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의 글자로 세우는, 안녕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다리 하나 빠진 소파와 흔들의자,
회색이 때묻은 구르미 의자는
4만원으론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볼멘소리로 7만원을 부르는
두 남성의 손에 내팽개진다
트럭 위를 따다다닥 구르는 사이
돌아온 이불 속의 나체는
블로그 속을 걸어다녔다
아까운 건 다 그 안에 있지
물이 샘솟을 터이니
네 삶의 중요한 부위를 내어주어라
삶이 쭈뼛한, 어떤 警句(경구)
폐기되는
세 마리의 글자는
빛줄기 恨殺(한살)에 잠을 자던
벽 속의 세상으로 遺棄(유기)되어
안녕, 이라는 새로운 인사법을 배운다
아낌없이 받는 남자
1.
40대의 총각이 눈에 불을 켠다
그의 눈에 보이는 여자들의 종아리,
허벅지, 그러나
엉덩이는 보이지 않는다
발가벗겨진 그의 눈에
성추행은 일상, 매일 보이는 건
그녀들의 일상, 끝내
알려지지 않는 40대의
원피스 탐독
2.
40대 총각의 손에 살림이 묻는다
그의 손에 묻혀지는 것은 오징어젓, 돈가스,
떡갈비 그러나
나물은 묻혀지지 않는다 홀로 선
그의 일상에
살림은 남자의 몫, 당연한 몫.
그러나 나물만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그는, 그는
3.
그가 가장 힘든 건
처리되지 않는 성욕, 배출되지 않는
싱크대의 마음처리,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40대의 총각은
마침내 종교에 귀의 한다 마지못해
예수님을 찾는 그의 손발이
눈물로 범벅이 된다
4.
40대 총각의 일상에
나물은 주님의 몫, 이제부터
눈물도 하나님의 몫, 예수님은
시선(視線)도 예수님의 몫이라고
피범벅된 몸으로 말씀하신다
달걀에 스며들기
달걀의 외투는 필요에 따라
껍데기였다가 껍질이었다가 한다
철 없는 주인의 심보 때문에
음식물쓰레기봉투의 주인이었다가
생활폐기물용 쓰레기봉투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오신 그분 같은 달걀.
달걀은 언제든 나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겠다며
외투를 입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반겨주곤
철없는 주인의 변덕에도 꿋꿋하게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그를 만지게 한다.
달걀에서 느끼는 그분의 마음.
허기진 배를 간신히 채우는 어느 흐린 날의 저녁.
너를 체포한다
뜬금없이
시가 전화를 했다
너를
체포한다, 그러므로
24시간
인터넷 사용금지
24시간
성스럽게 지내기
갇힌 욕망,
상상 속에서는
아름다운 예수님.
내게 조금만 시간을 줘요,
시(詩)에게 요청한다
조금은
TV에게나 물어보라며
체포에
순종적으로
응하지 않은 벌로
외부와의 모든 연락 차단.
빛이 완전히 차단되는
블라인드마저 내려져
체포되는
한낮의 문장.
너를 체포한다
너에겐 묵도권(默禱權)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너무’의 행방
너무는 부정적일 때만 쓰이다가
너무는 이제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너무는 너무 좋기도 하고
너무는 너무 나쁘기도 하다
너무는 그냥 너무라서 나무가 된다.
하나님, 너무하지 않으세요
라는 기도에 나의 삶을 담으면서
하나님, 너무 시험에 들게만 하지 마세요!
라는 기도로 나의 부족한 삶을 채운다.
너무는
너무가 너무 넘쳐 나무로 자라
나의 삶이 은혜로 가득하는 너무의 순간,
너무는 비로소 하늘 향해 양팔버린 축복의 나무가 된다.
너무한 시련 아니에요?
너무한 만남 아니에요?
너무한 고난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한 신앙이어서 너무한 기쁨이라고
너무한 믿음이어서 너무한 축복이라고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해서.
눈의 십자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보면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허공에 눈을 두었다가 다시 그 사람을, 아니 정확하게는 다시 그 여자의 다리에 도로 시선이 가 있곤 한다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 자꾸 붙잡고 계시는데, 나의 주체할 수 없는 본능은 예수님을 어기고 있다 오늘은 입맛도 없네, 하며 애꿎은 식사핑계를 대며 남 모르는 성추행을 하고 있다 들키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겠지, 라는 자기합리화와, 예수님이 나를 노려보시는 형상화된 그림이, 눈의 십자가앞에서 아른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