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대한 추억들
2017.3.7
차 상 희
꽃샘추위가 절정일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뭐 별로 안 춥겠지 하며 방심하고 아침에 나갔다가 포근함 속에 찾아온 추위라서 더 춥게 느껴졌다.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전기장판의 온도를 한껏 올리고 이불을 포근히 덮고 앉아있으려니 나의 자전거에 대한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네 가지 정도의 자전거에 대한 추억이 있다. 세 발 자전거, 두발 자전거, 그리고 2인용 자전거,4인용 가족용 자전거에 대한 추억들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세 발 자전거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그때 우리 동네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지나다니고 거의 차가 가끔 가다 지나가는 그런 한적한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친구들은 산, 바다 그리고 한적한 도로가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우리는 도로에서 고무 줄 놀이도 하고 바위치기도 하고 특히나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내려오는 경사진 그 길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또한 친구들과 함께 세발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인가는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스릴을 한껏 느끼며 내려오고 있는데 동네 오빠가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검정 고무타이어를 굴리는 바람에 나의 자전거는 전복되고 말았고 내 오른 팔도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때는 사실 아픈 것 보다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까봐 그게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최대한 아픈 시늉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데리고 가서 기브스를 하고 왔었다.
그 다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나의 자전거를 전복시킨 그 오빠네 집에 엄마가 찾아갔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뒤로 그 오빠가 나를 피해 다닌 것만은 기억이 남는다. 그냥 해본 장난인데 크게 다친 것을 보고 아마 그 오빠도 엄청 놀랐던 것 같다.
욕지도 운동장에서의 두 발 자전거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작은 이모는 욕지도에서 농장과 여관을 함께 하고 계셨는데 우리는 여름 방학이면 욕지도 이모 집에 가서 일주일 이상을 지내다가 왔다.
이모가 운영하는 농장에는 못난이 귤이랑 머루 그리고 포도나무가 있었다. 작은 연못에는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떼 지어 다니고 있었고 작은 정자아래에서 이모가 해주시는 닭백숙을 먹는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그때는 작은 이모가 너무 다정하고 좋아서 계속 이모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몽돌해수욕장으로 수영도 다니고 그곳 욕지 동네를 우리 동네마냥 몰려다니며 놀았다. 이모네 집 위에 위치해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나와 여동생은 두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동생은 금 새 두발 자전거를 타는데 나는 자꾸만 뒤에서 잡아주다가 놓을까봐 자전거를 타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게 두 발 자전거를 배우다가 중간에 포기해버린 나는 사실 아직 두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그때 어떻게든 배워두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된다.
경주에서 탄 2인용 자전거
내가 좋아하는 도시 중에 한 곳은 경주이다. 특히나 경주의 봄은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매번 가고 싶은 곳이다.
연애하던 시절 지금의 남편과 남편의 친구와 그의 여자 친구들 세 쌍이 함께 경주로 나들이를 갔었다.
연인들이라면 모름지기 2인용 자전거를 타줘야 한다는 것처럼 우리들은 2인용 자전거를 대여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봄꽃들 천지인 그곳 경주의 봄을 바람을 가르며 느꼈다. 연애하던 그때는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지 세상모든 것이 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앞에서 페달을 밟고 내가 뒤에서 페달을 밟는 둥 마는 둥해도 남편은 힘든 내색하지 않았었는데...
가족이 함께 탔던 4인용 자전거
작년 가을 친정 친구들과 함께 순천만 갈대밭에 갔었다. 그곳에서 4인용 자전거를 빌려서 여 동생네와 우리 가족이 서로 자전거 경주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에게 페달에 힘을 안주어서 우리가 늦게 가는 거라고 나보고 힘껏 페달을 밟으라고 했다. 혼자 자전거 페달을 밟아도 전혀 힘든 기색을 하지 않던 사람이 이제는 변했다.
이제는 의지가 되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도리어 아들 녀석들이다. 자기들이 지지 않으려고 페달을 밟아댄다. 아들 녀석들도 아마 나이가 들면 변하겠지. 하하하 ~ ~ ~
나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써놓고 보니 내가 탔던 자전거가 처음에는 혼자서 그리고 둘이서 그리고 가족이 함께 타게 되었다. 혼자 일 때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추억들을 이렇게 소환해내는 일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