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털기(유정옥 사모)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3학년 졸업반이었던 아들에게 미국 유학을 가도록 권유했다. 아들은 단호이
거절했다. "어머니! 교회가 여러모로 어려우니 제가 교회를 도와야 하잖아요. 그리고 유학을 하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 텐데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라고요,"
나는 다시 설득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주님께 맡기고 너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가야 한다. 네가 학위를 받고 유명해지고 성공하라고 미국에 가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서 세계
모든 민족을 배워야 하는데 미국처럼 좋은 나라는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 나라에 전 세계 모든 민족이 다 와 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각
나라 각 민족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그래서 전 세계 어떤 민족 어디로 보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강한 주님의 군사가 되어야
한다.
네가 미국에 가야하는 이유는 바로 민족을 배우기 위함이다. 전 세계 복음 전파라는 것만 바라보고 네 닷줄을 끊어내야 너는
망망한 대해로 향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날부터 아들은 엉덩이에서 땀띠가 나도록 토플 공부를 했고 그 이듬해 강도사 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들은 나의 믿음의 언니인 뉴저지 연합 감리교회의 나영자 사모님이 맡아 주었다. 나구용 목사님과 나영자
사모님은 내가 서울역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를 하고 있으니 함께 동역하는 마음으로 내 아들을 돌봐 주시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도착한
아들이 첫 메일을 보내왔다. "어머니! 낯선 땅 미국에 잘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오신 목사님과 사모님의 인도를 받아 집에 도착했고,
정갈하게 꾸며 놓은 제 방에 들어와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떠날 때 하나로교회 성도들이 서로서로 모아 2,000달러를
주셨습니다. 이 돈은 저의 전 재산이고 앞날에 대한 비상금이지만 내일 교회에 가서 다 헌금하려교 합니다.
제가 믿음이 커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우선 이 돈을 쓸 데가 없습니다. 이 돈으로는 집을 얻을 수도 없고 학비로 쓰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몽땅 털어 드리고 앞으로 저를 책임져 달라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듯싶어서 입니다.
그 이후 아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도님들 중에 아들의 학비를 돕겠다는 분이 나섰고 아들의 생활비를 돕겠다는 분도 나왔다. 생활이 안정되자 아들에게 또 메일이 왔다. "어머니!
한국에서는 교회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이곳에서는 이미 포지션이 다 정해져 있어서 제가 일 할 곳이 없습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일 할 곳이 없다니! 교회에서 정해진 포지션이 없을 때 오히려 마음껏 일할 곳이 많은 것이다. 전 세계 60억 인구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변치 않은 주님의 사역 대상이다."
아들은 교회에서 잃어버린 청년들을 다시 찾으리라고 마음먹고
있는중이었는데 한 장로님이 다가와서 메모지를 한 장 주며 이런 부탁을 했다. "전도사님! 우리 아들이 뉴욕 이 주소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독립을 해서 나가는데 집에서만 독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독립을 하고 맙니다. 집에서 나간 후 교회에 안
다니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아들이 교회에 잘 나가고 있느냐고 물으년 그렇다고 대답은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아주 착잡해집니다. 그러니까
전도사님이 제 아들을 한 번 만나 주세요."
그렇게 전달받은 주소를 따라 찾아가보니 장로님의 아들은 "교회는 어렸을 적 부모님의
강요로 나간 것이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고 게다가 술과 마약에 찌들어 가고 있었다.
아들은 기도했다.
"주님!
저 아이의 영혼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저는 저 아이를 반드시 주님 앞에 데려다 놓아야 합니다. 저 아이가 미국에서 맡은 첫 번째 사역입니다.
저 아이를 주님 앞에 데려다 놓지 못한다면 앞으로 저는 목회도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 아이에게 제 인생의 목회 사명을
걸겠습니다,"
그런 비장한 각오로 그 아이를 열 번도 더 찾아가 전도함으로 그가 교회에 다시 오게 되었다. 그 아이가 교회에 다시
돌아온 후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교회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이 전도사에게 아이의 주소를 줘 그
전도사와 만나면 백발백중이야."
아들은 교회를 떠난 성도님들의 아이들 주소를 받아 계속 찾아다녔고 교회를 떠났다 다시 돌아온
학생들을 모아 열린 찬양 예배를 시작하였다. 이젠 교회에서도 정식으로 전도사로서의 사례비를 받게 되었다. 또한 기업을 하는 장년부 성도들이
아들에게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요청하였고 그 모임에서도 사례비를 받게 되었다 .
나는 이제야 아들이공부하는 것도 국에서 생활하는 것도
인정이 되었다며 겨우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다시 아들에게서 청천벽력같은 메일이 왔다.
"어머니! 저는 내일 무조건 뉴저지를 떠납니다.
이곳에서는 제가 너무 받는 것이 많아서, 수입이 풍족하여 영육간에 살이 찝니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아는 이 없는 미시간으로 떠나려 합니다. 그
곳에서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겠습니다."
아들은 또 한 번 몽땅 털기를 하고 자동차로 수십 시간을 달려 미시간을 향해
갔다. 뉴저지에서는 새벽기도가 끝나자마자 융숭한 아침식사가 준비 디었는데 미시간에서는 아침에 2달러짜리 밥을 사서 반으로 나누어 먹고 반은 남겨
놓앟다가 점십에 먹고 저녁은 먹는 날 못 먹는 날이 반반이라고 말하는 아들은 하루 음식비 2달러로 버틴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아들은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를 않았다.
주님을 매 순간 만나는 기쁨으로 늘 행복한 목소리었다. 주님을 매 순간 만나는데 가장 빠른
길은 몽땅 털기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