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살구야 개살구
제 2 시집
노젓는 나룻배 한 척만 있어도
나는 부자입니다.
어눌한 어부의 눈에 어린
너무도 고운 한국의 물빛
죄 없음이 오히려 죄가 되어
수인(囚人)처럼 산다.
바라보면
국력을 자랑하는 거대한 선박들
택함 받은 선남선녀들이
상어 떼 몰고 기세 좋게 달리는 사이
소박한 꿈 하나 못 이룬
어부의 생애는 비바람 눈보라
오늘도 먼 수평선 바라보며
날궂이에 아픈 어깨와 허리 꾸부리고 투망을 한다.
노을이 몰고 오는 만가를 그물 가득 건져 올리면
못 이룬 꿈이 또 하나 별이 되어 뜬다.
-<금화아파트·5>
■책 머리에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는 순간 또한 그렇다. 우리의 창작활동은 신(神)이 주신 축복이다. 아무리 하잘것없는 미물이라도 생명은 소중하다. 시인의 시(詩) 역시 생명을 안고 태어난다.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다. 시인의 작업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은 정신 세계에 파괴의 힘이 아니라 건설의 힘으로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영감에서든 경험에서든 태어나는 시는 독자의 가슴에 새로운 의미로 육화(肉化)되고 완성되어 갈 것이다.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신원문화사 윤석원 부장님, 해설을 맡아주신 김종천 사백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사랑하는 가족들과 암미, 나를 아는 분들의 격려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으면 한다.
1990년 1월
최 호 림
□최호림과 그의 시 세계
현실적 대립과 공존성
김종천(시인)
비틀거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시를 사랑하는 인간 최호림은 분명 소시민(小市民)이다. 기다리는 아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밝히는 가로등 없는 골목길로 돌아가는 애잔스런 서민의 숨결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싶어서 밤마다 불 밝혀 시짓기에 매어달린 최호림은 아주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다. 그는 세상의 꼬라지와, 난장판 같은 정치와, 키재기 투기꾼에 상처 입은 사회와, 나사가 헐거워진 모든 것들의 삶에 대해서 한시도 시름을 개어놓지 못하는, 그래서 가슴앓이를 하면서 그 가슴앓이에 의해 빨간 선지피를 뱉어내듯 시를 뱉어내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의 시는 잘 정제된 시어(言語)의 비단은 아닐지언정 우리의 가슴 뭉클한 익살이 있고 풍자가 있고 세상을 아파하는 마음이 갈피갈피 배어 있는 것이다. 얼핏 그가 살았던 터를 주제로 한 <금화아파트>를 살펴보자.
숲이 없는 바위섬들
신나게 날으는 갈매기 떼
뱃고동 소리도 낼 수 없는 목선들이
깊은 수심에 불안스럽다.
손 내밀면 잡힐 듯한 수평선
거대한 상선이 무수히 떠 있다.
쉴 새 없이 바위로 기어오르는
숨가쁜 파도
찢어진 꿈의 깃발이다.
바다는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마다 한 덩이씩 태양을 토해 놓지만
비꺽이는 생활의 되풀이
익은 몸짓의 어부들은
손질한 낡은 그물을 다시 던질 뿐
비상은 잊은 지 오래다.
날마다 한 배 가득 햇살을 실어 날라도
어느 틈에 무성히 자란
어둠을 지울 수 없다.
다시금 기다림의 닻을 내리고
쉬이 떠나지 못하는 겨울 양지(陽地)
피곤한 어부의 잠이 갈갈이 찢긴다.
-<금화아파트·1>
노젓는 나룻배 한 척만 있어도
나는 부자입니다.
어눌한 어부의 눈에 어린
너무도 고운 한국의 물빛
죄 없음이 오히려 죄가 되어
수인(囚人)처럼 산다.
바라보면
국력을 자랑하는 거대한 선박들
택함 받은 선남선녀들이
상어 떼 몰고 기세 좋게 달리는 사이
소박한 꿈 하나 못 이룬
어부의 생애는 비바람 눈보라
오늘도 먼 수평선 바라보며
날궂이에 아픈 어깨와 허리 꾸부리고 투망을 한다.
노을이 몰고 오는 만가를 그물 가득 건져 올리면
못 이룬 꿈이 또 하나 별이 되어 뜬다.
-<금화아파트·5>
금화아파트는 서대문구에 있는 금화산 기슭의 시민아파트를 그대로 표상한다. 이미 도괴위험에 의해서 철거되었지만 그 둔덕에 얹혀살던 가난한 시민을 위해서 60년대 말 단기간에 5층의 골조를 세우고 내부는 입주자들이 꾸며서 입주한 좀 특수한 형태의 아파트다. 그때 입주권을 사기 위해서 10만원을 납부해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부담금이 부담이 되어 얼마간의 웃돈을 받고 다른 철거민 촌으로 흘러갔었다. 대체로 팔고 간 군상과 입주한 군상이 반반이었는데 사는 형편도 고만고만이었다.
삶에 찌들어 피곤한 사람들은 그곳을 유배지처럼 생각하면서 어찌하면 그곳을 벗어날까 하는 것이 그들의 소박한 소망 전부였다. 그곳에서 최호림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거기에서 바라보면 그 아래 키재기 빌딩들의 불빛은 목선에서 바라보는 상선만큼이나 별세계요, 생활의 모형이 다르고 꿈의 색깔이 다르고 웃음의 질이 다른 삶을 영위하는 금화아파트 사람들은 분명히 도시의 한 곳에 밀어붙여진 높은 곳에 떠서 삐걱이는 낡은 폐선이었다. 아니, 어쩌면 섬이었는지 모른다. 폐선과 폐선이 엉키덩키 얼켜든 섬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기에 그와 유사한 와우아파트가 붕괴되었을 때 그들은 죄 없이 죽어갔고 함께 시장실에 몰려가 그들의 원귀와 똑같은 처지에서 울부짖으며 한을 토로하여 마침내 어디론가 흩어지게끔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들의 일부는 임대 아파트로 흘러갔지만 투기꾼 손에 의해서 몇 푼의 돈을 덤으로 받고 그들의 섬을 잃은 채 방황하는 무리들이 이곳저곳에서 우리 이웃인지 아닌지 분간 못한 처지가 되어 산재해있다.
최호림 시인은 전반적으로 어떤 명제(命題)하에서 시 작업을 하진 않는다. 그러나 사라진 그 이웃들이 늘 그의 가슴에서 꿈틀대고 있음은 분명하다. 꽃이나 계절이나 바닷바람에 대한 그의 노래도 많다. 그러나 그가 시를 버리지 않는 한 그의 시 주조는 이웃의 아픔을 씻어내니 못하고 가슴이 철렁하게 맑은 삶의 서러움에서 송글송글 맺혀 흐르는 가난한 이웃의 눈물이 당분간 그의 가장 치열한 갈퀴질이 되리라고 본다. 고향의 소나무 향기, 물큰한 영일만 꼬리의 바닷바람, 새벽기도를 위한 종소리, 뜨거운 태양 아래의 부정할 수 없는 긍정의 자락들, 그리고 계절마다 신의 섭리로 방싯방싯 미소 짓는 자연들에 어찌 시심의 맑은 욕망을 떨굴 수 있으랴. 다만, 그가 한시도 잊지 않고 어느 한날도 무심히 넘길 수 없는 것은 그의 피와 살로 점철된 그래서 가슴에 켜켜이 쌓여 있는 죄없음의 죄를 다스려온 서민의 애환에 대해서 계속 침잠해 가리란 예감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①땅을 믿고 사는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정직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고
흙을 모르는 이들이 다 차지해버린 땅
돌아갈 곳조차 없게 된
서 있는 사람들의 땅은 어딘가.
-<서 있는 사람들>
②열 칸이나 되는 전철 안을 다 지나도록
냄비엔 서너 개의 은전닢,
신문 한 장 값도 보태줄 손이 없는
황량한 인심의 숲을
노다지를 찾아 헤매듯
헤치고 더듬어 간다.
-<머나먼 길·2>
③가진 이는 못 가진 이보다 알맹이
잡은 이는 못 잡은 이보다 알맹이
앉은 이는 서 있는 이보다 알맹이
배운 이는 못 배운 이보다 알맹이
한결같이 다투어
잘 익은 알맹이라 자랑인데
-<개살구야 개살구>
①은 <서 있는 사람들>의 끝 부분이고 ②는 <머나먼 길·2>의 끝 부분이며 ③은 이 시집의 표제가 된 <개살구야 개살구>의 중간 부분이다.
먼저 ①의 내용은 서서 애쓰는 농민의 터전을, 앉아서 투기행위나 하는 짓거리에 대한 항변의 노래로 해석되어질 부분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가져야 할 응분의 입장은 떠밀리고 비주체자가 주체행위자가 되는 현실에 대해서 아무 꾸밈도 없이 솔직하게 나오는 그대로를 시화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②의 경우는 일호선 전철승차 중 목격한 목격담이다. 이것은 분명히 짧기는 하지만 단편 서사시다. 필자는 계속적으로 단편 서사시에 집착한 형편인지라 이러한 시에 적잖이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격에 대해서 시화하지 못할 큰 약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공범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쇠 단근질이 가슴에 와 닿는 이 아픔을 우두커니 바라볼 수만은 없는 이 시인은 분명 두툼하지도 않은 지갑에서 외면하고 싶은 정경을 찾지 못하고 임금 천 원을 그 냄비 주머니에 던져 넣고서 자기한테 그 차례를 참을 수 없게 한 인정의 메마름이 너무 억울해서 이 한 편의 단편 서사시를 엮어 낸 게 분명하다. 눈 먼 맹인이 구원의 찬송가를 읊조리며 스스로를 구원해 주길 갈구하는 그 정경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인간 최호림의 그 따스한 마음씨, 그것은 이미 시가 되기 이전의 순간에 시보다 훨씬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인 것이다.
③의 경우 어찌 보면 열적은 소리 같기도 하고 객기스럽기도 한 이러한 표현이 이 시 말고도 상당히 산재해 있다. 그러나 좀더 확대된 의식의 렌즈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 엉뚱스럽고도 참말로 말도 안 되는 덫에 걸려서 꿈지럭거리는 하찮게 탐욕스런 동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각에서 오늘의 좌표를 무절제하고 비순수하고 온갖 엉터리 짓이 난무하는 도표를 그리기 위해서 사람이 살고 있음은 참으로 서러운 삶이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고백이며 항변이며 깨우침이며 신의 은혜에 대한 솔직한 저항인 것이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필자는 본시 시집의 머리글이나 발문·해설문은 사족과 같다고 치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설문을 써야겠다고 작정하고 40여 일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아니 어느 신문사 청탁으로 토막글 한 편을 썼는데 원고료는 받고 게재된 지면은 못 봤다. 그만큼 여기에 얽매어 어줍잖은 일을 저질렀다. 필자는 원래 글이란 ‘단숨에 써야 맛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단숨에 쓰기 위해서 뭉그적거리기가 너무 길었을 때는 대개 실패작이 되기 십상이다. 이 해설을 꼭 최호림 시인의 고등학교 동창생 박경용 시인께 쓰도록 하려다가 엉뚱한 짐을 맡아서 본인이 섭섭할지 모르나 운명의 글을 썼다. 그로 인해서 최호림 시인의, 열 권도 더 되는 분량의 시를 생산한, 그 정열과 마주치게 되었고 다소간 엉뚱스런 주문을 사족처럼 달게 되었다. 그것은 주어진 운명에 줄기차게 정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 시인인들 세상 모든 것을 노래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의 리얼리티를 생각하고 시의 존재의미를 인간관계 개선으로 집착하는 필자로선 감히 인생 선배에게 작은 욕심이 큰 욕심이란 건방진 말 한 마디를 선사하고 싶어졌다. 울고 싶을 때 우는 울음이 참 울음이며 웃고 싶을 때 웃는 웃음이 값진 웃음이듯, 우리의 실존에는 좀 더 주관적인 의식의 전개가 훨씬 갈증의 축임을 더 해 줄 것이고, 거기에서 보다 아름다운 눈물의 현실적 대립과 공존성이 뚜렷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최호림의 건강한 시의 목소리는 그의 건강한 삶의 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석이며, 이 처녀시집은 6·25 당시 국민학교 4,5학년인 세대가 숙명적으로 짊어진 숙명의 과제임을 깊이 깨달았다. 그보다 몇 걸음 뒤에 나선 후인(後人)으로서 이런 말이 어울리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정(情)이란 묘하다. 독자의 자격으로 써 본 본(本) 해설이 최호림 시인과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며, 필자는 최호림 시인과 더불어 사는 세대로서 계속 애독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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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약력
-경북 영일 태생
-선교신학대학원 졸업
-《현대문학》추천 등단
-한국문협, 크리스찬문협, 자유시협, 죽순 동인
-시집, 《연을 날리며》
[출처] 최호림 - 개살구야 개살구|작성자 단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