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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청 신우회 수요예배 메시지
일자: 2023년 2월 1일 수요일
배경: 지난해 2022년 6월 22일에 재개된 수요예배가 7월 27일부터 다시 중단되었다가 2023년 2월 1일에 다시 열린다. 만 여섯 달만의 예배 모임이다.
그 동안은 비대면으로 묵상자료를 나누었다. 그 주요 내용은 오늘을 위한 복음에 대한 20개의 질문 시리즈였으며, 그 후에 교회의 의미와 재림, 그리고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일방적으로 제공된 것이었으므로 회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자료를 제공하고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신우회 예배를 재개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이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우선 지난번에 신우회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고 동영상을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는 무난하지만 임팩트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다시 이 모임을 시작하면서 분명한 목적과 사명감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신우회의 기본적인 방침이나 신념, 또는 철학이나 목표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나는 성동구청 신우회가 어떤 모임인지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 모임은 우선 기독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기독인들은 성동구청에서 근무하면서 기독인으로서 소임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하여 연대하고 격려하고자 이 모임을 갖는다.
그러면, 우리의 소임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동구청 안에서 우리의 본분을 잘 감당하고, 서로 힘을 모아 선한 사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선한 사업은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며,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동안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나는 이 모임에 참가하는 회원들이 좀더 명확한 목적의식과 소속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론 지도자가 제시하고 회원들이 공감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성경을 배우면서 조금씩 우리 안에 형성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도자는 그 목표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동안 나눈 자료인 ‘오늘을 위한 복음’이나 다른 묵상 자료를 통하여 내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나타냈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자료와 나눔을 기초로 하여 더욱 선명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회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설명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하여 무슨 일을 할 계획을 갖고 계실까?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할 것이다. 우리 모임의 정체성과 특징을 먼저 정리하자는 것이다.
가장 먼저 우리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대표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식이다. 사실 그것은 오랜 전통에 뿌리를 박은 나무와 같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말은 구약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예언자 이사야는 노래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무엇이라고 외치는가? 성경을 살펴보자: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메시지가 복음인 까닭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현실은 그렇지 않고 강대국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멀리 계시고 그들은 멀리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다. 그들의 성은 무너졌고 그들이 뛰어 놀던 땅은 황폐하게 되었고 그들의 아름답던 도시는 들짐승들의 놀이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전령이 산을 넘으면서 외친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이것이 예언자가 들려준 복음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예언이 자기 시대에 성취된다고 선언하셨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다스리시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낡은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오라는 초대이자 촉구였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자면,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과연 그런가? 이것은 이사야 시대의 질문이기도 하고 오늘 우리 시대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받으신 질문이기도 하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려와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라!’ 이것이 군중의 요구였으며 조롱이었다. 오늘날에도 신자는 이런 세상 가운데 살고 있지 않을까?
구청 안에서 일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루를 믿음으로 시작하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을 믿는 나는 이곳에서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언제나 우리가 만나는 질문이다. 실존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찬송하는 가운데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루스이면서 동시에 벧엘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신우회 예배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믿음을 얻는 시간이 바로 신우회 예배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과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또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리는 각자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또 다른 은혜와 임무를 주신다. 그것을 일깨워주고 격려하는 것이 신우회 예배의 목적이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그렇게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 말씀만이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복음을 들고 오는 사람이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가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그들이 속량되고 회복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들은 전에 애초에 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가?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과 시내산에서 맺으신 언약은 어떤 것이었던가? 그리고 그 최종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며 계획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이번 주에 신우회원들과 함께 나눌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설교 제목: 좋은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사람
설교 본문: 이사야 52:7
반갑습니다. 우리는 6개월만에 신우회 예배를 재개합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온 세계는 긴장하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았습니다. 우리 생애에 아직 겪어보지 못한 재난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이렇게 한고비를 넘기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신우회 예배를 재개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성경말씀은 이사야 52장입니다. 이 본문을 선정한 까닭은 구청에서 일하는 공직자이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우회원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52장은 유다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 까닭은 하나님이 새 일을 하겠다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 일은 자기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노예를 풀어주어 자유를 주고 이전에 꿈꾸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속량(贖良)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유다 민족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게 되며 그들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언약을 받은 민족이 이스라엘 자손이며 지금의 유다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지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먼 나라에서 타향살이를 하며 멸시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다시 일으키시려는 것입니다. 전에 그들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므로 그들은 포로생활에서 풀려나며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의 도시로 다시 돌아오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본래 계획하신 대로 세계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속량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전령이 좋은 소식을 들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온산을 넘으며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향하여 이 좋은 소식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한 그 좋은 소식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였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뜻에 따라 자기 백성을 자유롭게 하시고 다시 높이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2장의 끝부분에는 이 분위기와 다른 말씀이 덧붙여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이사야 52:13~15
여기에는 하나님의 종이 나옵니다. 그는 뭇 사람들보다 높여지고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전에 상처를 입었고 매우 흉한 몰골을 가졌으며 형편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저렇게까지 나빠질 수가 있는가 하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그 종이 세상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그 앞에서 조용하게 입을 다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이 새롭고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그와 같이 고난 받은 종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전에 고통을 겪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고난 받은 자기 백성들을 세상 나라들 가운데 증인으로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할 지도자로 세우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고난당한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들이 전에 애창하던 복음송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입니다. 그 가사에는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쓰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전하는 예언에서 고난 받은 종은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전할 사람이 됩니다. 그들이 바로 고난당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받았다면, 또는 고난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을 우리의 약속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아마 박이순 목사님도 그런 의미에서 위 노래를 만드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보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바로 예수님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열방의 입을 봉하시고 세상 나라들에게 구원의 지혜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온 세상 만민이 오늘도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보면서 지혜와 위로, 그리고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들도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난의 자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들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것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자기 아들들을 이렇게 연단으로 강하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는 분입니다(히 5:8~9).
우리는 신우회원이면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고난당할 때, 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교훈이며 지혜입니다.
이스라엘도 유다 백성도, 그리고 예수님도 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종으로부터 세상은 지혜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처럼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이사야는 기뻐하며 노래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함께 기뻐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고난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이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좋은 소식은 세상 만민을 위한 복음입니다. 만인이 다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그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종으로 살아가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한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며, 우리와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사야처럼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고난당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영광을 받으셨는지를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에 기쁨으로 동참하기를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높이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확신과 소망으로 일상을 살아갑시다.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주권과 돌보심과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높아짐도, 우리의 낮아짐도 다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요, 그 백성이며, 그 사랑받는 종임을 항상 기억합시다.
주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끝>.
설교 음성 자료는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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