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70년대에 경제 개발을 시작해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 11위 경제 규모를 기록하고 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모범적인 국가로 소개되고 있다. 1인당 소득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9,115 달러(IMF, 기준년도 2017),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27,561 달러(2016)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최근 10년 이상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는 소리마저 쉽게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를 보면 2007년 11위에서 2011년 24위로 떨어졌고, 2017년에는 137개 국가 중 26위이다.
나는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식민 통치와 6ㆍ25 피해는 복구되었고, 경제 개발과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나의 부모 세대는 6ㆍ25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가난과 굶주림을 경험한 전형적인 후진국 국민이었고, 그 이전 세대는 식민 통치로 국권과 자유마저 잃었던 삶을 살았다. 현재 한국 경제는 이전 여러 세대의 수고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고, 우리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표현보다 “이전에는 좋았었는데”라는 표현을 더 쉽게 들을 수 있다. 농업인과 소상공인, 기업 CEO도 그렇게 말한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학원과 고시촌을 찾고 있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아직도 입시 위주의 암기식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IMF 외환위기로 충격에 빠졌던 1998년을 제외하면, 1970년대 이후 매년 성장하고 있다. 1998년 524.5조 원이던 GDP는 2016년 1,637.4조 원으로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3.1배 증가했다. GDP는 GDP는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던 지난 10년 동안에도 1.7배(2006년 966.1조 원) 증가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고, 국민들의 삶이 이전보다 더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이다. 대부분 국가가 경제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도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의 생활과 삶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우리의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오히려 삶이 이전보다 더 나빠진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것은 경제 시스템이 우리가 기대하는 원리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다.
세계 10위 경제 규모에 진입하고,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에 도달하더라도 자신의 삶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 성장과 수출 증대’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 국민이 열심히 일했고 많은 성과도 얻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스스로를 선진국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형적인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만으로는 선진국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을 위한 청지기 경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이 시민의 자격을 갖고 생활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되지 않았다. 이 책의 제1장에서는 자본주의와 시민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소개한다. 경제를 영어로 표현한 이코노미(economy)는 고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oikonomi)와 오이코노모스(oikonomos)에서 유래된 말이다. 여기서 오이코노미는 ‘가정이나 공동체를 관리하는 방법이나 원칙’이라는 의미이고, 오이코노모스는 ‘청지기’라는 말이다. 즉, 경제는 ‘사람을 위한 청지기’라는 말이다.
소득과 부의 불균형, 사회 양극화 등 현대 사회의 경제 문제를 언급할 때 하나같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현대 경제를 이끌어 왔던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경제 문제들이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현대의 주류 경제학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2장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 케인즈 경제학, 신자유주의로 이어져온 현대 경제의 이론과 사상들이 어떻게 청지기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 경제의 대안이 무엇인지 찾는다.
나는 2004년에 『21세기 농업CEO 이제는 경영이다』를 출간했다. 2016년에는 경제성장과 농업정책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경제생태계』를 출간했다. 이 책을 다시 쓰는 이유는 사람 중심의 미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무쪼록 여러 사람들이 편하게 읽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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