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결말
(미하엘 엔데의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을 읽고)
2019. 07. 03 그래도
요즘 그림책의 그림들이 얼마나 색감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이 책은 표지부터가 우중충하다. 그런데 미하엘 엔데의 책이다! 주저 없이 빼어 들었다. 미하엘 엔데를 안톤 체홉이나 오스카 와일드만큼 좋아한다. 아, 미하엘 엔데의 그림책이라니!
낡고 귀여운 곰돌이 인형의 이름은 “워셔블”이다. 처음 주인이었던 아이가 인형의 귀에 달린 종이에 붙은 글자를 그대로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운명처럼 붙여진 이름이다.(물에 빨아도 된다는 뜻)
된다 안된다는 누가 정하는가? 그것부터가 좀 억울할 것 같다. 도대체 될지 안 될지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인형을 갖고 놀기에 너무 커 버린, 학교에 다니느라 너무 바쁜 인형의 주인. 워셔블은 그 주인만 믿고 살 수는 없었다. 그 긴 세월을 아무 흔적 없이 살 수는 없었으니까.
이곳저곳 헝겊으로 기운 자국과 자주 빨아 털이 거의 다 빠져버린 워셔블은 소파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멍하니 앞만 쳐다보기 일쑤였다.물건의 효용가치의 비애다.
잊혀진 존재인 워셔블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만 조금씩 몸을 흔들며 춤을 춰 보기도 했다.
어느 날, 늘 그렇듯이 소파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워셔블의 콧잔등에 파리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뭐하니?”
그냥 앉아 있는다는 워셔블의 대답에 파리는 아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
“그래도 그렇게 앉아 있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없어. 그런 게 꼭 이유가 있어야 해?”
“그럼.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거야. 예를 들어서 나는 빙빙 날아다니고 세상 모든 것을 맛보기 위해서 살거든. 너는 나처럼 빙빙 날아다니면서 세상 모든 것을 맛볼 수 있어?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른다니! 넌 바보야! 정말 형편없는 바보라고!”
<만구 내 생각 : 그렇게 말 하지마! 단정 짓지 말라고. 니 삶이, 니 잣대가 다는 아니잖아? >
워셔블은 혼잣말로
‘어쩌면 나는 정말 바보인지도 몰라. 다들 자기 자신이 왜 사는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면 말이야. 여기저기 찾아가서 물어보면 내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만구 내 생각 :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바보 아니예요. 진짜 바보는 자기가 바본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여기저기 찾아가서 물어 볼 용기와 의지도 있는데 바보라고요? 그런 사람은 바보 아니거든요.>
그러다가 지하실로 내려가 만난 것이 생쥐다.
생쥐는 워셔블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잡히지 않도록 영리하게 돌아다니는 것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치즈와 베이컨을 잘 구해 오는 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야. 넌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니?”
아니라는 워셔블의 대답에 생쥐는 한숨을 내쉬며 가버린다.
<만구 내 생각 : 중요한 일이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워셔블은 또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타박타박 걷다가 풀밭에서 무척 분주하게 움직이는 꿀벌 한 마리에게 묻는다.
“넌 왜 사는지 혹시 알고 있니?”라고.
“물론이지. 그런 것쯤이야 애벌레 때부터 알고 있는 걸. 부지런히 움직이고, 꿀을 모으고, 벌집을 만들기 위해서 사는 거야.”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것, 절대로 게으름 피우지 않는 거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지금 난 일하느라 너무 바빠. 그러니까 어서 비켜 줘. 그러지 않으면 너를 쏘아 버릴지도 몰라.“
<만구 내 생각 :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사시나요? 쓸데없는 이야기라뇨? 존재에 대한 물음이 쓸 데 없는 이야긴가요? >
워셔블은 길을 비켜주고 더러운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되새를 본다.
“나는 내가 왜 사는지 알고 싶어.”
“난 네가 왜 사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 그런 골치 아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거야.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고 나처럼 놀면 돼. 중요한 일은 오직 그것뿐이야.”
“그렇지만 난 나처럼 몸도 다 닳아 빠진 곰돌이가 세상에서 왜 살고 있는지 꼭 알고 싶어,”
그러자 돼새는 워셔블을 비웃고 휙 날아가 버렸어요.
<만구 내 생각 : 사람의 일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글쎄요? >
초원 한 가운데 멋진 흰색 깃털을 뽐내며 빙글빙글 돌고 있는 백조에게 물었어요.
“아름다운 백조야, 너는 왜 사니?”
백조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다니! 나한테 가장 중요한 존재의 이유는 아름다움이야. 그거 말고 세상에 또 뭐가 있겠어?”라고 말한다.
<만구 내 생각 : 외형적인 아름다움? 얼마나 갈까요? 50년? 100년?>
한참을 걷다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자꾸 똑같은 소리를 내는 뻐꾸기에게도 사는 이유를 묻는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숫자야. 셀 수 있는 것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 셀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만구 내 생각 : 셀 수 있는 것? 돈? 집? 글쎄요.>
밀림의 원숭이 떼들들은
“세상을 사는 유일한 목적은 모임이나, 클럽이나, 위원회라든가, 정당 같은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야.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거든. 하나가 명령을 내리면 다른 것들은 그것을 따라야 해. 누가 자기 위에 있고, 누가 자기 밑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해.
<만구 내 생각 : 그래 그렇게 끼리끼리 놀아 보세요. 도토리 키 재기 해 보시죠? 거기서 거기 아니던가요?“
초원 한가운데 모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코끼리에게도 사는 이유를 묻자
“아주 심오한 문제로구나. 우리도 벌써 오래전부터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 심오한 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해.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거든.”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저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자신이 없어요.”
“그렇지만 네게도 다른 생물들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혼이 있을 거야. 그렇지? 네 가슴 속에 뭐가 들어 있지?”
“아직 자세히는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톱밥과 스펀지 뭐 그런 것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넌 진짜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로구나. 그렇다면 넌 영혼도 정신도 없이 그냥 만들어 놓은 물건일 뿐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면 내팽개쳐지는 신세지.”
워셔블은 코끼리의 말을 듣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이제는 누구를 만나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나지 않을 만큼.
<만구 내 생각 : 결국 당신들도? >
방울뱀을 만나서도 가까스로 잡아먹히지 않은 워셔블이 가시덤불 안쪽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부신 주머니를 보았어요. 그 눈부신 주머니에서 터져 나온 나비 한 마리를 본거죠.
“오! 정말 멋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냥 한 거야. 맨 처음엔 난 알이었어. 그러다가 애벌레가 되었고, 번데기로 변했다가 이제 이렇게 나비가 된 거야.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하기 위해서 살거든. 넌 더 발전할 수 있니?”
“난 그런 거 못해.”
“그러면 왜 사는데?”
<만구 내 생각 : 발전? 꼭 그래야 하나요? 좀 머물면, 더디면 안 되나요? 모두가 다 잘나면 누가 꼴찌가 되나요? 배경이 있어야 더 빛나는 전경이 되잖아요.>
슬픔에 젖어 길을 걷는 워셔블에게 신발도 신지 못하고 헝겊으로 기운 옷을 입은 한 소녀가 다가와
“너 이름이 뭐니? 난 한 번도 곰 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넌 정말 예쁘구나. 난 네가 좋아. 내 곰 인형이 되어 줄래?”
워셔블은 바로
“좋아.”라고 말했죠. 그 순간, 워셔블은 다시 누군가의 곰 인형이 된거죠.
며칠 후 성가신 파리가 소녀의 집으로 날아들었어요.
“워셔블, 너 뭐 하러 사니? 바보래요~ 바보래요~ 아무것도~ 모른대요~......”
하지만 워셔블은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지 않고 제대로 응수해 주었어요.
“찰싹!”
아이 고소해. 전혀 예상 못한 결말이 더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