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1막 (1부)
1장 1막은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 1살"을 칭한다
1장 2막은" 2살"
1장 3막은" 3살"
등등
세상에 태어날법한 시기의 모든것은 어머님이나 아버님의 증언에 지레집작으로 쓰고 만다.
충북 진천 이월과 대소에서 태어난 부모님들은
6.25전란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남산3호터널 오른쪽 근처 회현동에 정착하기게 된다.
1958년생인 나는 6.25전란후 베이비붐의 상징이 되고 그당시에는 한집에 3~4명씩 자녀를 두는 시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중앙우체국.명동.한국은행,신세계백화점이 즐비한 서울에서도 중심지에서 나는 태어난 것이다
어느날 부모님들과 나의 생가를 찾아헤매다 못찾고 돌아왔으니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육십년 이 지난 지금 생가를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처음 호칭은 "박명렬"이었다.
작명인에게 문의하여 지였다는 나의 이름은 장수하라고 그렇게 지였다 합니다.
추후 현재의 이름으로 호적 정정 하니 그옛날 이름은 어느누구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겠죠
사실 유아시절 돐사진을 보면 무척 왜소하였고
중학교시절까지 갈비뼈가 보일만큼 앙숙한 체구였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졸업후 결핵에 걸려 불고기를 2~3인분 먹다 위가 팽창하여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것이다.
1살 짜리의 유아시절을 글로 쓰는것은 불가능하다
제3자가 나의 어릴적 모습을 보고 쓰거나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는이상 불가능 할것이다.
그당시에는 카메라가 있을리가 없고 컴퓨터도 없었으니 암흑과 같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한인간의 탄생으로 시작된 나의 조그마한 역사는
삼복더위가 더위를 떨치는1958년 한여름 내가 땅 을 뻘뻘 흘리며 태여났다고...
어머님이 늘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