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 화면 캡쳐
[스타다큐=김윤겸] 10년 전 즈음,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은 이른바 '쿡방'이 큰 화두였다. 기존 요리 프로그램에 예능적 요소를 가미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장르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다양한 방송을 통해 인기를 끌었다.
이같은 열풍 속에서 요리 경연 프로그램도 눈길을 모았다. 특히 요리에 특화된 케이블 채널 올리브를 중심으로 '마스터 쉐프 코리아' '한식대첩'과 같은 방송은 경연 프로그램 특유의 긴장감과 재미로 두루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들 쿡방은 TV에서 점점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OTT 플랫폼의 득세로 TV 시청률의 전반적인 하락이 시작됐고, 특히나 쿡방은 보다 콘텐츠 제작 저변이 넓은 유튜브로 무게중심이 이동된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TV 예능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쿡방은 2020년대 들어 몇몇 프그램을 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연 참가자와 심사위원 등 출연자 숫자도 많은데다 각종 식자재와 주방용품, 가전이 대규모 스튜디오를 통해 투입되는지라 제작비 규모도 상당하다. 그나마 기존에는 식품 기반 기업 CJ를 등에 업은 올리브가 각종 PPL과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전반적인 TV 시청률의 하락으로 이 마저도 어려워졌다.
지난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첫 공개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최근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한동안 TV에서 자취를 감췄던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가장 저변 넓은 OTT를 통해 공개됐고, 남다른 흥미요소로 모처럼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는 예능 프로그램이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집계한 조사에 따르면 '흑백요리사'는 드라마를 뛰어넘는 화제성으로 심사위원인 백종원, 안성재를 비롯해 경연 참가 요리사도 덩달아 인기 상승 중이다. 게다가 출연 요리사의 식당도 예약이 가득 찰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매력은 다양한 편이다. 모처럼 선보인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데 제법 탄탄하면서도 참신한 경쟁 룰과 승부 방식은 인상적이다.
기존에 이미 대중적인 명성을 얻은 여경래, 최현석, 오세득, 에드워드 리 등 원래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인 대가 요리사들을 경연자로 참가시키고 이들 20명에게 '백수저'라는 계급과 기득권을 줬다.
그리고 유튜버, 맛집 등에서 활동하는 신진 유명 요리사 80명 가운데 20명을 선발, '흑수저'라는 계급으로 백수저와 경쟁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매 라운드마다 경연 룰과 심사방식이 달라지며 다채로움을 주고 백종원과 안성재 두 심사위원의 상반된 성향도 방송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전한다.
흑백요리사가 주는 여러가지 흥미 요소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드라마틱함'이다. 수석셰프 밑에서 일하던 제자가 요리대결에서 스승을 이기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연출되는가 하면 평생 아이들의 급식을 만들어왔던 이른바 '급식 아줌마'가 미슐랭 원스타 쉐프를 이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화면 캡쳐
이를 소위 '악마의 편집'이라는 자극적 요소 대신 요리사끼리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제작진의 연출력도 탁월하다. 여기에 스튜디오의 미술, 조명과 장내 게임 진행 멘트 등을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분위기로 이끌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흑백요리사'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다 보니 정확한 제작비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방송가에서는 대략 수백 원대가 투입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기존 방송국에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넷플릭스라는 세계 시장을 거머쥔 OTT의 위력이 실감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흑백요리사'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시청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먹방, 쿡방은 유달리 한국에서 특화된 콘텐츠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전파된 관련 콘텐츠들은 K팝과 함께 한류 문화를 전세계적인 인지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는 향후 OTT 예능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모은다. 개인적으로는 모처럼 대규모 제작비와 탄탄한 기획력을 갖춘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이 반갑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