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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본문
학인스님
참고자료
전부가업傳付家業
가업家業이라고 하는 것
왜 가문의 영광 하잖아요. 그죠?
우리는 불가佛家에 왔다고 이제
불가에 와서 불가의 업이 뭡니까?
오직 수행일 뿐이라.
남들 재미가 없는 것
세상사람들 이건희가 있다 해도 하나도 안 부러운,
이건희가 부자인가 내가 부자인가 물으면
전부 이건희가 부자래.
맞겠지....
하하하하
나는 독거노인이고 이건희는 부자가 있잖아.
이재용이 있잖아. ㅎㅎㅎ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하니까 부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자는 못 되겠지. ㅎㅎ
중이 뭐...ㅎㅎㅎ
식물인간보다 독거노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독거노인이 낫지.
식물인간
그것 뿐만이 아니고
화엄경의 가치를 하루만이라도 생각해가지고
제대로 안다고 하면 세상천지 부러울 게 없어요.
내가 살콤 정신 병원을 가야 될 지는 모르겠는데... 진짜 그래. 진짜
와~! 나 어쩌다가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을 만나게 됐는가!
난 해인사 출가해가지고
통도사 한 8년 반 살고
범어사 지금 한 20년 넘게 살고, 올해 만 20년차인데...
은해사에서 3년 살고
신기하잖아.
너무 고맙잖아.
계속 본사만 살아. 본사만 큰절에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까
화엄경을 좋아하고 원효를 좋아했는 이유 뿐이라.
원효스님을 너무 좋아했던 이유 뿐이라. ㅎㅎㅎ
그러니까 큰절에 사는 게 대단한 일들은 아니지만
부산에서 제일 큰집이 우리집이야.
양산에서 제일 큰집이 그집이고 ㅎㅎ
합천에서 제일 큰집이 그집이고
좋찮아요?
이건희 저 별장?
어디 우리 별장하고 비교하노? ㅎㅎ
삼성도 굉장하고 하지만
여기는 해인사 가면 몇 백 년 내려오는 대장경이 있어. 대장경. 그죠?
비교할 수도 없어.
통도사 가면 또 사리탑 있고
범어사 오면 의상스님의 그냥 화엄의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흘러 내려간다고...
이제는 공이 여러분들한테 바톤이 넘어갔어요.
책임감을 가지고
이보제불막대지은以報諸佛莫大之恩
'내가 뭘... '
이런 생각하면 안된다고
아까 읽어봤죠?
그런 비루한 생각 내면 안된다고
'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해야지.
더 나아가서 이 나라 불교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전부傳付, 전해서 부촉을 받는다. 무엇을?
가업家業
그때는 어떻다?
법화시法華時라.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렇게 돌고 돌아서 이제 법화경까지
화엄경으로부터 해서 법화경까지
그렇게 이제 우리 경전이 설해졌는데
화엄경은 알아 듣기 힘들다 해가지고
차곡 차곡 차곡 밟아온 거 아니요.
그러면 따지고 보면 전부 뭘 얘기하기 위해서?
전부가 화엄경이라는 얘기 아니겠어요?
영리한 사람은 알아 듣죠?
원래 화엄경 원석을 줘놓으니까 씹어 먹지를 못해서
잘게 잘게 잘게 잘게 쪼개가지고 믹서에 갈아가지고
이렇게 준 것 아니에요?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네?
네
그러면 전부 뭐에요?
그게 그거지.
원래 금 덩어리 하나 가지고 있다가
들고 갈 힘이 없으니까
조금씩조금씩 나눠서 이렇게 그 역량만큼
애가 자라는만큼 이래 와서
처음에는 백 그램 주고, 그 다음 일 키로 주고, 십 키로 주고,
이렇게 주잖아요?
화엄경에도 그렇게 설법이 돼요.
십주품을 설할 때는 천 명한테
천 불찰미진수 법혜보살에게 가피를 받고
십행품을 설할 때는 만 부처님한테 가피를 받고
불찰미진수佛刹微塵數 그 다음에
십회향을 설할 때는 십만
십지품을 설할 때는 이론이 깊어갈수록
십억 불찰미진수부처님께 가피를 받거든.
그렇게 받아서 받는 것이 아니라
이론상에 그렇게 설명이 돼 있다고
그래서 조금만 생각하면
'아~! 이것 참 신기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화엄경 전체 39품 중에
내가 한 품을 딱 뽑아라 이런다면
여기 나오는 시성정각 세주묘엄품
이 품만 봐도 되는 거라.
이게 화엄경 전체품이라고 보면 돼요.
이거는 전혀 특별품이야.
특별품이고
그 다음 중간에 수행자의 입장에서 품을 뽑아라 이러면
십지품이 있어.
수행이 끝난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이세간품이 있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각자의 근기에 맞춰서 설한 품이 있다면
입법계품이 있어요.
이 4품은 화엄의 아~주 중요한 요촬이야.
딱! 촬약할 수 있으면
世主妙嚴品, 十地品, 離世間品, 入法界品
39품 중에
다른 품들은 어떠냐?
이 4품을,
다른 품에 대해서는 좀 미안하지만
그렇게 돼 있는 지는 모르지만
이 4품을 꿰어 맞추기 위한 주변의 데코레이션 정도에 불과해.
자~ 이 원응료, 이 안심료安心寮가 있으면 제일 강한 게 뭐야?
대들보 그죠?
그 다음 뭐지?
기둥
이 품이 바로 내가 지금 얘기하는 4품이다. 화엄에 있어서는
기와도 중요하고 서까래도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 더 중요한 거는 뭐겠어요?
대들보와 기둥이잖아.
불교에서 신도도 있어야 되고
부처님도 있어야 되고
다 이렇게 경전도 있고 다 중요하지만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보다 더 중요한 게 중이에요. 중
승보가 가장 중요해요.
승보가 있어야 부처님도 빛나고 법도 빛나고
승중즉법중僧重卽法重하고 승경즉법경僧輕卽法輕이라.
승려가 있는데 그냥 있어서는 안되고
승려가 비중 있는 승려가 있어야 돼.
다 중이 아니야.
녹록碌碌이가 돼서는 안된다 이거지.
녹록碌碌이라고 하는 거는
돌 석石변에다가 기록할 록자 옆에 붙는 것 있죠?
말씀 언 옆에다 붙는 것 있잖아.
말씀 언 떼고 돌 석자 쓰면 碌碌
그 사람이 녹록하지 않다, 이러면
碌碌이라는 건 산에 돌무더기 있잖아.
저~ 위에 올라가면 돌 무더기
아무 써먹을 데 없는 돌무더기
머리 수, 머리 수라 안하고 뭐요?
대가리 수만 채우는 중들 있죠. 대가리 수
그런 사람을 뭐라 해요?
녹록이라 하지.
녹록碌碌 ㅎㅎㅎ
녹록이라 하고
녹록치 않다, 이 말은
조금 우뚝한 큰돌이라 이 말이요. 쓸만한 사람
그래도 녹록이 빼버리고 나면 세상이 없어.
녹록이 잘 거느리고 살아야 돼.
회장이 되든지 여러분 주지가 되든지 조실이 되든지 이런 분들은
쓸 데 없는 놈들 악독한 종자들이 더러 있어.
그런데 다 못났다고 다 잘라내버리고 나면 산이 안돼.
산에 쓸 데 없는 돌도 있어야 돼. 그죠?
쓸 데 있는 돌만 있어야 되는 게 아니고
굽은 나무도 있어야 되고 쓸데 없는 돌도 이렇게 구성이 돼야
그게 높은 산이 되는 것이라.
히말라야에서 이쁜 돌만 갖다놓자 이러면
산 그 몇 미터 되지도 않을 거야.
다 추려내버리면
여러분들 어떻게 되든지 간에
화엄경이라고 하는 거는
그런 녹록들이 다 모여가지고 있는 그런 경전이다.
자~ 드디어 역사의
여러분들 역사의 한 페이지 남는 화엄경 본문 들어갑니다.
1, 시성정각(始成正覺) 1
如是我聞하사오니
一時에 佛이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하시며 始成正覺하시니라
끊는다고 중간 중간 끊어놨는데 연결해서 읽었어요.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如是라고 하는 것은
여시아문如是我聞 一時 佛 재사위국在舍衛國
우리 왜 금강경 할 때 그때 나오는 대목 있죠?
네
一時 佛 하는 것
이걸 흔히 우리 불교 경전에만 나오는 독특한 서두書頭죠.
이게 불교 경전이라고 승인 난 거지요.
인증, 인가 받는 것
그걸 뭐라 합니까?
육성취六成就라고 하죠.
여시如是라는 말은 뭡니까?
이와 같이 들었다고 하는 것은
이와 같다고 했을 때 바로 믿어야 된다 이거야.
신성취信成就라고 하죠.
아문我聞이라 할 때는 내가 들었다.
문성취聞成就
사실 듣는 것도
오늘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설명은 하지는 않겠지만
듣는다는 의지가 없으면 안들리거든.
듣는 것도 진짜 我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까지 이제 금강경 오가해
여러분들 배울 때 자세하게 나오잖아요?
해설 자세~하게 해놨어.
들은바 없이 듣는다,
白衣觀音은 無說說이요
南巡童子는 不聞聞이라고 이런 얘기 많이 들었지.
듣는 데에 대해가지고
일단 여기서부터 해서 뭐가 들었느냐?
잡다한 유위법을 들었느냐?
진리는 말할 수 없는데 어떻게 들었느냐?
白衣觀音은 無說說이요.
설한 바 없이 설했고
南巡童子는 들은 바 없이 들었다.
그게 뭐냐?
말 장난 하는 거냐? 뭐냐?
실제로 가만히 보면
그 맥락에서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돼요.
삼매를 얻은 사람이라야 그게 이제 이해가 되지.
글로써는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거든.
정~말 어렵고
그러면 선지식들이 무한히 고맙다고!
'하~! 어떻게 내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어른들이 이렇게 자세하게 써놨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특히 선어록 같은 것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래요.
하~! 자기들끼리 당신들끼리 만나요.
스승과 제자가 딱 만나는 순간에
한 번도 서로 주고 받고 해서 가르침을 받고 했는 사이가 아닌 때가 많거든.
육조단경六祖壇經에도 보면
육조스님하고 영가永嘉스님 만나잖아요?
하룻밤 자고 가고 그러죠?
그리고 영원히 또 안 만나잖아요?
선어록을 읽어보면 서로 이해 타산은 없고 거래가 없어.
법거량이라고 하는 것은 거래가 없는 것이라.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답이
그러면서 그 속에서는 진리를 아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깨끗하고 청정하고 어울려서 조화로운 것이 바로 느껴져.
'야~! 이것이 사람 인간 간의 대화인가보다!'
선문답 하는 것 있잖아요?
그런 것이 그렇게 느껴져.
'야~! 이것이 사람이 진리인가보다!'
이런 느낌이 있거든.
선어록은 많이 읽는 게 좋지.
처음에는 문득 보면
어디냐? 얼마 줄거냐?
우리 이런 것부터 따지잖아. 그죠?
저놈이 잘 생겼나? 못 생겼나? 얼마 줄거냐?
얼마 줘서 반갑다, 좋다,
이런 것만 따져가지고 서로 거래를 하잖아. 사람이
일반적인 대화는 그래.
어디 가서 취직하든지 그래도 그렇고, 그렇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게 아니야.
딱 보고 알아들었으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자기 쓸개까지 다 빼서 다 줘버려.
'이 사람은 진리를 지고 갈 내 후손인가보다.'
싶어서 그렇게 한다고!
화엄경은 읽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게 그런 것들이고
구절 구절이 그런 게 많아요.
아까 저 앞에 본 것 뭐가 있습니까?
소동파의 시 구절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이라.
저 계곡의 쏟아지는 물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모든 것이 부처님의 법문이고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이요
저 산에 지금 오리목이 피어나고, 벚꽃이 피고,
산색이 푸르러지고, 물이 흐르고,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그 모습이
전부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 아니겠느냐!
야래팔만사천문夜來八萬四千門이라
하룻밤만 지나가도 팔만사천 법문이 지나가는데
한 시간만 해도 그 법문 꺼리는
이 세상의 종이로 다 쓸 수가 없는 것이요.
한 시간이 아니고 한 일 분만
여기서 제대로 된 삼매를 강의한다면
그거는 이 세상의 모든 볼펜을 모으고
모든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겨도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라.
夜來八萬
하룻밤에도 저렇게 쏟아지는 법문이 몇 톤씩 쏟아지고
바닷물처럼 쏟아져버리는데
타일여하정사인他日如何呈似人인가
어느날 어떻게 이걸 다 사람들한테 설명해 들어 바칠 수 있겠느냐!
소동파가 그렇게 느꼈거든.
그리고 그 뒤에 아까 나오는 게송이 또 뭐요?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이라.
나에게 경전이 한 권 있다.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이라.
이 종이나 먹으로 된 이런 유위법인 지식 조각이 아니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펼치면 한 글자도 없다.
백지 수표라 이거지.
그런데 백지 수표를
마음을 텅~ 비우고 자기의 수행을 역량껏 해가지고
무한하게 그 백지 수표의 가치를 제대로 알면
이 중의 가치를 안다면
승보의 가치를 안다면
마음껏 이렇게 ??? 없겠느냐고
무한하게 자기를 쓰다가 이래 베풀어주고 가야 될 건데
그게 안되면 각일이 같으면 어떻게 되겠노?
백지 수표인지 아닌지 유치원생이 알아요? 몰라요?
모르지?
그러면 어떻게 돼?
그냥 버립니다.
휴지 조각처럼 버리고 똥 닦아버린다.
이 좋은 중노릇 하러 여기까지 왔다가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 몸 받아 비구 몸 받아가지고 중이 여기까지 와가지고는
백지수표로 똥닦이 해버리면 골치 아프잖아.
코 풀어버리고 내버려버리고
그래가지고 어디 다니냐?
백지 수표 내버려버리고 지팡이 짚고 돌아다닌다.
그래 하지 마세요.
不因紙墨成이라
먹이나 종이로 된 것이 아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
자! 내한테 이 경전이 화엄경
봅시다.
조금...육성취하다가 이리로 넘어갔지만
이렇게 보잖아!
이렇게 듣잖아! 그죠?
이렇게 말 하잖아!
보는 거는 800 공덕
듣는 거는 1200 공덕
냄새 맡는 거는 800 공덕
몸으로 부딪치는 이 촉감은 800 공덕
숨 쉬는 거는 800 공덕
혓바닥으로 말하는 거는 1200 공덕
뜻으로 생각하는 건 1200 공덕
이렇게 돼 있거든.
능엄경 할 때 다 배웠죠?
까먹어서 그렇지.
그것도 나중에 여가 나면 설명하지만
이 많은 공덕을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常放大光明
광명이라는 게 가시광선이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광명이라고 하는 건 바로 자기 본래풍광이야.
본래의 지혜를 빛을 내는 것이라.
숨 꼴까닥 해가지고 목숨 딱 떨어져버리면 듣고 싶어도 안 들려.
영가가 듣는 거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 몸과 이 마음이 곧 다른 걸로 해서,
특히 중의 몸뚱이와 중의 마음은 그대로 백지 수표요.
함부로 다룰 수 없어요.
자기가 어쨌든지 잘 보존해야 돼요.
내처럼 무리해가지고 이렇게 아프고 이러면
이건 부처님한테 죄 짓는 거요.
展開無一字
펼치면 한 글자도 없는데 한 생각도 없는데
無名無相絶一切
다 끊어져버리는데 그죠?
不守自性隨緣成
인연 따라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그게 이제 백지 수표라.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知所知非餘境
그 다음 뭐지?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능엄경 같은 데는
이일체상離一切相 즉일체법卽一切法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나서 일체법에 즉한다!
이렇게 해놨죠?
그러니까 금강경 같은 데는 뭐라 했어요?
이일체상離一切相, 모든 상을 떠난 것이
즉명제불卽名諸佛이다.
곧 부처님이라고 한다.
이래 해놨잖아요?
그러니까 일체상一切相을 떠나서 사실은 이 화엄경을 보는 건데
아문我聞이라고 했을 때도 듣는다고 했지만
진짜 뭘 들었느냐?
잡지식을 들었느냐? 이야기꺼리를 들었느냐?
이게 아니다 이거야.
진리를 들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얘기 아니겠어요?
진리를 들었다.
그 진리의 방편에 바깥에 나와 있는 빙산의 일각 같은 건 보지 말고
그 저변에 깔린 걸 함께 봐야 될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
문성취聞成就
信成就, 聞成就,
그 다음 뭐죠?
일시, 시성취時成就
한 때에 설했다, 어느 때라고 지정할 수 없다.
이렇게 하죠?
특히 화엄경 같은 경우는 일시설이 아니라 상시설이라고 상시설常時說
항상 설하죠.
역부여시상설법亦復如是常說法
그 다음 時成就
그 다음에 설법한 사람이 누구냐?
주성취主成就 있잖아요?
佛, 부처님을 견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세간주가 설명하기는 하지만
佛
어디에?
처성취處成就
장소는 어디냐?
마갈제국 아란야 법보리장중 1회차 그 다음
2회차는 보광명전
3회차는 도리천
4회차는 야마천
5회차는 도솔천
6회차는 타화자재천
7회차는 보광명전
8회차는 보광명전
9회차는 급고독원
보광명전이 몇 번?
3번 있는 거죠.
그 다음에 처성취處成就
시성정각한다.
시성정각을 기신론에서 여러분들이
기신론 배웠나? 안 배웠나?
안 배웠으면 내가 녹음해놓은 거로라도 대신해라 했지?
네
우리 열 명이 넘는데 다 들었는데 왜 5명 밖에 안 보이노?
ㅎㅎㅎㅎㅎ
같이 모여서 들었습니다.
같이 들었어?
여하튼 기신론은 뼈대와 같은 것이라서
무조건 보고 또 보고 듣고 해야 돼.
기신론 내 것이 아니야.
원효를 알려면 원효스님이 제일 좋아했던 제일 자신 있는 논문이
지금도 중국에 천 년이 넘도록 그 논문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논문이 없어요.
원효스님 것
그걸 안 본다고 하면
마음을 알고자 하는 믿음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
반드시 봐야 돼.
청량국사도 봤고, 원효도 봤고, 의상도 봤고, 원효스님 제자도 봤고,
중국에 명나라 3대 선승이라고 하는 감산덕청敢山德淸 스님도 봤고,
그 다음 명나라 삼대 선승 중에 한 분이 또 누구지?
지욱智旭스님 있죠?
지욱선사도 그것 봤거든.
지욱선사 열망소裂網疏
감산 덕청스님은 화엄경강요를 80권 다 지어놨어요.
감산스님이 중국 남화선사에 가면
육조스님이 계시고 좌보처에 덕청스님 계시거든.
덕청스님 감산스님 들어봤죠?
감산스님이 하도 강사들이 거짓말하고
거짓말하고 지식에만 매료돼가지고
매너리즘에 빠져가지고 글을 써놓고 이러니까
아는지 모르는지 법성도 모르고 불성도 모르고
그런 중들이 지금도 많아.
불교 방송 듣다보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명이 아니라니까.
저 자식이 어려서부터 공부 안하더니만 늙어가지고 거짓말만 한다.
큰스님 돼가지고
니가 큰스님 하면 난 큰스님 안 해.
나는 법명을 바꿔버린다.
큰 덕德자 법 헌憲자
덕헌(더큰)스님
하하하하하
채널 돌리고 싶을 정도야.
어른스님 표현을 빌리자면 30분을 못들어주겠다는 거야.
거짓말하는 꼬라지 보면
남들 모르는 사람들 앉혀놓고 유치원생들 앉혀놓고
막~ 자기가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똥에다 밥을 비벼가지고 그렇게 먹는 거야.
최소한 기신론 같은 것 화엄경 같은 것
여기에 준해서 얘기해야 될 것 아니야.
감산스님이 그런 경우를 당했거든.
야~ 이런 건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으니까
선사거든.
이러면 경전 해석을 내가 다시 해야 되겠다 싶어서
능엄경도 새로 쓰시고
주역선해周易禪解도 쓰시고
노자해老子解도 쓰시고
불교 경전 뿐만 아니라.
기신론起信論도 직해直解라고 써놨거든. 起信論 直解
내 방에 위에 얹어놓은 파란 책이 도인 감산 덕청스님이 쓴 책이라.
감산스님 몽유전집夢遊全集 열 권짜리로 돼 있거든.
시도 얼~마나 잘 썼는지 몰라!
그렇게 禪과 敎를 사통팔달한 거라.
敎만 통하고 禪을 통하지 못하면
여사찬죽통如蛇鑽竹桶이라.
뱀이 죽통을 벗어나지 못한 거하고 같다 하고
敎를 안 배우고 禪만 하면
개구변란도開口便亂道
입만 벌리면 어지럽게 막 얘기하는 거라.
종교宗敎 일제통一切通하면
禪과 敎를 같이 통해야만이
여일조허공如日照虛空하여
태양이 하늘에 뜬 거와 같다 해서
법법두두현法法頭頭顯하고
산천로유통山川路流通하리라.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요.
허공에서 두두물물이
큰 것 작은 것 모나고 둥근 것을 무겁고 가벼운 것을
깨끗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이 경전 속에 다 있는 것이거든.
그래서 법법두두현法法頭頭顯하고
산천로유통山川路流通한다고 이래 나왔다.
통교불통종通敎不通宗이면 여사찬죽통如蛇鑽竹桶이요
통종불통교通宗不通敎면 개구변란도開口便亂道니라
종교宗敎를 일제통一切通하면 여일조허공如日照虛空하여
법법두두현法法頭頭顯하고 산천로유통山川路流通하리라
이런 얘기가 우리 沙彌律儀 할 때
다 배웠는데 홀딱 다 까먹어버렸지?
그것이 신기하다!
여하튼 그래서 在摩竭提國阿蘭若에서
시성정각始成正覺이 기신론에 나왔지.
시성정각을 줄이면 뭐가 되나 하면
시각始覺이 된다. 시각
네
이걸 반야심경에는 뭐라고 했죠?
시성정각을?
구경열반이라고 해.
그걸 다른 말로 시각의 마지막 종착역은 구경각이거든.
시각이 처음에는
불각不覺 그 다음에
상사각相似覺
수분각隨分覺
구경각究竟覺
이렇게 되잖아요?
처음에 不覺이 범부 중생들이 어느 정도 발심을 하면
相似覺
십주 십행 십회향까지는 상사각이라 하죠?
그러면서 이제 바깥으로 현행하는 잡번뇌들이
의식의 번뇌들이 다 끊어지고
환희지의 비로소 경지에 들어가면
십지의 초지에 들어가면 수분각이라 하거든.
隨分, 분수 알죠? 분수
10분의 1, 10분의 2, 10분의 3, 있잖아요?
자기의 몫 만큼 자기 아는 만큼 깨친다 하는 게
수분隨分, 분이 있는 거요.
그전에는 이제 십주 십행 십회향
이때까지는 경지가 아무리 깨달음의 경지가 있다 하더라도
보살의 경지라 하더라도
그것은 꿈속에서 금을 줍고 꿈속에서 수표를 줍고
꿈속에서 땅을 사고 했는 거 하고 똑같은 거라.
꿈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
그러면 실제적으로 각답실지脚踏實地라.
눈을 뜨고,
우리 요 밑에 뭐라고 써놨지?
조고각하照顧脚下
각답脚踏, 이 다리로
답踏, 실제로 이렇게 탁 밟는 것
실지實地, 마음의 진실된 경지를, 심지를,
실제로 밟는 것이 잡념이 끊어져야 된다.
화엄경 십지품에도 이런 얘기 나와요.
어제도 잠깐 설명했는데
망상이 있고 의심하고 이런 사람들은
화엄경의 이런 첫 시성정각부터 믿어지지가 안 해.
안 믿는 거는 2 가지가 있어.
경전을 첫째 믿지를 않고
경전을 설해놓은 방법을 믿지를 않아.
나는 어떻게 믿게 됐을까!
이렇게 경전을 설하다 보면 좀 흥분해. 사람이
살콤~ 가버려.
게임에 빠지듯이 있잖아요?
저 각일이처럼 경전 들면 지저분~하게
잠이 오고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와~ 이게 어찌 된 거야'
싶어서 밤이 하루 이틀 세우는 거 아니야.
밤을 세우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낮을 세워버린 적도 있어.
하루종일 낮에 잡짓을 안하고 하루종~일 책 보고 이렇게 앉아 있어.
낮도 세우고 밤도 세우고 몇날 며칠 가는 줄도 몰라.
그런데 여기서 그런 거는 각설하고라도
시각
이랬을 때는
수분각이라고 하는 거는 십지보살을 얘기하거든. 십지
견도, 수도,
이렇게 능엄경 할 때 다 배웠죠?
견도분, 수도분, 그 다음 뭐야?
.......
참 신기하네... ㅎㅎ
견도분見道分 수도분修道分 증과분證果分 결경분結經分 조도분助道分
이렇게 쭉 나가는 것 있었죠?
5 분으로 이렇게 나누죠.
앞전에 안 배웠나? 가을에?
배웠습니다.
배운 건 까먹어야 된다, 이 말이가?
ㅎㅎㅎ
가볍게...ㅎㅎㅎ
하여튼 시성정각까지 오늘 했는데
한 번 밑에 원문을 해석해 봅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저가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阿蘭若) 법(法) 보리도량(菩提道場)에 계실 때였습니다.
계시면서 그때 무엇을 이루었다?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었도다.
흔히 이제 부처님께서 언제?
샛별 보고 깨쳤다고 이런 얘기하잖아요?
네
그런데 샛별 보고 깨치면
우리도 샛별 맨날 보는데 왜 못 깨치노?
서산스님은 낮에 닭 울음 소리 듣고 깨쳤다 했죠?
그러면 우리 어디 가야 깨치겠어요?
양계장 가면 깨치나?
ㅎㅎㅎ
향엄지한香嚴智閑선사는 격죽오도擊竹悟道라.
향엄지한선사는 굉~장히 뛰어난 학자였거든.
향엄지한선사도 감산덕청스님 만큼 뛰어난 학자라.
그리고 혜가스님
달마스님 제자 있죠?
그 분도 굉~장히 뛰어난 학자라.
위산영우僞山靈祐스님 책을 봐서 알지만
위산경책潙山警策 보잖아요?
네
하~! 감탄할 지경이라.
뒤에 144자인가...
幻身夢宅 空中物色
前際無窮 後際寧剋
出此沒彼 升沉疲極
未免三輪 何時休息
貪戀世間 陰緣成質
從生至老 一無所得
根本無明 因茲被惑
光陰可惜 剎那不測
今生空過 來世窒塞
從迷至迷 皆因六賊
六道往還 三界匍匐
早訪明師 親近高德
決擇身心 去其荊棘
世自浮虛 衆緣豈逼
研窮法理 以悟爲則
心境俱捐 莫記莫憶
六根怡然 行住寂默
一心不生 萬法俱息
뒤에 4구절 돼 있는 것 있지?
그것 보면 앞에 장문을 줄여놨는데
유식唯識과 중관中觀에 대해서
얼~마나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잘 설명해놨는지 감탄할 지경이라.
그래서 위산대원선사 경책은 불조삼경佛祖三經이라 하거든.
그러니까 역대 선사들은 그렇게
동산양개洞山良价화상 조동종의 조당집祖堂集 같은 것 보면
그런 분도 동산양개화상 치문 할 때 다 배워봤죠?
네
하~! 보통 일이 아니라.
학자로서도 굉장해.
서장書狀도 마찬가지고 그...누구지?
대혜종고大慧宗杲스님도 마찬가지라.
고봉원묘高峰原妙 선요禪要 쓴 스님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뒤에 후대를 위해서 뭘 남길 것이냐 이 말이야.
그런데 있는 쪼가리 공부도 안하면 어떻게 될 거냐?
그래서 감산덕청스님이
강사들이 어설프게 거짓말하고
법성도 잘 모르고 불성도 잘 모르고 자기의 심지를 잘 모르면서
삼매 이런 것도 경험해보지도 안하고
책 조각 이렇게 모아가지고 그냥 논문 짜집기 하듯이
꽃꽂이 같이 그런 생명력 없는 것
며칠만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것 있잖아.
일반적인 논문은 내가 볼 때는 꽃꽂이해놓은 것 같아. 꽃꽂이
이것도 금방 볼 때는 그럴싸 하잖아.
볼만 하잖아. 책이
그런데 이게 진짜 수행력이 있고 생명이 있나...하고
딱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니거든.
그런 건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어쨌든지 여러분들은
80 화엄경 다 읽고 금강경도 몇~ 번 읽고
그래가지고 기신론 같은 것
난 심지어 2만 번 봤다고 해도 괜찮아.
저번에 보니 한 2만 번 본 거 같아.
그래 왜 이만 번 봤느냐?
이만하면 됐다고...2만 번
하하하하
감산 덕청스님 마지막 돌아가실 때는 어떻게?
죽는 것까지 보여주겠다. 죽는 것까지
감산스님은 앉아서 좌탈하셨잖아.
앉아서 돌아가시면 좌탈坐脫
서서 돌아가시면 삼조 스님처럼 입망入忘
소나무 가지 잡고 이제 삼조 승찬스님은 서서 돌아가시잖아. 그죠?
문둥병 환자야.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내보다 훨씬 나아.
입술 터지고 무릎 아프고 이런 정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이 뭣고는 항상 계속 해야 돼.
이 뭐고 안되면 뭐라도 해야 되죠?
뭐 무꼬라도 해야돼. 뭐 무꼬!
ㅎㅎㅎ
그렇게 해서 어쨌든지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어.
가야할 길이 있으니까
감산 덕청스님이 당당하게 등신불이 돼가지고
지금 누구 옆에 있는 거요?
육조 혜능스님 옆에 모신 거야.
남화선사 작년에 학인스님들 데리고 갔는데
참 잘~ 생겼거든. 감산 덕청스님이
참 덕망스럽게 생겼거든.
육조스님은 내처럼 좀 꾀죄부리하게 그래 생겼는데
육조스님은 좀 쫍찌그리하게 생겼지만
감산덕청스님은 하~! 부처님처럼 생겼어. 부처님처럼
공사한다고 이래 나무로 막아놓고 이래서 먼지 투성이인데
거기다 오체투지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라.
법당 안에 막 엉망진창이었거든.
먼지가 있고 청소가 안돼서 대나무 아시발 있잖아요?
거기에 대고 절 하고 왔다니까!
그런 분들이 이제 중간 중간에 그런 분들이 탄생하셔가지고
나옹스님이나 경허스님이나
우리 조금 전에 읽었던 이런 분들이 탄생하셔가지고
불교를 꼭지를 바로 한 번씩 잡아놓고
바로 안 잡아놓으면
각일이 같은 게 있어가지고는 불법 어떻게 내려가겠노!
큰일 난다.
멀쩡한 불교 다 펑크 낸다.
육성취(六成就)
모든 경전은 첫머리에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을 육성취(六成就)라고 합니다. 육성취란 信, 聞, 時, 主, 處, 衆으로 육성취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경전으로서 성립이 됩니다.
금강경으로 본 육성취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① 신성취(信成就) : '如是 이와같이'라는 말로 경전결집시 제자 아난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와같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如是'가 이에 해당한다.
② 문성취(聞成就) : '문(聞) 들었다'는 아난존자가 직접 들었다는 것으로 여기서는 '我聞'이 여기에 해당한다.
③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어느 때'로 부처님이 설법하는 날과 시간으로 여기서는 一時가 여기에 해당함.
④ 주성취(主成就) : '부처님(佛) '설법을 한것이 붓다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佛'이 여기에 해당
⑤ 처성취(處成就) : 경전을 설하신 장소를 밝히는 것으로 여기서는 '舍衛國祇樹給孤獨園'이 여기에 해당함.
⑥ 중성취(衆成就) : 설법을 들은 모든 대중을 말하는 것으로
'大比丘衆'이 여기에 해당함.
潙山警策
潙山大圓禪師
* 위산대원(潙山大圓) : 771(代宗 6)년~853(宣宗 7)년. 潙山은 中國 湖南省 長沙府 寧鄕縣에 있는 산 이름. 小潙山과 구별하여 大潙山이라고도 함. 師가 이 곳에 住錫하였으므로 號가 됨. 大圓은 唐나라 代宗이 내린 諡號. 이름은 靈祐. 福州. 長溪 .趙氏의 아들. 15세에 출가하여 本郡 建善寺의 法常에게 중이 되고, 23세에 百丈懷海의 제자가 됨. 元和(806~820)末年 懷海의 命을 받아 長沙로 가던 도중 大潙山을 지나다가 머무르니 郡民이 다투어 모여 들었다. 드디어 절을 짓고 禪ㆍ敎를 40여년 동안 說하다가 大中 7(853)년 正月에 無疾而坐化하니 壽가 83세이었다. 뒤에 그의 제자 慧寂은 仰山에서 禪을 宣揚하여 靈祐ㆍ慧寂의 파를 潙仰宗이라 함. 著書에 「語錄」1권이 있다.
夫業繫受身。未免形累。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이 연루됨(形累)을 면하지 못하니
‧業 : 前因(예전의 원인)
* 업계(業繫) : 業은 梵語 「Karma」의 譯語. 作業의 뜻. 즉 身ㆍ口ㆍ意로부터 일어나는 행위를 이름. 業에는 善業과 惡業이 있는데 身ㆍ口ㆍ意 세 가지가 善하게 움직일 때의 행위를 善業이라 한다. 예를 들면 殺生ㆍ妄語ㆍ瞋恚 등과 같다. 또 때에 따라서는 惡業만을 단순히 業이라 하기도 함. 여기서의 業은 과거에 지은 善惡의 三業을 이름이니 즉 前因이다. 이 業은 有情을 繫縛하여 自在하지 못하게 하므로 業繫라 함. 또는 業縛ㆍ業繩이라고도 한다.
‧身 : 今果(지금의 결과)
* 형루(形累) : 몸(形)이 있으므로 해서 자유롭지 못하고 얽매임(累)을 받는다는 뜻.
稟父母之遺體。假衆緣而共成。
부모께서 물려주신 몸을 이어 받고 뭇 인연에 의지하여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雖乃四大扶持。常相違背。
비록 사대四大가 [이 몸을] 부지하여 나가지만 항상 서로 어기고 등지는 까닭에
無常老病。不與人期。
무상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과 더불어 기약하지 못하고
朝存夕亡。剎那異世。
아침에 있다가도 저녁이면 없어지니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 찰나(刹那): 《仁王經》云: 「一念中有九十刹那, 一刹那中, 經九百生滅.」 言極少時也.(《인왕경》에 이르기를 「한 생각 중에 90 찰나가 있으며, 한 찰나 중에 9백 차례 생멸을 거듭한다」 하였으니, 지극히 적은 시간을 말한다.)
譬如春霜曉露。倐忽即無。
비유하면 마치 봄날의 서리나 새벽의 이슬과도 같아서 잠깐 사이에 곧 사라지니
岸樹井藤。豈能長久。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 속의 등나무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 안수(岸樹) : 사람의 목숨이 위태함을 비유한 말.
「是身易壞 猶如河岸 臨峻大樹」<涅槃經 壽命品>.
* 정등(井藤) : 옛날 어떤 죄인이 王에게 죄를 범하고 두려워서 도망가는데, 王이 사나운 코끼리로 하여금 그를 쫓게 하였다. 그는 두려워서 스스로 마른 우물로 들어갔다가 우물 중턱에서 썩은 등나무 넝쿨을 붙들었는데, 밑에는 사나운 龍이 독을 뿜으며 바라보고, 곁에는 다섯 마리의 독사가 해치려 하고, 또 검고 흰 두 마리의 쥐가 넝쿨을 씹어 끊으려 하는데. 큰 코끼리가 그 위에 다달아 그를 잡으려 하니 그는 몹시 위태롭고 두려웠다. 그런데 머리 위 한 나무에서 때때로 달콤한 꿀방울이 그 입속에 떨어지므로 그는 그 맛에 끌려 두려움도 잊었다 한다. 여기에서 「우물」은 生死를, 검고 흰 두 마리의 쥐는 白月(전보름)과 黑月(후보름)을, 꿀방울은 五欲樂을 이름이니 즉 달콤한 꿀맛에 빠져 生死의 두려움도 생각지 않음을 비유한 말. (維摩經 方便品 注)
念念迅速。一剎那間。轉息即是來生。何乃晏然空過。
찰나찰나가 신속하여 한 순간에 숨을 돌리면 곧 내생來生인데
어찌 편안히 있으면서 헛되게 지낼 수 있겠는가.
* 염념(念念) : 念은 梵語 刹那의 譯語.
父母不供甘旨。六親固以棄離。
부모를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지도 않고, 육친六親도 굳이 버리고
不能安國治邦。家業頓捐繼嗣。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지도 못하고, 가업의 상속마저 문득 던져버리고
緬離鄉黨。剃髮稟師。
주위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와서 머리를 깎고 스승으로부터 계를 받았으면
* 체발(剃髮) : 初, 比丘於如來「善來」言下, 鬚髮自落, 袈裟披體, 成道十一年, 始以寶刀, 剪剃鬚髮, 又囑憍陣如等, 遍於天下, 爲諸沙彌受戒, 是剃髮受戒之始.(처음에는 비구들이 여래의 「잘 왔구나 비구야!」 하는 말끝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으며, 도를 이룬 지 11년에 처음으로 보검으로써 머리카락을 잘라 삭발하였고 또 교진여 등에게 부촉해서 천하에 두루하며 모든 사미들을 위해 수계하게 하니, 이것이 머리를 깎고 계를 받는 시초이다.)
內勤尅念之功。外弘不諍之德。
안으로는 생각을 이기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행을 넓힘으로써
‧成而不朽者 功, 周而不匱者 德也. 又德, 得也, 有自生而 得之於天, 有躬行而 得之於心, 此言躬行也.(완전히 이루어져 허물어지지 않는 것을 功이라 하고, 두루 원만하여 빠진 것이 없는 것을 德이라 한다. 또한 德을 「얻음(得)」이라 하는데, 태어날 때는 그것(德)을 하늘로부터 얻고, 몸을 굽혀 수행할 때는 그것(德)을 마음으로부터 얻으니, 그러한 것을 躬行이라 말한다.)
逈脫塵世。冀期出離。
티끌세상을 멀리 벗어나서 해탈의 기약을 바래야 할 것인데
何乃纔登戒品。便言我是比丘。
어찌하여 겨우 계를 받은 정도에 올라서서 문득 「나는 비구이다」라고 말하며
檀越所須。喫用常住。
시주[檀越]들이 바라는 바가 있는 상주물常住物만 먹고 쓰면서
‧檀, 施也, 施之以財; 越, 越貧窮海. 言所須, 謂施財者欲邀福懺罪也.
(檀단은 베푼다(施)는 것이니 재물로써 베푼다는 뜻이며, 越월은 빈궁한 바다를 뛰어 넘는다는 뜻이다. 「所須」라고 하는 것은 재물을 보시하는 자가 복을 구하며 죄를 참회하고자 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 단월(檀越) : 또는 檀家. 번역하여 施主라 함. 六度 가운데 布施를 行하는 사람. 檀은 檀那의 약칭. 越은 施主한 공덕으로 빈궁한 세계를 뛰어 넘는다는 뜻.
不解忖思來處。
그 온 곳을 헤아려 생각하지도 않고
‧來處者, 此一鉢之食, 出於作者一鉢之汗血也, 又施者所求也.
(來處라는 것은 이 한 발우의 음식이 그 음식을 일군 자의 한 발우에 해당하는 땀과 피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시주자의 추구하는 바에서 나온 것임을 말한다.)
謂言法爾合供。
「법이 그러하니 공양을 받음이 합당하다」라고 일컬으며
* 법이(法爾) : 自爾ㆍ法然ㆍ天然ㆍ自然과 같음. 다른 조작을 假藉하지 않고 그 법이 저절로 그렇게 되어 있음.
喫了聚頭喧喧。但說人間雜話。
먹고 나서는 머리를 맞대고 시끄럽게 떠듦에 단지 세간의 잡된 말들만 하고 있는 것인가.
然則一期趁樂。不知樂是苦因。
그러한 것은 곧 한 때의 쾌락을 뒤쫓음에 있어서 쾌락이 고통의 원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曩劫徇塵。未嘗返省。
지난날에 세속의 인연(塵緣)만을 쫓음에 일찍이 반성하지 못하였으니
時光淹沒。歲月蹉跎。受用殷繁。施利濃厚。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날수록 받아 쓴 것은 점차 많아지고 시주의 은혜는 두터워만지는데,
動經年載。不擬棄離。
여차하면 한 해가 지나가건만 버리고 여윌 생각은 하지 않으니
積聚滋多。保持幻質。
쌓이고 모인 것이 점점 많아지는데도 헛된 몸뚱이만 보호해 지키는구나.
導師有勅戒勗比丘。進道嚴身三常不足。
지도하는 스승이 글(勅)을 보내어 비구들을 경계하고 권면하기를
「나아가 도를 배우는 자들은 몸가짐을 엄히 하되 세 가지 상주물은 부족한 듯 하게 하라」 하셨거늘,
‧三常, 衣服‧飮食‧睡眠. 若圖取足, 何能行道?
(三常은 의복과 음식과 수면을 말하는데, 만약 풍족하게 가지기를 꾀한다면 어찌 능히 도를 행하겠는가.)
人多於此。躭味不休。
사람들이 대체로 여기에 대해서 그 맛을 탐내어 쉬지 않음에
日往月來。颯然白首。
해가 지고 달이 뜨니 바람결에 머리는 허옇게 세고 만다.
後學未聞旨趣。應須博問先知。
뒤에 배우는 자들이 아직 요지(旨趣)를 듣지 못했으면 응당 선지식先知識에게 널리 물어야 할 것이거늘
將謂出家。貴求衣食。
출가하였다고 일컬으며 어찌 옷과 음식을 귀히 여겨 추구하는 것인가?
佛先制律。啟創發蒙。
부처님께서 먼저 계율을 제정하여 처음으로 계도하고 몽매함을 깨우쳐 주심에
軌則威儀。淨如冰雪。
그 궤칙軌則과 위의威儀는 깨끗하기가 마치 얼음이나 눈과 같아서
止持作犯。束斂初心。
그치고 지키며 짓고 범하는 것으로 처음 먹은 마음(初發心)을 단속함에
‧攝善法戒, 止善爲犯, 作善爲持; 攝律儀戒, 止惡爲持, 作惡爲犯.
(善法의 계를 섭수함에 있어서는 善을 그치는 것이 犯하는 것이 되고 善을 짓는 것이 지키는 것이 되며, 律儀의 계를 섭수함에 있어서는 惡을 그치는 것이 지키는 것이 되고 惡을 짓는 것이 犯하는 것이 된다.)
* 속렴(束斂) : 단속
微細條章。革諸猥弊。
미세한 조강條綱과 전장典章으로 모든 외람된 폐단을 개혁하셨으나
毗尼法席曾未叨陪。了義上乘豈能甄別。
계율을 설하는 자리에 일찍이 외람되게 참석하지 못하였으니
了義의 최상승 법을 어찌 밝히고 분별할 수 있겠는가?
* 비니법석(毘尼法席) : 戒律을 설하는 자리. 「毘尼」는 梵語「Vinaya」의 音譯. 또는 毘奈耶ㆍ鼻那耶라고 하며 번역하여 調伏ㆍ滅ㆍ律이라 함. 三藏의 하나로 부처님이 說한 戒律을 이름. 「法席」은 法筳이라고도 하며 즉 설법하는 자리.
* 견별(甄別): 甄明 陳別 : 분명하게 밝혀서 나누어 늘어놓다.
可惜一生空過。後悔難追。
애석하다! 일생을 헛되이 보내면 그 후회를 뒤쫓기 어려우며
教理未嘗措懷。玄道無因契悟。
교리敎理에 일찌기 마음을 두지 않으면 현묘한 도에 계합하여 깨달을 원인이 없다.
‧凡爲比丘, 五載學律, 又五歲通經然後, 稱爲大師, 且復參學禪道.
(무릇 비구가 되어서는 다섯 해 동안 율을 배우고 또 다섯 해 동안 경전을 두루 익힌 연후에야 大師라 일컬어지게 되며, 그러고는 다시 禪道를 참구하게 된다.)
及至年高臘長。空腹高心。不肯親附良朋。唯知倨傲。
나이를 먹고 승랍僧臘이 많아지기에 이르면 빈 뱃속에 마음만 높아져서 어진 벗과 친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오직 거만할 줄만 알며
‧律中, 以七月十六日, 是比丘五分法身生來之歲, 則十五日, 是臘除也. 比丘出俗, 不以俗年爲計, 乃數夏臘耳.(율장에 7월 16일로써 비구의 五分法身이 생겨난 날로 삼으니 곧 7월 15일이 臘除이다. 비구는 세속을 떠났기에 세속의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夏臘을 셈할 뿐이다.)
未諳法律。戢斂全無。
불법과 계율을 깨닫지 못하므로 이를 가다듬을 마음도 전혀 없다.
* 집렴(戢斂) : 戢도 斂의 뜻으로 收斂ㆍ整齊와 같음.
或大語高聲。出言無度。
혹은 거창한 말투와 높은 목소리로 말을 함에 법도가 없으며
不敬上中下座。婆羅門聚會無殊。
위아래의 품계를 공경하지도 않으니 바라문 집단의 모임과 다를 것이 없다.
椀鉢作聲。食畢先起。
[식사 중에는] 밥그릇 소리를 내거나 식사를 마치면 먼저 일어나며
‧椀, 小盂; 鉢, 梵語具云 「鉢多羅」, 此云應器, 唐‧梵雙擧. 食時若作聲, 餓鬼咽中火起.
(椀완은 작은 발우이며 鉢발은 범어로 갖추어 말하면 鉢多羅로써 이곳 말로는 應器응기라 하니, 당나라 말과 범어를 함께 말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만약 소리를 내면 아귀의 목구멍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하였다.)
去就乖角。僧體全無。
오고 감에 있어서도 행동이 괴각스러우니 승려로서의 모습이 전혀 없다.
* 괴각(乖角) : 말이나 행동에 대중의 질서를 지키지 않고 유달리 어긋나는 것.
起坐忪諸 動他心念。
일어나고 앉을 때도 허둥대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혼란케하며
‧忪, 心動也, 又驚也.
(忪송은 심장이 두근거림, 또는 놀람을 말한다.)
不存些些軌則 小小威儀。將何束斂後昆。新學無因倣俲。
사사한 궤칙軌則이나 소소한 위의威儀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 장차 어떻게 [스스로를] 단속하겠는가? 뒤에 새로이 배우는 사람들이 본받을 것이 없다.
‧昆, 同也‧咸也, 又後也.
(昆곤은 ‘같이(同)’ 혹은 ‘함께(咸)’를 말하며, 또는 ‘뒤(後)’를 말한다.)
* 신학(新學) : 새로 發心하여 佛道를 배우는 이. 또는 그 사람.
纔相覺察。便言我是山僧。
겨우 깨달아 성찰하게 되면 걸핏하면 하는 말이 「나는 산 속의 승려이다」라고 하지만
未聞佛教行持。一向情存麤糙。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여 도를 닦아 가지지 못함에 한결같이 정情을 거친 곳에 둘 뿐이다.
* 행지(行持) : 佛道를 닦아 가짐.
‧糙與粗同.(糙는 粗와 같다.)
* 추조(麤糙) : 또는 粗糙. 두 글자가 모두 거칠거나 지저분하다는 뜻.
如斯之見。蓋爲初心慵惰。饕餮因循。荏苒人間。遂成疎野。
이와 같은 소견은 대개 처음 먹은 마음이 게으른 까닭으로 탐이나 내고
하는 일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보내다가 마침내 성글고 거칠게 되니
* 도철(饕餮) : 財貨와 음식을 탐냄. 轉하여 惡獸ㆍ獸人의 뜻으로 쓰임. ※<左傳 文公 18年 杜注>에 「貪財爲饕 貪食爲餮」이라 하였고 <孔疏>에「饕餮은 獸名이니 身如牛人面 目在腋下 食人」이라 하였음.
* 인순(因循) : 舊習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의지하여 따름.
* 임염(荏苒) : 遷延함. 시간을 자꾸 끄는 모양.
不覺躘蹱老朽。觸事面牆。
어느덧 걸음걸이도 배우지 못해 고루하게 늙어버리고 무슨 일에 부딪히면 마치 얼굴이 담벼락에 맞닿은 것과도 같게 된다.
‧躘踵, 小兒行貌.
(‘용종’은 갓난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이다. 따라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
* 면장(面牆) : 담을 面(향할 면)한다는 뜻으로 識見이 좁음을 이름. ※<書 周官>에 「不學이면 面牆」이라 하였고, <論語 陽貨篇>에 「人而不學周南召南이면 其猶面牆而立也與인져」하였다.
後學咨詢。無言接引。縱有談說。不涉典章。
후학들이 물어오면 마땅히 이끌어 줄 말이 없으며, 비록 얘기한다 하더라도 전장典章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或被輕言。便責後生無禮。瞋心忿起。言語該人。
간혹 업신여기는 말이라도 들으면 곧장 후생後生의 무례함을 질책하며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그 사람을 꾸짖다가
一朝臥疾在牀。衆苦縈纏逼迫。曉夕思忖。心裏恛惶。前路茫茫。未知何往。
하루아침에 병으로 누우니 병석의 온갖 고통이 얽히어 핍박함에 아침저녁으로 헤아려 생각해 보면 마음속이 혼란하고 앞 길이 망망하여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한다.
從茲始知悔過。臨渴掘井 奚爲。
이로부터 비로소 허물을 뉘우칠 줄 알지만 목말라 샘파는 격이니 어찌 하겠는가.
自恨早不預修。年晚多諸過咎。臨行揮霍。怕怖慞惶。
스스로 일찍이 미리 수행하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여러가지 과오와 허물이 많음을 한탄하며, 죽음에 임해서는 몸부림치며 두려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行 : 몰라 하여 떨며 당황해 한다.) 또는 揮攉
휘확. 빠른 모양. ※<焦竑字學>에 「搖手曰揮 反手曰霍」이라 하다.
縠穿雀飛。識心隨業。
비단이 뚫어지면 참새는 날아가니, 식심識心이 업業을 따라가는 것은
‧《七賢女經》「有雀飛入甁中, 以縠覆其甁口, 旣已穿破飛去.」 雀比識心, 甁比身, 縠紗也.
(《칠현녀경》에 「참새가 병 속으로 날아 들어가자 얇은 비단으로 그 병 입구를 덮어놓았더니 얼마 있다가 구멍이 뚫려 터지자 날아가 버렸다」라 하였다. 참새는 識心에 비유하였고 병은 몸에 비유한 것이며, 縠은 비단을 말한다.)
* 식심(識心) : 六識 혹은 八識의 心王(의식작용의 본체)을 이름.
如人負債。強者先牽。
마치 사람이 빚을 지게 되면 가장 큰 빚쟁이가 먼저 끌어당기듯이
心緒多端。重處偏墜。
마음의 실마리는 여러 갈래지만 무거운 쪽으로 치우쳐 떨어지기 마련이다.
無常殺鬼。念念不停。命不可延。時不可待。
무상의 살귀殺鬼는 순간순간에도 쉬지 않음에 생명은 가히 늘리지 못하고 시간은 가히 기다리지 않으니,
人天三有。應未免之。
인계人界나 천계天界나 삼계三界에 있어서 응당 이를 면할 수 없다.
‧人天三有 : 人은 人界, 天은 天界, 三有는 三界와 같음. 有라 함은 存在한다는 뜻으로 善惡의 業因에 따라 받게 되는 苦와 樂이 제각기 다른 것을 말한다. 三有는 三界의 生死로서 ①欲有(욕계의 생사) ②色有(색계의 생사) ③無色有(무색계의 생사). 人天은 別이고 三有는 總으로 말한 것임.
如是受身。非論劫數。感傷歎訝。哀哉切心。豈可緘言。遞相警䇿。
이와 같이 몸을 받은 것이 몇 겁劫이나 되었는지 논할 것도 없이, 그 고통을 느낌에 탄식하고 놀라며 슬픔은 마음을 저며내니 어찌 입을 다물고 경책의 말을 전하지 않을 것인가.
‧訝, 驚怪也.
(訝아는 놀랍고도 괴이함을 말한다.)
所恨同生像季。去聖時遙。佛法生疎。人多懈怠。
한스러운 것은 상법像法과 계법季法의 시기에 함께 태어나 성인의 시기와 요원히 멀고 불법은 생소해져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르고 나태해진 것이니
‧佛滅後, 正法一千年, 像法一千年, 末法一萬年, 然後法滅. 像似也, 似正法時也; 季末也.
(부처님 입멸 후 正法 기간이 1천년이요 像法 기간이 1천년이요 末法 기간이 1만년이며, 그러한 후에 법은 소멸된다. 像은 흡사하다는 것이니 正法과 흡사한 시기를 말하며, 季는 끄트머리를 말한다.)
略伸管見。以曉後來。
간략하게 소견을 펴서 뒤에 오는 이들을 깨우치고자 한다.
* 관견(管見) : 古人云 「管中窺豹, 時見一班.」 自謙小見也.
(옛 사람이 말하기를 「대롱관으로 표범을 엿보면 때때로 한 개의 점을 볼뿐이다」 하였으니, 스스로 소견임을 겸양해 하는 말이다.)
若不蠲矜。誠難輪逭。
만약 자만을 없애지 아니하면 진실로 윤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逭逃, 未能逃脫輪廻三界也.
(逭환은 도망(逃)이니 삼계의 윤회를 도망하여 능히 빠져 나오지 못함을 말한다.)
上敍出家人過咎, 以警覺, 下說出家人行履, 使其勉勵而策進也.(위에서 출가인의 허물을 말함으로써 경책하여 깨우치게 하고 아래에서 출가인의 마땅한 행적을 말함으로써 힘써 권장하여 매진하게 하였다.)
夫出家者。發足超方。心形異俗。紹隆聖種。震攝魔軍。
무릇 출가자出家者는 길을 떠나고 세간世間을 초월하여 마음과 몸을 속인과 달리하고 성현의 종자를 이어받아 융성하게 함으로써 마군魔軍이 두려워 떨게 하고
‧出家有三, 一 辭親 出世俗家; 二 悟道 出五蘊家; 三 證果 出三界家. 此卽初也.
(出家출가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어버이를 여의는 것이니 세속의 집을 나서는 것이요, 두 번째는 도를 깨우치는 것이니 오온의 집을 나서는 것이요, 세 번째는 불과를 증득하는 것이니 삼계의 집을 나서는 것이다. 여기서는 곧 첫 번째를 말한다.)
* 성종(聖種) : 聖者의 種性이란 뜻. 佛道에 들어가 三學을 닦는 이를 이름. 三寶 가운데 僧寶.
用報四恩。拔濟三有。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해야 하며 삼계三界를 남김없이 구제해야 한다.
* 사은(四恩) : 사람으로 태어나서 받는 네 가지의 은혜.
①父母恩ㆍ衆生恩ㆍ國王恩ㆍ三寶恩[心地觀經] ②父母恩ㆍ師長恩ㆍ國王恩ㆍ施主恩[釋氏要覽]
若不如此。濫廁僧倫。言行荒疎。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외람되게 승려의 무리에 섞였을 뿐 말과 행동이 거칠고 서툴며,
‧厠雜, 濫厠言泛雜也.
(厠측은 섞이다(雜)이니, 濫厠남측은 외람되이 섞임을 말한다.)
僧倫승륜 : 僧衆ㆍ僧徒와 같음
虛霑信施。昔年行處。寸步不移。
헛되이 신도의 시주만 받을 뿐 예전에 행하던 처신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며
* 신물(信施) : 信者의 施物.
恍惚一生。將何憑恃。
일생을 황홀히 보내게 될 것이니 장차 무엇에 의지하여 힘을 쓰겠는가.
況乃堂堂僧相。容皃可觀。皆是宿植善根。感斯異報。
하물며 당당한 승려의 모습은 그 용모가 가히 볼 만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전생에 선업善業의 뿌리를 심었기에 이와 같은 특이한 과보를 감응한 것이거늘
* 선근(善根) : 좋은 果報를 초래할 만한 善因 또는 여러 가지 善을 낳는 근본. 不貪ㆍ不瞋ㆍ不痴를 三善根이라 일컬음.
便擬端然拱手。不貴寸陰。事業不勤。功果無因克就。
문득 단정히 앉아 손이나 마주잡고서 촌음寸陰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하나니, 사업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훌륭한 공을 쌓고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여도 능히 이룰 인연이 없을 것이다.
豈可一生空過。抑亦來業無裨。
어찌 일생을 헛되이 보내겠는가!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내세의 업業에도 도움이 없을 것이다.
辭親決志披緇。意欲等超何所。
어버이를 하직하고 뜻을 굳혀 먹물 옷을 입은 것은 그 마음속에 어느 곳을 몽땅 뛰어넘기를 욕망하였던가?
* 치의(緇依) : 검은 물을 들인 옷. 袈裟.
* 등초(等超) : 上等諸聖 下超凡俗.
曉夕思忖。豈可遷延過時。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보건대 어찌 느직느직 시간만 보낼 것인가?
* 천연(遷延) : 오래 끎.
心期佛法棟梁。用作後來龜鏡。常以如此。未能少分相應。
불법의 동량이 되어 훗날의 귀감으로 쓰일 것을 마음으로 기약해야 하느니, 항상 이와 같이 하더라도 약간의 상응相應마저 쉽지 않을 것이다.
* 귀경(龜鏡) : 龜所以決猶豫, 鏡所以辨姸媸.
(거북은 그것으로써 예측을 결정하며 거울은 그것으로써 예쁘고 추함을 판단한다.)
出言須涉於典章。談說乃傍於稽古。
말을 하면 모름지기 고전의 문장(典章)을 섭렵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얘기를 꺼내면 곧 옛 것에 가까이 머무르는 것이 되어야 하며
形儀挺特。意氣高閑。
형의形儀는 뛰어나게 하고 의기意氣는 고상하게 해야 한다.
* 정특(挺特) : 挺然而特立也.(특출하여 특별히 드러남이다.)
遠行要假良朋。數數清於耳目。住止必須擇伴。時時聞於未聞。
멀리 길을 나서면 반드시 어진 벗에 의지하여 자주자주 귀와 눈을 맑게 하고, 머물러 있을 때는 모름지기 도반을 가려서 듣지 못했던 것을 때때로 들어야 한다.
故云生我者父母。成我者朋友。
그러한 까닭에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시켜 주는 이는 벗이다」라고 하였으니,
親附善者 如霧露中行。雖不濕衣。時時有潤。
어진 이를 가까이 따르면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걷는 것과 같아 비록 옷이 젖지 않더라도 때로는 촉촉함이 있을 것이며,
狎習惡者 長惡知見。曉夕造惡。即目交報。歿後沉淪。
악한 자와 익숙하여 가까이하면 나쁜 지식과 견문만 늘어나 아침저녁으로 못된 짓만 할 것이니 곧 눈앞에서 과보를 받을 것이고 죽은 후에는 고통의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다.
‧《付法藏經》云: 「佛言, 一切衆生, 志性無定, 近惡則惡, 近善則善. 昔, 王有惡象, 罪人當死者, 繫投象前, 踶踐殺之. 象廐失火, 移象近寺累日, 後不殺人. 王怪問之, 智臣對曰: 在寺中, 聞善言故然耳. 又移置屠肆中, 其惡如前. 獸旣如是, 人而不親近善友者乎!」
(《부법장경》에 말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모든 중생들은 뜻과 품성에 고정됨이 없어서 악을 가까이 하면 곧 악해지고 선을 가까이 하면 곧 선해진다 하였다. 옛날에 어떤 왕에게 포악한 코끼리가 있어서 죄인 가운데 죽임을 당할 자는 묶여서 코끼리 앞에 던져 짓밟아 죽이고는 하였다. 코끼리의 우리에 불이 나서 근처 사찰에 며칠 동안 코끼리를 옮겨 두었더니 그 후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지혜있는 대신이 대답하기를 절에 있으면서 좋은 말을 들은 까닭일 것입니다 하였다. 또 도살장에 옮겨 두었더니 그 포악함이 예전과 같았다. 짐승도 이미 이와 같거니 사람이 되어서 착한 벗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一失人身。萬劫不復。忠言逆耳。豈不銘心者哉。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이 지나도록 회복이 어려우니 충고하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하여 어찌 마음에 새겨 두지 않겠는가.
便能澡心育德。晦迹韜名。蘊素精神。喧囂止絕。
곧장 마음을 씻고 덕을 기름으로써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숨기며, 정신을 깨끗하게 기름으로써 속세의 시끄러움이 그치고 끊어지게 해야 한다.
‧隱晦其跡而和光同塵, 不市其名而去華就實.
(그 자취를 숨겨서 빛을 감추고 티끌에 섞이며, 그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서 화려함을 제거하고 실다움에 나아간다.)
‧蘊素精神 : 蘊, 積也蓄也; 素, 皎也潔也. 精者人之元氣, 氣之伸者曰神, 言藏蓄而潔白其神氣也.
(蘊온은 쌓는다거나 모음을 말하고 素소는 희다거나 깨끗함을 말한다. 精정이란 사람의 원기이며 氣를 펴는 것을 神신이라 하니, 그 神氣를 모으고 쌓아서 결백하게 함을 말한다.)
‧喧囂止絕훤효지절 : 止息斷絶乎喧煩紛囂之心跡也.지식단절호훤번분효지심적야
(시끄럽고 번잡하며 어지럽고 떠들썩한 마음의 자취를 그치고 쉬며 단절함을 말한다.)
若欲參禪學道。頓超方便之門。
만약 참선參禪으로 도를 배워 문득 방편方便의 문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心契玄津。研幾精妙。決擇深奧。啟悟眞源。
마음을 현묘한 나루터에 계합시켜 그 정묘함을 남김없이 연구하고 심오한 진리를 가리고 선택하여 진여眞如의 근원을 열어서 깨우쳐야 할 것이니
‧玄津현진 : 玄妙한 津梁이란 뜻으로 곧 佛敎를 이름.
博問先知。親近善友。
널리 선지식에게 물어보고 착한 벗과 늘 가까이 하라.
此宗難得其妙。切須子細用心。
이러한 종지宗旨는 그 현묘함을 얻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可中頓悟正因。便是出塵階漸。此則破三界二十五有。
그렇게 하는 중에 문득 올바른 인因을 깨달으면 곧 이것이 티끌세계를 벗어나는 층계이자 순서이니, 이로써 삼계의 이십오유二十五有는 파괴되는 것이다.
‧正因정인 : 謂自心體性.(자기 마음의 근본되는 품성이 곧 正因이다.) 物心諸法을 내는 因種. 緣因의 對.
‧三界삼계 : 生死流轉이 쉴새 없는 迷界를 欲界ㆍ色界ㆍ無色界 셋으로 분류한 것. ①欲界, 欲은 탐욕이니 특히 食欲ㆍ婬欲ㆍ睡眠欲이 치성한 세계 ②色界, 욕계와 같은 탐욕은 없으나 미묘한 형체가 있는 세계 ③無色界, 色界와 같은 미묘한 몸도 없고 순 정신적 존재의 세계. 이 三界를 六途ㆍ二十五有ㆍ九地로 나누기도 함.
‧二十五有이십오유 : 有는 存在란 뜻. 三界를 二十五有로 나눈 것 ①欲界有에 十四有(四惡趣ㆍ四洲ㆍ六欲天) ②色界有에 七有(四禪天과 初禪 가운데 大梵天, 四禪 가운데 淨居天과 無想天) ③無色界有에 四有(四空處)를 이름. 이를 줄여서 三界와 六途라 한다.
內外諸法 盡知不實。從心變起 悉是假名。不用將心湊泊。
안팎의 모든 법이 실없이 마음을 쫓아 변화하여 일어난 것이니 그 모두가 거짓된 이름인 것을 남김없이 앎으로써 마음을 그 곳에 머무르게 하지 말라.
* 주박(湊泊) : 배가 모임. 또는 사물이 모임. 여기에서는 執着의 뜻.
但情不附物。物豈礙人。
다만 정情이 물物에 붙지만 않는다면 물物이 어찌 사람을 장애하겠는가.
任他法性周流。莫斷莫續。
저 법성法性이 두루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어 끊지도 말고 잇지도 말라.
聞聲見色。蓋是尋常。者邊那邊。應用不闕。
소리(聲)를 듣고 색色을 볼 때에 대체로 예사로운 것이나 이렇게 하건 저렇게 하건 응용함에 모자람이 없나니,
如斯行止。實不枉披法服。亦乃酬報四恩。拔濟三有。
이와 같이 모든 일을 행하고 그친다면 진실로 법복法服을 그릇 되이 입은 것이 아닐 것이며 또한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하고 삼계를 남김없이 구제하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生生若能不退。佛階決定可期。
세세생생에 만약 퇴보하지만 않는다면 깨달음의 지위(佛階)를 결정코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往來三界之賓。出沒爲他作則。
오고 감에 삼계의 나그네가 될 것이며, 나고 죽음에 다른 이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此之一學最妙最玄。但辦肯心必不相賺。
이 한 가지 학문이 가장 오묘하고 가장 그윽하니 단지 힘써 옳게 여기는 마음만 가진다면 반드시 속임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若有中流之士未能頓超。且於教法留心 溫尋貝葉。精搜義理。傳唱敷揚。接引後來。報佛恩德。時光亦不虛棄。
만일 중류中流의 선비가 있음에 단박에 초탈하지 못한다면 일단 교법敎法에 마음을 두어 경전과 율법을 원만히 익히고 그 뜻과 이치를 정밀하게 찾아서 널리 전하고 폄으로써 뒤에 오는 이들을 맞아들여 이끌어 준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며 시간 역시 헛되게 낭비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온심(溫尋) : 溫習과 같음. 이미 배운 것을 다시 익힘. 尋은 尋繹의 뜻.
‧貝葉패엽 : 佛滅後, 阿難等 結集經律, 書貝多羅樹葉.
(부처님 입멸 후 아난 등이 경장과 율장을 결집할 때 패다라 나무의 잎사귀에 글을 썼다.)
必須以此扶持。住止威儀。便是僧中法器。
반드시 이러한 것으로써 자신을 붙들어 나간다면 머무르고 그치는 위의威儀가 곧 승려 가운데 법다운 그릇이 될 것이다.
豈不見倚松之葛上聳千尋。附託勝因方能廣益。
어찌 보지 못했는가! 소나무에 의지한 칡은 위로 천 길을 솟아오르듯이 경전(勝因)에 의탁하면 바야흐로 널리 유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懇修齋戒。莫謾虧踰。
정성스럽게 재齋와 계戒를 닦을 뿐 부질없이 이지러뜨리거나 지나치지 말라.
‧齋者, 過中不食爲名, 戒者, 防非止惡爲義.
(齋재는 정오가 지나면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명색을 삼고, 戒계는 그릇된 것은 방지하고 사악한 것은 그치게 하는 것으로 의미를 삼는다.)
‧虧踰휴유 : 虧缺律行, 踰越敎戒.
(율법의 행을 이지러뜨리고 교법의 계를 넘어선다.)
世世生生。殊妙因果。不可等閑過日。
세세생생에 빼어나고도 현묘한 인과因果이기에 우두커니 날을 보내거나 멍청하게 시간을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兀兀度時。可惜光陰。不求升進。徒消十方信施。
가히 한 순간도 아껴야 하거늘 오르고 나아감을 추구하지 않고 한갓 시방十方의 정성어린 시주물만 소비한다면
亦乃辜負四恩。積累轉深。心塵易壅。髑途成滯。人所輕欺。
이는 또한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기에 쌓여가는 업이 더욱 깊어질 것이며 마음의 티끌은 막히기 쉬움에 닿는 곳마다 걸림이 될 것이니, 이로서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기만하는 바가 된다.
古云彼既丈夫我亦爾。不應自輕而退屈。
옛 사람이 이르기를 「그도 원래 장부였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응당 스스로를 가벼이 여겨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佛誡羅睺羅偈(부처님이 라후라를 훈계한 게송.)
若不如此。徒在緇門。荏苒一生。殊無所益。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한갓 불문佛門에 있으면서 한 생을 그럭저럭 보내는 것이니 결단코 유익할 것이 없을 것이다.
伏望興決烈之志。開特達之懷。擧措看他上流。莫擅隨於庸鄙。
엎드려 바라건대, 결단성 있고 매서운 뜻을 일으키고 특별나고도 뛰어난 생각을 펼쳐서 행동하고 멈출 때는 저 상류上流를 볼 지언정 용렬하고 비속한 것을 제 멋대로 따르지 말라.
* 거조(擧措) : 일체의 擧動과 行爲를 가리키는 말.
今生便須決斷。想料不由別人。
금생에는 모름지기 결연코 단절할 것임에 생각건대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을 것이 아니니,
息意忘緣。不與諸塵作對。
뜻을 쉬고 인연을 잊음으로써 모든 티끌과 더불어 대對를 짓지 말라.
內若不動。外無所爲。心本空。境本寂。只爲久滯不通。
마음은 텅 빈 것이고 경계 또한 공허한 것이건만 단지 오래도록 막혀서 통하지 않게 되었을 따름이니,
熟覽斯文。時時警䇿。強作主宰。莫徇人情。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고 때때로 경책함으로써 스스로를 기어코 주재하도록 하여 인정에 끄달리지 않게 하라.
業果所牽。誠難逃避。
업業의 결과가 끌어당기는 바는 진실로 도피하기 어렵다.
聲和響順。形直影端。因根歷然。豈無憂懼。
소리가 부드러우면 메아리도 순하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단정하듯이 인과因果가 뚜렷한데 어찌 근심과 두려움이 없겠는가.
故經云。假使百千劫。所作業不亡。因緣會遇時。果報還自受。
그러므로 경전에 이르기를 「비록 백천겁이 지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마주할 때는 과보 또한 스스로 받게 된다」 하였다.
‧《一切有部經》(일체유부경)
故知三界刑罰縈絆殺人。弩力勤修。莫空過日。
그러므로 알지어다! 삼계의 형벌은 사람들을 바짝 얽어맬 것이니 노력하고 삼가 수행하여 헛된 나날을 보내지 말라.
深知過患。方乃相勸行持。願百劫千生處處同爲法侶。
허물 되고 근심되는 줄을 깊이 알고서야 바야흐로 이에 서로간에 수행修行하고 지계持戒하기를 권하는 것이니, 백겁百劫과 천생千生 동안 곳곳에서 함께 법의 도반이 되기를 원하노라.
乃爲銘曰。
幻身夢宅。空中物色。
덧없는이 몸뚱이는 꿈결속의 저택이요,
푸른허공 그가운데 物物이며 色色일세.
前際無窮。後際寧剋。
이미앞서 지나간때 다했음이 없건마는,
뒤이어서 다가올때 어찌다함 있으리요.
出此沒彼。升沉疲極。
이곳에서 태어나서 저곳으로 죽어가니,
오르고또 내리기에 피로함이 지극하나,
未免三輪。何時休息。
삼계윤회 면하기는 아직아득 하올지니,
그어느때 어디에서 숨이라도 돌릴텐가.
貪戀世間。陰(五陰也)緣(十二因緣)成質。
티끌세상 탐을내어 내못잊어 하는것은,
오온덩이 열두인연 바탕이룬 때문일세.
從生至老。一無所得。
이내몸이 나며부터 늙어주검 되기까지,
그어느것 한가지도 얻은바가 있지않아,
根本無明。因茲被惑。
속속들이 뿌리깊은 無明이라 하는놈이,
이것으로 인하여서 더욱미혹 하게되다.
光陰可惜。剎那不測。
스쳐가는 한순간도 가히아껴 둘것이니,
찰나또한 순간이나 예측할수 없으리다.
今生空過。來世窒塞。
지금이때 이금생을 허황되이 보낸다면,
이어오는 세상에는 궁색하게 막힐것을.
從迷至迷。皆因六賊。
혼미하게 시작하여 혼미함에 다다름은,
그모든것 六塵으로 말미암은 것이리니,
六道往還。三界匍匐。
그저六道 이리저리 하릴없이 오고가며,
그저三界 이리저리 슬금슬금 기어가네.
早訪明師, 親近高德
일찌감치 눈밝은이 스승으로 찾아뵙고,
높은덕을 지닌이는 친근하게 사귀어서,
決擇身心。去其荊棘。
몸과마음 잘잘못을 맺고풀음 받아들여,
그곳에다 뿌리놓인 가시덤불 들어내리.
世自浮虛。衆緣豈逼。
이세상은 그본래가 들뜨고도 공허함에,
무리지은 인연인들 어찌핍박 하겠는가.
研窮法理。以悟爲則。
법의이치 남김없이 궁구하려 들려면은,
무엇보다 깨달음을 준칙으로 삼을지니,
心境俱捐。莫記莫憶。
이마음도 그경계도 모두모아 내버리고,
기억일랑 하지말며 생각마저 하지말라.
六根怡然。行住寂默。
저六根이 화합한채 그렇게들 편안하면,
가고오고 머무는일 고요하여 질것이며,
一心不生。萬法俱息。
그런채로 한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일만가지 모든법이 모두쉬어 들것이다.
* 위산경책 (한글)
업(業)으로 받은 몸은 형체에 매임을 면치 못하여 부모가 남겨주신 몸을 받고 여러 인연을 빌려 이루어진 것이다. 4대(四大)로 지탱해 가나 그것들은 항상 서로 등지니 덧없는 생노병사가 우리에게 예고없이 다가와 아침엔 살았다가도 저녁에 죽어 찰나에 다른 세상이 된다. 마치 봄 서리나 새벽 이슬 같아서 잠깐 사이에 말라버리며, 벼랑 위의 나무나 우물 속의 등넝쿨과도 같은데 그것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생각생각 빨리 지나 한 찰나에 숨이 떨어지면 그대로가 내생인데 어찌 편안하게 허송세월하랴.
그대들은 좋은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6친(六親)을 이별하였다. 나라를 다스리지도 않고 가업(家業)의 상속을 모두 버렸으며, 속세를 멀리 떠나 머리 깎고 스승에게 계(戒)를 받았다. 그렇다면, 안으로는 망념 이기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키워서 티끌 같은 세상에서 아득히 벗어나기를 기약해야 한다.
그런데 계를 받자마자 "나는 비구(比丘)로다"하며 신도들이 시주한 상주물(常住物)을 먹고 쓰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할 줄 모른다. 그리고는 으례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하면서 먹고 나서는 머리를 맞대고 세상잡사만을 시끄럽게 떠드니, 이것이야말로 그저 한때의 즐거움만을 찾는 것일 뿐, 그 즐거움이 결국에는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 속에서 6진(六塵)에 휘둘려 한번도 돌이켜보지 못하는구나. 세월이 갈수록 받아쓰는 것이 늘어나 시주의 은혜가 두터워지며 움찔했다 하면 해가 지나는데 버릴 생각은 하지 않고 더욱 모아 허망한 육신만 붙드는구나.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도를 닦고 몸을 단속하는 데에는 옷과 밥과 수면, 이 세 가지를 넉넉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며 법도를 지어주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쉬지 않고 탐내느라 세월을 보내 어느덧 흰머리가 된다. 방향을 잡지 못한 후학이라면 반드시 선지식에게 널리 물어야 하는데도 "출가한 이는 옷과 밥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계율을 정하여 발심한 이를 인도해 주시고 몽매함을 열어 주셨는데 그 법도가 빙설처럼 청정하다. 우선 선을 실천하고 악을 예방하는 것으로 발심을 단속케 하시며, 나아가 자세한 조목으로 모든 폐단을 개혁하시어 계율 도량을 이루셨다. 그런데도 학인들은 전혀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궁극적인 이치로 가는 최상 법문〔了義上乘〕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애석하다. 일생을 부질없이 지내면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다.
교리에는 원래 뜻을 두지 않았으므로 현묘한 도를 깨달을 씨앗이 없다. 그러고도 나이 먹고 법랍이 많아지면 속은 빈 채 아만을 부리며, 어진 벗과 친하려 하지 않고 오직 거만할 줄만 알 뿐이다. 법도와 계율을 몰라 전혀 조심성이 없어서, 말끝마다 점잖치 못하게 큰소리치며 위 아래 사람을 공경하지 않으니, 바라문(婆羅門)의 떼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공양을 할 때는 바릿대 소리를 시끄럽게 내다가, 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먼저 일어나 거슬리고 괴팍스럽게 행동하니 사문의 체통이라곤 전혀 없다. 불쑥불쑥 섰다 앉았다 하여 남들을 놀라게 하니 자그마한 법도와 소소한 몸가짐도 되어 있지 않은데 무엇을 가지고 단속하겠는가. 그래가지고는 새로 배우는 후배들이 본받을 것이 전혀 없다.
그러다가 남을 훈계하게 되면 `나는 산승이로다'하나 불교적인 수행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오직 티끌같은 경계에만 생각을 둔다. 이같은 소견은 모두 발심부터가 졸렬하고 게을러 도철(:욕심이 많아서 자신을 망치는 짐승)처럼 세속에서 세월을 그럭저럭 보내다가 드디어는 황폐해진 것이니, 어느 결에 걷지 못할 정도로 늙게 되면 하는 일마다 담장을 마주한듯 캄캄하다.
후학이 물어도 지도할 말이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경전의 말씀과는 관계없는 말이다. 혹 업신여기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즉시 예의가 없다고 화를 내면서 꾸짖는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병상에 눕게 되어 뭇고통이 조여오면 아침 저녁으로 생각해 보아도 속으로 두려워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앞길이 아득하다.
이러고 나서야 허물을 후회하나 마치 당장 목이 타는데 우물을 파는 격이니 어찌 하겠는가! 일찌감치 수행하지 않고 나이 들어 여러가지로 허물이 많음을 스스로 한스러워하다가 죽는 마당에 가서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두려움에 떤다.
그다음에는 막아 놓았던 비단뚜껑을 뚫고 병 안의 새가 날아가듯, 식심(識心)이 업(業)을 따라가는데, 마치 여러 사람에게 빚진 사람이 힘센 빛장이에게 먼저 끌려가는 것과 같아서, 마음도 여러 갈래지만 업이 무거운 쪽으로 떨어진다.
죽음을 재촉하는 귀신이 생각생각에 정지하지 않으니, 수명은 더이상 연장하지 못하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아서 인천(人天)의 3계에 태어남을 면하지 못한다. 이렇게 받아온 몸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겁수(劫數)를 따져볼 수도 없다. 회환과 탄식으로 가슴이 저려오니 어찌 입을 봉하고 경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한스러운 것은 상법(像法), 말법(末法) 시대에 태어나 부처님 세월이 아득하다는 점이다. 불법은 생소하고 사람들은 게으름을 많이 피우므로 간략히나마 좁은 소견을 펴서 뒷사람들을 일깨우려 하니, 만일 뽐내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생사윤회에서 도망하기 어려울 것이다.
출가한 사람이라면 발을 들어 세속을 뛰어넘어 몸과 마음을 그들과 달리 해야 한다. 부처의 종자를 이어 융성하게 하고 마군을 항복받아서 4은(四恩:부모·스승·국가·시주의 은혜)에 보답하고 3계 중생을 제도해야 하니,
만약 그렇지 못하면 외람되게 사문의 대열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언행이 거칠고 신도의 시주물만 헛되게 받으며 옛사람들의 삶과는 조금도 닮아가지 않고 정신없이 일생을 보내니 장차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당당한 사문의 모습이 봐줄만 하니, 지난 세상에 선근(善根)을 심어 이렇게 남다른 과보를 받은 것인데, 여기서 그저 팔짱을 끼고서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과보를 성취해 낼 원인이 없으니 어찌 일생을 부질없이 지내랴. 이렇게 하면 내생의 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먹물 옷을 입은 것은 무엇을 뛰어넘으려 했던 것인가. 아침 저녁으로 생각하면 어찌 마음 편하게 세월을 보내랴. 마음속으로 불법의 대들보가 될 것을 다짐하여 뒷날 본보기가 되게 하라. 설사 항상 이와같이 한다 해도 조금밖에 상응하지 못한다.
말을 꺼냈다 하면 반드시 경전에 들어맞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옛것을 상고해야 하며, 우뚝한 몸가짐과 고고한 기상을 가져야 한다.
먼 길을 갈 적에는 좋은 도반과 동행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맑게 하고,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도반을 가려 때때로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속서(俗書)에도 이르기를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고 나를 완성시켜 준 사람은 벗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가는 것 같아서, 비록 당장에 옷이 젖지는 않아도 점점 촉촉하게 적셔진다.
한편 악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나쁜 지견(知見)을 길러서 아침 저녁으로 악한 짓을 하는데, 가까이는 목전에서 과보를 받고 멀게는 죽은 뒤에 윤회에 들게 된다.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영원히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충성스러운 말이 귀에는 거슬리나 어찌 마음에 새겨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씻고 덕을 길러 자취와 명성을 숨기고, 정신을 깨끗하게 길러서 마음에 시끄러운 경계를 끊어야 한다. 만일 참선(參禪)으로 도를 익혀 방편(方便)을 단박에 초월하려 하면, 마음을 현묘한 나루터에 두고서 정밀하고 묘함을 끝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심오한 뜻을 결택하여 참 근원을 깨닫도록 해야 하며, 선지식에게 널리 묻고 좋은 도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이 참선은 그 묘한 도리를 깨닫기 어려우니 정말로 빈틈없이 마음을 써야 한다. 만일 그러던 중에 본심〔正因〕을 단박에 깨달으면 그대로 티끌세상과 수행점차〔階級漸次〕를 벗어나니, 이것이 곧 3계 25유(二十五有)를 타파하는 것이다. 안팎의 모든 법이 실제가 아니라 마음을 따라 변하여 일어난 것으로, 모두가 거짓 명칭임을 알아서 절대로 마음을 그쪽으로 끄달리지 말라. 감정이 사물에 끄달리지만 않는다면 사물이 어찌 사람을 장애하랴. 법성(法性)이 흐르는대로 맡겨둘 뿐, 끊으려 하지도 말고 이으려 하지도 말라. 소리를 듣고 물건을 볼 적에도 일상대로 하며, 이쪽과 저쪽에 응용하되 조금도 모자라게 하지 말라.
이렇게 살아가면 실로 속절없이 법복(法服)만을 입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4은(四恩)에 보답하고 3계 중생을 구제하며, 세세생생토록 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끝내는 성불을 기약하리라. 3계의 손님으로 왕래하면서 나고 죽는 이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 참선이 가장 오묘하니, 하겠다는 마음만 내라. 반드시 그대를 속이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단박에 생사를 초월하지 못할 중간부류라면 우선 교학에 마음을 두어 경전을 반복해서 익혀야 한다. 이론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전해 주고 널리 펴서 뒷사람을 지도하여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해야지 그저 세월만 보내서는 안된다.
반드시 이와같이 해나갈 것 같으면 모든 일상이 승려 가운데서 법기(法器)가 될 만하다. 보지도 못하였느냐? 소나무에 감긴 칡넝쿨이 천길이나 솟아오르는 것을. 훌륭한 바탕에 의지해야만 널리 이익될 것이다.
재(齋)와 계(戒)를 성실히 닦아서 부질없이 부족하거나 넘치게 하지 말라. 출가인이 된 것은 세세생생토록 닦아온 수승한 인연 때문이니, 헛되이 날을 보내고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 세월이 아까운데도 더 닦으려 하지 않고 부질없이 시방(十方) 신도의 시주물만 소비하고 나아가 4은(四恩)을 저버린다.
쌓인 업은 더더욱 깊어가고 마음의 티끌은 막히기 쉬워 부딪치는 곳마다 걸리니,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기만을 당한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그가 장부였다면 나도 대장부니 결코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퇴굴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만일 이렇지 못하면 부질없이 절집에 있으면서 일생을 그럭저럭 보낼 뿐, 조금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노니 맹렬한 뜻과 각별한 마음을 내어, 상근기를 바라보고 처신할지언정 함부로 용렬하고 비속한 이들을 따르지 말라. 금생에 모름지기 결단하라. 생각해 보면 깨달음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알음알이를 쉬고 반연을 잊어 모든 번뇌와 마주하지 말라. 마음은 빈 것이고 경계도 고요하건만 단지 오래 막혔기 때문에 통하지 못할 뿐이다.
이 글을 잘 읽고 수시로 경책하여 굳세게 주관을 세워 인정을 따르지 말라. 업과(業果)에 끌리면 진실로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목소리가 온화하면 메아리가 순조롭고, 모습이 반듯하면 그림자가 단정하다. 이처럼 인과가 분명한데 어찌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랴.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가령, 영원한 세월이 지난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회합해 만날 때 자기 과보를 다시 받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3계라는 형벌이 사람을 얽어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열심히 닦고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아라. 5욕생사가 허물과 병통임을 깊이 알아 비로소 수행할 것을 권하노니, 백천겁토록 어디서나 다같이 도반이 되기를 바란다.
명(銘)으로 말하리라.
허깨비 몸, 꿈속의 집이여
허공 꽃이어라
앞길도 다함 없는데
뒷길이라고 짧겠는가
여기서 나와서 저기에서 사라지니
떴다 잠겼다 지칠대로 지쳤도다
3계 윤회 면치 못했는데
어느 때에 쉬어지랴.
세간을 탐내고 그리워하여
5음·12연으로 이 몸뚱이 이루니
태어나서 늙어지도록
하나도 얻은 것 없도다.
근본무명이 그 때문에 미혹이 되고 말았으니
시간이 아깝구나
찰나도 헤아리기 어렵거늘
금생을 부질없이 보내면 내세에도 꽉 막히리라.
미혹에서 미혹에 이르는 것
모두 6적(六己)이 씨앗되어
6도(六道)에 오락가락
3계에 기어다니네
일찌감치 눈 밝은 스승 찾고
덕 높은 도반을 가까이 하여
몸과 마음을 결택하고
애욕의 가시덤불일랑 모두 버려라.
세상은 본디 들뜨고 비었는데
뭇 인연이 어찌 사람을 핍박하랴
법의 이치 연구하려면
깨닫겠다는 목표를 세우라.
마음과 경계 함께 버리고
새겨두거나 기억하지 말라
6근(六根)이 고요하면 하는 일마다 고요하고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모든 법 저절로 쉬어지리라.
불조삼경(佛祖三經)
개설
『불조삼경(佛祖三經)』의 ‘불조(佛祖)’는 부처와 조사(祖師)를, 그리고 ‘삼경(三經)’은 세 가지 경전을 일컫는다. 최초의 한역 경전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불설사십이장경(佛說四十二章經)』과 최후의 가르침으로 알려진 『불유교경(佛遺敎經)』, 그리고 위앙종(潙仰宗)의 창시자인 위산(潙山) 영우(靈祐, 771∼853)가 편찬한 『위산경책(潙山警策)』등으로 구성된 책이다.
세 가지 불경에 대해서 중국 송나라의 조동종(曹洞宗) 승려인 수수(守遂, 1072∼1147)가 주석을 달았고, 그것을 원나라 승려 몽산(蒙山) 덕이(德異, 1231∼1298)가 하나로 모아서 서(序)를 직접 쓰고 편찬하였다. 몽산이 서문을 남기고 편찬한『불조삼경』은 한국에만 전하며, 현재 전해지는 대부분의『불조삼경』도 몽산본의 계통을 잇고 있다. 보물694호는 책의 마지막 부분의 간기를 통해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전주 원암사(圓巖寺)에서 간행한 사실과 행심(行心)의 발원(發願)으로 법공(法空)과 윤선(尹善)이 함께 참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불조삼경』에 대해서 수수(守遂)는 주석을 하였고, 이를 몽산 덕이가 편집하였다. 경전의 체제는 몽산 덕이의 서문, 불설사십이장경(佛說四十二章經) 본문, 대종진종황제주유교경(大宗眞宗皇帝注遺敎經), 불유교경(佛遺敎經) 본문, 주위산경책서(注潙山警策序), 위산경책(潙山警策) 본문, 목은 이색(李穡)의 발문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삼경 중에 『불설사십이장경』은 후한시대 가섭마등(加葉眠)과 축법란(竺法蘭)에 의해서 최초로 한역(漢譯)이 된 경전으로 부처의 짧은 설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주로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 초출(抄出)하여 모은 것이다.
『불유교경』은『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으로『유교경(遺敎經)』이라고도 부른다. 그 내용은 부처가 반열반(般涅槃)에 이르러서 경계해야 할 가르침을 간략하게 설한 경이라는 뜻으로 경의 제목을 통해서 부처 열반이전 최후의 가르침을 설한 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산경책』은『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라고도 불리는데, 위앙종의 창시자인 위산 영우가 불도에 정진하는 이들에게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은 것이다.
楞 嚴 經
* 서분(제1권)
* 정종분 (제1권-제10권)
1) 見道分; 七處徵心, 遣拂客塵, 八還辨見, 歇卽菩提 (제1권-제4권)
2) 修道分; 初心二義, 耳根圓通, 反聞聞性, 攝持軌則(제4권-제7권)
3) 證果分; 本無修證 因妄有修, 十二類生, 三種漸次, 五十七位 (제7권-제8권)
4) 結經分; 五種經名 (제8권)
5) 助道分; 七趣衆生, 五十辨魔,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제8권-제10권)
* 유통분(제10권)
첫댓글 고맙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2.16 14:51
加被~~ 참 妙하지요..
지선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시 봐도 지선화님 녹취록
놀랍습니다
고맙습니다
유투브 자막 오류가 많아서
녹취록을 보며 위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