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집권 여당인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 실시 되는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과 5대 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하여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유세 방해를 비롯하여 각종 부정선거를 자행하면서 자유당의 선거유세 및 정치 행사에는 학생들을 직·간접적으로 동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학원의 정치 개입 반대를 주장하며 부정선거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부정선거 반대 운동인 대구 2·28 민주운동은 전국의 학생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3월 8일 대전 선거유세에는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당 대표 박순천 등 당내 유명인사들이 다수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자 대전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 학생들이 유세장에 나가지 않게 훈육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으며 각 고등학교에서는 민주당 선거유세장에 참여를 막았다. 그러나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은 3월 8일 오후에 개최되는 민주당 선거유세장인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집결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대전 3·8 민주의거는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의 민주운동에 자극받아 3월 8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의 선거유세에 맞춰 대전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전 소재 7개 학교 학생들 1,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일제히 궐기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유세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장경찰의 강제 진압에 직면하였다. 충청남도경찰청과 대전경찰서 경찰들은 대전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행렬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무자비하게 폭행하여 머리와 팔다리에 부상당해 피를 흘리는 상황은 참혹했다. 바로 대전·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대전 3·8 민주의거다.
학생들은 학생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학원에 자유를 달라. 이승만 독재 물러가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다. 당시 의거에 참가한 7개 학교는 대전고, 우송고(전, 대전상고), 대전공고, 보문고, 대전여고, 호수돈여고, 대전사범학교 등이다.
3월 9일 대전고등학교 학생과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임을 갖고 다시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누설되어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 구속되었다. 그리고 3월 10일에는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학원의 자유를 달라. 친구를 빨리 내놓으라. 등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 3·8 민주의거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 권력에 맞서 대전시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충청지역 최초의 민주운동으로 평가받아 2009년 10월 9일 대전시의회는 [3·8민주의거 기념조례]를 제정하였다.
* 2013년 4월 29일 3·8 민주의거의 민주화운동 인정 근거 마련을 위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5월 22일 정부에서 개정 공포하였다.
* 2017년 12월 1일에는 3·8 민주의거 기념일을 국가기념일 지정촉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 2018년 11월 2일, 3·8 민주의거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공포하였다.
이렇게 3·8 민주의거는 대구 2·28민주운동, 마산 3·15의거, 4·19민주혁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음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