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사하고 있는 책, 마크네포의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에 있는 짧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함께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
수전과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 있는데, 옆 자리에 있던 한 쌍의 연인이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약간 움츠러들면서 침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수전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수전은
만족스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난 여기 좋은데?"
그녀는 내 얼굴에서 실망한 기색을 읽고 다시 물었다.
"가고 싶어?"
이 평범한 순간, 비좁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는 마흔아홉 생의 대부분을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욕구를 간접적으로 투사한 뒤, 마치 그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식으로 이 욕구를 충족시켜온 것이다. 아이스크림이 녹는 사이 이런 내 자신을 깨닫자 헛웃음이 터졌다.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혼자 민망해하다가 깊이 한숨을 토해내고는 당당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응, 가고 싶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얻으려 했다. 나의 느낌들을 돌봐야 할 욕구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것은 내 여린 마음을 숨기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타인을 배려하는 친절한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물론 나만 이런 병을 앓는 것은 아니다. 이런 태도는 아주 교묘해서 건강한 관계 방식
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이런 태도의 저변에 숨어 있는 기만과 조작을 잘 깨닫지 못한다.
이런 간접적인 태도를 갖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충분하고 분명한 근거를 갖고 말이다.
자신의 본래 마음을 숨기는 태도를 뒤집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겸허하게 자신을
멈추고 자신만의 은밀한 동굴에서 나와 간접적인 태도를 알아차린 뒤, 재빨리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타인들이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쏟아붓는 에너지는 불안과 소외의 주요한 근원이 된다.
간접적인 태도와 부정직은 우리를 상처로부터 보호하기는커녕 삶의 참다운 활력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
이 모든 사실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나뭇잎에 흠이 생기고 갉아 먹히듯 인간의 감정도
삶에 의해 마모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우리의 권리이기도 하다. 인생의 계절을 알려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좋네요.....! 수 많은 순간들. 저 카페에서 수 많은 수전들의 귀에 "가고싶지 않아?"라고 속닥 거렸던 과거가 떠 올라 이 글의 화자처럼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하고요(마침 나이도 동갑임 ^^*) 그러다 마지막 단락은 여러 번 읽게 됩니다. 마음을 숨기는 간접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인생의 계절을 알려주는 마모되는 감정의 이야기가 나와서요...
암튼 저야 말로 그 '마모되는 감정'에 수해자입니다. 너어~무 많은 감정세포들이 노화로 인한 체력감소로 자연사(死)하고 있거든요. ^^* 2유형의 신성한 직관이 신성한 의지인데요, 저는 역시나 이 순간도 신성한의지가 신성한 자유로 가지 못하고 있네요.
왜냐면~ 저는
지금은 가끔 저 간접적인 태도를 '선택'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마음에 들어하고 편안해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참고있자..가 아니라 '선택'을 하게 되면 뭐... 좀 마음에 안들기는 해도 제 자신에게 힘이 느껴지기도 하기든요^^*
수 많은 시간 귀에다 속닥거렸던 저와, 지금은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거나 그냥 불편하기를 '선택'하는 지금의 저가 모두 보여서.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저렇게 떠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걸 모르나,
어떻게 저렇게 배려할 줄 모르지?
참 무식하고 교양이라곤 없는
한쌍의 바퀴벌레들이라니...
요즘 세대가 다 저렇지, 쯔쯧."
어쩌면 이렇게 한 쌍의 연인에게 온갖 소설을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면의 재잘거림을 하는 그 때 알아차렸을까,
알아차리고 멈추며, 그것이 나의 투사임을 깨닫고 주인공처럼 헛웃음을
지었을까. 그리고 주의를 딴데로 돌렸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