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루의 안동 선비길 기행, 제6코스 못다 걸은 역동길
안동 선비길 역동길은 옛 역동서원지(易東書院址)에 있는 계상고택(繼尙古宅)을 지나는 길이다.
원천리의 낙동강 원천교를 들머리로 하여 내살미와 월란정사를 거쳐 의촌리 번남고택으로,
다시 예안면 부포리의 계상고택과 성성재종택을 지나 부포선착장으로 이어진다.
퇴계 이황과 스승 농암(聾巖 李賢輔 1467~1555)을 비롯해 만취당(晩翠堂)과 성재(性齋)를 비롯한 그 제자들은 물론
고려 때의 역동(易東. 禹卓) 선생의 자취까지 더듬어 찾아볼 수 있는 코스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완주를 못하고 일부 코스만 걸었다.
그러나 안동 선비길 아홉 코스 전구간 완주길에 나선 걸음이라 어느 한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번남 고택부터의 부포나루까지의 이미지는 다른 분이 담아 온 것을 가차해 올렸다.
11월의 첫 주말이었던 지난 2일 , 역동길 들머리인 원천교를 찾았다.
청량곡(淸凉山谷)을 내린 낙동강이 이곳 왕모산 자락을 굽돌며 산태국 수태극을 이루고, 도산구곡을 대표하는 단사곡(丹砂曲)
이 큰 여울의 흰모래와 푸른 강 그리고 천길 단애 검은 암벽이 어우러져 절묘한 풍경을 그려내는 곳이다.
내살미를 거쳐 옛 월란암 터에 있는 월란정사(月瀾精舍)를 찾았다. 월란암(月瀾庵)은 퇴계가 젊은 시절 5년 간 머물며
스승인 농암을 모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란 문학 동호회를 만들어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읊던 곳이다.
지금의 월란정사는 1860년 퇴계의 고제(高第)였던 만취당(晩翠堂 金士元. 1539~1601)의 후손들이 그 터에 세웠다 전한다.
호반의 비탈진 언덕에 돌담으로 둘러친 월란정사는 지금은 폐가로 방치되고 있지만, 집 앞 가파른 절벽 위의 둔덕에 서자
발치에는 낙동강(안동호)이 굽 돌고, 그 건너에는 토계천 어귀. 윷판대. 이육사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도산의 산하가 그림처럼
펼쳐젔다. 기꺼운 마음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어지는 길은 의촌리 번남고택으로 가는 길,
그러나 곧바로 낭패에 부딪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변의 왕모산성길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늪지와 개울을 건너 원천과 의촌 어름의 산을 올랐다.
그 순간 일행 중 한 분의 가벼운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코스를 포기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루저가 된 기분, 돌아오는 귀경 길 내내 속이 쓰렸다.
촬영, 2024, 11, 02.
▼도산 9곡 제7곡 단사곡(丹砂曲) / 안동 도산면 원천리
▼제6코스 역동길 안내도
▼안동 선비길 제6코스 들머리, 낙동강 원천교 / 도산면 원천리
▼왕모산과 칼선대 / 단사곡 위 촛대바위
▼제6코스(역동길) 지형도
▼왕모산과 왕모산성 입구
▼도산 원천리, 내살미 마을
▼붉은 꽃 메밀
▼내살미 버스 정류장
▼내살미 무 밭
▼원천리 강변 왕모산성길 옆 월란정사 들머리
▼원천리, 월란정사 - 1
▼월란정사 - 2
▼월란정사 - 3 / 현판과 퇴계 시
▼월란정사 - 4 / 월란암칠대기적비
▼월련정사 앞에서 본 안동호 / 건너편에 토계천 어귀(좌)와 천사곡(川砂曲) 건너 이육사문학관이 보임
▼도산 9곡 제5곡, 탁영담곡(濯纓潭曲) / 의촌리 남쪽 옛 강변 (안동호)
▼ 원천리 왕모산성길 개울 가 습지길
▼원천리 왕모산성길 끝나는 지점 산골 마을 / 길은 여기까지만 나 있음
▼ 원천리 개울 건너 산넘이 길(의촌리로 넘어가는 길) / 사진 제공 허명숙
▣ 번남고택(樊南古宅)
퇴계의 9 세손이 1811년에 아흔아홉 칸으로 지은 집으로 지금은 50여 칸이 남아 있다 전한다.
당시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을 모방해 건립하고, 특이한 것은 굴뚝이 하나뿐이라 하는데 직접 가보지 못해 아쉽다.
▼도산면 의촌리, 번남고택 - 1 / 사진 제공 수석천
▼ 번남고택 - 2 / 사진 제공 허명숙
▼ 번남고택 - 3 / 사진 제공 허명숙
▼예안면 부포리 호반 / 사진 제공 허명숙
▼ 부포리, 관수대 - 1 / 사진 제공 허명숙
▼ 부포리, 관수대 - 2 / 사진 제공 허명숙
▣ 부포리 계상고택(繼尙古宅)
예안면 부포리 옛 역동서원(易東書院)이 있던 자리에, 역동(易東. 禹卓. 1264~134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895년 퇴계의 11세 손 계상(繼尙) 이만응(李晩鷹.1829~1905)이 세운 전면 7칸, 측면 7칸 'ㅁ' 형 집이다.
역동 선생은 려말 정주학의 대가로 우리나라 이학(理學)의 시조다.
오늘날 단양 8경으로 유명한 사인암( 舍人 巖)은 단양이 고향인 선생이 사인(舍人) 벼슬에 있을 때 이 바위 근처에 거하며
자주 찾았다 하여 후일 단양 군수(임재광)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명했다고 한다.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를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란 선생의 시가 있다.
▼ 부포리 계상고택 - 1 / 사진 제공 수석천
▼ 계상고택 - 2 / 사진 제공 허명숙
▼ 계상고택 - 3 / 사진 제공 허명숙
▼ 계상고택 - 4 / 사진 제공 수석천
▼ 계상고택 - 5 / 사진 제공 허명숙
▼ 계상고택 - 6 / 사진 제공 허명숙
▼ 부포리 호반 / 사진 제공 허명숙
▼ 예안면 부포리 - 1 / 사진 제공 허명숙
▼ 예안면 부포리 - 2 / 사진 제공 허명숙
▼ 예안면 부포리 표석 / 사진 제공 수석천
▣ 성성재 종택
성성재 종택은 청량산 아래 낙동강 가송협(佳松峽) 가에 자리한 고산정(孤山亭) 주인 성재(性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
의 종택으로 선생은 퇴계의 8 고제 중의 한분이다.
▼부포리, 성성재 종택 - 1 / 사진 제공 수석천
▼ 성성재 종택 - 2 / 사진 제공 허명숙
▼ 성성재 종택 - 3 / 사진 제공 수석천
▼ 성성재 종택 - 4 / 사진 제공 수석천
▼ 부포리 선착장 주변 풍경 - 1 / 사진 제공 허명숙
▼ 부포리 선착장 주변 풍경 - 2 / 사진 제공 허명숙
첫댓글 남아 있는 월란정사의 모습이 반듯하군요.
그런데 앞으로 관리를 안하면
진짜 폐가가 될듯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