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0 주일 가정예배
순서: 시편찬송 – 본문 – 설교(기도) – 주기도
본문: 아가 1장 12-17절
설교:
본문 12절은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입니다. ‘나도 기름’이란 나드향으로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 그런 향기를 뿜어낸다는 것입니다. 특히 왕이 침상에 앉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수한 설교로 임하십니다. 이때 교회는 그리스도께 참여하게 되는데, 참여하게 되는 모습은 자신을 정결케 하며 향기롭게 하는 좋은 향기와 기름을 지니고서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임하신다고 할 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본문 13절과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즉 교회에게 그리스도는 가장 사랑스러운 분으로서, 마치 진귀한 가치가 있는 나무나 식물, 아름답고 향기롭고 치료가 되는 커다란 송이들 안에서 자라가는 열매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장 사랑스러우신 분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비교급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설명한 것이지만, 사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분의 임재를 사모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사모하되, 무엇보다 예배를 사모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수한 설교를 즐겨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할 때 교회는 자신을 정결케 하며 향기롭게 하는 좋은 향기와 기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교회가 서로에 대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게 되는데, 우선 15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내 사랑아’라고 부르십니다. 13절과 14절에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여 먼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어쨌든 지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다. 본래는 검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자로 있지만(아1:5),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연약하고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교회를 칭찬하며 소중히 여기십니다.
‘네 눈이 비둘기 같다’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바라보는 눈빛을 보여주는데, 쉽게 말하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헌신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거룩한 의도에 의해서 그리스도께 고정된 자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교회를 그렇게 보고 계시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그렇게 이끄실 것이고, 또한 그렇게 이끄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런 자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데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교회는 이렇게 답합니다. 16절과 17절을 보시면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그리스도께서 먼저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할 때 교회 역시 동일한 답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나의 사랑하는 자야’라고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여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 역시 그리스도를 향하여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의 아름다움은 어디 있는가?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교회 역시 동일하게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여쁘게 보신다면 교회 역시 그리스도를 어여쁘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교회는 우리의 침상이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라고 말하는데, 12절에서 왕의 침상이라는 말처럼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앞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수한 설교에 임하신다고 말했는데, 조금 더 분명한 내용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하시는 신실한 자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푸르다는 것은 그만큼 안식함이 있다는 것이고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도 다르지 않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함께 하는 집은 그만큼 귀중한 재료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귀중한 재료로 지을 만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마땅한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교회가 그리스도를 반영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할 때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만 안식함을 누리고 그리스도보다 더 좋은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분만을 가장 사랑하고 귀히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금 말하지만 그리스도보다 더 좋은 분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좋은 신랑은 없습니다. 때문에 한 눈 팔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만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