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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의 根源님!!
진솔한 심정을 토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맨 먼저 가장 현실적인 문제부터 짚어 보고자 합니다.
혹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그 명령대로 살기 위해 복의 근원님이 가족을 떠나 기도원이나
본질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교회로
들어가시려는 결심이나 의도를 가지고 계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만일 그러신다면
내 몸처럼 사랑해야할 이웃 중 가장 중요한 이웃이 가족(부모 남편 자식)이라는 성경 말씀들을 어기게 된다는 생각은 안 드셨는지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니라."
(딤전 5:8)
이 말씀 속의 믿음을 예수님으로 바꾸어 이해해 보십시오.
복의 근원님의 시도가 참 예수님을 배반하면서 하나님(예수님)을 찾으려는 불가능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참 예수님을 배반하고 찾은 믿음(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한 神 ,예수의 탈을 쓴 魔王이 아니겠습니까?
(요한1서 4장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이 말씀 중의 형제가 그리스도인만을 의미하겠습니까?
형제는 곧 이웃이요 이웃 중의 이웃은 가족일진대 가족을 떠나면서(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는 누구든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本(고르반의 덫 마가 7장 11절)을
따르는 자가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길수의 인생(신앙)歷程과 福音(사상)이 님께서 고민하고 하나님께 묻고 계신
본질적인 문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도 하나님도 알지 못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생각하시고
제 글을 읽으신다면 길수를 가르치신 예수님(여호와, 성령님)을
만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최소한 님께서 가르침 받은(지금 현재 진리라고 확신하고 계시는)
기독교 교리들과 어떤 점에서 차이를 나는 지를 비교해 보시며,
길수가 사랑하며 길수를 온 맘 다해, 생명 바쳐 사랑하시는 하나님
과 복의 근원님의 힘으로는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님의 하나님과 어떻게 다른지를 아실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아래 글은 한겨레신문(인터넷 판) 토론마당 종교토론방에 올렸던
내용입니다.
一.만약 [나]가 없다면
http://blog.daum.net/mugue/18320519
내가 없다면 우주, 하늘, 자연의 존재도 없다.
있어도 없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남편 아내, 친구도 소용없다.
만약 참[나]가 없다면 성경 불경 도덕경 천부경,
다섯 수레에 가득한 사서삼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상의 권력 보좌 영광 학위 재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들을 누릴 [나]가 없는데!!
[나]없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수 부처 공자 노자 마호멧 神들, 하나님들, 정도령들도
[나]라는 존재가 없는데 누구를 구하고 제도하고 깨우치고
개종시키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참[나]가 빠진 학위, 스펙, 학문, 지혜, 도, 진리, 구원, 영생
등등 아무 쓸모없는 것들 아닌가?
예수께서도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
도덕경에도“ 자신을 사랑하라(13장)”
구약 성경에도 “너 자신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사랑하라”
老子께서도 “수레에 가득한 금은보화보다도 道를 알려주는
것이 더 귀한 것이다(62장) “
“죽어도 죽지 않는 [나]가 장생불사 (死而不亡者 壽)”라
말했지 않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대부분(99.999...%)의 보통사람들은 [나]의 존재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無常한 육체(보이는 나)가 자신임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에 묻지도 그 문제로 고민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육체의 [나]가 무상하고 허망한 존재, 잠시 있다 스러지는
아침 안개나 뜬구름 같은 존재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凡人들은 죽음을 슬퍼한다.
짐승들도 죽음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린다.
몸짱, 얼짱, 성형미인도 한 순간의 [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哲人들(wisdom lover=philosopher)은 안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死而不亡 ’는 어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가르침으로
평범한 이들을 깨우치다가 간 이들이 진리의 교사들이다.
불멸의 [나], 무상한 몸짱 얼짱으로서의 [나]가 아닌 恒常(영구불변=如來)
한 [나]가 과연 존재하는가?
중생들이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착각하고 있는 [나]는 如來=참[나]가
아니다.
그래서 [나]가 [나]를 모르는 이들을 衆生이라 한다.
mugue는 우리 각자의 良心이 참[나]요 영구불변의 도요 진리요
하늘天이요 如來라고 깨닫고 전하건만
진리 (참 지혜)를 사랑한다고 하는 이 들 조차 아무런 반응이 없다.
良心이 진리(神性)가 아니라고 반대하고 조리가 있게 비판하는 소리가
없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말라’고 당당하게 나서는 이가 없다.
슬픈 일이고 가슴치고 통탄할 일이다.
양심을 헌신짝처럼 여기고 엿(돈~)하고 바꾸어 먹는 세대에
그래도 양심을 지키려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고 찾아
왔는데~.
양심이 덜 무뎌지고 병들지 않았다는 이들이 종교(진리)토론방을
열어 놓았다는 소문과 달리 토론은 없고 침묵만 지키고 있을
줄이야~.
이름 있는 포털 사이트도 신문사도 포기하고 폐쇄한 종교토론마당을
개설한 대장부가 있다기에 묻고 물어 찾아 왔건만 제대로 된 토론장은
어디 있는지 눈에 띄지 않는구나!!
범인들은 자기 몸이 참[나]인줄로 굳게 믿고 있으므로 육체의 건강에
그토록 집착한다.
권력과 [나]를 동일시 한 독재자들은 한 민족을, 자기 백성을 [나]를 위해서
무참하게 학살한다.
병원과 종교 과학 등 오래 살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 가서 자기 피땀인 돈을 지불한다.
진시황과 한 무제가 구하던 불로초 불사약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진정한 행복 대박 재미 만족(自足)을 주지 못할 이들에게 재물과 몸을 다
가져다 바친다.
진정한 행복과 부는 自足하는 데 참[나]를 알고 그 진리의 세계에서 노니는
데 있는 것을~.
성인이나 종교, 진리의 스승들은 우리 스스로 [나]를 찾게 도와주는
이들에 불과하다.
진리를 상품화해서 파는 자들은 자기 양심을 팔아 육신에 소용되는 것과
바꾸는 이들이다.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 보다 더 비참하고 불쌍한 이들이다.
예수를 팔고 부처를 노자를 공자를 포장해서 팔아먹지만 그들(진리)과
하나 되는 삶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이들이다.
學問이란 묻는 법(問)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자신 스스로 묻고 답하기(自問自答)를 할 수도 있겠지만 道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에게도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된다.
不恥下問이라 하지 않았는가?
주입식 교육으로 녹음기 녹화기 편집기, 傀儡(로봇) 맹신자를 만드는 것이
학문이 아니다.
학문(wisdom 지혜)을 사랑love하는 이들이 모인 이 곳에서 조차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구나!!
참된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몰라도 아는 체 하는 것이 진짜 무지요 무명이요 어리석임이요,
병든 자가 건강하다고 박박 우기는 것이 진짜 병이라는 진리의 선생님들
말씀을 되새겨 볼 일이다.
박사학위가 없고 종교 지도자의 직함이 없고 유명하지 않고 추종자 하나 없는
자의 글이어서 그러는 걸까?
누더기(갈의)를 입고 그 안에 보옥을 감추고 있는 老子나 버림받은 돌작밭에
묻힌 보물단지 같은 예수가 이 시대에 온다면 그이들의 말에 관심을 가질 자
몇이나 될까?
불로장생 중생부활 해탈성불 우화등선도 이 참[나]가 없으면 쓸모없는 것들에
불과하나니 양심의 조화에 불과한 것인 까닭이다.
각자의 양심이 곧 영원(영생)이요 무한이요 진리요 儒 彿 仙 聖 天인 줄 아는
이가 어디메 있을까?
천국을 얻으려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종교집단에 헌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장관 국회의원 한자리 하기위해 수억대를 아끼지 않는 이들도 있는데
돈 한 푼 없이 천국을 , 우주정부의 대통령들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구나!!
아!아! 슬프다. 아프다
[나]를 찾는 이, [나]를 알고자 하는 이, 양심으로 자기 육체의 [나]를 이기고자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없으니!!
-한 수레의 금은보화보다 道를 - 壬辰年 立秋節 无匱
二.원죄(原罪)에 대한 바른 이해
http://blog.daum.net/mugue/18320522
-어느 목사님께 보낸 mugue의 편지
http://blog.daum.net/mugue/18320520내용 중에서-
前略 ~ 천지 만물 중에 하나님의 영(양심)으로 나음을
입은 천사의 영(마음)과 사람의 영(양심)을 하나님의
자녀라 칭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몸이나 우리 몸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같은
물질임도 알았습니다.
천사나 인간은 하나님의 영으로 낳으신 영적인 존재가
그 본질이요 실체이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며
원수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 자도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성령의 율법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사람과 천사가 본래 하나님께(인간 부모가 아닌)
타고난 영이 양심의 율법입니다.
성령(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영=성자 예수님의 마음=
=보혜사 성령님의 영으로서의)은 완전히 장성한 양심이요
(인간의 타고난) 양심은 아직 어린 성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불어 넣으셨다는 생기가 바로 이 양심의 율법(사람의 영)이
아닐른지요?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자기들의 양심의 십계를 깨뜨리는 죄를
법한 결과가 선악과를 따 먹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아담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영적 사건이 아담의 속마음
안에서 먼저 행해진 것입니다.
‘원죄(原罪)란 아담의 양심(영)이 하나님의 성령의 십계명(天心)
따르기를 거부하고 사단의 영(죄의 율법)을 선택한 아담의 마음속
범죄를 가리키는 용어도 아니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육체적
범죄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도 아니다.‘고 로마서를 통해 보혜사께서
제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원죄란 행위가 아닌 하나의 인격’이라는 목사님 말씀같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지구세계와 아담이 낳은 온 인류의 육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사단의 영이라고 로마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죄가 아담의 모든 후손(예수님의 육체까지 포함한)에게 있다는 말과
모든 사람이 원죄를 범했다는 말은 전혀 그 의미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낳으신 아담의 후손들의 영과 혼의 영역은
原罪(사단의 영)의 지배하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땅의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육체, 아담과 인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람의 몸 안에서만 원죄가 주인노릇을 할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대부분의 백성들(99.999... %)이 罪人이 아닌
까닭은 그들 양심이 하나님의 성령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녹, 욥, 엘리야, 다니엘, 사르밧 과부, 나아만 등 구약시대의
인물들이 의롭게 살아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도 그들이 (타고난)양심을 더럽히지 않고 순전하고 정직한
삶을 산 까닭이었습니다.
동서양의 성인과 현인들이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하늘을
공경할 수 있었고 , 목사님과 길수의 할아버님들이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후를 막론하고 선하고 순박한 삶을 살고,
경천애인의 십계명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도 하나님이 직접
낳으신 양심을 굳게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율법과 복음에 대해~ 下略 20120201 내 육체 안에 거居하는 罪(로마서 7장 20절)http://blog.daum.net/mugue/18320475前略 ~우리들 안에 있는 본래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괴물(악마)같은 '나'가바로 罪입니다.(로마서7장 17절~18절) 이 우주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인 악마(옛 뱀龍)가 바로 우리 몸안에
또아리를틀고 있답니다.
'나'와 똑같은 모습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서.
이 괴물악마罪인 자기 자신을 이기고 다스리고 있는 자가 이긴 자들(계시록)입니다.
원죄론은 기독교(카톨릭과 개신교) 교리의 핵심이요 토대에 해당합니다.
잘못된 이신칭의 교리나 예정론 교리가 기초인 기독교의 원죄론 위에 세워진집들입니다.
어거스틴과 루터와 칼빈이 로마서의 원죄와 예정과 믿음으로 말미임은 의를잘못 이해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성서의 진리라 거짓말 친 것입니다.
신학자들이 원죄론이 성서의 가르침이라 근거로 내세우는 대표적 구절이
로마서 5장 12절, 3장 23절입니다.
로마서(十字架의 福音) 번역(飜譯)상의 쟁점(爭點)들과 무궤역주(譯註)
http://blog.daum.net/mugue/15409523
제일(第一). 3장 23절 (그리고 3장 10절)
ㅇ. 개역(改譯)성서(聖書) 번역문(飜譯文)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罪)를 범(犯)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3장 10절 의인(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기록한바)
ㅇ. 헬라어 (The Greek) 원문(原文)
3장 23절 παντεs γαρ ημαρτον και υστερου νται τηs δοξηs του θεου
3장 10절 καθωs γεγραπται οτι ουκ εστιν δικαιοs ουδε ειs
ㅇ. 무궤 역주(譯註)
1. 3장 23절
γαρ(차별이 없는 의(義)에 대한 보충설명)
죄(罪)아래 있다고 율법(律法)에 의해 고발(告發)된 모든 사람들(유대 인에서 헬라인에 이르기까지)은
죄(罪)를 지었고 (율법으로도) 하나님 의 영광(榮光)을 얻지 못하더니
For all under the curse of the law sinned and have fallen short of the glory of God.
註1) παντεs만을 떼어내서 모든 사람 모든 인류(人類)를 죄인(罪人)이라고 교리화(敎理化)한
기독교(基督敎)의 모든 가르침은 성서(聖書)의 가르침이 아니다. 로마서 전체(全體)를 하나의 복음(福音)으로
완벽(完璧)하게 연결(連結)해주는 γαρ라는 이 접속사(接續詞)와 같이 παντεs를 해석(解釋)해야한다.
전(全)문장을 쇠사슬처럼 연결(連結)해주는 이 고리 γαρ는 영어(英語)에서는 접속사(接續詞) For로
번역(飜譯)되는데 그 의미(意味)는 Seeing that, Being that (앞에서 말한 사실이 존재하고 그 사실을
알고있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proof, explanation(앞 내용을 증명하거나 보충설명)한다는 것이다.
註2) ημαρτον και υστερουνται 율법(律法)에 의해 죄인(罪人)이라고 고발(告發)당한 이 모든 사람들은
죄(罪)를 범(犯)했고(부정과거시제) 그 결과(結果)로 현재(現在)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부족(不足)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내용(內容)속에는 죄인(罪人)들도 죄(罪)를 짓기 전(前)까지는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意味)가 포함(包含)되어 있다.
참조 ref.) 롬7장9절 전(前)에 법(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계속(繼續) 살아있었더니(미완료시제).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인간은 죄인(罪人)이라는 교리(敎理)와 죄(罪)를 짓기 전(前)까지는 모든 인간(人間)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가지고 있어 율법(律法)에 의해 의인(義人)이라고 인정(認定)받는다는
이 성서(聖書)의 가르침을 비교(比較)해 보라.
2. 3장 10절
죄인(罪人)을 고발(告發)하는 다윗이 시편에 죄인(罪人)들을 고발 (告發)하여 놓은 아래와 같은
고소문(告訴文)과 같은 고발(告發)을 이미 한 것입니다.
‘ 죄인(罪人)으로 고발(告發)당한 자 중에는 의인(義人)이 단 한 명 도 섞여있지 않습니다.’
as it is written : " None (who has been under the power of Sin) is righteous. no, (of them) not one;
註1) καθωs는 영어의 as, just as의 의미(意味)를 가진 부사(副詞), 접속사(接續詞)이다. 따라서 3장 10절 이하
(以下)의 구약성서(舊約聖書) 인용(引用)구절들은 이미 한 고발(9절의 προητιασαμεθα)과 꼭 같은
내용(內容)이다. 그러므로 9절 내용(內容)과 같은 의미(意味)로 10절도 해석(解釋)해야지
3장 10절만 따로 떼어내서 그 한 문장(文章)으로 복음(福音)의 진리(眞理)를 대신(代身)하는 데
큰 문제(問題)가 있다.
3. 3장 9절의 무궤 역(譯)
γαρ(모든 면에서 낫게 대우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충설명)
죄(罪)의 지배(支配)하에 있는 모든 이들(유대인으로부터 헬라인까지 -당연히 우리 그리스도인
자신들도 포함한)을 우리 스스로 이미 (1-2장에서) 고발(告發)했습니다.
Then is what we shall say that we, real Jews, have any better than the false Jews physically ?
No, not at all : For I already accused all men under the power of Sin.
제이(第二). 5장 12절
ㅇ. 현(現) 성경(聖經) 번역문(飜譯文)
5장 12절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罪)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罪)로 말미암아 사망(死亡)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었으므로 사망(死亡)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Δια τουτο ωσπερ δι ενοs ανθρωπου η αμαρτια ειs τον κοσμον εισηλθεν και δια τηs αμαρτιαs
ο θανατοs και ουτωs ανθρωπουs ο θαναθοs διηλθεν εφ ω παντεs ημαρτον.
ㅇ. 무궤 역주(譯註)
Δια τουτο(믿음의 율법=그리스도의 영(靈)을 가진 이들에게 죄(罪)사함, 의인(義人)으로 만드심,
하나님과 화목(和睦), 왕권(王權),심판(審判)에서의 구원(救援), 영광(榮光)얻을 소망(所望),
화목(和睦) 직분(職分) 이 모든 은혜(恩惠)를 주시기 위해)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罪)가 이 지구(地球)세계(世界)안으로 (단번에) 들어왔고 죄(罪)에 의해
사망(死亡)이 들어왔던 것처럼 그와 똑 같은 방법(方法)으로(아담에게 일어난 똑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고 (믿음의 율법을 버리고 ) 죄(罪)에게 순종(順從)한 (죄(罪)의 율법을 취한)
아담의 본(本)을 좇은 모든 사람에게 사망(死亡)이 들어왔습니다.= 믿음의 율법을 버리고 죄(罪)의 율법을
택(擇)한 아담을 본(本)받은 자들에게 사망(死亡)에 속(屬)한 모든 것이 주어지도록 허용(許容)하셨던
까닭은 믿음의 율법(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그리스도를 본(本)받은 자들에게 은혜(恩惠=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시려는 계획(計劃)을 세워놓으셨기 때문입니다.
In order that God gives us all these blessings He allowed that ~so Death spread to those
who sinned in imitation of him(Adam).
註1) 아담 한사람이 모든 인류(人類)를 대표(代表)한 신분(身分)으로 죄(罪)를 지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後孫)인 전(全) 인류(人類)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은 것이다라는 소위(所謂) 원죄교리(原罪敎理)를
가르치기 위해 인용(引用)하는 성서구절이다.
원문(原文)의 παντεs(=all)는 3장 23절에서나 그 밖의 다른 구절(句節)에서처럼 따로 떼어내어 해석(解釋)하게 되면
로마서의 고리는 끊어지고 만다. εφ ω παντεs가 의미(意味)하는 바는 인류(人類)전체(全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아담의 본(本)을 받아 죄(罪)를 범(犯)하고 죄(罪)를 섬기기로 택(擇)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解釋)되어져야한다. εφ(επι)는 전치사(前置詞)로 on, with, after(눅1:59)의 의미(意味)이고 ω는 관계대명사
(關係代名詞)로 아담을 가리키는 ενοs ανθρωπου를 선행사(先行詞)로 한다고 본다.
註2) 개역본(改譯本)성서(聖書)번역(飜譯) 5장15절의 많은 사람, 18절의 많은 사람, 19절의 많은 사람은
παντεs가 모든 인류(人類)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 해준다.
註3) 12절 후반부(後半部)의 모든 사람에게 사망(死亡)이 이르렀다는 이 내용(內容)으로 사람은 다 죽는다는
현실(現實)의 경험(經驗)을 거꾸로 그 증거(證據)로 사용하여 사람들이 다 죽는 것을 보니까 모든 사람은
죄(罪)를 지은 것이 틀림없다고 소위(所謂) 원죄교리(原罪敎理)가 성서(聖書)의 가르침이라고
주장(主張)하는 이가 있을 수 있는데, 성서(聖書)에는 죄(罪)를 짓지 않고도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의인(義人)들이
그리스도를 필두(筆頭)로 소개되어 있고 죽음을 보지 않고 지금도 생존(生存)해 있는 에녹, 엘리야, 멜기세덱 등(等)이 있음을 교리(敎理)를 주장(主張)하기 위해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쟁점(爭點)은 복음(福音)이 문제(問題)삼는 인간(人間)은 육체(肉體)로서의 인간이 아니고
영혼(靈魂)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 역시도 육체(肉體)의 죽음 안에 감추어진
성자(聖子)신분(身分)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이 복음(福音)의 기초(基礎)로써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의 ο θαναθοs가 생명체(生命體)의 죽음이 아닌 기계화(機械化=선악과)된 상태(狀態)로의
변화(變化)를 가리키는 단어(單語)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ο θαναθοs에 의해 부서진 생명체(生命體)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註4) 지구(地球)전체(全體)와 그리스도를 포함한 아담의 후손 전부(全部)의 육체(肉體)가
죄(罪)의 지배(支配)하에 들어가도록 허용(許容)하셨던 천(天)의 오묘(奧妙)한 섭리(攝理) 계획(計劃)은
Δια τουτο에 함축(含蓄)되어 있는 천(天)의 최고(最高)의 영광(榮光)을 선물(膳物)로 주시기 위한
계획(計劃)이셨음이 드러나 있다.
註5) Δια τουτο에 함축(含蓄)된 의미(意味)는 죄인(罪人)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唯一)의 길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를 얻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인(義人=율법)이 천(天)의 장성(長成)하신 분량(分量)=완전(完全)하심에 이르는 오직 한 길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에 나타난 이 의(義)를 얻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구절(句節)은 롬10장 4절 그리스도는 율법(律法)의 마침
13장10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完成)이니라 이다.
註6) 만일 아담의 자손(子孫)으로 태어난 것이 원죄(原罪)라면 그리스도 역시 죄(罪)있는 몸으로
태어나셨으므로 원죄(原罪)를 소유(所有)하신 것이 된다.(롬8장3절 죄(罪)있는 육신(肉身)안에...)
이런 견지(見地)에서 보면 죄(罪)의 지배(支配)아래 있다는 말과 죄(罪)를 행(行)했다는 말은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罪)와 사망(死亡)의 지배(支配)아래 스스로 들어가셨지만
죄(罪)를 짓지 아니한 의인(義人)이셨다.(=기계로(사망으로) 행하지 아니하셨다.
=선악과를 만들어 내지 아니하셨다.) 죄(罪)의 지배하(支配下)에 있는 육신(肉身)을 입고 태어난
아담의 자손(子孫) 대부분(大部分)도 - 그리고 자연(自然)만물(萬物)도- 무고(無故)한 즉 죄(罪)를 짓지
아니한 선량(善良)한 백성(百姓)으로 생(生)을 살다가 죽었다고 성서(聖書)는 가르친다.(롬8장)
흰옷 입은 허다(許多)한 무리들, 헤롯에 의해 학살(虐殺)된 아이들, 사가랴와 엘리사벳,
안나와 시므온 등등(等等).
종교 제도로서의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은 원죄原罪교리입니다.
교리敎理란 그 종교의 원칙原理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신구약성경은 그 원칙인 십계명을 펼쳐놓은 것입니다.
罪란 이 십계명의 원칙을 깨뜨린 것을 말합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십계명의 원칙과 영원히 조화될 수 없는
원칙善惡律法이 罪입니다.
현 기독교가 原罪를 그들 교리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곧 하늘의 생명 십계명이 아닌 마왕의 선악십계명 위에 그들
교회를 새우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下略
癸巳年 芒種節 전북 순창에서 金吉守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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