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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서가고(행9:31) 7월 13일
할렐루야!
예배의 자리에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6번, 직간접적으로 6번 옴겼습니다.
교회를 이사할 때마다 또 교회 기관 건물을 지을 때마다 얼마나 많이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건축하고 봉헌식 하고 나면 꼭 일주일 열흘씩 앓고 그 뒷수습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건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만,
건축을 6번 하면서 많이 많이 힘들었던 순간들을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축을 하려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얼마나 빨리 지을 수 있느냐 …
- 저렴하게 / 안전하게 지을 수 있느냐 …
- 실용적으로 짓느냐 …
- 외관은 주변과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좋은 건물이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 ‘얼마나 튼튼한가!’입니다.
용도가 무엇이든 건축물은견고해야 /든든해야 합니다.
건물이 그렇듯이 우리들의 삶도, 우리의 신앙도 견고하고 든든해야 합니다.
오늘은견고,든든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이라는 이름 대신 ‘바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행 13:9)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친해지고 복음 전하는 일에 함께 하기 원했지만,
사람들은 사울이라고 불렸던바울의 과거 때문에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고 교회를 없애려고
잔멸하려고 다녔던 그 사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바꿔서 바울이라고 했고, 예수 믿는다고 말했지만
그를 믿지 않았고 두려워했습니다. (행 9:26)
그렇지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 11:24)” ‘바나바’가 바울을 변론해 주었습니다.
그런 바나바 덕분에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당시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든든히 서 가고…”(행 9:31)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 여러 곳의 교회가 평안해지니까 교회가 든든해졌습니다.
‘든든히 서 갔다, 더 튼튼해졌다, 강력해졌다(strengthened)’ 했습니다.
든든/튼튼/ 강력해진 교회,어떤 교회가 든든한 교회인가요?
- 건물 크고 튼튼하게 지어졌으면 든든한 교회입니까?
- 힘센, 덩치 큰 ‘듬직한’ 사람이 많으면 든든한가요?
- 지역 유지가, 부자가 많이 출석하면 든든한 교회인가요?
세상에는큰 건물에 /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흔들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훌륭하고, 대단한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모이지만 다투는 교회가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선교사를 많이 보내고, 여러 곳을 돕지만 불안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든든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 교회가평안하여든든히 서 가고 …”(행 9:31)
교회는평안해야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 하려면 먼저 여러 면에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오래된 사람과 / 온 지 얼마 안된 사람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겨 다툼과 갈등이 없어야 든든한 교회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서울의 큰 교회에서 목회하시며 교수를 하셨던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목회할 때 교회에 여우 같은 이가 있었는데 그 여우가 목사님을 너무 힘들게 했답니다.
마침 아는 목사님이 교회를 옮겨서 목회하지 않겠냐고 해서 얼른 옮겼답니다.
그런데 옮겨 갔더니 거기엔 사자 같은 사람이 있더랍니다.
차라리 전에 여우가 낫다고 생각하며 사자 때문에 힘들어하던 차에 … 서울의 한 교회에서 오라고 하더랍니다.
얼씨구나 하며 옮겼답니다. 그런데 거기엔 호랑이 여러 마리가 있더랍니다.
여러분, 사람 피해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사람 피해 다니는 분 계세요?
그런 분은 또 피해 갈 것입니다.
‘교회’를 ‘구원의 방주’라고 표현합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구원의 방주인 교회에는 온갖 짐승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를 구원의 방주라고 설명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도 있지만
교회는 각종 짐승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도 있습니다.
소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 말 없이 일 잘합니다.
그러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새벽기도에 와서 혼자 끙끙거립니다. 참 착합니다.
그런가 하면 양 같은 이도 있습니다. 너무너무 착합니다.
제가 몽골에 갔을 때 양 잡는 걸 봤는데 양은 자기 배를 칼로 자르는 데도 가만히 있더군요.
이 험한 세상에 너무 착해서 바보같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성도들을 양에 비유했는데 여러분 양인가요?
자기는 다 양인 줄 아는데 뿔 달린 염소 같은 양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염소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영락없이 생긴 건 양하고 비슷한데 성질나면 그냥 뿔로 들이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우 같은 이, 기둥 여우도 있습니다.
일할 때는 안 나타나고 얼굴 내미는 일이 있을 때는 자기가 다 한 것처럼 앞에서 온갖 아양 다 떨고
나가서는 흉보고 여우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돼지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뭐가 남는지 모자라는지 상관없습니다. 자기만 챙깁니다.
그런 이들을 피한다고 안 만나겠습니까? 어느 방주에든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기억하시나요?
평안한 곳에는 평안을 위해 애쓰는 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이 평안하십니까? 남편이 참든지, 아내가 참든지 … 누군가 참고 있는 것입니다.
참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여러분 집은 누가 참는 것 같아요? 가정, 교회 … 평안하다는 말은 평안을 위해 참는 이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평안을 만드는(peace maker) 가 있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제가 peace maker가 되겠습니다.
교회에 이름 없이, 빛없이 침묵하며 섬기는 이들이 많으면 평안합니다.
특별히 평안하게 든든히 선 교회가 되려면있는 자리가 중요합니다.
모이기 편한 어떤 장소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주차장이 충분한가 … 도로는 잘 닦여 있는가 … 하는 환경과 시설이 좋은가 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미국의 풀러 신학교를 중심으로 교회성장학 전문가들이 주로 하는 말이 교회가 성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위치가 좋아야 하고(location), 주차장이 넓어야 하고(parking lot),스탭(staff)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야 한다 …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먼저가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부탁하노니 그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교회가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하나님의‘말씀 위’에 서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 바르게 가르치고 …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이들이 모이는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반석 위에 지은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반석(돌덩어리)에는‘보호’의 의미가 있습니다.
창과 칼, 활을 가지고 싸우던 고대의 전쟁에서 군인들은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몸을 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디에 몸을 맡기고 어디에 숨겠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하나님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믿음은 「버틴다(Reliance:의존 / 기댄다(Trust:의지)」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실망합니다.
“내가 그 목사님 / 그 장로님 그렇게 안봤는데 …”, “내가 그 권사님을 의지했었는데 …”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고 버텨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반석은‘안식처’가 되기도 합니다.
사막지대에서 반석은 여행자에게 방어벽이 되기도 하지만 그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인생길은 사막처럼 뜨거운 열기를 감내해야 하는 고단한 길입니다.
목은 마른 데 마실 물이 없고 쉬고 싶지만 쉴 곳을 찾을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사 49:10)
하나님의 말씀을 반석 삼아 살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더위와 볕에 상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위태로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바위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시 18:2)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큰 슬픔을 겪었을 때도 바위 그늘 아래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 61:2)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을 때도 반석 위에 서서 적들과 싸웠습니다. (시 27:5)
그랬던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그리고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구원의 확신과 소망이 분명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확실한 천국 소망이 있을 때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 성경을 들고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고백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우리의믿음을 굳세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냥 의무적으로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 같아도 고백하는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믿음은 확실해야합니다.믿음은 분명해야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이 길로 가면 맞아요. 맞으니까 따라와. 이리 가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는 길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길 인도하는 사람이 두리번거리며 확실치 않은데 일단 가봐야지 하며 찾는 중이면 난감해지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은 확실해야 합니다.
중요한 일을 확인할 때 … 도장을 찍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사인을 합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서명(사인)을 합니다.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한 천사가 하나님의 인(도장)을 가지고 나와서 땅을 해할 권세를 가진 네 천사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도장을 찍을 때까지) 땅을 해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계 7:1~8)
우리는 믿음으로 인침을 받은 자 …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서류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그 재산이 법적으로 보호받듯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도장이 찍혀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하나님의 보호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 정기홍, 『새롭게 할 성령론』 (서울 : 좋은 땅, 2011), p.95. 참조. >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도장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염려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안 됩니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잡아 흔듭니다. 마귀가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사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마귀가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거 좋아하겠습니까?
마귀가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거 좋아하겠습니까?
‘조지 바나’라는 사람이 쓴 책 제목이 “변해가는 세상과 세대에 변하지 않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는데 세상과 세대는 변합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복음을 변하는 세상과 세대에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에게 우리 정신 바짝 차리고 목회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 기준이 바뀌고 세상 풍조가 바뀌어도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 가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찬송가 490장 3절을 함께 부릅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헤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그리고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에는 수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항상 주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드리십시오.
주님을 위해 일한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5:58, 쉬운성경)
여러분이 예수님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수고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오신 것 … 그것도 수고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정하고 시간을 내서 - 걸어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운전하고 … 오셨습니다.
먼 곳에서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밖에도 시간을 내고, 땀을 흘리고, 재능을 드리고, 땀 흘려 번 돈을 드리는 … 수고가 있습니다.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 / 할 수 있을 때 기쁨으로 감당하셔야 합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묶어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재능/시간 … 등을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빨리빨리 써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고 묵혀 두면 있는 것마저도 못쓰게 됩니다.
작년에 아주 편한 운동화를 선물 받았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 제 처형이 “그 운동화 왜 안신느냐고”묻더군요.
그래서 “아끼는 중”이라고 했더니 … 옆에 있던 제 큰 손자가 “아끼면 똥되는데 …”하더군요.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그 뒤로부터는 뭐 좀 아끼려고 하면 ‘아 이거 똥 된다고 했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분의 시간, 여러분의 재능, 여러분의 물질도 아끼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히말라야 설산(雪山)에는 ‘야명조(夜鳴鳥)’란 새가 있답니다.
이름을 풀어보면 ‘밤마다 우는 새’라는 뜻입니다.
야명조는 게을러서 집을 짓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밤만 되면 추위에 떨며 울면서 내일은 꼭 집을 짓겠다고 다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햇살이 비치고 추위를 느끼지 못하면 어젯밤의 고생과 결심을 잊어버리고 집을 짓지 않는답니다.
그러다 또 밤이 되면 추위에 울면서 ‘아침이 되면 집을 지어야지!’ 결심한답니다.
< 2014년 2월 11일, 국민일보 ‘기고 – 우리가 야명조는 아닐까’ 참조. >
야명조 같은 이들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일하라고 권하면 내년에, 다음에 하겠다고 합니다. 기회가 영원히 계속 있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평안하기 위하여 …
일터가 든든히 서기 위하여 … 학업에 열매를 맺기 위하여 …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
지금(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오늘) 해야 합니다.
지금(오늘) 하지 않으면 탄식할 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셨을 때 / 예배할 수 있을 때 / 교회 올 수 있을 때 / 찬양할 수 있을 때 /
헌금할 수 있을 때 …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셨을 때, 예배할 수 있을 때,
교회 올 수 있을 때, 찬양할 수 있을 때, 헌금할 수 있을 때, 봉사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