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에 가장 큰 장애가 38도 경계선이다. 1945년 8월에 미군은 조선 남부에 진주하고 소군은 북부에 진주하였는데 북위 38도를 경계선으로 정하여 가지고 소련군대가 이 경계선을 지켜 남북의 내왕하는 사람을 금하여 남북의 교통이 두절되고 경제 법률 정치가 다 교통이 되지 못하고 각각 딴 나라와 딴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
부자형제가 서로 나누어 있어도 볼 수 없고 물같이 흐르는 경제도 서로 교환할 수 없어 한집에 살던 가족이 서로 원수로 되었으니 도처에 모순 도처에 충돌이 생겨 남북 민중의 원성이 날로 심각하여졌다.
이것을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 그 문제이다. 양국이 다 명확한 대답을 회피하는 고로 잘 알 수 없으나 이것은 두 나라 미소양군의 임시군사협정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 일의 개전은 1941년 12월 8일부터 시작되었고 소련은 대일선전이 1945년 8월 9일에 시작하였는데 38선이라는 것이 양국의 무슨 조약으로 된 것도 아니고 다만 임시군사협정으로 된듯한데 군사협정이란 것은 전쟁이 정지되면 군사협정은 자연 정지할 것인데 양국이 이렇게 상지하고 있으니 이 책임은 두 나라가 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38선이 남의 미군은 군정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오고 38선 북은 소련의 주장으로 조선의 인민위원회를 세우고 조선인으로 정치를 시작하였는데 전부 공산주의로 조직하고 절대 엄정주의로 인민을 치리하며 공산당에 대한 비난이 있을 때는 조금도 용서 없이 일일 검거하여 엄벌을 가하여 조금도 용서가 없는 고로 백성들이 모두 떨며 두려워한다.
공산당과 노동자 사무원 외에는 식량배급이 없고 일반 민중은 생활이 극도로 곤란하여 백미 한말에 천 원 이상이 가도 쌀이 없는 고로 백성들이 살 수 없어 그 무서운 38선 이남을 자꾸 넘어온다.
1945년 12월 15일에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 미국 영국 소련 삼상회의의 결과 소련 말로 오레가 곧 신탁통치란 말이 있어 미소양군의 협정으로 조선 정부를 세운다는 의미로 동년에 미소양위원이 경성에 모이는데 북쪽은 모스코 삼상회의를 절대지지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반대하는 자는 민족 반역자라고 엄벌하였고 남쪽 민중은 시위운동을 하며 삼상회의 오레가를 절대 반대하여 우리가 일본 놈들의 통치를 겨우 벗어나서 또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고 절대 반항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두 나라 틈에 끼어 야심가들의 강압 하에 신음하게 되는 것은 이 38선 문제로 되었다가 이로 회담에 임의 작정한 것을 왜 독립은 허락지 않고 이런 무리한 경계선을 그어 놓고 이런 곤란에 빠지게 하였느냐 하고 삼천만 민중의 원성이 날로 더하여가는 중 남쪽 사람들은 더욱 북쪽사람들의 비국민적 행동이라고 타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