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오월바다 밀물쯤의 수반같다. 선비의 무릎 아래 밤 새워 먹을 굴리던 예송리 주근깨투성이 자갈들이 모두 깨고...
섬과 섬 사이로 끊겼다 이어지는 갓 스물 눈매 같은 연초록 능선 너머 부용동 낮게 핀 꽃들도 성인식을 치르겠지.
이쯤에서 다도해의 징검돌을 놓을까봐 봄 내내 뜬 눈으로 제주해협을 바라보던 격자봉 푸른 능선이 아침 해에 빛난다.
나무도 나이가 들면 제 주장을 낮추나 봐 모녀의 새벽산책을 조심스레 지켜보던 세연정 적송그루가 먼저 허릴 굽힌다.
한희정 <보길도의 아침산책> 전문
기행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그네 시각으로 바라보는 풍광은 그 깊이에 한계가 있다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행시를 쓰지 않는다? 그건 아니다. 새로운 모습, 환경, 역사적인 장소를 찾았을 때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고래로 부터 이어지는 작품의 가장 오래된 소재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할까.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답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몇 년 전, 나도 시인처럼 보길도를 찾아서 다도해를 보고, 격자봉에도 오르고, 세연정 정자에 앉아 윤선도를 생각하기도 했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다가, 일순 맑은 물에 세수를 한 듯 정리가 되었다가, 또다시 밀물처럼 밀려 오는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를 여러차례, 그 수많은 감정은 아직도 글자로 정리되지 못한 채 기억속에서 굵은 가지로 자라고 있다. 시간의 낫이 잔가지들 다 쳐내고나면 선명한 나무 형상 하나 남아있을 것을 고대하면서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아침 산책중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다도해에 들어와 수반처럼 잔잔해진 바다, 밤새워 먹을 갈던 예송리 몽돌해변, 징검돌처럼 점점이 놓여있는 섬과 섬사이, 푸른 능선이 빛나는 격자봉에 이르면 그새 고향이 그리워졌던 것일까 '봄 내내 뜬 눈으로 제주해협을 바라보던' 봉우리의 시선을 따라 제주섬 쪽으로 눈길을 돌렸으리라. 여행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해 겸손해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세상 풍파를 다 견디어 낸 노송들이 제 주장을 낮추고 먼저 허릴 굽히는 이유, 그리고 그 노송의 허리굽힘 앞에서 더 낮은 자세로 사물을 우러러보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인이 보길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이 여행후 나왔다는 것을 짐작할 정도로 위에서 말한 기행시의 약점을 시인은 잘 극복하고 있다. 아침일찍 일어난 모녀가 예송리 몽돌해변을 거닐며 보고 느낀 감정을, 꽉 찼던 밀물이 스스로 내려가듯이 조용조용 말하고 있다. 겉돌지 않는 시선, 사물의 본질에 깊이 다가가 스스로 깊어지는 시인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만난다. 그것은 거기서 나고 자란 이들만큼이나 풍광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었을 때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려니, 나도 시인의 깊은 눈매를 가지고 다시 한번 예송리 바닷가, 허리굽힌 노송 아래 서 있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