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0-02
지 게
박 병 민 목사(새터공동체)
한 달 남짓 전부터 집 마당을 들어서는 입구의 언덕에 농삿일에 사용되는 지게가 세워져 있다. 화장실 넓히기 일을 하면서 부스러기로 나온 스치로폴을, 마을 어른께서 가지고 가시려고 지게를 지고 왔으나 양이 좀 많아 가져가지 못하고 갖고 온 지게마저도 놓고 가셨다. 그 어른께서는 그 지게를 유구(悠久)히 사용했으리라. 오래되어서 단단히 마르고, 번지르르하게 다라빠진 지게의 역사 만도 못한 것이 우리의 짧고, 시시각각의 변덕스러움의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짐을 언고 다니는 지게를 보면서, 나는 지게처럼 짐을 지는 사람인가? 아니면 짐을 지우는 사람인가?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모세의 재판자리에 앉아서 무거운 짐더미를 약한 사람의 어깨에 지우면서 막상 자기 스스로는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예수는 지적하고 있다. 같은 마태복음 18:6에서는 소자(小子) 곧, 작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면, 큰 집채 만한 연자맷돌의 짐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로 빠쳐지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공동체에 88세의 어귀녀 할머니께서 계신다. 전에 오랫동안 밖의 출입을 못하고 방에만 계셨는지? 무릎이 굽어져서 일어서지를 못하시고, 손으로 짚고 기어서 몸을 옮기신다. 할머니에게는 몸 그 자체(自體)가 짐이 되실는 지도 모른다. 학교 때 배운 시조 생각이 난다. “이고 진 저 늙으니 짐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울 소냐. 늙기도 서러워라 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어 할머니께서도 젊으셨을 때에는 간호사 일을 하시면서, 앞서신 어른들을 위하여, 혹은 뒤 따르는 어린 소자 들을 위하여 짐을 지셨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할머니의 짐을 조금이나마 져야만 되지 않을까? 갈라디아서 6:2-5에서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자기의 짐을 지면서, 나아가 다른 작은 백지장이라도 맞잡을 수 있는 손이 되어야겠다.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트럭을 운전 해 가던 운전수의 눈에 짐봇다리를 이고 걸어가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할머니의 짐을 받아 짐칸에 싣고, 할머니도 부축하여 같은 짐칸에 올려드렸다. 할머니께, 쪼그려 앉고 손으로 차를 붙잡으라고 이야기를 드린 다음, 차를 운전하였다. 한 동안 달리다가 유리창으로 뒤의 할머니를 보았는데, 달리는 차 중인데도 할머니께서는 일어서서 한 손으로는 차를 붙잡고, 머리에 짐봇다리를 이고 서 계셨다. 차를 멈추고, 할머니께 가서 “할머니, 옆에 짐을 내려놓으셔도 차가 싣고 할머니와 같이 갈 거예요” 하지만 그 할머니께서는 짐을 놓지 않으셨다. 그것은 마치도 몸에 쌈지주머니를 간직 하시려는 노인 어른들의 노파심(老婆心)과 흡사한 모습 일 것이다. 그것을 헤아리면서 “이고 진 저 늙으니 짐 벗어 나를 주오.....”
공동체 이야기
오고 가고
2월 12일, 여섯시에 있는 아침 성경읽기 모임 후에 자리에 누워 있는데, 여덟시 가까이 되어서 서대전교회 박종덕 목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반쯤 눈을 감고,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에도, 목사님의 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잘 계십니까? 공동체 식구들도 잘 계십니까?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목사님들께서 모이셨는데 못 뵈었습니다. 기도원이 아주 좋던데요” 등등의 말씀, 아침 벽두에 그 박목사님의 말씀이 나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2주 남짓 전부터 같이 계시는 정전도사님을 통하여 알게된 박목사님, 생소하지 않은 그 분의 이름, 수수하시고, 구수하시고, 부담이 없으신 목사님, 대학원에서 공동체를 주제로 글을 남기셨다는 말씀에 연세가 여러 해 많으신데도 한층 동류(同流)와 같이 와 닿았다.
저녁 일곱시 반이 되면 함께 모여 중보기도회를 갖는다. 2월 1일 화요일 저녁에는 기도회 대신에 박종덕,성기환,서누가,송야곱 목사님과 이길수 전도사님, 윤재봉 집사님 그리고 몸찬양 모임에서 오셔서 함께 인도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렸다. 박종덕 목사님께서 시편 132편으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야기가 흥겨워서 지금까지 기억 되어진다. 교회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야기, 지하실 예배당에 빗물이 고였을 때 하염없이 퍼내면서 기도하였더니 이 후 부터는 신기(神奇)하게 물이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 무허가건물 일로 온 교우들이 밤마다 모여 함께 기도하였더니, 기도 끝날에 예배당 안에 온통 그윽한 향취가 풍긴 일, 부흥회 인도나가서 겪으셨던 재미있는 일화들, 요즈음에는 기독교방송 새벽설교에 매 주간 나가시는데, 방송국에서 어떻게 나를 알고 이 예배프로에 출연시키셨습니까?하고 목사님이 물으니, 방송국 사람이 하는 말 “그저 교회주소록을 보고 아무나 선택하는 중에 목사님의 이름이 눈에 뜨여서요”라고,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줌으로 웃음을 먹음게 하셨다. 설교 가운데서 나에게 들려진 말씀은 하나님께서 비천(卑賤)에 처한 우리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희망의 이야기셨다. 나는 설교 후 찬송을 344장을 선택하여 함께 불렀다.“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2월 7일, 김창준 선생님께서 가신 날이다. 베드멘트를 함께 치시던 그 분... 지난 12월 13일에 오셔서 주민등록을 이 곳으로 옮겨 면에서 하는 공공근로에 성실히 임하셨던 선생님, 성경읽기 모임 때에는 성경을 퍽도 잘 읽으셨다. 여러날 전에, 공공근로 일은 벌이가 적으니 다른 일을 찾아 가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봄 날 되어서 나무심는 때가 되면 나무심어 주러 오시겠다며, 선생님은 정처(定處)도 없이 처소(處所)를 옮기셨다. 전 날인 주일저녁에 파송의 예배를 드렸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계시는가? 기쁜 소식이 있기를....
2월 8일, Y의 권간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보람이라는 열일곱의 학교를 중단한 아이가 있는데, 아버지가 무서워 집을 나와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다가, 다른 있을 거처를q 찾는 중이라고, 그 날 저녁 열시가 지나서 우리들에게 왔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 아니 가려고 하는 보람이를 욱박지르며 그의 아버지는 강제로 그 아이를 끌고 갔다. 보람이는 밤에 왔다, 결국 밤에 갔다.
공 동 체 소 식
☻ 새터 공동체 가족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99. 7.16)
김기홍,김인자,찬미,은혜,기진 (99.10. 2)
정진희,이정남,재문 (99.12.10)
김교은 (99.12.14)
박성규 (00. 1.12)
어귀녀 (00. 1.15)
* 99년 12월 13일에 오셔서 함께 생활하시던 김창준 선생님께서는 00년 2월 7일에 새로운 곳을 찾아가셨습니다.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하신 분들
선교제일교회(황인칠),이종국,이정남,새빛교회(김일회),문화교회(최동주),신동성,강준규,서부선창교회(오경근),율정교회(김의석)청년부,표성식,부여동부교회(최덕성),유광현,대평교회(황찬규),어득자,왕지교회(이정복),안천일,이정남,김창준,조치원제일교회(전세광)아동부(남민숙),강병각외,예수마을,이종국,유인숙,에벤에셀장애인교회,장애인교역자후원회,진갑선(최미화),김학석,낭월교회4여전도회,대덕교회,분평청북교회(신양우),서대전교회(박종덕),몸찬양모임,성기환,서누가,송야곱,이길수,윤재봉,김창준,정진희,박성규,어득자,전수현,권부남,진수정,낭월교회1남선교회,최성관(이성희),낭월교회1여전도회,채윤기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