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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도 없이 늦었네요.
미안해요.
첫 손자
이 난 영
아들 내외가 출산을 위해 새벽 여섯 시에 병원을 간다며, 수술시간이 8시 30분이니 일찍 와서 고생하지 말고 9시쯤 오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며느리 얼굴을 보기 위해 7시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서 만날 수가 없었다. 첫아이라 겁이 많이 나고 초조했을 텐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니 오히려 아들이 ‘엄마 허리도 안 좋으신데 자리에 앉으세요.’ 하며 나를 진정시킨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으앙∼’하고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들인 줄은 알았지만, 울음소리 하나만으로 얼마나 용기 있고 씩씩한지 알 것 같아 조금 전의 초조함은 사라지고 함박웃음이 나온다.
울음소리가 들리고 조금 있으니 분홍빛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가 초록색 강보에 쌓인 아기를 안고는 사진 찍으려면 아기 놀라지 않게 빨리 찍으라고 한다. 드디어 손자와 첫 상면을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산부인과병원 신생아실 통유리를 통해서다. 준비해간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하나씩 찍고 나니 자세히 보기도 전에 총총 살아졌다.
새 생명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순식간에 지나가 얼떨떨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우는 모습이라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얼굴 윤곽이 또렷해 보이는 게 사내답게 생긴 것 같아 흐뭇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하얀 강보에 싸서 모자까지 씌워 안고 나왔다. 사진 찍으려면 또 빨리 찍으라고 재촉한다. 갓난아기를 위한 재촉인데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사진을 찍으며 자세히 보니 얼굴은 반듯하고 코는 오뚝하며 눈은 감아서 잘 모르겠고 입술선이 또렷하여 정말 남자답게 잘생겼다. 순결한 백합꽃처럼 하얀 포대기에 둘러싸여 말갛게 얼굴을 드러낸 손자 얼굴을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처음엔 얼굴을 찡그리며 울더니 금세 울음을 그친다. 선하품을 길게 하더니 오물오물 입맛을 다시는가 하면 배 안의 짓이겠지만 미소를 짓기도 한다. 할머니야! 할머니! 말을 건네 보는데 가슴이 벅차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상큼하고 신선한 공기가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값진 선물이듯이 어린아이의 방긋 웃는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평안 그리고 행복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가 우리 집 장손이라고 당신 목숨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아이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할머님까지 4대가 오순도순 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할머님과 어머님은 하늘나라에 계시고, 언제나 새댁인 줄 알았던 내가 할머니가 되었다.
해산하기 전에 아기 침대, 배냇저고리, 기저귀를 사러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팔청춘 같은데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동창 모임에 가면 하나같이 손주 자랑이지만, 부럽기보다는 오히려 할머니 소리 안 듣게 해준 것이 고마웠다.
아들 내외 나이를 생각하면 결혼 후 바로 아기를 가져야 하는데 천천히 갖겠다고 했을 때도 그래서 흔쾌히 허락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아기 얼굴을 보고나니 핏줄은 당긴다고 갓 태어난 손자가 자랑스럽고, 수술 후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푸석한 얼굴을 한 며느리를 보니 안쓰럽고 대견했다.
산고의 고통이 두려워 제왕절개를 한다고 했을 때 참을성이 없는 것 같아 못마땅했었다. 더군다나 예정일보다 2주나 먼저 수술을 하는 데다 첫아이는 1주일에서 2주 늦게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거의 한 달이나 먼저 험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입덧도 안 하고 잘 먹었다 해도 제달 꽉 채워 나온 것만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3. 1㎏의 건강한 아기를 보고 나니 그런 우려는 싹 가셨다. 하루라도 빨리 손자와 아름다운 만남이 반갑기만 했다.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쁘고 아기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푹 빠졌다. 웃는 모습이 배 안의 짓이지만 아기천사처럼 예쁘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은 바로 첫아이가 태어난 날일 것이다. 열 달 동안 배 속에 있던 아이가 세상에 나온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만감이 온몸을 감싼다. 부모로서의 다짐과 책임감, 가슴 벅찬 기쁨, 아이에 대해 기대와 설렘으로 행복했던 35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진통이 시작되고 스물세 시간 만에 낳았는데도 산고의 고통보다는 옆에서 꼬물꼬물하는 아기가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첫 손자를 안겨주어 기쁜데 아기 이름도 우리에게 일임해주어 고맙다. 요즈음은 아기 이름을 둘러싸고 부자지간에 의견대립을 한다는데 두말없이 부모님이 지어주시는 대로 따르겠단다. 심사숙고 끝에 첫 손자인 만큼 돌림자를 따서 윤범이라 하였다. 김윤범!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고 무게감이 있어 보여 좋다.
손자의 탄생은 적막했던 집안에 활기가 넘칠 뿐만 아니라 저 출산국가에서 인구 한 명 늘렸으니 나라에 이바지한 셈이다. 더군다나 며칠 있으면 추석인데 차례(茶禮) 때 조상님에게 알릴 생각을 하니 기쁨이고 행복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신은 울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웃고 있다’는 인디언의 격언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태어난 만큼 ‘늘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 용의 기상으로 ‘씩씩하고 용기 있는 아름다운 삶’을 펼쳐주기를 기원한다. 손자가 살아갈 미래는 첨단과학의 발달로 더 빠르고 편한 세상이 될 것이다.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인간의 덕목을 지키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착하고 바른 인재로 자라되, 항상 노력하여 사람의 향기를 풍기는 진실한 삶,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사람으로 살기를 기원한다.
투명한 가을 분위기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을 느끼게 하며 친근감을 주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향해 해맑게 핀 코스모스를 보면서 가을은 봄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올가을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첫 손자를 보아 그런지 그 어느 해보다도 더 아름답고 행복하다.
봄나들이
봄을 출산하기 위해 겨우내 산통을 견디며 키워온 사랑의 햇살이 불을 지피고 있다. 아름다운 그녀가 어서 나오라고 유혹을 한다. 못 이기는 척 그녀와 가슴 뛰는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친구들이 전국각지에서 모이는 만큼 비행기 시간이 각기 달라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즐겁기만 하다. 공항대기실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마지막 친구 내외가 도착하여 아홉 가족 열여덟 명이 우도로 이동했다.
제주도는 여러 번 갔었지만, 우도는 처음이다. 우도는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도봉 혹은 쇠머리 오름이라고 한다. 섬 속의 섬인 만큼 마라도만 생각하고 그저 조그마한 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면 소재지답게 꽤 큰 마을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는 섬 속의 섬 우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우도는 지난해 미국 뉴스 전문채널 CNN 주관 한국에서 방문해야 할 곳으로 선정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공동 주최의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곳’에도 선정될 만큼 국내·외를 대표하는 섬 관광지이다.
숙소로 가는 도중 봄의 전령사인 유채꽃밭을 만났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고 해서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유채꽃은 명랑, 쾌활, 풍요로움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유채꽃을 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재잘재잘하는가 하면 깔깔거리는 등 마냥 즐거운 모습들이다. 몸으로 노란빛을 발하는 유채꽃. 꽃이 피는 봄만큼은 제주의 주인공은 한라산도, 싱싱한 해산물도 아닌 유채꽃 같다.
이튿날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를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우비를 사서 입고 배에 오르니 예전에 직장후배들과 단체로 우비를 입고 대둔산에 오르던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라도에 내리니 1박 2일 촬영지인 짜장면집 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 먹고 싶을 정도로 호객행위도 대단하다. 유혹을 뿌리치고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봄비를 친구삼아 걷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예전엔 없었던 것 같은데 예쁜 커피집도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우르르 몰려 들어가니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주인이 오히려 당황한다. 미니 카페라 다 들어갈 수가 없어 커피 한 잔씩 들고 추녀 밑으로 갔다. 봄비를 맞아 오들오들 떨며 추녀 밑에서 먹는 커피인데도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짜장면 생각이 간절했다. 배 시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 고민하다 다섯 그릇만 시켜 열여덟 명이 나누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옛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적은 음식 가지고 여러 형제가 나누어 먹었을 때 모든 것이 다 맛있었던 게 이해가 되었다.
오후에는 한림공원을 관광했다. 한림공원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3천여 종의 아름답고 희귀한 식물왕국이다. 산야초원에는 다양한 표정을 한 돌하르방은 물론 수많은 아름다운 야생화가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아열대 식물원에는 야자수정원, 열대과수원, 관엽식물원, 선인장정원, 허브가든 등 열대지방의 이국적인 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수선화, 자란, 튤립, 새우란 등 이름도 모르는 많은 초록의 식물과 유채꽃, 영춘화, 매화 등 봄꽃들의 향연에 눈이 부시다. 분재와 돌을 소재로 하여 구성된 석·분재원은 다양한 분재작품과 희귀한 자연석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언제 보아도 새롭기만 하다.
마침 매화축제 중이라 기쁨이 배가 되었다. 축제장에 들어서니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설렜다. ‘광양 국제매화축제’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꽃이 귀한 2월 말에 흐드러진 매화꽃을 보니 눈가에 이슬이 다 맺힐 만큼 행복한 마음이 샘솟는다. 더군다나 잠자던 생명을 깨우는 봄비 덕분인지 꽃이 막 피어오르기 전 하얀 속마음을 품고 있는 모양새가 참으로 아름답다. 수십 년 된 매화분재가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린 모습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경이로웠다.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라 부른다. 매화는 그중에서도 으뜸 자리로 우아한 풍치와 고상한 절개를 뜻하는 ‘아치고절(雅致高節)’, 또는 빙자옥질(氷姿玉質)이라 한다. 꽃말도 고결, 충실, 인내, 맑은 마음 등 좋은 꽃말들을 풍성하게도 간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아름다운 덕'이라는 꽃말로 총칭되기도 한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조지훈은 「매화송(梅花頌)」이라는 시에서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라 읊었고,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임포는 「산원소매(山園小梅)」에서 ‘그윽한 향기는 달빛 속에 번져온다’고 했다. 매화에서 풍기는 그윽하고 맑은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마지막 날 단일수종의 숲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비자림을 관광했다. 약 500년∼800년 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해 있는 비자림은 천 년의 유구한 세월에 형성된 천연 원시림이다. 비자림 숲은 피톤치드로 알려진 물질이 흘러나와서 혈관을 유연하게 하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와 인체의 리듬을 안정시키는 자연건강의 치유 효과가 있어, 숲 산책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더욱이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화산쇄설물인 송이(Scoria)가 산책로에 깔려 있어 최고의 삼림욕이 된단다. 향기를 맡으며 나무들이 토해내는 달착지근함을 음미하니 영과 육이 모두 정화된 느낌이다.
비자림을 돌다 보니 유난히 반짝반짝 꼭 참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반들거리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만지면 결혼 못 한 처녀 총각은 결혼하고, 아기 못 낳는 사람은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단다. 그래 지나가는 사람마다 쓰다듬어 그렇게 빛이 나는 거란다. 나도 뒤질세라 어루만지며 하루빨리 딸이 결혼하기를 기원했다.
꿈과 희망 그리고 소생의 계절, 묵은 것을 걷어낸 봄 들녘처럼 나를 짓누르고 있던 일상의 권태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리라.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서둘러 맞는 제주에서의 봄이 유난히 싱그럽고 행복하다.
믿음과 사랑
어머니!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 나니 거짓말같이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제 곧 가을이라는 자연의 신호겠지요. 며칠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큰 기쁨이자 축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때문에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서늘한 가을바람이 더욱 싱그럽고 반갑게 느껴집니다.
어머님이 항상 그리워지고 보고 싶었지만, 모시옷을 입는 이맘때가 되면 더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선 제가 어려울 때마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형제간에 우애 지키며 맏며느리 노릇 하느라 애쓴다고 늘 자상하게 보살펴 주셨지요.
주경야독하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어머니 조끼나 스웨터, 모자를 떠 드리면 우리 며느리는 직장 다니며 밤에 시어머니 옷까지 만들어 준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고맙다며 제게 모시옷을 만들어 주셨지요. 디자인이나 색상이 조금 부족하지만, 어머니가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옷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입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모시옷만 입고 나가면 어린아이처럼 흐뭇해 하시며 좋아하셨지요.
몇 년을 입어 헌 옷이 되었을 때입니다. 모시 저고리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까지 해놓고 직장에 입고 가라고 하시는데, 다림질이 마음에 들지 않음은 물론 유행이 지난 헌 옷이라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입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손질한 모시옷을 안 입는 것이 속상하셨던지 아침마다 들고는 더 서늘해지기 전에 입어야 한다며 얼른 입으라고 성화를 대셨습니다.
처음에는 모시옷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해주신 옷을 잘 입고 다녔습니다. 80이 넘으신 노인이 만든 것이라 디자인이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입고 출근하면 보는 사람마다 시원하고 우아해 보인다고 칭찬들을 하였습니다.
그 후 나온 모시옷은 일류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색상 및 디자인이 아름다운 데다 예쁘게 수를 놓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해주신 모시옷과 비교되었습니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배어있는 날씨 탓도 있지만, 유행이 지난 오래된 헌 옷을 입고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었더니 어느 날 아침에는 좀 더 있으면 진짜 썰렁해서 못 입으니까 이왕 손질한 것이니 한번 입었다가 빨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모시옷도 유행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어머니는 당신이 만든 것이 최고인 줄 아시는데, 안 입는다고 하면 실망하실 것 같아 말도 못하고 속만 태웠습니다. 그렇다고 입고 나가면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뿐더러 계절도 모른다고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고민하다가 그날은 날씨가 흐려 비가 올지도 모른다며 얼버무렸습니다. 그랬더니 모시옷은 비 맞으면 후줄근해져서 입을 수가 없으니 내일이나 입고 가라고 한 걸음 양보하셨습니다.
주(周)나라의 노래자(老萊子)는 칠십의 나이에 무늬 있는 옷을 입고 동자의 모습으로 재롱을 부려 부모에게 자식의 늙음을 잊게 해드렸다고 합니다.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똑같으니, 변함없이 효도해야 한다는 노래지희(老萊之戱)란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면 유행이 지나고 좀 낡았더라도 어머니가 손수 만들고 손질한 모시옷을 입고 다녔어야 했는데 효가 부족해 입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됩니다. 그래 모시옷을 입는 여름철만 되면 어머니 생각이 더 납니다.
올해는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손녀 현지가 혼기가 지났음에도 결혼할 생각은 안 하고 사업을 한다고 하네요. 제가 현직에 있을 때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사업하면 실패하기 쉽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 딸에게 힘을 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차일피일 미루었더니 막내 시동생이 ‘자기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어머니께서 믿음과 사랑으로 용기를 주지 않았으면 오늘의 자기는 없었을 것이라며’ 도와주라고 우리 내외를 설득하네요.
사실 막내가 처음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공직자의 좁은 안목으로 저는 반대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커 나가는데 시동생 셋이나 결혼시키며 남편 박사학위 뒷바라지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막내 시동생까지 결혼시켜 겨우 한숨 돌리고 나니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며 사업한다고 하는데, 맏이인 저는 만약에 잘못되면 뒷감당은 고스란히 제가 떠 않을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자식을 안 믿으면 누굴 믿느냐며 도와주셔서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번창하여 몇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습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는 “사랑한다." 와 “네 능력을 믿는다.” 두 마디로 아들을 길렀다고 합니다. 새아버지가 수없이 바뀌었지만, 클린턴이 훌륭하게 자라나 대통령이 된 것은 어머니가 심어준 사랑과 자신감 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막내도 어머님의 믿음과 사랑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 사업이 번창한 것 같습니다.
막내 시동생이 사업할 때를 생각하면 현지는 내 땅, 내 건물에서 하는 것인 만큼 아주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만 헌 건물이라 리모델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걱정할 것이 없는 데도 실패할까 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며칠 밤을 설쳤습니다. 실패는 시행착오라는 교훈을 통해 혁신으로 비약할 수 있는 자산인데도 말입니다.
하루야마 시게오는 “좋다. 될 것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플러스 발상」을 계속하면 뇌에 좋은 호르몬을 분비시켜 의욕고취, 인내력과 창의력 강화, 건강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그동안의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믿음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듯이 저도 현지가 잘할 것이라는 긍정의 마음을 같기로 하였습니다.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니 모든 게 새로워 보이며 정말 잘할 것 같아요. 그러나 딸에게만 맡길 수 없어 이것저것 참견하다 보니 몸은 고달픈데도 할 일이 있다는 것에 힘이 나네요. 처음 공직생활 할 때처럼은 아니지만, 인생이모작을 한다 생각하니 보통 설레는 것이 아닙니다. 힘든 시장조사조차도 즐겁습니다. 요즈음은 정말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칠 남매 키우시느라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어머니! 하늘나라에선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영생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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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쁘신데 옥고 감사합니다.
과장님 덕분에 제가 착각한것을 알았답니다.
평안한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