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태복음 22:32
상동교회. 정동교회. 삼청동교회
心生後身生也. 陽明曰心活物也. 常常運動于軀殼之中, 現之事物之中也. 故務外忘內者非生命也, 知人忘己者亦非生命也. 利在處心好故, 主曰汝勿藏寶于地, 藏于天上則汝心在天上. 捐一円金有一円之生命, 無生不能捐金故也. 人若聞人之言, 心存則言入, 心不存則言不入, 假令置一金于卓上, 則鳥過之而不覺, 獸過之而亦不覺者何也? 獸生不及于人之生故也. 時間及活力皆生命也, 彼野蠻人不知此時間及活力之貴, 而特偉人貴之而用之者, 以其生命之異于彼故也. 人建物一屋而寂然不動者無生命故也. 在前見之則生, 在後見之則死, 僉位在此講道, 或聽講有生命故也. 聞道不覺無生命故也. 草勝于石有生故也, 馬勝于大樹以此故也. 兒牽大牛有生故也. 聖餐洗禮祈禱等以生命行之則有益矣. 無生命則無益矣. 故保羅曰獻活祭, 然信者之生以主血而生也, 無血不能生. 以生理學足以爲證也. 信無血則死, 寶血充滿我之內則有活信, 萬金雖大, 不如我之一息, 萬石雖多又不如我之一呼, 學博士雖榮又不如我之一吸也. 故主曰天下雖大不如我之生命, 一息之貴天下皆同, 椿八百歲也, 蜉蝣一日生也. 然以生之貴視之則皆一也. 生在于我內不在外, 故務外忘內者死, 無生命也. 我之生光于何處何時也? 卽此處此時也. 不特擇地擇時也. 吾等禮拜時卽此時也. 故主曰人之得救今卽其時也. 不必待他日. 又曰一日之苦, 足于其日也. 當務盡當日之事, 以此漸進, 則我之生順理漸大矣, 逆理能生者無一人矣. 比如無空氣不能生者矣. 無眞理不能生矣.
마음이 생긴 이후에 몸이 생깁니다. 중국 명나라의 학자 왕양명[陽明]은 ‘마음은 본래 살아 있는 물질이다’(心活物也)라고 하였습니다.몸 가운데서 운동을 하고 사물의 가운데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밖을 힘쓰고 안을 잊는 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남은 알면서 자기를 모르는 자도 역시 생명이 아닙니다. 이로움이 있는 곳을 마음이 좋아하는 고로 주께서 ‘너는 보물을 땅에 두지 말고, 보화가 하늘에 있으면 네 마음도 그곳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엔(円)의 돈을 드리면 1엔의 생명이 있게 되며, 생명이 없으면 돈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 있은즉 그 이야기가 들어오고, 마음이 없으면 말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령 금덩이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아두었을 때, 새가 지나가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짐승이 지나가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짐승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활력은 다 생명입니다. 저 야만인은 시간과 활력의 귀중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특별히 위인(偉人)이 귀중하게 생각하여 이용하는 것은 그 생명이 저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 채의 집을 지어놓고 조용히 들어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보면 살아 있지만 뒤에서 보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강도(講道)하는데 있으면서, 강도를 듣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도를 들으면서도 무엇을 말하는지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풀이 돌보다 나은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이고, 말이 큰 나무보다 나은 것도 생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큰 소를 끌고 가는 것도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찬과 세례, 기도 등은 생명을 가지고 행하는 것인 즉 유익합니다. 생명이 없은즉 무익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생명은 주님의 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피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이는 생리학으로 족히 증명이 됩니다. 믿음은 피가 없으면 죽습니다. 보혈이 내 속에 충만하게 있으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만금(萬金)이 비록 많더라도 나의 한 번 숨 쉬는 것만 같지 못하고, 만 섬[萬石]이 비록 많더라도 나의 한번 내쉬는 숨만 못하고, 학문에 박사가 비록 영광스럽더라도 나의 한번 들이 쉬는 숨만 못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천지가 아무리 크다 해도 나의 생명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한번 숨 쉬는 귀중함은 천하가 다 똑 같습니다.
대춘[椿]이라는 나무는 팔백 년을 살고, 하루살이는 하루만 삽니다. 그러나 생명의 귀중함을 가지고 볼 것 같으면 다 한 가지입니다. 생명은 내 안에 있고 밖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밖을 꾸미기 힘쓰고 마음속을 잊어버리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은 언제 어디에서 빛이 납니까? 바로 이곳 이 시간에 있으니, 특별히 장소를 가리거나 때를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바로 지금이 그때이고 다른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당일의 일을 힘써 다하고 이렇게 나아가면 우리의 삶은 순리대로 점차 커질 것입니다. 이치를 거스르고 살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유하건대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