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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망교회 2023년도 시리즈 설교1>
- 시리즈 주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4과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정리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설교 목적:
지금까지 세 차례의 설교를 정리하는 것이 이번 설교의 목표다. (1)성경이란 무엇인가? (2)성경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3)성경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세가지 질문이 그 동안 다룬 설교의 내용이다.
이 질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정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 내용들을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은 묵상이 가져다주는 유익이다. 묵상은 기존의 개념을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과정이다. 성경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묵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설교는 지난 세 차례 설교에 대한 묵상이며, 그 묵상의 결과로 태어났다.
설교 개요:
1. 성경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2. 성경을 쓴 사람들은 ‘누구’인가?
3.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4. 성경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는 무엇인가?
5.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1. 성경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우리 교회의 이인성 장로님이 들려주신 간증입니다.
그 간증은 장로님이 충청도 온양에서 신앙생활하실 때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빙과류 배달업을 하고 있었는데 바쁘게 하루를 지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장남이 온 몸에 열꽃 같은 두드러기가 나서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당장 병원으로 업고 가려는데 아들이 ‘아빠가 기도해 주시면 나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장로님은 당황하여 기도 준비를 한 후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한다고 기도생활도 못하고 지냈는데 아들이 이렇게 죽게 생겼다면서 통회자복하며 한 시간 동안 기도를 드린 후에 아들을 품에 안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곧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밤이 깊은데 새벽에 누가 대문을 두드립니다.
밖에 나가보니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입니다. 꿈에 이 집을 검은 천이 덮더니 큰 아들을 감아서 데려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무슨 일이 있지 않나 싶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장로님의 아내인 장은화 권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도 꿈을 꾸었다고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꿈에 검은 천이 큰 아들을 덮으려고 들어오더니 스르르 물러가더라는 것입니다.
이장로님은 얼른 아들의 방으로 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의 온 몸에 났던 붉은 발진이 온데간데없어지고 깨끗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이장로님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면서 기쁨과 소망으로 살아가노라고 고백하십니다.
이인성 장로님이 들려주신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한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참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좀더 자세히 들어보면 인생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의 길을 지나는 몸부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의 싹이 자라고 그 신앙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로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를 다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결국 성경말씀이 인생의 난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난제는 보통의 생각으로는 풀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왜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왜 죽는 것일까? 왜 이 세상은 이렇게 혼란스럽고 악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성경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2. 성경을 쓴 사람들은 ‘누구’인가?
성경을 쓴 사람들도 사실은 인생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라를 잃고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혼란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예언자 또는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예언자 또는 선지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던 구도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을 기억했습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부르셔서 열방의 복이 되게 하시려고 맺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면 그들이 저주를 받아 열방에게 종살이하게 되는 것을 예언자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그 언약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며,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해서 사망이 많은 사람에게 임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담처럼 온 세상의 축복이 되는 자리에 서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아담처럼 범죄하여 그 복된 땅에서 쫓겨나 ‘동쪽으로’ 끌려가 바벨론의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예언자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호세아 6:7).
그래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의 역사서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유대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이 이제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직접 다스리시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 제자들은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바로 그 선지자임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 중에 특별히 사도로 세움을 받은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후에 예수님에 대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이 옛적부터 약속하신 언약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으며, 이제부터는 혈통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 언약백성이 일어나 온 세상에 복이 될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도들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굳게 믿었으며, 그 약속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마침내 성취되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사도들은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하신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성취되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며 새 언약백성임을 깨달았습니다.
전에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일하신 하나님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게 말씀하신다고 사도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쓴 예수님의 이야기와 교회들에 보내기 위해서 쓴 편지들은 모두 구약성경의 전통과 약속을 이은 것이며 그 언약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장차 어떻게 완성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타나크라는 구약성경과 함께 사도들의 편지와 글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확신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신약성경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들의 위치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20
3.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러면 성경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길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인생의 난제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생의 난제는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생의 난제는 삶과 죽음, 그리고 고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난제에 대한 대답을 줍니다. 그것은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을 읽고 배우며 묵상하는 사람이 발견하는 인생의 해답입니다.
우리 교회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방효천 선교사님이 이번 주중에 들려주신 간증을 소개하겠습니다:
방효천 선교사님은 요즈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목숨을 다 바쳐 주님을 섬기겠습니다’라는 기도입니다. 방 목사님은 감리교회 목회자로서 정년퇴임을 하신 후에 선교사로 활동 중입니다. 당신이 왜 요새 그런 기도를 드리는지 간증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어린 시절 방효천 목사님 가정은 충청도 태안에서 삼촌 때문에 반동분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처형일자는 9월 29일로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처형 하루 전날 서울이 수복되어 공산군들은 모두 물러가고 가족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것이 첫번째로 목숨을 건진 일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방효천 목사님은 기골이 장대하고 태권도를 연마하여 기운도 세고 싸움도 잘했습니다. 그래서 폭력배들과 일년 동안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이제 죽나 보다 생각이 들었는데, 교회에 가면 병이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교회에는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없이 어떤 장로님이 예배를 인도하시는데 그 첫날 은혜를 받고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교회당에 열심히 다니는데 하루하루 몸이 좋아지더니 완전히 병이 나았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위기에서 두 번이나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후로 목회자가 되어 세 곳의 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하고 신현균 목사님과 같은 분들과 함께 부흥사로 섬겼습니다. 그렇게 목회를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 후에 선교사로서 선교지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두번씩이나 나의 목숨을 건져주셨을까? 나는 왜 지금까지 이 귀한 은혜를 잊고 지냈을까?’ 하는 깨달음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방효천 목사님은 죽도록 충성하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고 고백하십니다.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고 묵상하는 삶이 가져오는 유익이 이것입니다.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눈으로 평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 안락한 삶을 살아도 될텐데 전기도 물도 없는 오지에서 교회를 일구고 길을 닦으며 선교지를 개척하는 노구의 선교사님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청년시절에 할 법한 그런 뜨거운 고백입니다. 이것이 성경말씀이 인생에게 주는 유익 중에 하나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4. 성경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 줄거리를 5막의 드라마로 요약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으로서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사도 바울이 깨달은 비밀이기도 하며,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은 목적도 바로 이 비밀의 경륜을 온 세상에 드러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엡 3:9).
하나님의 경륜은 본래 하나님 안에 감추인 비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계시되었습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5막의 드라마를 다섯 개의 단어로 정리하면 창조, 타락, 이스라엘, 예수님, 그리고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 줄거리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지으셨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맡은 본분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면서 우리는 우리가 바로 아담처럼 하나님의 동산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새롭게 지음을 받았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새 언약백성임을 깨닫습니다. 전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만이 이 언약의 상속자가 되었는데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란 하나님이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택하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새 창조 사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직임을 받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한 나라의 장관이 되는 것도 영광스러운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것이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린 단군 왕검의 후예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고조선의 건국이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통해서 홍익인간의 이념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핵심인 하나님의 경륜을 배움으로 인간은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히 정하고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실현되고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을 인간의 구원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결국 이 세상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고 저는 우려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빛 가운데서 보면 매우 편협하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통하여 성경을 바르게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금년에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그것이 지난 주일에 드린 말씀입니다.
5.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먼저 큰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작은 이야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작은 이야기들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자기 상황에 맞추지 않고 성경의 빛으로 자기 상황을 비추어 바른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가 과연 이 세상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의 정신을 큰 맥락에서 파악하여 그 보편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부 구절을 확대해석하여 편협한 생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마다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원리주의자들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신앙인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세계평화에 가장 위험한 집단임은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지난 2001년 뉴욕에서 일어난 9ㆍ11테러는 알 카에다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계는 그만큼 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원인이 바로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이런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계획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지식은 고인물이 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소통하는 지식이 되어 생명이 숨쉬고 자라는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듣고 질문하고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함께 성경을 읽고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성경에 대하여 설교를 듣는 것도 유익이지만 한 두마디의 대화나 토론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금방 밝혀지게 됩니다. 그런 대화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더 연구하고픈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구도의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대화가 좋은 이유는 사람의 생각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양적 유교문화의 전통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웃어른의 말씀을 무겁게 듣고 받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존경과 존중은 좋은 것인데 그 역효과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의 생각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조용한 가정을 만드는 데는 유익할 지 몰라도 생기 없는 가정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성경읽기를 통해서 성경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가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품격과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추어야 할 그 품격과 실력이란 관용과 포용이며, 선한 일을 위한 헌신과 연대입니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고 그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이 바로 이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구약성경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음 주 설교를 위한 추천 동영상:
구약/타나크 개요: https://youtu.be/-nbwEZJSv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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