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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교신도대책위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오종필
참어머님께서 재림주님의 배필인 동시에 재림주님이 되는 이유?
*참고로 <...>은 필자의 글임.
참어머님과 조원모 할머니, 그리고 대모님과 외삼촌 가족
1. 3대가 맏딸이며 독녀입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태어날 때 벌써 3대가 독녀에요. 독자가 아니고 독녀예요. 어머니의 (외)할머니도 외딸이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외딸이고, 어머니도 외딸이에요. 3대가 오시는 주림주님을 맞기 위해서 전부 역사한 거라구요. 저 (성주교) 김성도 할머니로부터, (복종교) 허호빈으로부터, 어머니... 복귀한 해와로부터 3대를 거쳐 나와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못 돼요. 아무나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탕감복귀 법에 맞아야 해요(291-30, 아버님 말씀)
▫어머니가 되실 배후는 3대가 연결돼야 돼요. 3대가. 원래는 독자, 독녀가 되어야 돼요. 아담도 독자지요? 예수도 독자지요? 재림주님도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독자와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의 뜻을 세워 가니만큼 맏딸, 독녀이어야 돼요.(223-241)
<아버님의 경우는 맏아들도 아니고 독자도 아니죠. ‘하나님의 뜻으로는 독자이지만, 실제는 아니다!’ 쉽게 이해가 안되네요. 또한 어머님은 태중에서부터 신앙인이지만 아버님은 15세에 이르러야 기독교를 알게 되죠.>
2. 재림주를 모시기 위한 주류 신앙길
▫여러분도 알다시피 어머니의 어머니 되는 대모님은 일생을 신앙의 한곳을 향해서 생활해 오신 분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우리가 기억할 것은 새로운 섭리역사에 있어서의 재림주가 사람으로 온다는 것을 선포하고 새로운 교단을 만드는 모든 역사에 처음부터 참석했습니다. 이용도 목사 이전에 백남주를 중심삼은 성주교가 있었는데, 이 성주교를 중심했던 것이 이용도 목사의 새예수교를 통해 한 갈래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성주고, 어머니 계통을 이어받고 할머니가 신앙의 주류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시는 재림주를 모시기 위한 선발로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265-9)
▫김성도씨는 1922년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가졌다. 그리고 1923년 4월 2일에는 예수님을 상봉해 대화를 나눴으며, 그때 타락과 복귀에 대한 대강 윤곽을 가르쳐 주셨다. 죄의 뿌리는 음란이며, 예수님은 지상인의 불신으로 억울하게 죽어다면서, 십자가 떼는 운동을 당부하시기도 했다. 그달 12일엔 재림주님은 육신 쓴 인간으로 한국에 오시며 한국이 특권 가진 나라가 된다는 말씀을 받았다. 1931년 2월에 둘째딸 석현 씨에게 역사가 일어나 ‘새 주님이 현현했으니 회개해야 한다’는 계시가 내렸다. 온 가족이 3일 금식을 하면서 김성도 씨로부터 기도를 받고 ‘생명의 자유를 찾는다’는 믿음을 갖고 새주님 현현을 찬양했다. 이때부터 계시에 의해 주위로부터 ‘새주파’ 또는 ‘감사교’로 호칭됐다. 왜 부인을 ‘새주’라고 했는가. 창조이념으로 볼 때 남자는 하늘의 입장이요 여자는 땅의 입장으로 부부는 한 몸이 되게 지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늘에서 오실 때 땅에서 주님이라고 하는 부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참어머님을 부를 때 참아버님과 동일하게 새주님 곧 재림주님, 만왕의 왕, 천지인참부모님 등으로 호칭해도 무리가 없다는 증거이다. 또한 참아버님은 참어머님을 ‘(한)총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창시자, (2대)교주’라고 부르시기도 했죠.>
http://blog.daum.net/sos1472/14
3. 특별한 축복의 계시를 받음
▫한승운 선생과 홍순애 대모님은 이 새예수교 시절에 혼인하셨다. 각기 열성어린 신앙생활에 정진하시던 어느 날, 대모님에게 놀라운 하늘의 계시가 전해졌다. “홍유일의 딸이여 기뻐하라! 그대의 아이가 아들이거든 우주의 왕이 될 것이요, 딸이거든 우주의 여왕이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1934년 3월 5일, 선도감 이호빈 목사의 주례로 두 분은 혼인하시게 된 것이다. 당시 한승운 선생은 26세, 대모님은 21세이셨다.(45)
http://blog.naver.com/o2423682/110116773459
▫ 탄생하신지 한 달 후 대모님은 하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순애야, 그 애기를 위해 걱정했지? 걱정하지 마라. 이 애기는 주님의 딸이고, 너는 유모와 같다. 젖만 먹여서 양육하라."(증언3집, p.182)
▫참어머님 외가는 7대 독자를 거쳐 조씨 할머니와 대모님과 참어머님께서 외동딸로서 3대 신부기반을 이뤄 나오셨다. 참어머님 4세경, 허호빈 씨 모친이 참어머님께 “하늘의 신부가 되실 분”이라고 축복함으로써 모든 신령역사의 정성기반을 승계하셨다.
http://blog.naver.com/o2423682/110116771843
4. 일편단심 절대순결의 생활
▫홍씨 할머니 같은 양반은 신앙길 때문에 남자고 여자고 다 집어던지고 보따리 싸 가지고 주님 맞기 위해서 역사적인 수난 길을 걸어 나왔기 때문에, 엄마도 그런 훈련을 한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간단하지요? 뜻을 위해 가는 남편의 길이라면, 열성을 다하는 남편의 길이라면 더 열성적으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가문이 필요하다 이거에요.(121-213)
▫미국에서는 17세만 되면 성인으로 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구요. 그러니 어머니 자신이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구요. 이성에 대한 무슨 생각도 안 한 사람이었어요.(97-296)
▫어머님이 학생시절엔 시집 안 가고 뭐 수녀원에 들어가서 과수원 만들어 가지고 혼자 살겠다고 했는데, 뭐 18세에 벌써 시집가게 됐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어머님에게 들었습니다.(222-313)
▫어머니 얼굴이 이쁘거든요. 색시 때는 밉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유혹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별의별 유혹이 다 있었을 거예요. 그런 어머니를 대하게 해서는 안 되겠으니 하늘이 성별생활을 시켰어요. 여러분. 그거 알아요? 성별 생활을 시켰다구요.(195-147)
5. 참어머님의 이름
▫어머니 이름이 ‘학자(鶴子)’인데, 학자라고 하는 것은 ‘학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학이 새끼를 치려면 히말라야 산정을 넘어야 된다구요. 학은 히말라야 산정을 넘어 평원에 가서 알을 낳는다구요. 이것은 해와의 사명과 비슷한 것입니다. ‘자(子)’라는 것은 뭐냐? 일본 이름에 그게 많은데, 그것은 아들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결국 여자로서 아들을 추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뜻이 있다구요. ‘한’이라는 것은 전체의 대표적인 하나, 통일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이 그렇게 귀한 거라구요. ‘학’이라는 것은 잡된 것과는 다릅니다. 아무것이나 먹지 않는다구요. 깨끗한 것만 먹습니다. 영양 있고 가벼운 것만 먹는다 이거예요. ‘학’은 입이 짧고 그렇지만 한번 날기 시작하면 방향을 바꾸기 힘듭니다. 그리고 높이 난다구요. 그래서 동양에서는 학을 참 사랑합니다.(246-284)
▫우리 엄마가 학자인데 왜 학자일까? 학녀가 되지. 왜 학자가 되었을까? 나는 “아하! 거기에 ‘아들 자’를 붙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서였구나. 본래가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에 통일교회 어머니의 이름을 가졌구나”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게 근사하지요? 어머니! ‘한’ 하면 한국을 대표할 수 있고, 우주를 대표할 수도 있지요. ‘한’은 하나로서 제일이라는 뜻이거든요.(120-274)
<아버님의 이름은 용명인데, 박노파가 ‘선명’으로 개명하도록 말해주죠. 왜 처음부터 '선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출발하지 않았을까? 여성이 지어주는 이름을 써야할 피치못할 이유?>
***아버님께서 인연 맺고자 했던 여인들을 살펴보죠.
1. 임길숙(1924년생, 이기봉 아주머니의 딸) - (흑석동 유학시절 만난) 이기봉 씨는 참아버님을 내심 사윗감으로 뜻을 뒀다. 참아버님께서도 그 맏딸 임길숙(1924) 씨에게 각별한 마음을 기울이셨다. 정결하고 온순한 데다가 두터운 신앙심과 효심을 가진 임길숙 씨는 주일학교 반사활동도 같이 했었다. 그러나 참아버님의 내심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이기봉 씨는 의아하게도 다른 학생과 약혼시켜 버린 것이다. (중략) 이 예기치 않은 상황을 접하신 참아버님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후일 그 가족들을 두고두고 그때의 상황을 아쉬워했다고 한다.(p.115)
<임길숙씨의 경우는 그 일가가 남성 신령집단의 일원이였지만, 최선길씨처럼 아버님을 재림주님으로 모시는 여성 신령 집단(김성도와 허호빈으로 이어지는 신부 기반 교단) 출신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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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선길(1925년생) - 참아버님께서는 1942년 초엽에 집안의 이모를 통해 소개받으셨으나 일절 관심두지 않으셨던 정주군 관주면 관삽동 명문 신앙가의 규수 최선길(1925~2008) 씨에게 비로소 뜻을 두시고 하늘과 문의하셨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중순 귀국하신 후 하늘의 명에 따라 12월에 맞선을 보시고 약혼하셨다. 1944년 5월 4일 혼인에 이르렀다. 혼인 당시 특별히 새예수교회 선도감인 이호빈 목사를 주례로 초빙하셨다.(p.116) (중략)
귀국 후 정주군 관주면 관삽동(定州郡 觀舟面 觀揷洞)의 해주 최씨 명문가의 규수 최선길(崔先吉:1925~2008)씨와 맞선을 보셨다. 뜻 가운데 누구보다 축복받은 여성으로서의 의미를 가진 이름, 알뜰하고 투철한 성격, 신사참배 문제로 옥고까지 치른 독실한 신앙 경력을 가진 여자 세례요한적 신부로 준비된 상대였다. 학력 면에서의 현격한 차이는 오히려 뜻 앞에 순응할 수 있는 긍정적 여건이 컸다. 최씨 가족은 일찍이 참아버님 이모의 소개로 사진을 전해 받고 기도한 결과 엄청난 영계의 증거를 받았다. 동서쪽에서 큰 거울이 나타나 하늘 복판에서 하나 되고, 그 가운데 참아버님 모습이 태양같이 떠올라 세계를 비추는데 천지사방 달과 별들이 둘러 서 있고, 달빛이 비쳐 만국이 꽃밭으로 화하는 등의 계시가 잇따랐다. (중략) 참아버님께서 관삽동에 도착했을 때 닭 50여 마리를 잡게 해 동네잔치를 여시는 등 하룻밤을 넘기면서 전례없는 특별한 맞선을 치렀다. 이때 장래의 포부와 진로의 일단을 밝히시며 혼인 후라도 상당기간 자립할 각오가 수반돼야 함을 확고히 다짐받고 약식의 약혼을 하셨다. 그때가 1943년 12월이었다.(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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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성진님 생모 최선길 여사는 남편 대해 한마음을 가진 열녀였지만, “통일교회 선생님보다 내 남편이다.”라고 한 것이 문제였다. “내 말만 들으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편안히 모시겠다.”고 하면서 하늘의 뜻보다는 오직 가정적 남편이 되기를 강요했다. 그래서 뜻길을 가지 못하도록 부산 시절부터 온갖 반대를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그래서 뜻길을 가지 못하도록 부산 시절부터 온갖 반대를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깨물고 꼬집고 긁고 때리고 욕설하며 극심한 역사를 했다.(p.455)
3. 김명희(1930년생) - 김명희 여사는 평북 삭주 출신으로 선친이 목회를 하시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1947년 남하 후 폐결핵을 앓고 6ㆍ25동란을 만나는 등 온갖 시련과 난관 속에서도 모친과 동생들을 돌보면서 신앙과 학업을 계속했다. 1952년 부산 피란 때 연세대에 입학해 공부하다가 1953년 가을 서울 환도로 상경(上京)한 후 9월에 참아버님을 뵈었다. 모친과는 고종사촌의 아내가 되는 숙모 양윤신 씨의 권유로 그 언니 양윤영 교수와 함께 당시 청계천의 여관에 기거하시던 참아버님을 찾아뵙고 강력한 어조의 인상 깊은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p.459) (중략)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장을 통한 하늘의 지시에 절대순종해 약혼자 요셉을 속이고 제사장 사가랴로부터 예수님을 수태해 출산했다. 천사장이 속여서 빼앗아간 하늘의 혈통을 복귀해 원죄 없는 본연의 아담을 찾아오는 섭리였다. 그리고 그 가족이 당시 섭리적인 아담국가 이스라엘 앞에 해와국가 입장인 애급으로 피신(避身)해 탕감노정을 거쳐 돌아왔다. 김명희 여사는 바로 그 역사에 맺힌 것을 탕감하는 운명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섭리적 요셉 입장의 청년식구로서 신뢰가 깊었던 동창생 오씨(吳氏)를 동행해 해와나라 일본에 밀항했다. 그리고 그의 협조 가운데 희진(喜進)(1955.8.17(음6.30))님을 낳고 극난(極難)한 모험의 탕감길을 3년 넘게 거쳤다.(p.460) (중략)
김 여사는 홀로 희진님을 양육하던 중 도쿄경찰의 배후 사주로 인한 이웃 일본인의 침범(侵犯) 가해(加害)로 좌절된 마리아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오로지 한분 존귀한 하늘의 아들 희진님을 사수하고 보호하기 위한 처절한 모정의 희생이었던 것이다. 그때가 바로 오무라 수용소로 떠나기 직전이었으니 이보다 더 안타깝고 애통한 경우가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일본은 참부모님 가정의 재출발을 위한 해와 탕감복귀 역사를 그르친 통한(痛恨)의 원수 입장에 섰다.(461)
http://blog.naver.com/o2423682/110114853025
<임길숙, 최선길, 김명희 여사 모두는 김성도 여인을 중심으로 한 신부 기반이 되는 신령집단과 무관합니다. 이분들과 성혼하실려고 하시다 실패하거나, 성혼한 것 등이 그 과정이나 내력을 놓고 볼 때 참어머님과는 천양지차라는 사실입니다. 모두 다 기독교인이지만, 참어머님같은 모계 혈통적 비밀과 신앙기반을 젼혀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 2천년 역사는 성신역사로 시작했고, 그 결말이 재림주님을 만나 어린양잔치를 하는 것이지요. 1대 신부 기반인 김성도 집단에서는 원리강론에만 나오는 천비같은 내용이 다소 나왔던 것이고요. 또한 아버님께서 최선길 여인과는 아버님 이모의 중매로 결혼하십니다. 그것도 좀 납득이 안가고요. 암튼 이분들은 참아버님이 모두 간택하십니다. 하지만 참어머님만은 참아버님이 간택한 것이 아니지요. 만나자마자 영감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참어머님도 참아버님을 만나 결혼할 것을 계시도 받았지만, 스스로 느껴 아셨다고 했습니다.>
첫댓글 오종필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우리 회원님들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참어머님께서 재림주님의 배필인 동시에 재림주님이 되는 이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