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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
― 최정희 소설집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
일시: 2024. 10. 26.
장소: 가포 바닷가 ‘우주슈퍼’
진행: 이응인, 김지영, 노민영
주관: 경남작가회의 문학교류위원회
반갑습니다. 저는 경남작가회의, 시를 쓰고 있는 이응인이라고 합니다. 오늘 함께 진행할 김지영 시인을 소개합니다.
반갑습니다. 낭독하는 시인 김지영입니다.
저희는 이제 좀 편하게 앉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인데요. <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를 한마디로 소개하면 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곳 가포 바닷가 갯내 가득한 숲 ‘우주슈퍼’에 작가를 초대하여, 작가의 이야기도 듣고 궁금한 것도 묻고 낭독의 즐거움도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만남은 1, 2부로 펼쳐집니다. 1부는 최정희 작가와 함께 초대 작가 이야기를 듣는 자리입니다. 2부는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한마디씩 나누는 자리입니다.
[작가 소개]
먼저 작가 소개를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주인공은 최정희 작가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정희 작가는 단편 「사봉」으로 2013년 한국소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2017년 4월에 첫 소설집 『사봉』을 발간했고, 오늘 만나는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는 지난해 11월에 발간한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소설 낭독]
시작하면서 먼저 소설 낭독을 하겠습니다. 오늘 참석하시는 분들께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를 미리 읽고 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요. 그렇지 못하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 맨 앞에 실려 있는 「능소화 필 때」의 일부를 김지영 시인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중략…)
[초대 작가 이야기]
이제 초대 작가 이야기를 듣는 순서입니다. 최정희 작가께서 소설집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와 관련해서 작품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풀어주시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소설가가 되어보겠다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제 어릴 때 별명이 소설가 최정희였습니다. 어릴 때 저희 집에 한국문학전집이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최정희 소설가가 저하고 이름이 한자도 똑같고, 태어난 날도 저하고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얼굴까지 닮았었거든요. 그래서 언니들이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최정희 작가하고 너무 많이 닮았다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 최정희 소설가라고 그렇게 집안에서는 저를 불렀거든요.
여기서 앉아 계신 분들은 좀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최정희 소설가는 시인이신 김동환의 부인이었거든요. 김동환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 시인인데, 「북청 물장수」, 「산 너머 남촌에는」, 「국경의 밤」 이런 시를 쓰신 분이고 최정희 소설가는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지원, 김채원 소설가의 어머니이시거든요. 그리고 2014년 7월에, 이상(李箱)이 최정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연서가 공개되었어요. 최정희의 둘째 딸인 소설가 김채원 씨가 고인의 유고 편지 300여 편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해요. 암튼 이분하고 저하고 이렇게 알게 모르게 인연이 좀 많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 대학 은사님이 소설가 김동리 씨의 친조카였어요. 제가 대학에 들어가니까 은사님이 저보고 ‘최정희 소설가하고 많이 닮았다, 이름이 한자도 똑같다.’ 이래서 그때도 은사님이 제 별명을 소설가 최정희라고 그렇게 붙여서 저는 대학 다닐 때도 그냥 소설가 최정희가 되어 버렸어요. 그때까지도 저는 전혀 소설가가 되어보겠다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아주 순종적인 성격인줄 알았는데
그러고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불행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그런 얼굴 표정이라고 말을 많이 하셨는데, 사실 저는 어릴 때는 별로 불행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결혼과 동시에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거든요.
사실 고통을 수반하지 않으면 영원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소설을 쓰면서 고통(과거 결혼생활의 고통)도 많이 경험했는데, 그런 뼈를 깎는 고통이 없었더라면 저는 감히 소설가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소설을 쓰면서 그 고통이 독이 아니라 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거든요. 제 인생을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하자면 소설을 시작하기 전의 인생과 소설을 시작한 후 인생으로 나눌 수 있어요.
저는 자신이 좀 보수적인 그런 성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제 고향이 부산인데 부산에서도 동래구에 아주 시골이었어요. 그게 아무튼 촌동네였거든요. 그러니까 부산에 살면서 그런 곳이 있느냐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지만, 삭녕 최씨, 좀 희귀한 성이거든요. 최씨는 희귀하지 않지만 삭녕 최씨라고 14대째 아직도 거기 살고 있어요. 최씨 집성촌인데 씨족 사회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대가족 제도에서 살았는데 밖에 나가면 전부 친인척이에요. 어릴 때부터 밖에 나가기만 하면 전부 스승이거든요. 항상 예절 범절 그런 걸 환경에 의해서 교육받으며 살아왔는데, 결혼하고 불행을 경험하면서 제 성격이 그러니까 숨어 있는 본성은 좀 개혁적인 그런 성향이더라고요.
저는 아주 내성적이고 순종적이고 그런 성격인 줄 알았는데, 결혼해서 너무나 불행한 고통이 시작되니까 이 분노가 참다 참다 보니까 나중에는 막 폭발력을 행사하게 되더라고요. 내 성격이 안 이랬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결혼하기 전에 제가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 어떤 절호의 기회가 있었어요. 근데 결혼함으로써 그게 좌절되고 그런 이유로 제가 눈물을 많이 흘린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저의 내밀한 곳에는 소설가라는 그 직업이 저한테 성향이 맞는 것 같아요. 대학교수보다는….
삶이란, 인간이란
그러니까 소설이라는 것은 1 플러스 1은 딱 2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1 플러스 1은 1이 될 수도 있고 2가 될 수도 있고 3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학자라는 것은 1 플러스 1은 딱 2로 떨어져야 하는 그런 직업이더라고요. 자기의 어떤 지식 같은 거를 어떤 진리 같은 거를 이게 정답이라고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주지시키는 그런 직업이더라고요. 제 성향이 숨은 어떤 그 내밀한 곳에는 자유롭고 별로 보수적이지도 않고 그런 성격인데 학문하고는 안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참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지금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40대 후반에 좀 늦게 소설을 시작했지요. 그전에는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그때부터는 내가 소설을 써야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40대 후반에 첫 소설을 적었어요. 그러니까 좀 늦게 시작했고, 소설을 쓴 기간이 좀 짧았죠. 근데 그땐 정말 저는 올인을 했고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등단을 하고 지금까지 왔는데 제 성향하고 딱 맞아떨어지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소설을 기본적으로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제 화두는 언제나 이 두 가지였거든요. 이번 소설집에도 이 삶과 인간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는 그런 형태로 좀 구성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고 독자에게 질문해 보는 거 있잖아요. 소설이라는 것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질문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학자는 정답을 제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에게 질문을 하고 독자가 스스로 그 정답을 찾아가는 식으로 소설을 적었습니다.
신월, 알 수 없는 모호함
이번에 저 소설집 제목을 ‘신월’이라고 한 이유는 우리의 삶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모호하잖아요. 흐릿하고 알 수 없잖아요, 미래를. 신월이란 용어는, 새달이 시작되면 며칠간 좀 흐릿하잖아요. 거기에 빗대어 우리 인간의 삶도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 찬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 때문에 ‘신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번 작품집에는 5편의 단편과 중편 한 편이 실려 있어요. 읽고 오신 분도 있지만 안 읽고 오신 분도 계시기 때문에 조금 소개하자면, 맨 앞에 실린 「능소화 필 때」는 죽음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거거든요. 제가 중학교 도서관 사서로 근무할 때, 그 학교는 지역 주민들한테 오픈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수업을 마치고 한 오후 서너 시 되면 주민들이 그 학교에 와서 운동도 하고 쉬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노인 한 분이 등나무 아래 의자에 누워가지고 너무 아픈 모습을 하면서 힘없이 계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운동장 둘레길을 터덜터덜거리면서 걷는데,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다른 사람들은 씩씩하게 걸어오면 비켜 주고 쉬다가 걷고 그런 노인을 한 번 발견한 적이 있었어요. 그 노인을 보고는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도대체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이 소설을 써야 되겠다 싶어 형상화한 작품이지요.
두 번째,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는 앞에 「능소화 필 때」의 제2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으로 안락사에 관한 작품인데, 이 주인공 남자가 안락사의 조력자로 일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잖아요. 근데 스위스는 안락사가 합법적인데, 이 주인공 남자가 안락사의 조력자 역할을 해서 스위스까지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지요. 그 과정을 돈을 받고 하는 직업인데, 이건 불법이니까 인터넷에서 몰래 하고 있지요. 이렇게 안락사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인물을 통해서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거든요.
세 번째가 「신월―다른 이야기」인데, 처음 발표할 때는 제목이 그냥 「신월」이었어요.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는 처음 발표할 때는 그냥 「다시 환상을 꿈꾸다」였어요. 그런데 「다시 환상을 꿈꾸다」를 소설집 표제로 사용하기에는 좀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제목을 바꾸었어요. 본래 「신월」은 「신월―다른 이야기」로 바꾸고요.
이 작품은 제가 아는 지인의 친구 이야기인데, 남편이 엘리트인데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았어요. 돈도 안 벌고 모아 놓은 재산을 있는 대로 다 까먹고 나중에 집도 팔고 단칸방에 이사를 가게 됐어요. 돈을 다 쓰고 그 여자분의 친정에서 돈을 좀 얻어 생활하고 있다가, 도저히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끊어버리고 살다가, 이제 밥을 굶어야 하는 그런 상황까지 와 여자가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죠.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식당 일을 해 가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는데, 남편은 전혀 직업을 구할 생각도 안 하고 늦게 들어오면 잔소리도 하고 손찌검까지 하는 그런 얘길 들으면서, 지인이 너무 화가 나 ‘왜 이혼을 안 하고 그렇게 사느냐?’ 그러니까 그분이 천주교 집안인데, 천주교에서는 절대 이혼을 하면 안 된다 그래요. 이혼을 하는 건 자기 종교를 버리는 행위하고 똑같다고 이혼 안 하고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충격을 받았는데 이게 또 소설이 되겠다 싶어서 형상화한 작품이 「신월―다른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 「반짝이는 동전」은, 어느 날 큰언니랑 엄마 집에 갔는데 그때 동네에서 데모를 하는 거를 목격을 했거든요. 옛날에 거기가 제가 살던 안락동 호선 마을인데, 그 안락동의 안락서원 지금 충렬사죠. 충렬사 바로 옆에 안락서원인데, 서원 바로 옆에 호선 마을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 군인 관사가 있는데 굉장히 오래되었어요. 그걸 허물고 임대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자 주민들이 막 나와서 데모를 하는 겁니다. 우리 숙모님도 있고 우리 육촌 오빠도 있고 머리띠를 해서 임대 아파트 들어오는 걸 반대하더라고요. 숙모님도 오빠도 참 착한 분인데, 엄마와 언니랑 나랑은 ‘저러면 안 되는데, 더불어 살아가야 되는데, 왜 저럴까?’ 하면서, 인간의 선과 악의 어떤 경계, 구분에 대해서 소설을 한번 쓰고 싶더라고요.
다섯 번째, 「바라춤」은 부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소설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옛날에 민간인 학살에 희생될 뻔했거든요. 아버지의 대학 은사님이 사회주의자였는데, 학생들 몇 명이 막 벽보 붙이러 다니고 그렇게 하신 적이 있었던가 봐요. 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하고 안락동 바로 옆에 해운대 장산 밑 반여동 미군 부대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거기서 근무하고 있을 때 6·25 전쟁이 터지고 누가 밀고를 했던가 봐요. 그때 아버지가 잘못했으면 잡힐 뻔했는데 피해서 몇 개월 동안 엄마가 너무 고생을 하신 적이 있었대요. 내가 추석에 가니까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보도연맹이랄까 그런 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었는데, 만약에 잡혀갔으면 죽었겠지요. 그때 아버지 육촌 형님, 사촌 형님도 어디 단체에 가입한 적이 없었는데 잡혀가 죽임을 당했거든요.
그다음 여섯 번째는 「구름바다, 모래성」인데, 이 작품은 2017년 한국소설에 발표하고 가장 독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진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이 문학성에 뛰어난 것도 아닌데 연락이 참 많이 왔어요. ‘고향이 해운대냐? 어떻게 이렇게 취재를 했느냐?’ 그러면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해운대 토박이가 아니고 저희 고모 집 이야기예요. 고모부 집이 해운대 토박이었는데, 해운대 바닷가하고 해운대 시장 그 땅이 대부분 고모부 집 땅이었거든요. 근데 고모부가 술만 먹으면 필름이 끊어져 사기꾼한테 당해서 도장 찍어줘서 재산을 많이 탕진해 고모님이 굉장히 화가 났지요. 하여튼 평생 재판을 했다고 하거든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는데 그때 해운대 바닷가가 물이 넘쳐, 저희 집에 와서 고모님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너무 재미있게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기억이 어릴 때부터 뇌리에 남아 제가 그 소설을 적어야 되겠다 싶어서, 해운대 전설인 거북이와 인어공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대입시켜서 썼어요.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구체적인 질문을 또 하나하나 받겠습니다.
[대담]
다음은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문] 먼저 「능소화 필 때」에서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노인을 그리고 있는데요. 나이 들면서 외롭고, 병들어서 고통스럽고, 이런 어려움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는데, 「능소화 필 때」는 늙어간다는 것,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마지막 문단에서 백일홍 꽃잎, 능소화, 햇빛을 통해 황홀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늙어간다는 것’,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 저는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죽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죽음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도 생각하게 되고, 삶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죽음이 있음으로써 삶이 더 흥미진진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죽음은 또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나이가 되었어요. 요즘은 어떻게 살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거든요. 웰빙보다는 웰다잉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나이가 육십이 넘으니, 삶에 대한 미련 같은 건 많이 없어졌거든요.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거 같아요. 주위 소설가들한테 전화를 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곡기를 끊어야 된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런 얘기도 했지요.
「능소화 필 때」에 나오는 노인은 건강도 안 좋은 구십 노인인데, 이 노인에겐 삶의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티브이에 나오는 말기암 환자를 보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보고는, 자기가 이 세상과 아름답게 작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런 이야기인데, 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아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면서 더 행복감에 젖어 들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런 데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 보니까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게 되었지요. 이 세상과 아름다운 작별로, 목을 매고 자살하는 과정을 마지막에 넣음으로써 행복감에 젖어 드는 무아경을 경험하는 그런 마지막 행동을 보면서 독자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고 할까요? 독자들이 ‘이러면 안 된다. 그래도 살아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잘 선택한 것이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독자 나름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정답을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써 봤지요.
[문] 다음은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먼 중세 시대의 기사와 공주가 되는 환상, 신부와 수녀가 되는 환상, 초라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갈망’,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꿈꾸는 환상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답]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는 좀 전에 얘기했듯이 「능소화 필 때」의 제2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삶과 죽음에 어떤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인데, 저는 살아가면서 고통스럽고 불행과 슬픔에 젖어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할까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환상을 꿈꾸거든요. 가상의 현실을 제 현재에 도입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행복한 공주가 되고 해서, 어떤 좋은 것만 생각하는, 그런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 상상을 함으로써 슬픔과 고통을 극복해 나가고 있거든요. 이 작품의 주인공 남자는 제가 살아온 것을 이 주인공한테 주지시킨 측면도 있고요. 이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기에 행복이란 걸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인물이에요. 참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막연한 환상도 없었다면 이 사람의 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슬플까? 위로의 제스츄어죠. 이걸 줌으로써 인생에 대해서 꿈꿀 수 있고, 그 환상을 하면서 자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위로의 제스츄어라고 할 수 있어요. 환상의 어떤 몽환적인 그런 기분에 젖어 밝음을 꿈꿀 수 있다는 거,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문] 이어서 「신월―다른 이야기」라는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까 합니다. 남편은 사업에 실패한 뒤로는 돈벌이를 일절 안 하고 있어요. 아내가 생계를 유지하는데, 거기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함, 이런 게 전혀 없어요. 그런데 등장인물을 ‘남편’과 ‘아내’가 아닌, ‘남편’과 ‘여자’로 명명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답] 참 예리하시네요. 저는 이 부분에 명명하는 걸 심각하게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남편의 종속적인 관계로 여자를 나타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내기 위해서 ‘아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싫더라고요. 의도적으로 ‘여자’라는 말을 썼거든요. 선생님이 그걸 캐치해 내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 「신월―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두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관계라는 게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서로 불편하고 어렵고 갑갑하고, 그러면서도 확 깰 수도 없고, 그런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 몇 군데 ‘신월’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신월은 ‘흐릿하게’ 표현되고 있어요. 왜 ‘신월(新月)’이라 말하고 있는가요?
[답]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 모호함을 ‘신월’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했지요. 인간의 삶이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 그걸 나타내기에 ‘신월’이란 단어가 적당할 것 같더라고요. ‘제목이 좋다, 참신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 「신월―다른 이야기」와 「구름바다, 모래성」에서 왜, 등장 인물들 사이에 별 소통이나 진전 없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결말인가 궁금해요? 「신월―다른 이야기」에서 ‘남편’은 자기 방식대로 생활하면서 빈둥대고, ‘여자’가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런 구도가 변화가 있을 듯 하면서 변화 없이 끝까지 갑니다. 「구름바다, 모래성」에서 ‘준서’와 ‘경아’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어린 시절 이웃으로 자란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가 둘 다 이혼을 한 상태입니다. 둘이 만나서 변화가 있을 듯 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그대로 헤어지거든요. 우리 삶이란 게 쉽게 뭔가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말이 현재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고 머무는데요.
[답] 저는 소설은 기본적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작가가 미리 나서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교통정리를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고 독자들이 판단을 하는 거라 생각해요. 작가가 개입해서 교통정리를 해 줘버리면 소설이 재미가 없거든요. 질문만 던지면 되는 거예요. 독자들이 읽고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면 되거든요. ‘아 나는 이렇게 이혼을 할 거다’, ‘나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편을 직업을 갖게 할 거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독자가 알아서 판단을 해라. 정답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질문만 던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끝을 모호하게 처리했고, 「구름바다, 모래성」에서 준서와 경아의 관계도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준서는 그때 경아를 붙들지 못하고 보낸 트라우마가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경아를 못 잡는 거예요. 경아도 그걸 아는 거죠. 경아도 이건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준서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걸 경아도 이해를 하는 거죠.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의 상징성처럼 경아도 준서를 보내 주고 각자 싱글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운명을 서로 알고 있는 거죠. 인어공주와 거북이의 전설에 의하듯이 그들도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잖아요. 거기에 빗대어 준서와 경아의 관계도 인어공주와 거북이처럼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거죠.
[문]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3년 등단한 이래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지금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뭘까 궁금합니다.
[답]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 나이가 드니까 모든 게 다운이 되잖아요. 건강도 다운이 되고, 기억력도 그렇고, 단어도 잊어버리고, 소설 쓰는 데 많이 달리는 것 같아요. 소재도 써먹을 걸 다 써먹었고, 자꾸 새로운 걸로 승부해야 되는데, 비슷비슷한 소설을 별로 쓰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새로운 해석, 새로움으로 승부해야 되는데 그런 소재도 불분명하고 하니까 제 나름대로 조금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괴감에 빠진 상태인데, 그런 와중에 독자들은 소설도 별로 안 읽고 외면하고 책도 안 팔리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소설을 계속 써야 되겠나 그런 생각을 한 번씩 해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가 소설 아니면 할 게 뭐가 있나?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냥 먹고 자고 놀고 아무 의미가 없는 거 아니에요. 소설이란 끈이 있기 때문에 내 삶의 의미,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거든요. 자괴감이 들고 잘 안 되지만 그래도 이거를 죽을 때까지 끌고 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게 파도처럼 왔다 갔다 굴곡이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이란 게 있기 때문에 이 삶이 풍부하고 행복하고 위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소설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 낭독]
고맙습니다. 대담은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소설을 한 편 더 낭독해 드릴까 합니다.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의 일부를 김지영 시인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생략…)
[참가자 질문]
1부 마지막 순서로 오늘 참석하신 분들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질문1] 최정희 작가님 작품을 통해서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진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없다. 영원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하셔서 예사롭지 않았어요. 최정희 작가님은 질문을 하는 게 그냥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반발심을 느끼게 해서, 작품 속의 주인공이나 작가의 세계관이 틀렸는지 맞는지를 본인이 고민한 다음에 독자가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죽음에 대해서 천착하고 있는데, 그 죽음에 대해서 미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죽음을 굉장히 두려워해요.
「신월―다른 이야기」에서 남편은 벌이를 안 하고 여자는 돈을 벌러 가면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으로 끝나는 장면에 있어서도 작가는 죽음도 두려움 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고, 삶도 그 자체로 정면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대해서 미화하거나 뭔가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치열한 부부의 세계에서 보듯,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로 하여금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 듣고 싶어요.
[답] 저는 잘 먹고 잘살고 좋은 집에 좋은 차, 그런 것에는 별 의미를 안 두고 살아가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도 돈 있고 이런 집이 아니라 가난한 집에 결혼을 했었고,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어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 이런 게 있었고. 결혼을 통해서 불행을 경험했지만, 그때는 글을 써야겠다 생각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 소설을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40대 후반에 시작했는데, 삶의 의미,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존재하는 이유, 삶의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의미’, 그런 데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소설이란 게 있기 때문에 삶의 활력소도 주고 의미를 많이 부여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소설을 쓰게 된 이유이지 않은가. 소설이 있기 때문에 저는 삶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할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질문2] 작가님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 심연, 그 문제를 만지고 계시는데, 어떤 생각에서 어떤 사상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나요?
[답] 저는 결혼과 동시에 불행을 경험함으로써 남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옛날에는 ‘그냥 안 됐다, 불쌍하다’ 그 정도였지 내 일처럼 그렇게 피부에 안 와 닿았거든요. 제가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타인의 슬픔이 내 슬픔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삶을 경험한 사람들의 아픔을 글로 나타내 봐야겠다는 그런 의미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질문3]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진리’는 무엇인가요?
[답] 저는 뭐라고 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막연한 상상 속에서의 진리거든요. ‘이거는 진리이니까 이렇게 믿어라.’, 제가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 자체가 모호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상상과 창의력에 의해서 형상화시키는 게 예술이라 생각해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제 생각이지 그게 진리라고 말할 순 없거든요. 소설이란 건 진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상력을 독자들한테 던져주고, 독자 스스로가 그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질문을 해 주신 분들, 성심껏 답변을 해 주신 최정희 작가님, 그리고 자리를 함께한 여러분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이것으로 <바닷가 우주에서 문학을 만나다> 그 두 번째 만남, 최정희 작가의 소설집 『신월―다시 환상을 꿈꾸다』와 함께한 시간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12월쯤에 세 번째 작가를 초대하여 여러분과 만날까 합니다. 안전운전 하시고, 멋진 나날들 보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부, ‘자유로운 문학 수다’에서 나눈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사진 설명>
1) 우주슈퍼(최정1)
2) 최정희 소설가(최정2)
3) 왼쪽부터, 이응인 최정희 김지영(최정3)
4) 참가자들 한 마디씩(최정4)
5) 참가자 기념촬영(최정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