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온전한 합일에서 비롯되는 행복 이러한 생활을 할 때 우리의 삶은 성화가 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항상 고요한 마음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아라곤 왕국의 임금인 알폰소 왕에게 어느 날 찾아온 손님이 질문을 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야 간단하지. 누구든지 자기를 온전히 버리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지."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하느님의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 사실상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행복하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을, 즉 그것이 불행한 일이건 행복한 일이건 간에. 행복 그 자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해도 그 마음의 평온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러한 불행을 받아들인다는 행위가 사랑하는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인에게 무엇이 닥치든지 그것이 결코 그를 슬프게 만들지 못한다."(잠언 12,21 참조)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자기가 바라는 일을 다 이룬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만을 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이다. 왜냐하면 죄를 빼고는 모든 행복이 하느님의 뜻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부들의 생애]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 농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해마다 다른 농사꾼보다 농사가 잘 되었다. 이웃 사람들이 궁금하여 그 원인을 묻자, 그는 태연하게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날씨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다그쳐 묻자, 그는 "나는 늘 하느님이 주시는 날씨를 그분이 원하시는 날씨라고 고맙게 받아들였더니 하느님께서 이런 풍작을 주시지 않겠어?"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실비안 성인은 만일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에게 굴욕이 닥치게 되면 굴욕을 원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바꾸고, 가난이 닥치게 되면 그는 가난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닫쳐와도 그것을 다 받아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가뭄이 들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게 되니, 무슨 걱정이 있겠으며 마음 상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누리는 가장 큰 자유이고, 이 세상의 모든 귀한 것, 즉 좋은 가문, 높은 지위, 엄청난 권력, 아니 모든 왕국의 어느 것보다도 값진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평화는 여러 성인들이 실제로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듯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필립 4, 7 참조)를 말해 준다. 이러한 기쁨은 우리의 오감을 통하여 얻는 기쁨, 사회생활 속에서 맛보는 쾌락, 기타 다른 어떠한 즐거움보다 훨씬 차원 높은 기쁨이다. 세상적인 기쁨은 잠시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지만, 그러한 기쁨은 우리를 속이는 기쁨이고 허무한 기쁨일 뿐 아니라 결코 오래 지속되는 기쁨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쁨은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영혼에 해를 가져오는 방해물이 되어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없게 한다. 세상에 있는 쾌락이란 쾌락은 모조리 맛보았으나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느낀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이 비통한 말을 했다. "이 또한 허무요 바람을 붙잡는 일이다."(코헬 4, 16) "미련한 자는 달처럼 변하나 경건한 자는 변하지 않는 해처럼 그 지혜가 계속 되리라."(집회 27,11 참조) 어리석은 자 곧 죄인은 달과 같아서 오늘은 기뻐하고 내일은 울고, 오늘은 양과 같이 순하나 내일은 곰과 같이 사나워진다. 왜 그럴까? 그의 마음의 평화는 그가 만나는 세상일, 즉 때로는 좋은 일, 때로는 궃은 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일에 지배된다. 반면에 의인들은 해와 같아서 그 마음은 늘 슬기롭고 평화로워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평온한 영혼은 하느님의 뜻에 일치돠어 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이러한 평온이 바로 예수님 탄생 때에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노래했던 평화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 14) 여기서 말하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란, 무한히 좋으시고 완전하신 하느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합치는 사람말고 과연 다른 누구를 가리키겠는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로마 12,2)를 식별하면서 그분의 뜻을 살피는 사람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