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주 앞에는 개성이 없다 / 마태복음 16:24
우리 교회에서는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합니다. 신앙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도 자녀의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도 국민들의 신앙의 자유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서는 개성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사람,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각각의 고유한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이런 차이는 모두 녹아내립니다. 오직 주님만이 드러납니다. 주님 안에서는 구주의 사람, 아시아의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대통령이나 장관, 박사, 학자 등의 지위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어느 박람회 입구에 예수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문을 통해 황제와 총리, 모든 백성들이 드나들었는데 모두가 경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자신의 피를 흘려 인류의 죄를 대신한 것입니다. 이 사랑 앞에서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감리사가 지역 교회들을 순회하며 목사님들의 성격을 물어보면, 대개 개성을 버리지 못해 교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양반인 척, 또 다른 교회에서는 학자인 척, 젊은이인 척 하는 등 자신을 내세워 시골 교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체'로 인한 문제입니다. 무엇이든 '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장로인 체, 목사인 체, 신실한 체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체'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렀던 이유는, 디모데가 문학적 재능과 지식이 풍부했지만 이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며 전심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학자나 박사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전도자들도 이와 같이 디모데의 이름으로 불리길 바랍니다.
내가 어느 지방에 감리사의 일을 수행할 때, 그 교회에 분쟁이 있어 목사님과 상담했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묻는 것은 토지 값과 쌀 값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목사님께서 가르치지 않아도 교인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목사님께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에만 힘쓰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경제 문제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과 자녀, 재물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것, 임금의 것이라 여기고 전심으로 나라를 섬기는 사람을 충신이자 효자로 칭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