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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제 6 장 5장의 말씀으로 믿음이 됐는가?
그동안 마태복음 5장 말씀을 나누었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살
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가? 이미 들으신 말씀들을 과연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하고 권위를 두고 따
르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이미 드렸던 말씀을 나누어 보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함이 되지 않는다면 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애통의 마음과 믿음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말씀을 아무리 전한다 한들
뭐하겠습니까? 그렇잖습니까? 중심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듣는 귀만 커져서 나도 안다는 말만
가진 것이 될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만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이 참으로 예수님 사랑해서 믿는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말이
지요, 사단이 완전히 장악한 시대가 되어서 발전하는 세상의 힘으로 믿는 자들의 발목을 잡아 믿
음에 서지 못하도록 하는 때가 확실히 되었습니다. 사단이 어마어마한 간계를 가지고 미혹의 역사
를 펴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입으로 '예수님
사랑해요' 이따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능력이 되었는가를 말합니다. 오늘날 믿음이
라는 것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해서 믿는 예수님이 아니면 예수님과 관계없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면 예수님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인격적 관계라는 것이 무엇입니
까? 사랑해서 존중하여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
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존중해서 따르는 자를 예수님께서 사랑
하시는 것이지 무조건 사랑하신다 하는 것 아닙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신 것이지만 예수님과 온전한 사귐으로 사랑하는 관계,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내가 또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말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면 내 목숨도 내드
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참으로 마음과 뜻을 다해 따르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구주요
나의 왕으로 대접해드리는 것, 자든지 깨든지, 먹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
차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맛을 내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유, 오직 예수님께 두는 것입
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여러분
의 신랑입니까? 여러분이 신랑의 신부이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관계가 되었음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이 참으로 신부 맞습니까? 예수님 안에 들어간 신부 맞느냐는 말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신부인 자기 안에 와계신 관계가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갔으면 내가 예수님과 함
께입니까, 아닙니까? 함께입니다. 또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으면 예수님과 나와 함께입니까,
아닙니까? 함께입니다.
계 3:20에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으니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함께 가 되어서, '함께'라는 것은
헬라어로 '프로스'라고 하는데 '프로스는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신랑의 뜻으로 하나
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신랑을 사랑하는 증거요, 존중하는 증거요, 신랑이 있는 곳에 신
부이면 반드시 '프로스'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간 것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갔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다면 이것만큼 확실한
관계가 어디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나로 인하여 기쁘고 배부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영혼이 떠나시기 전 '내가 목마르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맞아 영접하
는 자가 그리 없어서, 예수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믿는 자가 그리 없어서 그때는 예수님께서 목마르
다 하셨지만 이제는 성영님으로 우리 안에 오셨으니 그 예수님으로 내가 배부르게 목마르지 않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관계가 된 이것
만큼 더 확실한 관계가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무엇을 먹여드려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엄청난 승리와 천국을 믿는 자에게 주셨고 그 천국의 온갖 진수성
찬을 날마다 먹여주십니다. 자신을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먹은 믿음이면 당연히 예수님
과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말과 행동과 삶으로 배어 나오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
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먹여드리는 것입니다.
얼마(12년 5월)에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어느 분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의 부탁이 있었
습니다. 앞으로 경제가 많이 어려워진다는 예언의 말들이 많은데,(본인 스스로가 그 말들을 받아
들여 마음이 불안에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
이지요. 종말의 징조로 나타나게 되는 곡물이든지 유가를 보더라도 그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싶
은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지 알려주시면 좋겠다, 다시 말해 이런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금 이 일로 불안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을 테니 목사님이
설교를 한번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어야 할 일이면 자기 자신은 겪어내겠지만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미래를 알고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 하겠지요, 미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불확실하
고 불투명하다 보니 걱정이 되었겠지요. 그런데 저의 입장에서는 이분의 말을 듣고 솔직히 갑갑했
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구주요 신랑 되시는 그 믿음에 있지 않고 도대체 믿음을
어디에다 두고 있는가 싶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저의 믿음을
그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전화상으로 여러 말 하기도 그렇고 하여 갑갑한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늘날 사람들의 믿음이 다 이런 식의 막연함에 있습니다. 기독교가 믿는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 흘러왔다는 것을 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제가 보는 관점은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앞으로도 물론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관계로 사는 것이기에 경제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 염려
해본 적 0.1%도 없습니다. 저는 누가 경제가 어렵다, 좋아진다, 어떻다 하는 이런 세상 경제 운운하
는 것들 귓가에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뜻을 이루시는 데는 인
간 경제가 어려워야 할 일이면 어려워야 할 것이요, 또 경제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상관없게 하실
것이요, 아버지의 자녀라면 아버지 나라에 부르실 때까지 아버지가 책임져주실 것이기에 그런 설교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참으로 가당치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내게 아무것도 없다 해도, 내가 예수
님(삼위의 하나님)이 오셔 계신 성전이니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내일 어떻게 될까 고민해본 적도
없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저의 믿음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요 주인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된 하나님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
시는 것에 능력 없는 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 내가 사는 동안에 내 삶을 책임지
신다는 것을 백 프로 믿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책임져주지 않는 아버지시라면 저는 그 하나님 믿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 하나 책임져 줄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나님이며 아버지시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믿는 하나님은 백 프로 책임지시는 아버지요 저는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 와계시다면 도대체 무슨 세상 말을 받아들여서 경제를 염려합니까? 염려로 키
를 한 자 더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우리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우리를 돌보시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는데
그 믿음만 확실하다면 무엇을 더 고민하는 것입니까? 정말 사람들이 믿는다 해도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밖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요사이 제가 많은 부분을 통해서 여실히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믿음을 위해 사십시오. 믿음을 위해 사십시오! 자녀들에게도 예수님의 믿음을 말
하십시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우리 인생이 가져야 하는 소망은 땅의 것들
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영원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땅에 왔으니 자녀들에게도 그같
이 믿음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어려서부터
그 믿음을 말하십시오! '아이가 알아들을까?' 아니요! 성영님이 함께 하시니 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영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터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믿음이 분명하고 확실하다면, 성영님이 함께 하시고 확실히 도우십니다. 믿는다는 부모가
하나님의 뜻 앞에서 좌지우지 우왕자왕 하며 세상의 것들을 붙잡으며 믿는다 하고 있기 때문에 믿
음의 중심이 없단 말입니다. 그같이 믿음을 자녀들에게 잘못 보이고 있어서, 귀신들이 자녀들의
믿음을 노략질하도록 하고 있음으로써 오늘날 자녀들도 똑같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의 염려가 중심이 되어 있는 부모들의 믿음 상태로 인해 오히려 자녀들이 믿음으로 들
어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믿기로 시작했어도 핑계하지 마십시오. 누가 비위 맞춰줄 것 바
라지 마십시오. 자기가 죽느냐 사느냐입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입니다. 이제 믿기 시작했어도
오래되었어도 다 믿음으로 사십시오. 성영님을 모시고 말씀을 사랑하여 따르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열심을 품으십시오.
제가 산상의 말씀은 마태복음의 모든 말씀도 그렇고 사실 2008년도까지 이미 다 전했던 것인데 재
차 하잖습니까? 영상이 필요해서 다시 하는 것이 있지만 산상의 말씀을 지금 한다는 것이 너무 때
늦은 것이라고 성영님께서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세월이 오년 이상이 되었으면 누구
나 이 산상의 말씀은 이미 삶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때는 지나
갔다고 하셨습니다. 믿는다면 이미 다 말씀의 능력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성영님
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이 믿음이 돼 있지 않는 자, 예수님을 사랑해서 믿는 것이 아닌 자
들에게 임할 일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만 말씀하시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여 믿는 것
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니 말씀으로 영혼의 몸을 이룬 성소요, 성전이 돼야 함에도
그 믿음의 능력은 없고 여전히 세상(사단)에게 마음이 붙들려 있어 돌이킬 능력이 없다고 하셨습니
다. 성경이 없어진다 해도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이 자기 안에 있으면 그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세워진 온전한 믿음의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뒤늦은 때에라도 주신 기회라 여긴다면 마태복음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참믿
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신을 비추고 말씀을 자기 영혼의 생명으로 받고 그 능력에 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자는 말입니다.
제가 1997년도에 TV 방송에서 최ㅇㅇ이라고 하는 중년 여성의 인터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일가족
17명이 탈북을 한 이야기로 탈북 과정이 44일 걸렸고 거기에 임산부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두
려울 때는 어떤 방법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었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 탈북 과정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온 가족이 이제 다 끝이 났구나 하는 절망적인 순간 때마다 기도를 드렸다'고 하
자 기자가 '누구에게 기도를 했느냐' 물으니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북한
은 종교를 용납하지 않고 종교성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나?'묻자 '초등
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아이가 교회를 다녔는데 그 아이가 일요일이면 학교에 안 나왔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아이가 교회에 다니지 못하도록 나보고 그 집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
래서 가서 보면 그 집 식구들이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몇 번 보아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뒤 6.25 전쟁이 났는데 폭격과 총성이 너무 무서워서 나도 그 아이 집에서 본 그대로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총 맞지 않게,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 뒤로도 그렇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계속 기도했었다. 탈북할 때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입국했는데, 중국에도 종교 자유가
없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기도할 때 손 모으던 것을 안 하고 모든 가족이 다 엎드려서 기도
했었다. 그런데 진짜 신비롭게 일이 기도한 대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밤에 배 타고 바다를 건널
때 북한군 배가 자기들의 배를 찾으려고 라이트를 사방을 비추며 쫓아왔는데 자신들의 탄 배가 바
로 옆에 있었음에도 배를 못 보고 그냥 지나쳐 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려주셨다 그런
위기 때마다 가려주셨다는 엄청난 기적들을 많이 보았다고 하는 말을 제가 감격하며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여러분의 믿음을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존재하시
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까? 안한 것입니까?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위기 때마다 기도를 통
하여 분명히 확실히 경험했습니다. 참으로 극적인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신
것을 확실히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남한에서 교회 나가는 기독교 가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누구보다 크게 경험했으니 그 경험을 보아 '구원을 받은 것이구나'하
는 것입니까? 아니라는 것 확실합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에게, 구원받았으니까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지 구원받지 않았는데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기도 들어 주시는 것이냐? 하나
님을 믿으니까 구원받은 것 아니냐?'하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가족의 상황은 구원과는 관계없습니
다. 이 관계는 하나님께서 사시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경험한 일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이신 성경을 통하여 자기의 실체를 알고, 뜻을 알고, 삼위 하나님을 아는 관계가 되고 참된 회개를
거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과정을 인격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오늘 예로 든 것과 같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경우는 허다합니
다. 구원받지 않았어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살아계심을 체험
케 하십니다. 영적인 것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체험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
는 정도의 관계에 머물러서 그것이 믿음인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고 성영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도 마음에 변화가 참으로 일어나
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성영님이 깨닫게 하시는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 하니까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아! 나 하나님 믿어요, 아! 나 예수님 믿어요'하는 것을 말하는 줄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지식을 거쳐야 하고 삼위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뤄야 하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 온전한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힘써 말씀을 통하여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된 믿
음으로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한 몸 된 믿음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 5:21-26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화해가 되었으면 그 뒤에 곧 가서 누구와 화해해야
합니까? 이웃 누구예요? 나에게 해 끼친 것은 내가 용서하고 원망을 풀면 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내 쪽에서 해를 끼쳤음으로써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으면 가서 그들과 사화를 청하여 화해를 이루
라 하신 것 아닙니까, 해 끼친 것으로 이웃에게 원망들을 일이 있으면 예수님과도 관계가 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웃이라고 하는 것은 나 외에 모든 사람입니다. 우선이 가족이 될 수가 있겠
지요. 이웃이라 하니까 내 가족 외에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 줄로 들을까 또 순간 염려되어 말씀
드립니다.
물론 신앙 생활하신 지는 대부분 다 오래되었으니 이미 예수님의 말씀들에 걸려있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다 능력 갖추었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 산상의 말씀을 지금 말한다는 것은 때가 아니라고,
때에 맞는 말씀 드리는 것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만일에 신앙생활이 오래된 사람이 예수님의 이같
은 말씀들에 걸려있다면 예수님과 화해가 되었을까요? 그가 구원받은 영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했어요. 해 끼쳤으므로 원망 듣고 있다면 하나님과 화해되지 않았다는 것 분명히 알기
바랍니다.
제가 처음 교회 나와 일 년 조금 넘었을 때 내 쪽에서 해를 끼쳤으므로 원망들을 만한 것이 생각나
거든 가서 사화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목사님이 어느 예배 때 '원수 맺지 말라, 사람
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했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즉시
교회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기로 달려갔습니다. 나 자신이 남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했다거나 원
수 관계에 있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지만 내 남편은 그때 당시 미운 마음이 컸던 때이긴 했으나 그
외는 그다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책임을 아는 사람이고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 아주 싫어했고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
주거나 피해를 끼치거나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풀고 해야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로 달려갔던 것은 친정 오빠 때문이었습니다. 오빠 내외가 부모님의 재
산을 상속받을 때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잘 모시는 조건으로 딸들이 그 재산 상속을 포기하고 오
빠 내외에게 다 넘겨주었는데 이후 어머니 마음을 아주 힘들게 하는 겁니다. 하여 마음이 늘 불편했
었는데 어느 때 가족이 모이는 기회가 있어서 어머니 마음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아주 어려운 이야
기를 제가 했습니다. 그때 오빠가 대번에 '출가외인인 네가 뭔데 간섭이냐'하며 순간 저의 뺨에 손
이 날라왔습니다. 그리고 험한 말과 이해 못 할 행동을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처음으로 오빠에게서 그런 행동을 본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했지
만 참고 그 상황을 피해 나왔습니다. 뒤에 생각할수록 억울했어요. 결혼한 동생에게 어떻게 그렇게
몰상식한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매우 기분이 언짢고 불쾌한 생각이 영 가시질 않았습니다. 전
혀 볼 수 없었던 행동을 했다는 것에 더 맘이 불편하고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후에 내가 예수
님을 믿기 때문에 내 믿음을 시험하러 들어온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빠에게 전화
한 것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 뒤에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 한쪽에선 너 잘못 한 것 아니잖아! 무엇 때문에 네가 사과를 하느냐는 것이 있었지만 무조
건 전화를 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미워하고 싶지 않아 사화를 청한다고, 내가 잘못했
다고 말하니 오빠도 '내가 잘못했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억울한 것을 억울
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이라고 했을 때 그쪽도 수그리고 들어와 관계가 열리더라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 믿은 지 일 년 후부터 말씀이 들려지는 것은 실천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미운
마음 두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는 것입니다. 미운 마음이 들어와도 순간이지 성영님께서 허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옳지 않다는 것 알기 때문에 제가 그런 것에서 깨끗이 놓여난 능력이
되었습니다. 마음에다 그런 쓰레기들을 두고 성영님이 계시지 못하게 할 담대함은 제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로 믿고 구원 얻기 원하면 어느 누구와도 원망들을 일이나 미움으로 담을 두
었어는 안됩니다. 그런 것으로 인해 영적으로 막히고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어서 예수님과 화목
의 관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천국을 소유하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자
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하자는 말입니다. 원칙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안 될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재확인을 위해 하는 이 말씀에 걸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다음 5:27-32의 말씀에선 무엇을 가르침 받았습니까, 누가 설명 해보실까요, 단순치 않은 답을
설명하려니 좀 어렵지요? 음욕을 품지 말라는 것이지요. 음행하면 이혼 증서 써 줄 수 있다는 것
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본뜻으로 바로 들어가 봅니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
든 하는 것은 오른쪽은 하나님 쪽입니다. 오른손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네 마음에 품은 음욕으로 하나님에게서 실족케 하거든 그 말입니다. 참고로 왼쪽은 사단 쪽입니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믿으려)면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집중하여 따르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예수님의 사람이어야 함에도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사단 쪽
의 것들을 마음에 품고 부르는 것은 왜냐? 세상에다 마음을 두고 그것을 부르는 것은 왜냐? 보기
때문이냐?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실족케 하는 세상이요 사단의 것이니, 지옥에 던져지는 것
이니 네 눈이 봄으로써 네 손이 하는 것 때문에 세상 정욕을 품고 부르는 것이면 차라리 오른눈을
빼어 내버리라 오른손을 찍어 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보는 것 때문에, 하는 것 때문에 사단의 것인 세상을 마음에 품는 것이면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니
차라리 볼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낫다, 마음이 세상 것에 끌려가면 그것은 음욕이요, 사단과의
간음이요, 다시 말해 세상이 원하는 명예나, 권세나 부귀를 원하는 것이면, 마음이 재물에 있으면
그것은 마음에 이미 음욕을 품은 것이니 온몸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차라리 오른눈 빼버리고 지
옥 가지 않는 것이 낫다. 만일 네가 하는 일 때문이면 차라리 오른손을 찍어 버리라 온몸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손 찍어 내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절대적으로 삼위 되신 하나님만 계시고 사랑해야 되는 것이지 세
상 사랑함이 마음에 있으면 그것은 음욕이요, 간음이니 하나님께서 이 같은 음욕을 품은 자는 구원
하신다 하셨습니까? 구원과 상관없습니다. 부부간에도 아내가 음행한 연고면 이혼 증서 써 주고 버
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버려도 된다고 하신 것을 좀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버리는 것 왜 버
립니까? 쓸모 없으니 버립니다. 쓰레기니 버립니다. 그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음행한 연
고면 그와 같이 버리신다는 뜻입니다. 지금 자기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 눈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마음에 세상의 것을 붙잡고 있는가?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세상 뒤돌
아보고 있는가? 자기 마음을 보라는 말입니다. 음욕을 품고 그것을 이루어 보려고 나에게 오라고
부르고 있는가 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음욕은 하나님께서 버린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 것을 얻으려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내일로 미루면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떡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늘 즉시 행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오셔도 내일 오셔도 상관
없이 맞을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오늘 죽어 세상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
으니 어떤 방법으로도 지옥에서 나올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입니다. 눈 빼 버리세요. 손 찍어
내 버리세요. 지금까지 세상 사랑하고 세상 붙들고 있던 것 다 빼버리고 찍어 버리시고 놓으세요.
믿는다고 예수님 이름 부르는 자가 간음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세상 명예 얻
으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세상 자랑을 얻으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세상 영광 얻으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돈을 좇아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것은 다 간음입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욕심을
품은 것 간음입니다. 세상 것, 자기 육체를 섬기는 것, 육체의 것 집착하는 것이 간음입니다.
그 마음에 음욕을 품고 있다는 것이 밖으로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은 곧 그 마음에 품은 것들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그 같이 사람들을 또 간음하는 길로 오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영적 간음은 곧 남녀 간의 육체적 간음으로도 나타납니다. 세
상은 어차피 음란과 음행의 죄가 하늘을 덮었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세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지에 대하여 감각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간음을 행하는 자들은
자기 몸 안에 죄를 쌓는 것으로 지옥의 그 형벌이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직 예수
님만 사랑하고 삼위일체 하나님만 알기를 원하는 소원을 품고 열심을 다해 행하기 바랍니다.
그다음 38-48까지의 가르침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했지만 예수
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마라입니다. 율법을 주신 근본 의도는 똑같이 갚을 수 없는 인간의 약함과
죄성을 보라는 데 있는 것이지 하라는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1-26까지는 내가 해 끼친 자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가르침이었다면 여기서는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일로 인하여 믿지 않는 자를 통
해 믿음의 시험이 들어올 때, 해 끼쳐오는 것 등이 있을 때를 말씀하신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라
고 하셨습니까, 똑같이 갚아주라 입니까? 보복지 말고 대적지 말라 하신 것, 여러분이 이 가르침을
아멘으로 받았습니까? 그렇다고 비굴하게 빌빌대며 죄짓는 곳에 질질 끌려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는 당당해야 합니다. 죄와 세상과는 타협하라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사단이
진짜 믿는 것인가 시험하러 들어온다고 했잖습니까?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하신 우리의 속옷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이요 탐욕이라는 것 다 동의 하십니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인간은 모두가 다
사단의 지배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나간 인간은 육체 안에 사단을 담고
사단의 성품으로 자라났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킨 사단의 교만
과 탐욕이 심어져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사단의 교만과 탐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은 영혼에 성영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에 그같이
사단의 성품인 교만과 탐욕이 있는지 시험이 들어올 때 속옷 가지고자 하는 사단에게 다 내 줘버리
라 시험이 들어오면 자꾸 맞서서 대적지 말고 사단의 것이니 사단의 것으로 넘겨 줘버리라. 속옷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즉 세상으로 옷 입었던 것도 다 가지도록 넘겨주라는 말씀이었다는 것
여러분이 동의하시고 사단의 것으로 넘겨준 것이 되었습니까?
또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신 것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 믿게 하려면 사단의 소유물이었던 것들은 다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
니다. 뺏기지 않으려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맞서서 물고 찢고 분쟁하고 싸우는 것은 이미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요 사단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것이 된다는 것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 사
단이 주인이었던 모든 것, 자기 것입니까? 사단의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 물고 들어온다면, 시비가
들어온다면 우리 믿음은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 여러분이 받으시고 능력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취하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의 말씀으로 믿음의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능력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낡은 부대에다 새것을 절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땅이 하늘 될 수 없고 하늘이 땅이 될
수 없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들어갈 아버지 집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점도 흠도 없는, 영
과 혼과 육이 온전히 흠 없는 예수님의 신부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로 해 끼치
러 오는 원수, 인간적으로 볼 때는 원수와 같지만 그러나 사람을 원수 삼으라 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이 원수로서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결박하여 물리
치는 것이지만,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원 얻게 하려는 것에 모든 뜻을 두고 지혜를 구하
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웃이 곤경에 처하여 도움을 청하거나 어려움을 호소하면 외면하지 말라 네가 힘이 되는 대로
돕고, 내게 있는 것으로 베풀 때에 그 영혼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된다는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여러분이 말입니다. 누구에게든지 보증을 서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도 망
하고 자신도 망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 빌리자고 하는 사람이
생계에 어려움이 없는 경우라면 돈을 빌려주는 것 하지 마십시오. 만일에 빌려주겠거든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빌려주십시오. 내가 넉넉하면 가난한 이웃이야 외면하면 안 되지만,
욕심을 가진 것에는 돈거래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5장의 말씀으로 사는 믿음이 되었는가 각자의 믿음을 점검해보자는 뜻에서 말씀을
다시 나누게 되었는데 암튼 여러분이 자기 믿음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라는 것 말씀을 드리면서
이로써 마칩니다. 우리에게 복 주고 복 주시기를 원하는 아버지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제 6 장 5장의 말씀으로 믿음이 됐는가?.p129-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