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카키 호수와 마운트 쿡

[바보온달]

오늘은 마운트 쿡(Mount Cook) 트래킹을 가는 날이다. 마운트 쿡은 마오리 지명으로는 아오라키(Aoraki)라고 하는데 퀸즈타운에서 마운트 쿡까지는 버스로 대략 네 시간 걸린단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금 이른 8시에 버스에 오른다.

 

한 시간 여를 달려 버스가 멈춘 곳은 과일 산지로 유명한 크롬웰(Cromwell) 마을이다. 퀸즈타운과 크라이스트처치를 연결하는 국도 6호선 변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마을 중심에 세워진 “자이언트 푸르트(Giant Fruit)”가 상징하는 것처럼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일교차를 바탕으로 사과, 키위, 살구, 체리 등 과일의 산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과수원은 넓고 많은데 인구가 많지 않은 이 마을에서 과일을 어떻게 수확하느냐?”는 질문에 수확 철엔 마을에서 이웃나라인 통가나 피지 등과 협조해 인부들을 데려와 수확하는데 한철 수확하러 온 인부들의 수입이 본국에서의 2년치 수입이 넘어 매우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옛 우리 신작로에 서 있던 높게 자란 미루나무가 가로수인 국도변에는 과일상점이 있어 신선한 과일을 시식할 수도 있고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과일상점 내에는 신선한 과일 뿐만 아니라 말린 과일도 팔고 있다. 이곳에서 간식으로 먹을 사과와 키위, 그리고 말린 생강 과자를 산다.

 

 

과일상점 옆 정원에는 장미를 비롯한 갖가지 꽃들을 예쁘게 잘 가꿔 놓아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정원을 구경하러 여기저기를 다니다 클로버 풀밭을 밟는 순간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인데 그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우리가 수없이 밟고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임을 사람들은 별로 모른다. 행운을 찾기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현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묻는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마을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 건강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등등을 이야기했지만 현자는 모두 고개를 젖더니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즉, 누군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 양과 소가 풀을 뜯는 초원을 한없이 달린다. 달리는 차 안에서 정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뉴질랜드 이야기를 한다.『뉴질랜드는 호주로부터 1,600km 떨어져 있고 뉴질랜드는 남·북 두 섬으로 이루어지는 총면적 약 27만㎢로 남한의 2.7배다. 전체 면적의 43%가 북섬, 56%가 남섬으로서 남섬이 더 크지만, 인구의 75% 이상(300만명 이상)은 북섬에 살고 있다. 두 섬은 지형적 성격이 크게 다른데, 북섬은 전체적으로 구릉성 토지가 펼쳐지는 가운데 에그몬크산(Egmont 山, 2,510m)을 비롯하여 화산이 많고 남섬은 70%가 남알프스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한 산지이며 만년설을 이고 있는 3000m가 넘는 고산준봉이 이어지고 빙하의 침식을 받은 피오르드 지형은 수많은 호수와 U자 계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원시림이 많아 변화가 풍부한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북섬은 환태평양 화산재 끝자락인 화산지대로 온천과 간헐천, 그리고 크고 작은 호수가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비옥한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뉴질랜드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진 신생대, 중생대 생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약 8천5백만년 전인 백악기 때부터 다른 대륙과 격리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질랜드에는 맹수와 뱀이 없고 포유류보다 새들의 종류가 많아 약 250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적인 상하계급이 나뉘어 있지 않고, 주민 사이에는 평등정신이 강하다. 세계 최초로 양로연금 제도를 실시하고 완전고용 등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켜 스웨덴, 노르웨이와 함께 세계 3대 복지국가다. 병이 들면 무료로 요양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없는 노인에게는 노인연금이,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16세까지 보육수당을 받을 수 있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며 의무교육 연령은 6세부터 16세까지이다. 대학의 무상교육은 포기되었다.철저한 핵가족제로 가정 중심적이나, 20% 이상이 독신이다. 자녀 수는 1명인 경우가 많고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주요 여가 활동은 정원 관리, 개 기르기 등이다. 영어와 마오리어가 공용어로 인구의 90%가 공식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987년부터 마오리어가 공식 언어로 채택되었고 마오리족만의 토착 문화와 영국계 백인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럭비가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국기(國技)인데 국가대표 럭비 팀은 “All Blacks”로 럭비월드컵에서 어제 우승한 것까지 3번이나 우승하여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구릉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이 초원과 양들, 소들이고 가끔은 “SHED”라 쓰인 양털을 깎기 위한 건물과 초원에 물을 뿌리는 엄청난 크기의 스프링쿨러와 포도밭이 보인다. 이곳의 스프링쿨러는 완전 자동시스템으로 농장주가 시간과 물의 양을 입력하면 알아서 움직이며 물을 뿌리는데 큰 것은 길이 만도 1k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또한 만년설이 녹은 물이 풍부해 상수도요금이나 수세<水稅>가 없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포도밭을 Vine yard라 부르는데 Wine yard라 하지 않는 것은 독일 이민자들이 처음 포도농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선 와인의 품질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 포도나무 1뿌리에 와인 두 병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한다고 한다.

  

퀸즈타운을 떠난 지 네 시간이 지날 무렵 버스는 푸카키 호수 옆에 자리한 휴게소에 정차한다. 휴게소라야 우리네 시골 작은 가게 정도로 아이스크림, 과자, 커피, 기념품 등을 팔고 방문자센터<Visiter Center)를 겸하고 있다. 휴게소 옆 작은 바위 언덕엔 영국공작이 뉴질랜드에 기증했다는 히말라야 산양 동상이 푸카키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178.7㎢의 면적에 해발 518.2m~ 532m에 위치한 푸카키 호수(Lake Pukaki)는 맥켄지 베이슨(Mackenzie Basin)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북남으로 흐르는 3개의 고산 호수 중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호수는 빙하가 유입되어 특유의 맑은 청색을 띄는데, 빙하로부터 나온 극도로 미세한 바위 입자가 빙하와 녹으면서 같이 흘러 들어 특유의 빛을 낸다고 한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 호수의 파도가 일렁인다. 멀지 않은 산골자기에서 산 정상으로는 구름 사이로 만년설이 보임다. 날씨가 좋아 햇빛이 비췄으면 푸카키 호수의 맑은 청색이 더욱 보기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마운트 쿡으로 향한다. 푸카키 호수를 따라 난 도로를 한 시간 여 달려 마운트 쿡의 헤미티지 호텔 주차장에 내린다. 이곳에서 햄버거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키아 포인트(Kea Point)까지 약 두 시간 예정으로 트래킹을 시작한다.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헤미티지 호텔 주차장을 지나니 트래킹 이정표가 보이고 숲길을 따라 트래킹을 시작한다. 산허리를 구름이 감고 있고 산 정상 쪽으로는 눈에 덮혀 있다. 길 좌측 산 쪽으로는 푸른 관목 숲이 자리 잡고 있고 우측으로는 빙하가 지나간 듯 평원에 누런 풀밭이 펼쳐진다. 좀 더 걸으니 키가 크지 않은 울창한 관목 숲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 난 길 옆에는 마누카 나무로 보이는 나무들이 실처럼 가는 하얀 이끼를 뒤 짚어 쓰고 있어 마치 반지의 제왕의 배경에 들어 온 느낌이다.

  

관목 숲이 끝나자 넓은 초원이 나타나고 옆으로는 푸썩이라는 좀 억세 보이는 긴 풀들이 지천인데 널판지로 길을 만들어 이 풀을 보호하고 있다. 척박한 땅답게 가시덤불도 있고 억새풀도 우거졌다가 갑자기 습지도 나타난다. 어디든 사람들이 편히 갈 수 있도록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위험한 구간은 없다. 구비구비 오솔길을 돌다 보면 경치가 좋은 곳에 몇 개의 벤치가 만들어져 있어 여유롭게 앉아 조망을 즐길 수 있게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비록 옷이 젖지 않을 정도의 이슬비가 내리지만 공기는 무척 상쾌해 트래킹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게 한다. 초원이 끝나는 지점에는 빙하가 쓸고 내려 온 자갈과 바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작은 개울도 흐른다.

개울을 지나면서부터 큰 나무는 보이지 않고 땅에 붙은 듯한 작은 관목과 풀만 보이는 길 주위는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에 이정표가 있다. 키아 포인트까지는 30분 더 가야하고 Sealey Tarns나 Mueller Hut까지는 세 시간 반을 가야한다는 이정표를 보니 이제 키아 포인트까지 절반을 온 셈이다. 좀 더 나아가면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데 이 부근부터 모난 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돌들의 크기가 점점 커지며 채석장 모양으로 큰 바위가 쌓여있는 곳을 지나면 이윽고 마운트 쿡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힘을 내서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키아 포인트라 쓰여진 안내판이 보이고 마침내 956m에 위치하고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 바로 옆 산 중턱까지 흘러내린 장대한 모습의 Mueller빙하가 보이고 절벽엔 몇 년간 쌓여 짓눌린 얼음덩어리가 붙어 있다. 전망대 절벽 아래 발 밑에는 빙하가 녹아서 형성된 빙하호가 있는데 빙하호의 색깔이 당초에 기대했던 푸른색이 아니고 검은 색이며 물도 다 빠져 나갔는지 바닥이 보인다. 빙하 퇴석 언덕이 검은 걸 보면 이 지역의 암반에 석탄이 섞여 있는 것 같다. 빙하가 밀려 내려가면서 깎아낸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위로 마운트 쿡의 웅장한 모습이 있다고 하는데 흐린 날씨로 구름이 앞을 가로막아 마운트 쿡의 보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와서 마운트 쿡의 정상을 바라보고 싶어 20여분을 서성였지만 오늘 우리에게 자연이 준 행운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그렇지만 난생 처음 본 빙하에서 불어오는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기분도 상쾌해진다.

발걸음을 되돌려 헤미티지 호텔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오늘 묵을 데카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