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수스 교회에서 나오자 비가 더 내리기 시작해 바로 옆에 있는 숙소로 돌아온다. 호텔 로비에 있던 동갑내기 부부들이 어디 갔다 왔냐고 하기에 주위를 좀 돌아보고 왔다고 하니 같이 나가자고 한다. 조금 기다리니 햇볕이 난다. 고산지역의 날씨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쿠스코의 날씨도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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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각 돌 유적으로 가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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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각 돌 유적으로 가는 골목의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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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카의 12각 돌
이들과 함께 다시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을 돌아보고 잉카제국의 또 다른 흔적인 12각 돌을 보기 위해 아르마스 광장 뒤쪽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약간 경사진 길을 10분 쯤 걸어가니 돌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 돌담 벽에 그 유명한 12각의 돌이 있다. 잉카 제국의 발달된 여러 문명과 기술 중에서도 정교한 건축 솜씨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로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잉카의 돌담이라는데 조그마한 틈새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아귀를 맞추어 촘촘히 쌓아 올린 벽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에도 처음 모습 그대로 요지부동이며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다. 똑같은 모양의 벽돌을 일렬로 맞춰 쌓는 현대의 방식과 다르게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돌들을 조금씩 엇갈리게 쌓으면서도 틈새를 정확히 맞춘 덕에 더더욱 굳건하게 느껴진다. 6각, 8각 등 바위의 생긴 모양대로 각을 맞추어 쌓은 아름다운 돌담을 따라 역시 돌을 깔아 조성한 길 위를 걸으니 도시 그 자체가 귀한 유적인 듯하다. 이 중 가장 많은 각으로 이루어져 여러 돌들과 접착하고 있는 돌이 바로 12각의 돌이다. 부근에 많은 각들로 이루어진 돌들이 여러 개 있어 찾을 수 있을까 조바심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워낙 명물이 되어 버린 덕에 늘 12각의 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 우리도 순서를 기다려 각자 멋진 포즈로 기념 촬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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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축일 행렬
12각 돌을 구경하고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고적대 음악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고적대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천주교 성직자가 따르고 그 뒤엔 청년 수십 명이 천주교 성인 상을 어깨에 메고 행진을 하고 있다. 성인 상의 무게가 상당한지 건장한 청년 30여 명이 메었는데도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으니 스페인에서 유래한 성축일 행사로 동네 성당을 중심으로 1주일 동안 지속되는데 성자 상을 메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한단다. 성인 상이 지나가는 골목 곳곳에서는 폭죽을 미리 설치했다가 성인 상이 지나가면 폭죽을 터뜨리는데 폭죽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구경하는 사람들이 놀라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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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 도밍고 성당으로 가는 도중의 잉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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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부분은 잉카인들이 쌓은 돌담, 윗부분은 스페인인들이 쌓은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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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 도밍고 교회(Qoricancha y Santo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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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 도밍고 성당 뒷편 태양제가 열렸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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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랑에 있는 성화
산 아구스틴 거리(Calle San Agustin)를 따라 산토 도밍고 교회(Qoricancha y Santo Domingo)로 간다. 12각 돌에서 걸어서 10분 쯤 걸어가니 우측에 산토 도밍고 교회가 보인다. 1950년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자시 지은 이 교회는 신과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파괴와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스페인 침략자들의 대표적인 약탈적 현장이 바로 태양의 신전과 산토 도밍고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피사로와 스페인 군대가 처음 쿠스코에 왔을 때 태양이 반사되어 빛나는 황금의 신전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며 실제 잉카 시대에는 문과 지붕 등이 황금으로 덮여 있어 '신전 자체가 눈부시게 황금빛으로 빛났다'라고 당시 스페인의 기록 문헌에 묘사되어져있다고 한다. 사실 이곳을 점령한 정복자들은 스페인의 정식 군대가 아니라 용병들로 피사로가 돈을 벌면 지분을 나눠 주기로 하고 모집한 다시 말하면 목숨을 걸고 돈을 벌러 간 강도들이었다. 강도들 앞에 나타난 태양의 신전의 황금에 눈이 뒤집힌 강도들에겐 황금은 약탈할 좋은 물건 이외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곧 신전의 안팎을 장식하고 있던 황금을 모두 약탈하고 신전을 부순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산토 도밍고 교회인데 너무 견고히 만들어져 부수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태양의 신전은 산토 도밍고 교회 앞에 남아 있는 거대한 신전 터와 일부 돌담만이 남아 옛 모습을 추측하게 한다. 산토 도밍고 교회 바깥과 내부에 일부 남아 있는 돌담은 스페인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표면까지 정교히 다듬어져 물샐 틈 없이 쌓아 올려져 있으며, 1650년과 1950년의 대지진 당시에도 벽돌로 지은 산토 도밍고 교회는 무너졌지만 돌담은 견실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이다. 내 눈에도 스페인이 쌓아올린 석벽의 모양은 잉카인이 쌓은 석벽에 비하면 훨씬 조잡한 게 한눈에 보인다. 산토 도밍고 교회는 동시대에 지어진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웅장한 바로크 양식에 내부는 아름다운 제단으로 꾸며져 있고 유럽식 회랑에는 성화가 걸려 있어 나름 멋져 보이지만 약탈의 현장에 있는 제단과 성화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나의 신이 소중하면 남의 신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하거늘 남의 것을 빼앗아 내 신에게 봉양하는 그들의 무지함과 종교적 독선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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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칸차(태양의 신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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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신이 마셨다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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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칸차(태양의 신전) 박물관 1층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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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칸차(태양의 신전) 박물관 내부
태양의 신전 안에는 역시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여러 방들과 장식대가 있으며 안뜰에는 축제 때 술로 가득 채워졌다는 우물이 남아 있었다. 한편 태양의 신전 터가 남아 있는 앞 광장에는 코리칸차 박물관(Museo de Sitio del Qoricancha)이 있는데 이곳에서 잉카 제국의 유물들과 외과 수술이 행해진 해골들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볼 곳이 많은데 시간은 없고 해서 산 프란시스코 성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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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프란시스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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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프란시스코 성당
코리칸차에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되돌아 와 아르마스 광장에서 마르케스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걷다보니 작은 광장(산 프란스시코 광장)이 나오고 광장 한쪽에 산 프란시스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이 보인다. 대성당에 버금가는 크기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은 대성당이나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제되고 별다른 꾸밈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 화려한 교회의 모습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성당이라기보다는 수도원처럼 보인다. 실제로 성당 좌측에는 수도원이 함께 존재하며 엄격한 수도회의 규율에 따라 수양하는 수도회 사람들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 보니 여러 제단과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는 가운데, 폭이 12m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과 인골로 만들었다는 촛대가 눈길을 끈다. 성당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저 인골은 이곳 원주민인 잉카인들의 인골일까? 아니면 스페인 성직자의 인골일까? 성당을 구경하면서 자꾸만 스페인 침략자들의 손에 죽어간 잉카인들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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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프란시스코성당에서 산 페드로 시장 가는 길에 있는 산타 클라라 아치(Arch de Santa Cl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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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프란시스코성당에서 산 페드로 시장 가는 길에 있는 산타 클라라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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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페드로 시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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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페드로 시장 내부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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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페드로 시장에서 남미 옥수수를 산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 더 가니 쿠스코의 중앙시장(Cuzco Mercado Central)이 나온다. 여행을 하면서 시장을 둘러보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 중 하나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물건과 음식을 파는 상인들이 밀집해 있는 재래시장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먹음직한 색색의 과일과 잡곡부터 없는 부위가 없는 온갖 종류의 육류, 싱싱한 화초까지 다양하게 취급하는 각종 상점들이 즐비해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상인들이 인디오 원주민들로 잉카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시장을 이리저리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한편, 시장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먹을거리 코너는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현지인들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싱싱한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 주는 과일 주스 코너를 시작으로 고기, 밥, 스프, 튀김 등의 요리들이 가격 또한 5솔 내외로 저렴하여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하다. 저녁 시간에 나왔으면 이것저것 맛보며 시장 분위기를 즐기면 좋겠지만 점심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큼지막한 옥수수를 하나 사 아내와 옥수수 고향의 맛을 즐겨 보고 시장을 빠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