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6000년경 동해안에 사냥꾼과 어부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에 정착지가 생기게 되었다. 켈트족은 BC 300년경 철기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켈트족이 살던 때에는 다수의 소왕국들이 느슨하게 결합하여 5개의 보다 더 큰 왕국 얼스터·미스·렌스터·먼스터·코노트를 이루었고 이 왕국들은 서력기원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했다(→ 색인 : 투아하, 쿠이그 쿠이기). 5세기에 성 파트리키우스가 도착하여 이 나라 전역을 그리스도교화했다(→ 색인 : 로마 가톨릭교). 아일랜드 교회를 형성시킨 수도 생활이 대대적으로 발달했으며 선교사들이 유럽 전역에 파견되었다.
795년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침입하여 아나가산·더블린·워터퍼드·리머릭 등까지 지배했으나 1014년 아일랜드의 왕 브라이언 보루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이들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11∼12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교회개혁운동의 영향을 받아 교구에 의한 교회 운영이 확립되었는데 교구의 경계선은 대체로 기존 왕국들의 경계선과 일치했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가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고무를 받아 1171년 이 나라를 침략하여 자신을 섬 전체의 대군주로 선언하고,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이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독립적이던 켈트족 아일랜드의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앵글로노르만족 정착민들은 켈트족 아일랜드 문화에 동화되어 갔으며 15세기에는 더블린 주위의 작은 지역인 팔레에서만 잉글랜드 왕실에 충성을 지켰다. 이 당시 아일랜드의 실제 지배자는 킬데어의 백작들로 이들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의 대리 군주였다. 이런 상태는 16세기에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압력 때문에 아일랜드가 의회의 교회법을 따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150년 동안이나 군인과 성직자를 대륙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로 수출했으며 동시에 가톨릭 난민들이 빠져나가 비게 된 땅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이주자들이 들어왔다. 1691년 퇴위한 왕 제임스 2세가 보인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신교도가 완전히 우세해졌다(→ 색인 : 신교 우세). 인구의 약 1/10에 불과한 영국성공회파 신도들이 국토와 정치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으며 가톨릭교도·장로파·비국교도 등에게는 기본적 시민권도 부여되지 않았다. 18세기에 아일랜드의 신교도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완화하는 것에 찬성하는 선동을 시작하면서 가톨릭교도에게도 약간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1798년에 반란이 일어나 마침내 영국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1801년 1월 1일에 대영제국과 아일랜드의 연합왕국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 연합은 아일랜드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가톨릭교도와 신교도간의 불화만 심화시켰다. 1846∼51년에 엄청난 기근이 발생하자 이 연합 때문에 침체된 경제가 더욱 악화되었으며 당시 200만 명 이상이 아일랜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이 기근 후에 피니언주의로 알려진 혁명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의회 개혁이 약간 이루어졌다. 혁명운동은 계속되었으나 몇몇 내정자치 조치는 실패했다. 1912년 또다른 내정자치 조치가 거의 통과될 즈음에 얼스터의 아일랜드 자치에 반대한 통일단원들이 내전을 준비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 폭동이 일어났으며 아일랜드 1916년에 임시정부가 선포되었다. 1920년 아일랜드 정부법이 채택되어 남·북 아일랜드가 성립되었고, 1921년 남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었다. 1937년 비준된 신헌법에 의해 왕권정치가 막을 내리고 국가명도 에이레로 변경되었다
북쪽은 미스 군, 동쪽은 아일랜드 해, 남쪽은 위클로 군, 서쪽은 킬데어·미스 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더블린 시와 던레러를 제외하면 더블린 군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작으면서 인구가 많은 지역 중의 하나이다. 중부와 북부 지역은 낮은 평지이지만 남쪽 경계 지역에는 산맥이 자리잡고 있다. 산맥들 가운데 더블린 군 안에 있는 글렌두 봉(585m)과 투록 봉(518m), 그리고 군의 경계선에 있는 키푸르 봉(754m)이 특히 눈에 띈다. 산들은 주로 히스와 습지로 덮여 있다. 밸브리간에서 하우드에 이르는 북부 해안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지다가 깎아지른 듯한 모습을 한 하우드 곶이 나타난다. 주요 강은 리피 강으로, 더블린에서 남서쪽으로 수㎞ 떨어진 위클로 산맥에서 발원하여 더블린 시를 지나 더블린 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오래된 유적으로 토채(土砦:선사시대에 쌓은 원형의 흙담), 고인돌, 둥근 탑이 남아 있다. 말라하이드 성은 12세기에 세운 것이다.
이곳은 12세기가 끝나갈 쯤에 생겼다. 비록 위클로 군이 생길 당시인 1606년에 와서야 경계선이 정해졌지만, 그전에도 아일랜드 안의 잉글랜드 고립영토(the English pale)에서 아일랜드에 속하는 부분이었다. 1641년과 1688년에 일어난 영국 내란 때 많은 땅이 몰수되었다. 수도와 가까운 까닭에 어수선한 시기였던 1914~22년에는 여러 번 싸움터가 되었으며, 1914년 6월에 하우드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총포를 밀수입을 했다. 밀·보리·감자가 주요작물이며 가축 사육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밸브리간에서 면메리야스를 생산하고 서부 지역에서 초콜릿과 시멘트 제품을 만든다. 주 평의회와 주지사가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던레러는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여러 주요철도선이 더블린 시에서 교차한다. 면적 922㎢, 인구 1,024,429(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