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1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출애굽기 19장부터 마지막장 까지, 레위기 전체, 민수기 9장까지의 내용이 시나이 산에서 약 1년 동안 머문 이야기이다. 그 1년의 시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출 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민 9: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성경 쓰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창세기부터 쓰기 시작하다가 레위기에서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왜내하면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20장까지는 대체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야기 형식의 글이기 때문이다. 가장 읽기 쉬운 책은 만화책이고, 그 다음은 소설이다. 헌법, 민법, 형법, 등의 법률 책은 정말 읽기 힘든 책이다. 보통 사람들이 쓰지 않는 말도 많이 나온다.
레위기의 원래 이름은 레위기의 첫 단어인 “와이크라(그리고나서 부르셨다)”이다. 유대인들은 책의 이름을 지을 때 그 책에 나오는 첫 단어가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 될 때 번역자들은 그 책의 내용에 맞는 책 이름을 지었다. 레위기였다. 레위기라는 이름은 제사의 진행을 맡은 레위인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레위기 성결법전이라고 한다. 성결이라는 말은 거룩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이라는 말이다. 구별되어 산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이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아무렇게나 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19:2)의 말이 레위기 전체의 주제이다. 레위기에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90번 나오고, ‘구별’이라는 단어가 17번 나온다. 거룩함과 관련된 단어가 261번이나 나온다. ‘분리’와 ‘소속’이라는 말이 200번 나온다. ‘속죄’라는 단어는 36번 나온다.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할 수 없다. 사람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예수님이 왜 나를 위해서 죽었어야지? 왜 누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야지만 나의 죄사 사하여지지? 나는 이런 질문을 성경 밖에서 열심히 찾았으나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해답을 레위기에서 찾았다. 성경 밖에서는 그 해답을 찾지 못했으나 성경 안에서 찾은 것이다. 레위기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가?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레위기는 제사를 말한다. 그 제사에서 꼭 필요한 것은 대속 제물이다.
레위기에 나온 제사의 제물은 우리나라 무당들이 차려 놓는 제사상과는 다르다. 무당들은 돼지 머리를 제사상에 올려놓는다. 그 이유는 옛날부터 사람들은 소나 양이나 돼지를 신의 화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의 화신이라고 믿는 동물들의 머리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의 제사의 제물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대속의 의미로 태우는 제물이다.
구약 성경, 특히 토라를 잘 아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대속 제물이라고 말하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의미를 알아듣는다. 레위기를 모르고 구약의 제사 방식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제대로 풀린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구약 시대의 제사와 동일하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제사를 드려야 했다. 오늘 날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예배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레위기는 1장부터 하나님이 예배 의식과 내용을 제시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은 예배자를 돕는 역할을 맡은 제사장에 대하여 이것저것 명령하셨고, 그 다음은 지켜야 할 절기에 대하여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7개의 절기를 주셨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난 후 그 일을 기념하여 절기를 만드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절기를 미리 주시고 주신 절기를 정해주신 법에 따라 지킨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드릴 제물을 규정된 대로 준비하고, 손을 얹어서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transfer)시킨다. 그리고 제물을 직접 죽여 바친다.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제물로 통해서 지는 것이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없었다. 제물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였다. 피는 생명을 의미했고, 제물의 생명은 예배자의 생명과 동일시 되었다.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러 올 때는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나왔다. 제물은 자기 소유의 소나 양, 염소, 비둘기, 그것도 없으면 고운 가루를 가지고 나왔다. 자기 소유의 양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제사장에게 제물이 흠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그 자리에서 양에게 안수를 한다. 안수를 한 후에 자기 소유의 양을 죽인다.
제사에 있어서 제물을 가져온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온 제물이 될 가축을 직접 죽여서 각을 뜨고 내장을 꺼내고 피를 담아야 한다. 제사장들은 힘든 일은 대부분 안한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대부분의 일을 한다.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자기가 아끼던 가축에 손을 댈 때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그 양은 자기의 분신, 가족, 식구와도 같기 때문이다. 안수하는 의미는 ‘자신의 모든 죄와 문제를 네가 가져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수는 전가(이동)의 의미가 있다. 죄와 병과 온갖 문제들을 제물에 전가하기 위하여 안수하는 것이다.
(레 4: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제물은 죄를 짊어지고 피를 흘리고 죽는다. 그 피는 제사장이 가져다가 불로 태운다. 제사는 드리는 사람도 마음적으로 힘들고, 제물도 힘든 것이다.
예수님은 병자나 죽은 자에게 손을 대심, 즉 안수하심으로 자신의 능력이 그들의 몸에 들어가게 하셔서 병든 자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셨다. 그러나 그 반대로도 가능했다. 병고치는 문제, 죄 사함 받는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에게 안수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는다. 손을 댄다는 것은 나의 것을 그에게 준다는 의미가 있다.
(막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막 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안수를 당한 제물은 자신이 짐을 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제물이 되는 동물들의 특징은 순순히 안수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병자가 옷자락에 안수하자 자신이 에너지가 마이너스가 되었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의 문제를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셨던 것이고, 어떤 사람의 아픔을 느끼시고 힘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