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니 내일이 " 처서" .
8월20일 칠월칠석 지나니 어찌 견우와 직녀 잊으리오.
한많은 구름들 하늘위 몰려다니며 햇살과 자리다툼하거니
어쩔시 나부끼는 산들바람 한여름 무더움 잊게하고
사랑하는 이 찾아헤매는 한마리 새가 되여 푸른하늘을 날으는 것 같구려..
나는 안해와 8년만의 여행을 기획하였다.
친우들과의 여행도 다녀보았고, 미친 듯이 한국의 산하를 헤집고 다녀보았고,
부부동반하여 다녀보았거니
신혼여행처럼 부풀게 하는 단둘의 부부여행은 무척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 지천명에 이른 나이에 연애시절 과천대공원
거닐던 안해의 손을 잡고 저멀리 떠나보기로 한다.
아름다운 인생사 .
한가닥 추억으로 잊혀버린 연애시절의 달콤함이 새삼 재현됨에
나의 이성에 대한 본질보다 더한 인생동반자의 배려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인연속에 만난 안해.
그 인연으로 탄생된 자식들..
모두 모두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하여 준 영원한 동반자이거늘,,
또 다시 어울린 인생사.
자녀 결혼으로 탄생된 사위,며느리,손녀,,
모든것들이 지루한 나의 인생에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하여 준다.
아름다움.
영원한 사랑.
임종시 느낄 아름다운 추억.
나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3박5일"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 패키지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서울 날씨는 언제온지 모른 비를 원망하여 태양에 정복당하여 모두
더위와 싸우고 있다.
에어콘을 틀고, 선풍기를 틀고, 산과 계곡,바다로 어울리시
나는 무지함에 아니 이열치열로 "캄보디아여행"을 기획한다,
캄보디아 온도는 37도에서 38도를 웃돈다.
물론 한국에서 느끼는 태양이 어찌 그곳에서는 더한층 뜨거운지 유적지의
돌은 삼겹살 굽는 돌판처럼 만지기 조차 힘들었다.
우리는(이제부터 안해와 나를 "우리"라 지칭함) 오후 3시 15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안은 서울역에서 느껴보지 못한 들뜬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우리는 스마트폰 로밍 및 환전을 하고 여행사 안내에 따라 비행기티켓을 구매
하고 공항 검열대를 통과하고 면세점에서 아이쇼핑을 하며 면세담배를 구입한다.
안해는 꿈에 그리던 샤넬향수를 구매하니 안해는 무척 기뻐하였다.
향수한병에 만족해 하는 안해.
나는 그 향수가 나를 위해 사용할 것임을 알며 나도 모르게 흐믓해 한다.
공항게이트는 16번 오후 7시였으나 6시40 탑승키 위해 16번 게이트에 있으니
탑승객이 보이질 않아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안내원 왈
" 7시 씨엠립" 출발 대한항공여객기는11번게이트로 변경되였다는 것"
이에 우리는 11번 게이트를 향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다.
"무엇이 잘못된것이여."
"틀림없이 항공티켓에는 16번이라고 기재되 있거늘,,"
11번 게이트는 500미터 이상거리에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과 부딪히며 우린 힘껏달려 6시 45분경 11번 게이트에 도착한다.
우린 대한항공직원한테 항의하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여행 신고식 치곤 무척 힘들었다.
비행기 안은 3열좌석 좌우로 되여있었고, 150명이 탑승가능한 중형비행기 였다.
7시경 비행기는 엔진을 가동하며 활주로를 아륙한다.
스튜어디스 안내에 의해 우린 공간 이동을 시작한다.
5시간의 공간이동. 뉴튼의 법칙이 사라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닌
지나가는 철새 한마리와 더불어 저멀리 떠난 것이다.
기내식 식사를 먹고 한숨 자고보니 비행기는 굴속을 지나는 양
어둠속에 묵묵히 어느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어둠속은 깊은 굴속처럼 어두웠다.
오후 11시 경
우리 비행기는 희미한 불빛이 비추는 초라한 "씨엠립공항"에 도착한다.
인천공항에 견주어 강릉의 조금한 비행장처럼 무척 협소하여 보였다.
한국의 "경주"에 견주는 유적도시인지라 수도인 "프로펜"보다 모든 시설이
낙후되여 있었다.
우리 일행은 삼삼오오 공항직원의 안내에 의거 어느 공항 건물로 들어가게
되였다.
건물안은 에어콘 시설이 잘되여 있어서
무척 시원하였다.
그리고 건물 오른쪽에는 검은 정복을 입은 공항 출입국 관리인듯한 캄보디아
인들이 8명정도 있었다.
비자발급을 위한 절차거니 우린 여행사에서 발급한 비자를 여권과 사진를 제출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검은정장의 출입국관리 직원은
"원달러"를 요구한다.
나는 편한마음에 공무원에게 원달러를 주고나니 비자발급이 8명의 심사대를
우선적으로 통과하여 비자발급이 되였다.
그러나 안해를 포함한 다른 일행들은 20여분간 심사대를 통과치 못하고 끝내는
원달러를 지불하고 검열대를 통과하게 되였다.
"원달러"
캄보디아 여행의 타이틀로 "원달러"로 명기한것은
이 나라 여행은 원달러로 시작하여 매일 여행기나 하루온종일 원달러 소리에 파뭍혀
나도 모르게 원달러 노이로제에 걸렸고 끝나는 패키지여행 끝나고 출구할시도 원달러
로 끝난 지루한 원달러의 나라이였다.
아무튼 우리는 가이드 안내로 45인승 중고현대버스에 탑승하여 "리젠시앙코르호텔"로
에 도착한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호텔내 레스토랑에서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로비에 집결하고 한밤중에 도착한 호텔 전경을 둘러본다.
가이드 박도영(TEL; 9-012-202-435)의 안내에 의해
세계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 를 향해 출발한다.
호텔은 중심가에 위치하여 모든 유적지를 20분에 도착할수 있어 20여분후
"앙코르와트" 매표소에 도착한다.
앙코르와트는 유적지가 방대하게 걸쳐있어 전부를 볼려도 3일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우린 1인당 40달러를 지불하고 매표소에 있는 즉석사진을 찍고 입장권을 구매하고
앙코르와트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우린 앙코르와트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온도는 37도를 웃도는 미지한 더위가 팔뚝에 땀을 만들고 썬텐한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앙코르와트는 세게적인 명소답게 중국인,일본인,서양인들로 인산인해였다.
국내인 5만명이 매년 찾는 절대 명소.
능숙한 가이드의 현란한 관광지 설명이 이어진다.
수십키로에서 돌을 가지고 와서 어떻고 ,, 저렇고,,
뱀의 형상이 입구를 지키고, 서양쪽으로 입구를 만들고,,
우린 안해 손을 잡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꿈에 그린 앙코르와트.
석양노을에 앙코르와트를 보아야 하거늘 , ...
우린 꿈에 그린 앙코르와트를 사진을 찍어대며 전진한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초 수르아바르만2세에 의해 창건된 사원이다.
건축에 조각한 섬세함은 가히 인간이 할수 있는 예술적 가치를 넘어섬에 가히
손조차 만질수 없는 엄숙함을 지니고 있다.
힌두교에 충실한 신의 표현과 사원 곳곳에 있는 욕탕은 로마제국 못지 않은
제국의 군립을 표출하고 있었다.
가히 돌하나에 집중한 수많은 인간의 손에 탄생된 사원.
그 흔한 나무기둥하나 없고, 칠한 흔적하나 없음에 돌로서 지붕과 벽면 바닥을
마감함에 가히 큰바위덩어리에 인간이 조각한양 사원자체는 돌덩어리였다.
사원내부로 들어섬에 세개의 탑이 대칭에 의해 4개에서 5개로 보이고
벽면에는 수많은 글자와 고대그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지고 수백년 세월을 이어온 돌들의 사연은 그 흔한
이끼하나 없이 고고히 간직되여 있었다.
어느덧 앙코르와트 중앙부에 위치한 3층의 사원으로 오르니
산 정상에 오른양 사원전체가 보였으며 곳곳에 사원인지 불상에 향을 피우는 모습이 보였으며
앙코르와트의 절경이 한눈에 비쳐지며 산정상에나 있을법한 시원한 바람이 하염없이
불여왔다.
가히 북경의 자금성처럼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수백년 이어온 돌들의 숭고함에
원더풀을 외치며 하염없이 사진을 찍어댄다...
3층 사원을 내려오고 아쉬운 앙코르 와트를 담아본다.
인간이 만들기 불가능한 조각들,,,
모든것이 37도의 태양아래 수백년을 간직한 아름다운 사원이여,,
조금씩 돌사이 무너짐이 진행됨에 복원이 같이 진행되는 세계사적 유적
글로서 표현하기 무엇한 인간의 형성물,,
인간이 표현하고자 한 어느 형상이 40도의 뜨거운 적도아래 수백년을 간직하니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같은 수십층짜리 조형물에
인간의 무한함을 한없이 느껴본다...
앙코르와트를 나온 우리 일행은 (18명) 가이드의 안내에 의해 편도1차선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동남아의 특유한 집구조가 도로 양쪽으로 스쳐지나간다.
간간히 야자수 나무도 있었고.
들판에는 아무렇게나 심은 벼가 3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추수를 하니 우리나라처럼 물대기도
없고 지나가는 소나기나 비를 맞고 야생초처럼 절제없이 생성되는 과정에 부러움과
먹을것 걱정없는 자연의 풍요함에 부러움을 느껴본다.
오토바이와 자전거.툭툭이가 택시를 대신하니 툭툭이의 인기는 이곳의
명물이기도 하다.
차량은 20분가량 이동하여 "반데이스레이"라는 사원에 도착한다.
그곳 입구에는 "원달러'를 외치는 어린아이들이 즐비하였다.
캄보디아 어디를 가던 조그마한 팔찌나 부채,사진,안내책자 등을 들고
다니며 "원달러"를 요구한다.
사실 캄보디아의 경재난이 개발도상국이나 관광지에 넘쳐나는 어린아이들의
"원달러"로 상품을 강매함에
모두들 지쳐버리고 만다.
"원달러"
우리돈으로 "1,200원"
그돈을 캄보디아 돈으로 4,000리엘"이상 되니
가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손슆게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할수 있는 것이기
우리안해는 하지못해 다른여행지에게 몇달러를 주고 말았다.
"원달러"
아름다운 유적지에 평폐해진 동심의 물질타락에 세상의 유고한 유적지는
퇴색되고 있었다.
"원달러"를 뿌리치고 들어선
" 반데이스레이"
규모는 1000평내외였지만 인도문화에 가까운 붉은색의 사암을 이용한 정교한 건축물에 또한번
놀라고 만다.
사원을 둘러싼 원숭이의 존재또한 특이하고
누구나 카메라를 들게하는 색채의 조화에 무한정 사진을 찍어댄다.
캄보디아의 유적지인 모든 사원은 특이하게도
모두 서쪽으로 진입로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사원진입시 역광에 의해 사진찍기가 상당히 곤란스러웠다.
사원에 도착하여 역광을 피해 사진포인트 찾기가 상당히 곤란스러운 것도
있으나 태양을 보며 사원으로 진입할시는 태양빛에 너울대는 사원의 고고함
이 더한층 미묘한 감정을 돋게 하였다.
아침 태양을 받고 일어선 사원은 동쪽 진입을 불가하게 만들고
해가 지는 서쪽으로 진입하게 하니 그 뜻이 무엇이건
우리는 수많은 사원을 다님애 동쪽으로 진입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이다.
그 뜻은 추측건데
동쪽은 신들의 성지인 것이다.
동쪽은 생명의 발원지인것이다.
동쪽은 시작의 원천인 것이다.
감히 신들의 영역을 저급한 인간들이 발을 디디면 않된다는 뜻은 아닐런지...
나는 이번 여행을 "걸리버여행기"로 비유한다.
대인국에서 소인국을 보듯 외소한 적도의 미문명 제국에서 세계4대문명도 아닌 적도
부근에서 수많은 돌을 운반해와 인류사 찬란한 상아탑을 창건한 땀방울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캄보디아 GDP의 20%를 차지하는 "앙코르와트' 사원.
19세기 식물학자 "앙리무어"에 의해 발견된 "앙코르와트"
나는 오늘 느껴본다.
19세기 '앙리무어"처럼 신비함과 웅장함에 "원더풀"을 외쳤을
식물학자를 기억하며
오늘
"원더풀"을 한없이 외쳐본다..
☞☞☞ 2부에서 계속
( 기대해 주세요..)
첫댓글 어머님 아버님 보기좋으세요 ♥앙코르와트 넘 멋있어요
고마워요..며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