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85:1-13
제목: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오늘은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찬양시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에 속해 있는 것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의 주인인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대표적인 민족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샘플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서 국가가 멸망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지만 70년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잡혀간 포로들이 돌아온 이후에 쓰여 진 시입니다.
이 시를 쓴 고라자손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성전에서 일을 하는 레위인이었습니다. 이 레위인의 마음속에는 오직 성전 그리고 하나님이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찬양을 할까’ 늘 이 생각만 갖고 살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니까 또다시 예전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만 찬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모습을 고라자손은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1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는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 잡혀간 삶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고통과 고난의 삶이었겠습니까? 그들의 포로 생활은 자유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포로 생활은 종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유를 찾아주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하고 가야 할 것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바벨론에게 침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을까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민족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절과 3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은혜를 베푸셔서 용서하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나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시편 85:4).
시인이 쓴 이 시를 보면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 수 있도록 하셨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것을 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오늘 시편말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의 삶은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도의 삶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죄에서 구원해주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이 은혜를 받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하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어떤 은혜를 쏟아부어주실까요?
1.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르게 됩니다.
(시편 85: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삶을 개척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알맞게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리고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민족이 혹시 이들을 다시 쳐들어와서 불행하게 만들지나 않는지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아서 새 삶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평강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르는 삶과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르지 않는 삶의 차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는 삶은 하나님이 그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삶을 지켜줍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삶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8).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에게 주는 행복한 삶이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강의 삶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르지 못 않는 삶은 고통과 고난의 삶입니다. 그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삶입니다. 그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호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이들에게는 영원한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보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들이 아무리 고통의 소리를 내어도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행한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지금도 아니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머무릅니다. 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시편 85: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심고 거두는 것은 자연의 이치 그리고 삶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 거두는 것 즉 수확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시인이 말하는 좋은 것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물질적 복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는 영적인 복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그것을 받지 못하고 살아갈까요? 오늘 본문 8절 하반 절 말씀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간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다는 뜻이 무어슨 뜻입니까? 슬기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지혜롭지 못할까요?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 살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바르지 못할 뿐 아니라 한계가 있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바르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과 13절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고를 여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쏟아 부어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갖고 풍요와 번영의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걷게 됩니다.
(시편 85: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날 즉, 인생의 길은 앞을 개척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불에 탄 집을 다시 지어야 합니다. 땅에 씨를 뿌리기 위해서 개간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앞길은 너무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하나님이 앞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행할 때에는 다시 세워지게 되고, 짓게 되고, 기름진 땅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후에 성전을 다시 짓고, 성벽을 다시 세웠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복된 인생은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면 그 길은 복된 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인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인도를 받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도자가 되려고 할 때 그 길은 불행한 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를 받을 때 그 인생길은 행복한 인생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다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걸어가는 행복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어떤 은혜를 쏟아부어주실까요? 첫째,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무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마지막 셋째,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걷게 됩니다. 이 은혜로 행복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