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he descended into hell;)
이 부분은 한글 사도신경에는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지옥으로 내려가실 수가 있느냐 하여 뺐다고 하는 유력한 설(說)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감당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겪어야 할 죽음을 대신 당하셨고, 우리가 가야 할 지옥에 대신 가셨다가, 우리가 겪을 부활을 먼저 겪으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시간을 초월하여 이 모든 것을 ‘이미’ 겪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사탄이 가지고 있던 최대의 무기, ‘사망’이라는 무기를 무장 해제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사탄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빠져버린 사자와 같은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6.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and buried;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 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12:39)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 적이 없느니라” (마16:4)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 이 없나니” (눅11:29)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죽은 후 물고기 뱃속 같은 무덤에 들어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경우가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인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그냥 ‘다시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부활’이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부활체를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육체와 ‘부활한’ 육체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단순히 ‘다시 살아난’ 육체는 죽기 전과 똑같은 육체입니다. 하지만 ‘부활한’ 육체는 부활한 예수님의 육체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육체입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는 문을 열지 않고도 문이 잠긴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 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 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2)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 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일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24:15-16)
이와 같이 부활한 육체는 3차원에 구속받지 않는, 차원이 달라진 육체입니다. 엄마 배(腹) 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난 것보다도 더 엄청난 변화를 겪은 육체입니다. 부활하기 전의 육체가 육(肉)에 기반하였기에 반드시 죽어야 하는 몸 즉, 육(肉)의 몸이라면, 부활 후의 육체는 영(靈)에 기반하였기에 죽지 않는 몸 즉, 영(靈)의 몸, 신령한 몸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전15:44)
영문(英文)으로 육의 몸은 ‘natural body’로 표현되어 있으며, 영의 몸, 신령한 몸은 ‘spiritual body’로 표현되어 있는데, natural body는 육(肉)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계의 몸이요, spiritual body는 영(靈)을 기반으로 하는 부활 세계의 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7. 하늘에 오르사
(he ascended into heaven)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실 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중을 통하여 올라가셨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신 후에는 구름이 그를 가렸습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 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1:9)
그러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늘 위로 계속 올라가시는 것을 점이 되어 사라지실 때까지 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올라가시자 구름이 가려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추측건대 예수님은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올라가신 후에는 구름에 가려지신 후 사라지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늘은 땅과 차원이 다른 세계이지 위치가 다른 세계가 아니기에 그 자리에서 차원 이동을 하면 그만인 것이지만,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을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신 후 사라지시는 방법을 쓰신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구약성경에도 마찬가지 원리로 생각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창35:13)
면(面)의 세계에서 수평이동만 하는 존재가 있다면 상하이동까지 하는 인류를 보면 기적일 것입니다. 똑같은 비유는 아니겠지만 수평이동을 하는 개미들의 세계에 인간이 다가가서 위에서 먹이를 준다든지 뭔가를 위로 들어 올린다든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런 일들이 인간에게는 당연하고 별일 아닌 것이겠지만 개미에게는 기적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와 정확히 어울리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류(類)는 3차원이 2차원에 개입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4차원이 3차원에 개입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UFO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다든지, 그러다가 또 나타난다든지... 이렇게 물리적인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이는 UFO는 지구나 인간보다는 차원이 높은 존재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분이시므로 얼마든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자유자재로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적이지 예수님께는 그저 일상일 뿐입니다.
8.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을 지닌 말씀일까요? 다음 말씀들을 보면 ‘우편’이 방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롬8:34)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 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벧전3:22)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데 왜 그들이 복종할까요?
2) 또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 편에 앉으사” (히10:12)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 셨도다 하였느니라” (눅20:43)
3) 성경은 또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히10:12)
4) 그뿐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우편’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2:25)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16:8)
앞에서 읽은 여러 구절들을 볼 때 ‘우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방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왕’으로 모시고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삼으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두 구절의 문장 구조를 보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 셨도다” (시110:1)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고 전15:25)
위 두 구절은 같은 내용을 표현을 달리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 그 발아래 둘 때까지
2)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왕노릇 하시리니
보시다시피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우편=왕노릇>이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그리고 ‘우편’ 즉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은 영어로는 ‘right’입니다. 이 말은 ‘옳은’, ‘오른쪽’, ‘바른쪽’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right’의 반대말은 ‘left’입니다. right와 left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right (옳은, 오른쪽, 바른쪽)
left (왼 : 마음이 꼬인)
뭔가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right’를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하나님도 예수님 우편에 계시고,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있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그냥 방향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9.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예수님의 재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기 산 자와 죽은 자는 재림 당시에 지상에 살아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를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하게는 영혼이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5:28-29)
이 말씀에서 ‘선한 일을 행한 자’ 즉 예수님을 믿고 영혼이 거듭난 자가 ‘산 자’요, ‘악한 일을 행한 자’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죽은 자’일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위로부터 난 자’, ‘하늘로부터 난 자’가 ‘산 자’요, 그렇지 못한 자가 ‘죽은 자’인 것입니다.
윗글을 읽으시면서 좀 의아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며, 가장 악한 일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