동대문으로 가야되는지, 아니면 동생이 잡혀있는 종로경찰서로 가야되는지 집으로 가야되는지, 도대체 방향을 알 수 없는 빈곤하고 참담하고 비참한 생활가운데 놓여있는 송철호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표현되고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물주가 쏜 오발탄은 없습니다. 조물주에게 특히 우리 여호와하나님, 우리 하늘아버지에게 있어서 오발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쏜 인생이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말을 죄악가운데서 해나가면서, 죄악가운데서 생각하고 죄악가운데서 말하면서 자기의 삶 자체를 오발탄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시키고 잘못된 곳에서 터지게 하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오발탄으로 만들어 낸 인생은 없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헬렌켈러, 3중장애를 앓았습니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합니까? "참으로 인생은, 이 세상은 아름다웠다."라고 마치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뭐라고 합니까?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어 죽어가면서 "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단 6일 동안만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하는데 이게 오발탄이지요. 오발탄입니다.
3중장애를 갖고 태어나도 적중하는 인생이 있고, 황제의 자리에 군림했었어도 오발탄 인생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오발탄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또 불발탄은 뭡니까? 오발탄과 불발탄의 차이가 뭐지요? 불발탄은 발사되지 않았거나 발사가 되었는데도 터지지 않은 탄환을 말합니다. 오발탄은 잘못 발사되어서 터지는 겁니다. 어떻게 오발탄이 되고 불발탄이 됩니까? 오늘 사무엘이 말합니다.
성전은 뭐하는 곳이 성전이에요?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은 생각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분이세요. 이건 기독교의 아주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데우스 딕시트. 이게 신학의 굉장히 중요한 화두중의 화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말씀하셨고, 끊임없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이 사실, 신학의 기둥중의 기둥이고 뿌리중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이 사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에서, 자라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자기의 생각의 탄환을 채웁니다. 탄피를 채웁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말은 탄피와도 같아요.
그러면 그 내용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으로 채우지 않으면 멀쩡하게 중립적이고 자연적인 그래서 우리가 배운대로 학력대로 경험한대로의 우리의 건전한 내용들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죄악의 내용들이 죄악의 화약들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다 오발탄이 되는 거예요. 자식을 사랑해서 생각하고 말했는데, 그게 사랑이라는 의도에 적중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식을 해치는 오발탄이 되어버립니다. 사업을 잘해보고 싶습니다. 사업을 잘 해보고 싶어서 계획을 했습니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말도하고 동료에게도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발탄이 되어버립니다. 해칩니다. 망가뜨립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5:34절에 “너희는 맹세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맹세'라는 것을 좀 광범위하게 해석하면 '단언하는 모든 이야기, 결론적으로 말하는 모든 이야기, 이건 옳다. 그르다.' 라고 확신하는 모든 이야기 다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에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거 맞지 않다는 겁니다. 사물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 주어지고 만나지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의 판단이 옳지 않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건 느끼는 사실을 그대로 '그건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하라고 한 것 아닙니까?
'옳다. 아니다.' 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맹세하지 말고 그냥 너희의 말은 '맞다. 맞다. 아니다. 아니다.' 라는 말은 '너 결혼했냐? 맞다. 자식이 있느냐? 맞다. 아들이냐? 틀린다. 딸이다.'라는 얘기만 하라는 것이에요. 우리의 말은. 그러면 이렇게 말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럴 수가 없잖아요. "당신 직장 다닙니까? / 맞습니다. 안다닙니까? 틀립니다. 다닙니다."라고 어떻게 이렇게 말하고 살아요? 그 다음 말은 어떻게 채워져야 한다는 겁니까? 사무엘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생각의 탄피와 말의 탄피 안에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넣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에서 쏘는 모든 말과 모든 생각들이 다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으로 채워진 탄환들을 쏘면서 살아갈 때, 그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정말 조심하셔야 돼요. 우리말이 세치 혀로 사람을 죽이는 것 쉬운 일입니다. 왜? 오발탄을 쏴서.
그러면 불발탄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통해서 내 머리에 하나님의 생각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에 담아 주시기를 원하셔서, 준비하신 모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들이 다 발사되지 않고 있는 것이에요. 그것이 발사만 되면 이 현실 속에서 사무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현실에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 삶의 현실에서 다 열매를 맺을 텐데, 발사도 되지 않고 그것이 터져서 현실로 나타나지도 않는 겁니다. 다 불발탄이 돼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생각은 다 불발탄이 돼버리고, 쏴서는 안 될 죄악으로 채워져 있는 나의 생각들은 다 발사가 되어서 오발탄이 돼 버리고, 이게 죄악 된 인간들의 삶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나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려는 새로운 창조, 내 삶에서 이루어지는 창조도 하나님의 생각이 오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 보시기에 좋은 겁니다. 그런데 다 불발탄이 돼 버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 불발탄이 돼 버리고 내 죄악으로 가득 채워진 생각이 오발탄으로 발사되어서, 우리의 삶을 내 스스로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망가뜨리지 누가 내 삶을 망가뜨립니까? 아무도 망가뜨리는 사람이 없어요.
이진법복음 선교회를 구상한 것은 2005년도 여름부터 이진법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있다가 2005년 겨울부터 어떤 계기가 있어서 선교활동을 한국에 나와서 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밴쿠버 삼성교회에 있으면서, 밴쿠버가 이제 대륙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아침이 시작한다고 하면 밴쿠버의 마지막 아침이 제일 늦게 오지 않습니까? 거기 아침 6시가 여기 밤 11시 인데 서울에서 시작해서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세계지도 한국에서 아침에 예배를 시작하면 밴쿠버까지 계속해서 경도를 따라서 예배가 진행되기 위한 그런 구상을 하고, 교회가 마치 담임목사를 서울에 파송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일을 하자고 추진을 하다가, 아무래도 목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밴쿠버에 있는 교회가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겠는가? 교회의 어떤 삶이 염려가 되기도 하고, 또 염려를 표현하는 분들도 계셔서 그냥 제가 사임을 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와서 6-7개월 지난 뒤에 저의 집사람이, 삼성교회에서 저와 함께 교회를 섬기던 부목사님 한 분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어요.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부목사님의 통화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아, 정말 그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이진법복음 선교를 하시기는 하시는군요."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삼성교회를 그만두고 나올 때, 여러 가지 한국에서 조인해서 선교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교회도 있었고, 선교단체도 있었고, 확약된 것은 아닌데 막연하게 서로 얘기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제가 목사님들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실지로는 다 끊어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저도 사실 막연했지요. 그런데 결국 나와서 1년이 넘게 이진법복음 선교회가 진행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진행이 되고 있는 가운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때 삼성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부사역자들에게 제가 입으로 꺼냈던, 한국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선교활동, 인터넷을 통한 이진법복음의 선교활동, 한국에 제가 나왔을 때 아무도 삼성교회에서 이 이진법복음 선교활동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 그 말씀하신대로 일이 되기는 되는군요.’ 라는 말씀을 부목사님이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런 것들이 정말 무력한 태승철입니다. 정말 무력한 사람이 혼자 낙동강 오리알처럼 딱 떨어져서, 한국에 나와서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셨다고 하면, 지금 1년 지나오는 이런 과정들이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 말이 땅에 떨어질 뻔 했지요. 얼마나 꽤 오랜 기간 동안 1년 가까운 기간을 삼성교회에서 같이 얘기하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결국 밴쿠버 안에 까지 다시 CD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 한 600-800장 CD를 밴쿠버로 보내고 있는데 제가 밴쿠버에서 목회할 때에 밴쿠버 시내전역에 850-900장정도 CD를 배포했어요. 밴쿠버 그 안에서만. 1년 만에 지금 다시 그 안으로 CD가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정말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 맨 바닥에 달랑 떨어져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다른 사람이 보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이 외형적인 모습들이. 그러나 어쨌든 제 마음 속에는 그저 감사하고 그저 행복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고 계십니다. 지금 다 유보되어지고 있는 것이지, 그때 한 얘기들이 땅에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 지금 계속 시작이 되고 있는 겁니다. 1년 만에.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이 불발탄이 되지 않고, 우리의 죄악 된 생각이 발사되는 오발탄을 막으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내 생각, 내 바람, 제발 작은 일에 대해서도 바람을 갖지 말아요. 나의 바람을 갖지 마세요. 그 바람이 있으면 반드시 죄악으로 채워진 내 생각이 돌아갑니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이것을 '투기'라고 합니다. 던질 투(投)자에 기업할 기(企)자를 써서. 지금 상황이 온전하지 않아서 어떤 바람을 갖고 소원을 갖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를 향하여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계획하는 것을, 철학자들이 투기라고 하는데 이 투기는 진짜 투기입니다. 땅 투기할 때 그 투기예요. 이건 진짜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을 투기를 하는 거예요. 요행심리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이미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에요.
이미 죽은 것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고 자꾸 생각해요. 강시가 움직이듯이 이미 죽은 자가 자꾸 움직입니다. 이렇게 내가 죽어야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에서 발사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에서 발사될 때, 그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생각을 내 생각 안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에 담기 위해서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동안만, 하나님의 생각이 내게 알려지고 하나님의 뜻이 내 입에 담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대하고 남편과 아내를 대하고 사업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든지,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기억할 때에 그 사업장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발사될 수 있고 적중할 수 있고 자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이 발사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불발탄, 보시기에 좋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내 삶에서 창조되어 질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생각이 발사되지 않고 있는 상태가 불발탄입니다. 마음에 주님의 십자가가 없으니까.
오발탄, 주님의 십자가가 없으므로 죄악의 생각으로 말과 생각의 내용을 채워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발사해 버리고 그대로 행동해 나가는 겁니다. 다 오발탄입니다. 다 잘못 맞아서 죽이고 해치는 그러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발탄과 오발탄의 삶 끝냅시다. 죄악이 자꾸 살아날 거예요. 자꾸 살아나. 이걸 바라라. 저걸 바라라. 이것이 이루어져야 되지 않느냐? 자꾸 여러분 마음속에 정말 바람을 넣을 겁니다. 바람을 바라라고 바람을 넣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라고 계속 인생이 오발탄으로, 오발탄으로 이어져 나가게 될 것이에요. 불발탄과 오발탄을 끝내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더 이상 주님의 십자가를 망각하지 않게 하시므로 죄악의 화약으로 채워진 오발탄을 발사하지 않게 하시며 보시기에 좋게 현실에서 이루어질 강력한 하나님의 생각이 불발탄으로 남아있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