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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태초의 당사자와 제3자>의 줄거리:
아담이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 그리고 인격적 피조물인 배우자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아담이 자기와 같은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특별히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모든 인간 관계의 모태가 되지요. 이제 문제는 어떻게 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계들을 평화롭게 맺고 유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관계의 당사자와 제3자를 올바로 분명하게 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태초의 당사자와 제3자
(창2:18~25)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태초의 당사자와 제3자>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태초의 당사자와 제 3자’
옛날에 중동 땅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세 아들에게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유언을 하시기를 “유산 중에 절반을 첫째 아들이 가질 것이고, 둘째 아들은 1/3을 가질 것이고, 셋째는 1/9을 갖도록 하라”는 유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명확하게 유산의 배분을 정해놓고 돌아가셨으니 이제 문제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형제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남겨두신 유산은 낙타 17마리가 전부입니다.
낙타가 17마리이다 보니까 첫째 아들이 절반을 가져야 하는데 17마리가 절반으로 나눠집니까? 절반으로 나누면 8.5마리가 됩니다.
둘째 아들도 1/3을 가져야 하는데 17이 3으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5.6666…마리가 됩니다. 막내아들도 9로 나누려면 나누어지지가 않습니다. 1.8888…마리가 되는 거예요
이러니 형제간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하고 불화와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할 때에, 세 형제가 이럴 게 아니라 현자(賢者)라고 이름이 나 있는 한 여인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보자고 해서 찾아갑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 현자가 제안을 합니다.
나에게 낙타가 있으니 한 마리 당신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왜냐고 했더니 일단 한 마리를 주겠대요. 그래서 받았어요.
받아서 이제 18마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다 나눠지는 거예요.
1/2을 갖기로 했던 첫째 형이 9마리를 갖고 갑니다. 1/3을 갖기로 했던 둘째가 6마리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막내가 1/9을 갖기로 되어 있었으니 2마리를 가져갑니다. 다 합치면 17마리예요. 그런데 한 마리가 남습니다. 그래서 그 남는 한 마리를 이 여인에게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첫째는 절반인 8.5마리를 갖기로 했었는데 9마리를 갖게 되었으니 손해 없죠. 둘째도 1/3이면 5.6마리인데 6마리를 갖게 되었으니까 손해 볼 것 없죠. 셋째도 1/9이면 1.8마리인데 2마리를 갖게 되었으니 손해 볼 것 없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죠? 신기하죠?
이게 바로 제 3자 개입의 비밀입니다.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만들었어요.
제 3자가 개입함으로 도저히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당사자 간에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해결의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3자가 개입하게 되면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방법으로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첫째 입장에서 보면 자기와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산과의 관계입니다.
그 유산과의 관계에서 두 동생들이 그 유산의 문제에 끼어들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과 자기와의 관계가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유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유산에 대해서만 관계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둘째와 셋째 동생을 함께 관계해서 해결을 해야 되는 것이죠. 유산에 대한 관계 속에서 형제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해 낸 것입니다.
이렇게 제 3자가 개입함을 통해서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문제와 갈등이 해결되고 관계가 평화롭게 유지되는 경우는 형태를 달리해서 여러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여당과 야당이 분열되어 싸운다고 할 때에, 국외의 적이 나타나게 되면 이 제 3자는 앞에 있었던 현자처럼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이 해외에 등장하게 되면 국내의 여당과 야당이 힘을 합치게 됩니다. 이것도 모양은 다르지만 제3자 개입을 통해서 관계가 회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대대로 우리나라가 정권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북한 관련 된 문제를 터트려서 모든 국민의 마음을 북한으로 쏠리게 함으로 자기에 대한 화살을 면하게 되고, 국내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단합이 이루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또 이런 것뿐만이 아니에요. 바둑을 둘 때에 옆에서 구경하고 있으면 왜 그렇게 바둑이 잘 보이는지 몰라요. 이게 바로 제 3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내 자식 문제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자식 문제를 마음대로 했다가는 자식이 망하는 길로 갈수도 있으니까.
그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내 판단과 분별이 올바를 수 없습니다. 이럴 때에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좀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 문제, 어떤 사업상의 문제가 생기면 문제와 당사자의 관계에서 관계의 대상은 사람하고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도 관계하고 사물도 관계하는 것이니까 제 3자의 입장으로 나를 빼냅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를 당면하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두려움과 걱정, 상실에 대한 염려 때문에 감정이 휘말려 들어가서 냉정한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니까 할 수만 있다면 내 마음을 제 3자의 입장에 놓는 거예요.
제 3자라는 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당사자 간의 불화와 갈등과 문제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극복하고 평화와 형통을 유지해가고 이루어 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해보죠.
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느냐?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삼라만상 피조물들의 존재를 만들어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존재들 간의 관계를 만드시는 거예요.
피조물들이 이 땅에서 존재하는데 각자가 옆의 피조물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 유기적인 관계 안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이름이라는 것은 존재를 일컫기 위한 사회적인 약속입니다.
사회적인 약속이라는 것은 관계를 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이름을 알 필요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오바마 대통령이라면 먼 관계지만 관계가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이 곧 나한테도 미치므로 관계가 있는 거죠.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아담을 통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삼라만상이 연관성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못돼 먹을 때에는 자연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겁니다.
로마서 8: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라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동식물들도 다 탄식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관계를 창조하는 거예요.
생물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물과의 관계도 있을 것이고… 돈 역시 관계하는 것 아닙니까?
자연, 나무, 과제물… 당연히 사람과의 관계도 오늘 창조가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하와라는 존재에 대해서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하와와 아담과의 관계는 모든 사람들의 관계의 모태(母胎)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사람의 관계가 나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그 사모님과의 관계도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나왔고, 여러분의 부부관계, 자식관계도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나왔고, 북한의 김정은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도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고, 원수의 관계, 친구의 관계, 동창의 관계… 모든 관계들이 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관계를 이야기하시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것이 어떻게 관계를 잘 할 수 있느냐?
당사자와 제3자, 제 3자와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정하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겁니다.
당사자와 제3자의 관계가 분명해지면 모든 관계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내가 상대하는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당사자가 누구고 제3자가 누구냐는 것만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해도 내 마음의 평화는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3자와 당사자가 어떻게 구분됩니까?
조금 전에 일반적인 세상에서의 제 3자의 개입이 당사자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와 해결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의 상태에서 생각해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또 하나의 요소로 개입이 되십니다.
장로님이 비즈니스를 하시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장로님은 지금 문제가 생긴 비즈니스와 관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사자이십니까? 제3자이십니까?
일반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당사자도 아니고 제3자도 아니에요.
그럼 누구십니까?
당사자인 장로님께서 동원하는 수단이 될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 보니까 며칠 전에 멕시코에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더군요.
대학생 40여명이 죽어서 불태워져 남은 시체들이 쓰레기 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도시의 자치행정기관이 잘못되어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데 그 데모대를 진압하기 위해서 행정기관의 우두머리가 갱단을 동원한 겁니다. 이 갱은 당사자가 아닙니다. 당사자가 동원한 수단이죠.
하나님이 당사자도 아니시고 제 3자도 아닌 형태에서 당사자가 동원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때에, 우리의 신앙은 그 신앙 때문에 불신앙인보다 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하나님을 우상시해버리는 일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 금송아지가 바로 우리를 출애굽 시킨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와 마찬가지의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셨습니까?
불신앙인보다 더 나빠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된다는 이야기겠습니까?
지금 비즈니스 문제와 대치하고 있는 당사자인 장로님과의 관계를 하나님이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주체이십니다. 주체성을 갖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장로님과 비즈니스 문제가 대치되는 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은 생각을 하십니다. 판단을 하십니다. 이 비즈니스 문제 속에 동업자가 포함될 수도 있고, 사람 관계로 거래처 사람이 포함 될 수도 있고, 재정문제가 포함 될 수도 있고, 전반적인 경제상황인 엔저현상이라든지 원화의 강세라든지 등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제 3자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실 수 있습니까?
내가 당사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오셔서 해결해 달라고 동원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이 상황에 개입이 되시려면 맨 앞에서 이야기했던 아버지의 유산을 나눠야 하는 형제들이 현자를 찾아간 것처럼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이 문제에 개입시키려면, 당사자인 나의 주체성이 완전히 죽어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개입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주체성이 살아있으면 주체인 나에 대해서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이 문제에 관여하셔야 되는 하나님이 종으로 바뀌어버리고 마십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돈 주고 사는 변호사라든지 전문가라면 우리의 종노릇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내고 고용하면 해결사노릇을 해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모시려면 나의 주체성이 죽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개입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죽는 방법이 뭡니까? 십자가에서 죽는 거예요.
그러니 이상한 역설이죠.
지금 내 앞에 사업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 우리 기도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느냐?
맨 처음에는 “하나님 내가 사업 때문에 죽겠습니다. 소화도 안 되고 이러다가는 병나서 죽겠습니다. 이걸 먼저 좀 해결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라고 기도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마지막은 사업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완전히 죽어버릴 때에 내 마음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이 문제에 개입하실 수가 있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니까 망해도 그만 안 망해도 그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역설적인 것이죠.
나는 그 문제에 매여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를 하다 보니 완전히 그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버려요.
어떻게 이런 기도에 도달합니까?
이 재정 문제가 있기 전에, 사업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자식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심지어는 내 몸의 건강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
이미 십자가 사건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죽은 자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건강 문제도 내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버릴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건강과 내 문제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주체성을 표현해 내십니다.
당신의 주체성을 표현해 내셨는데 사업 문제가 더 악화되어서 사업이 망했다면 그게 하나님 뜻인 거예요. 그 사업은 안하는 것이 내 행복을 위해서 아주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체성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죠.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느냐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과 연관을 시켜 봐요.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주체성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갈등의 관계, 문제 속으로 모셔 들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때에 제 3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만약에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 문제가 당도되기 전에, 갈등의 상황이 빚어지기 전에 이미 나는 죽은 자로 유지되고 고백이 지속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요. 처음에는 안 되지만 기도하면서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씨름하다 보면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만나게 돼요.
하나님과 만난 상황에서 문제들이 주어지고 상황들이 주어지고 사람을 만나게 되고 관계가 일어납니다.
이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지속되다 보면 내 관계의 대상이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과 내가 당사자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내가 당사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문제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면 그 모든 문제와 사람들이 제 3자가 되어버립니다.
이때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어떻게 바뀝니까?
하나님과 내가 당사자로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운데, 내가 이 땅에서 대상을 만나고 문제를 만나면 나를 통해서 곧바로 하나님의 주체성이 표현되는 거예요.
이 상태가 바로 오늘 본문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아직 타락하기 전이에요.
아담은 지금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관계의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하세요.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아담의 5감각으로 이 땅에서 다른 대상을 포착하는 겁니다.
‘저기 어떤 동물이 하나 지나가는데 머리가 크고 머리에 갈기가 많이 났어.’
그걸 포착하면서 아담이 사자라고 해야 되겠다고 하면 이 땅에서 사자와 아담과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담은 사자와 관계를 맺기 전에 하나님과 먼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에 대해서 제 3자가 되는데, 이때 제3자는 어떤 제 3자가 되느냐?
아담이 사자라는 동물을 포착하면서 사자에 대한 하나님의 주체성,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아담을 통해서 표현이 됩니다. 사자는 과녁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 살 때에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타락 이전의 상태가 회복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처럼 골방에서 기도하다가 아내를 만나요.
아내가 포착되어서 제 3자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내가 당사자가 되어버리고.
그럴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나는 조준관이 되고, 내가 먼저 관계를 맺고 있었던 하나님께 아내는 당신의 뜻을 쏘는 과녁이 됩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조준관이 된다는 거예요.
사자는 자기가 사자라고 불린다는 것도 몰라요. 우리 인간들끼리의 약속이지.
스컹크가 자기가 스컹크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알죠.
그런데 스컹크라고 딱 포착하면 내가 스컹크를 마주대하고 있을 때, 앞서서 관계 맺은 하나님이 스컹크에 대한 당신의 뜻을 발사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십자가에서 죽어서 타락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내 마음이 하나님과 만나요. 그럼 마음은 하늘에 머물러 있습니다. 몸은 사업을 만나요. 그럼 사업이 하나님 뜻의 과녁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내가 이 땅에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만나든, 어떤 상황을 만나든 내가 십자가를 통해서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상태가 되면 그 모든 대상들이 제 3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이 날아가서 적중시키려고 하는 과녁이 됩니다.
그건 하와도 마찬가지예요.
하와의 입장에서는 아담도 제3자가 됩니다. 하와도 아담과 동일한 인격자니까.
하와와 하나님이 먼저 만나게 되었을 때에 당사자 간의 관계가 형성이 되고, 이 당사자 간의 관계는 하나님이 주인 되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주인일 수는 없잖아요.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나의 주체성을 주체적으로 죽인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왜 나를 주체적인 인격자로 만들었습니까?
나의 주체성을 하나님의 주체성 앞에서 제로로 놓기 위해서 내 주체성을 만드신 겁니다.
주체적으로 나를 제로로 만드는 겁니다.
타락 이후에는 십자가를 붙잡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하와가 하나님을 만나서 이제 아담이 포착되면, 그 아담은 제 3자가 되면서 하와를 통한 하나님 뜻의 과녁이 되어버립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이야기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마귀에 의해서 어떻게 바뀌어 버립니까?
이 땅에서 만나는 것들이 마귀의 유혹으로 다 당사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사업을 만나면 사업과 내가 당사자의 관계로 들어가 버려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사자도 아니고 제 3자도 아니고, 당사자인 내가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아요. 아니면 아예 불신앙인들처럼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의식 바깥으로 두어버립니다. 이게 바로 마귀의 전략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 죽어요.
이 몸으로 만나게 될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죽어버립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회사든 직장이든 뭐든지 다. 심지어는 내 건강에 대해서도 죽어요.
그래야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니까. 그래서 하나님과 내가 당사자가 되어요.
이게 태초의 당사자의 형태입니다.
태초의 당사자로 이렇게 하나님과 내가 연결이 되면, 이제 제3자는 해결의 제3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적중되고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는 과녁으로서의 제3자가 된다는 겁니다.
십자가가 바로 이렇게 나와 하나님을 당사자로 묶어주고, 내가 이 땅에서 만나는 모든 대상들을 하나님의 뜻이 적중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이 표현 되어야 될 과녁으로서의 제3자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십자가가 도달하기 전, 타락 이전의 태초의 관계의 원형, original한 relationship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오늘 나가서 사시면서 먼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당사자 관계로 묶이고 나서 이 당사자 관계에서 모든 다른 관계를 제 3자의 관계로 만나게 될 때에,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주렁주렁 열매 맺혀지는 모습을 보면서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태초의 당사자와 제 3자의 관계를 십자가를 통하여 온전히 회복함으로 제3자를 통한 해결을 보며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당사자 관계에서 온전한 행복을 누리면서 하나님 뜻의 과녁으로서의 제3자 관계를 맺어가며 살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주렁주렁 열매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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