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한문학 「조라포청심각(助羅浦淸心閣)」 봄날 해상의 풍광을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조선중기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 1536~1594)은 1580년(선조13년) 봄 음력 2월과, 1590년 봄, 2차례나 경상감사(관찰사)로서 경상우도 거제도 수군진영을 순력(巡歷)하였다. 한시(漢詩) 「조라포운(助羅浦韻)」은 1590년 순력 때 지었고, 「조라포 청심각(助羅浦淸心閣)」은 1580년 순력 때, 現거제시 일운면 구조라에 있던 조라포(助羅浦) 수군진영의 청심각(淸心閣)이라는 누각에 쉬면서 그간의 회포를 담아 지은 칠언절구이다. 이 당시에 지은 거제도 관련 시편은 홍성민(洪聖民)의 시문집 『졸옹집(拙翁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졸옹집(拙翁集)』은 총10권 4책 목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 조라포(助羅浦) 수군 진영은 임진왜란 전까지는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에 위치했고 1604년 이후부터는 거제시 옥포 북쪽 조라포로 옮겨 갔다. 이 작품의 배경인 조라포 성은 일운면 구조라 수정봉 산중턱 경사진 골짜기에 있었던 포곡식 산성이었다. 남북 두 곳에 옹성 문지를 두었으며 중요 시점마다 치성을, 성벽 밖에는 외황을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조라포 성곽 높은 곳에 올라서면 멀리 대마도가 보이고 와현 해수욕장, 구조라 해수욕장, 해금강, 내도, 외도, 윤돌섬까지 명승지가 펼쳐져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봄날엔 여름보다 더 빛나는 푸른빛 윤슬이 온 누리를 드리우니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 경상도 관찰사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 1536~1594)은 순력(巡歷) 차, 1580년(선조13년) 봄 음력 2월에 웅천 안골포에서 배를 타고 가덕도 영등포(구영등) 수영지를 거쳐 율포(구율포) 옥포 지세포 조라포(구조라) 오아포 진영, 거제의 각종 누정과 각종 관아 건물(고현성), 명진리을 모두 순행하고 느낀 점을 시로 남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당포를 거쳐 고성으로 돌아갔다. 이후 두 번째 경상도 관찰사로, 거제도 방문인 1590년경 순력(巡歷) 때(時)에도 여러 편의 한시를 남겼다. 이후 귀양살이 도중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특사로 풀려나 대제학·호조판서를 역임하다가 전란 중 병사했다. 저서로 『졸옹집(拙翁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홍성민은 시를 지을 때 표현에 치중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문장은 경서를 근거로 삼고 옛 사적을 해박하게 인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경기도 여주 출신인 홍성민(洪聖民 1536~1594) 관찰사는 우리나라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식견이 풍부했던 분이다. 그는 조선 반도 삼면의 바다인 남해⋅서해⋅동해와 함경도 연안 북해는 물론, 1575년 명나라 사은사로 중국 발해만까지 두루 보고 다녔다. 또한 그는 현실을 통찰하고 개혁을 주장했던 뛰어난 인물이었다.
● 먼저 칠언절구 「조라포 청심각(助羅浦淸心閣)」의 운목(韻目)은 ‘庚’ 자(字)이고, 압운자는 ‘橫’, ‘明’, ‘旌’ 자(字)로 평기식이다. 그리고 칠언절구 「구조라운(助羅浦韻)」의 운목(韻目)은 ‘庚’ 자(字)이고, 압운자는 ‘明’, ‘橫’, ‘旌’ 자(字)로 평기식이다. 조라포 수군진영의 누각 ‘청심각(淸心閣)’에서 ‘淸心‘은 “마음을 깨끗이 하자”라는 의미이다.
* 참고로,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문종 원년 1450년 조라포(助羅浦)에다 지세포(知世浦)의 병선 2척과 오아포(吾兒浦)의 병선 3척을 나누어 정박시켜 수어(守禦)하고, 처치사(處置使) 군관(軍官) 1인으로 하여금 거느리고 수자리 살게 했다. 단종 1년 1453년부터 만호(萬戶)를 파견했고, 당포(唐浦)·오아포·옥포(玉浦)의 소맹선(小猛船) 각 1척씩을 이에 이속(移屬)시켰다. 세조3년 1457년 조라포 서쪽해변 장문에 석보를 쌓고 조라포 북쪽 봉우리에 후망을 설치했다. 성종 16년 1485년 보(堡) 확대 설치하고, 성종 21년 1490년 석성을 건설하였는데, 좌지(성의 방향)가 동향이었고, 둘레 2천2백 40척 동서길이 1천 9백 62척, 높이 13척, 남북너비 3백30척 보안에 우물 하나를 두었다. 수군만호 1명 배치, 성문 사이에 청심각(淸心閣)이라는 성루를 두었다. 곡식과 무기를 준비해 두는 군창(軍倉)과 우물이 마련되어 있어 지구전(持久戰)에 대비했다. 소관 군인은 약 280명, 지세포진과 일부 기병을 포함하여 합계 약600명이었다.
*「조라포 청심각(助羅浦淸心閣)」의 내용을 보면, 선생은 1590년 초봄 어느 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구조라성의 청심각(淸心閣) 누각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시(詩) 한편을 짓는다. 구조라성 작은 진영 누각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밝게 빛나는 흰 성가퀴에 바쁘게 변하는 봄날 해상의 변덕스런 날씨를 시각적으로 아주 아름답게 표현했다. 눈을 감으니 당시 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언어에 의한 이미지·시각 등의 회화적(시각적) 요소에 의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짤막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감동적인 시(詩)임이 틀림없다.
(1) 「조라포 청심각(助羅浦淸心閣)」 / 홍성민(洪聖民) 1580년 作.
滄溟三面亂山橫 넓은 바다 삼면에 수많은 산이 가로 놓여 있고
小閣高臨粉堞明 높게 위치한 작은 누각, 흰 성가퀴 밝게 빛나네.
海戍煙消春雨歇 변방 해상에 운무 사라지니 봄비 걷히고
風花無數撲行旌 무수히 날리는 가랑눈이 나열한 오색 깃발 때린다.
[주1] 성가퀴 :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장.
[주2] 청심각(淸心閣) : 구조라성 위쪽 작은 누각 이름.
*「구조라운(助羅浦韻)」의 내용을 보면, 예전에 관찰사로 조라성에 왔다가 이번엔 11년 만에 다시 방문한, 조라(구조라)성의 멋진 봄 풍경에,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맑은 봄날 햇빛에 일렁거리는 물결 빛이, 성곽 위 석회로 분칠한 성가퀴에 반사되어, 작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눈짓하는 것 같다. 그리고 조라城에 ’청심각(淸心閣)‘이 있고, 그 주위 성곽 둘레에 오색 깃발이 나부끼며 나를 보고 바삐 가지 말고 편안히 머물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고 읊었다.
(2) 「구조라운(助羅浦韻)」 / 홍성민(洪聖民) 구조라城에서 1590년 作.
煙花搖堞碧波明 성가퀴를 흔드는 봄날에 새하얀 푸른 물결이
靑眼還從海岳橫 정다운 눈짓으로 이어 따라와 바다와 산을 가로 지른다.
十一年回春二月 십일 년 만에 돌아 온 초봄 2월인데
天敎於此駐行旌 하늘은 어쨌든 줄지어 선 오색 깃발에 머물라 하네.
◉ 경상도 관찰사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 1536~1594)이 1580년과 1590년경 2차례 경상감사로 순력(巡歷)할 때 지은 거제도 관련 시(詩)는 「옥포수관루(玉浦受款樓)」, 「옥포 수관루 운(玉浦受款樓韻)」, 「제거제황취루(題巨濟黃翠樓)」고현성, 「차 거제 황취루(次巨濟黃翠樓)」, 「율포(栗浦)」, 「율포운(栗浦韻)」, 「차우수영(次右水營)」오아포(가배량), 「차우수영(次右水營)」오아포(가배량), 「차우병영동헌운(次右兵營東軒韻)」오아포(가배량)동헌, 「차우병영운(次右兵營韻)」오아포(가배량), 「영등포(永登浦)」구영등, 「영등포(永登浦)」, 「지세포운(知世浦韻)」, 「지세포(知世浦)잡시(雜詩)」, 「구조라운(助羅浦韻)」, 「조라포 청심각(助羅浦淸心閣)」, 「거제명진현(巨濟溟珍縣)」, 「거제동헌운(巨濟東軒韻)」고현성 관아, 등이 있다.
대부분 관찰사로서 영남의 바다와 수군진영의 풍경을 보고 느낀 점과 또한 순력하는 소회(所懷)를 아름답게 밝혀놓았다. 또한 그 당시 그가 경남 거제도 해안 바다를 따라 한 바퀴 순행한 후에 느낀 바를 표현하길, “경치가 뛰어나고 신선의 세계에 가까운 바닷가 산이 비단처럼 곱고, 옷소매가 바람에 나부끼는 즐거움에 세속의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고 소회를 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