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
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
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3-16)
오늘 본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참고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복의 처음 시작이 '심영이 가난한
자는 천국의 저희 것이라'했고, 10에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도 천국이 저희 것이라'하셨는데,
복 있는 자의 시작도 결론도 똑같이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인가 하면, 심영이 가난
한 것은 천국이 저희 것이 되는 조건으로 그 조건을 확실히 가졌다는 뜻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
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이 심영이 가난한 데서부터인데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임하였다는 의미이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에게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것은 바로 심영의 가
난에서부터 애통, 온유, 예수님 사랑하기를 주린 자처럼 하고,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 이와
같은 의를 위해서 사는 자니 그래서 핍박을 받고, 그러므로 그 의의 나라 천국이 온전히 소유되었
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영이 가난한 것은 천국의 시작, 즉 천국이 임한 것이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 의를 위한
자면 그것은 천국이 온전히 그의 것으로 소유되었다는 것을 말씀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참으로 구원받은 것이면, 예수님의 이 구복의 말씀을 하나하나 깨닫고 복이 있나니의 말씀의
맛을 내고 사는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요, 그 맛을 내고 사는 그것이 당연히 예수님의 사람이요,
그 맛을 내고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삶으로 드려지는 산제사요, 그 맛을 내고 사는 것이
바로 거룩한 성전이 된 예배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13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복이 있나니 하신
이 모든 구복의 말씀으로 사는 너희는 이제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금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짠맛입니다. 그런데 그 짠맛이 변한 적이 없다는 것, 소금이
짠맛을 잃은 적이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소금 하면 짠맛이요, 짠맛
하면 소금이에요. 녹아도 짠맛이요, 덩어리로 있어도 짠맛으로 그 맛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
래서 그 짠맛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모든 음식에 맛을 내는 것입니다. 음식 재료가 아무리 좋
은 것이라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덩어리로 있으면 맛을 낼 수 없
습니다. 반드시 녹아야만 맛을 내고 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너희는 소금이니''너
희는 빛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소금이 변한 적도 없고 소금이
맛을 내는 것이라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기가 좋은 것 같아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르신 것, 요12:50에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
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셔서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구약 성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구약 성전으로 보이시고 가르쳐 이르시며 명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자들을 영생케 하시려고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신 말씀입니다(요12:49). 그렇기에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아버지
께서 명령으로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만 영생이 있게 되는 것이지, 듣지 않으면 그
속에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구약 성전은 예수님이 성전이신 것과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 들어
온 자들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이신 뜻이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이 성
전이니 예수님 안에 들어온 자도 성전이라고 하신 그 관계를 말씀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정말 믿기
를 원하면, 정말 영생하기 원하면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저는 또 충고하여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화해를 위한 제사를 성전에서 드릴 때 소금을 치는 예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금을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왜입니까? 변하지 않는 소금처럼, 변할 수가
없는 소금처럼, 하나님께서 피 흘려 죄를 용서해주실 분, 왕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그
언약은 절대로 변치 않고 이루신다는 것을 예표로 소금을 치게 하셨습니다. 또한, 백성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변치 않는다는 아멘의 뜻이 되었고 제사 예물에 소금을 칠 때마다 그것을 기억
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2:13에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민18:19에.....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하셨습니다. 대하13:5에..... 소금 언약으로.....하심으로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같이 언약의 소금, 소금 언약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
님이 보내신다고 언약하신 분, 그분이 오시면 그렇게 소금이 녹아서 맛을 내는 것처럼 자신을 십자
가에 내주시는 것으로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였습
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그 소금 언약으로 오신 분이 바로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소금
처럼 녹아서 모든 사람 속에 맛이 되어 오신 그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자기의 하나님으로, 자기
의 생명으로 영접하여, 자기 안에 함께 계신 분이면 그도 똑같이 그 소금이 맛을 내듯 세상에 예수
님을 드러내는 자로 맛을 낼 것이라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지 않습니까? 그 믿음은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함께 계셔야 하는 것이요, 함께 계시면 세상에 그
맛을 낸다고 하는 것이니, 그러면 지금 자기에게 예수님 계신 맛을 무엇으로 내고 있습니까? 교회
열심히 쫓아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열심히 기도하는 것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것으로 나타
나야 한다는 것일까요? 절대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여러분이 아시는 것 아닙니까?
너에게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에게서 나온 말씀이 또한 너에게 있을 것이요, 너에게 있으면 있는
그것이 세상에 맛을 내는 소금처럼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자기
의 믿음을 세상에 그대로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졌으므로 그 말씀대로 사는 것
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말로 그의 믿음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것을 입증되는 것, 그 말
이 드러나는 것, 그에게서 예수님이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이 말에 곧 또 자기가 생
각하는 그런 착한 일 하러 다니는 것, 좋은 일 하러 다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되는 것 이미 다
아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빛이니'하신 말씀을 인
간의 윤리나 도덕적인 것으로 맞춰주고 있어서 예수님과 다른 방향으로 가서 있습니다. 그래서 사
람들의 영혼에 생명을 얻지 못하고, 속사람의 믿음이 되지 못한 크게 잘못된 믿음 생활이 돼 버렸
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 자신
을 말씀한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자의 삶, 예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요
내가 성전인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서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세상의 빛이니'하셨으니
예수님이 성전이신 것과 예수님을 믿는 자가 성전이라는 그 관계를 구약 성전에서 가르쳐 보이신
대로, 이제 그 참성전이신 예수님이 자기 안에 와 계시면 예수님을 세상에 비추는 것이요 맛을 내
는 성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신 말씀, 성전의 관계를 이루는 '복
이 있나니'하셨던 말씀들, 그 같은 복 있는 자가 되었으면 이제 그는 세상에서 그 가르침대로 사는
자로 맛을 내고 예수님을 세상에 비추는 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으면
이제는 좀 내가 가르쳐 이른 이 말씀으로 믿는 자의 맛을 좀 내라, 맛을 좀 내야 한다, 믿는 자로
서 빛을 좀 비추고 빛의 역할을 좀 해라"는 이런 식의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콩 심었으면 콩
나고, 팥 심었으면 팥 나듯이, 그에게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친 말씀의 복이 있는 자면, 그것이
그대로 맛이 되어 나올 것이요, 없으면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니 맛이 나지 않으면 버려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세상의 소금이 아니냐? 왜 세상의 빛이 아니냐? 자기에게 맛을 내야 하는
소금이 없기 때문이요, 자기 안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그 빛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한다는 말
입니다. 소금을 넣으면 소금의 맛이 당연히 나듯이 자기 안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이 있나니'
하신 말씀이 있으면 그 맛이 그대로 나게 되는데, 나지 않은 것은 왜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요, 가르침을 받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했습니다. 그런데 소금은 맛 잃은 적이 없다는 그 말이지요.
그럼에도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하신 것은, 예수님의 가르쳐 이르신 복의 말씀들로 사는 능
력이 그에게서 나지 않은 것이면, 자기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의 저주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생명
을 주신 그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니,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진다고 하는 것입니
다. 예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요 구주로 참으로 믿어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예수님 믿는 자로 살아야 하는 삶의 방향을 말씀하신
것인데, 어떻게 그 말씀을 거절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요, 예수님을
사랑함이 없기 때문에 거절할 담력이 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세상의 빛이니'하신 이 말씀은 오늘날 목회자들의 설교 중심 메시지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예수님의 생각과 의도에 맞게 깨달아 연결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면, 소금이 부패를 방
지하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제는 썩어져 가는 세상을, 부패해 가는 세상을 좀 썩지 않
도록,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생선도 부패하지 않게 하려고 소금 뿌려놓지
않느냐? 그것처럼 이제 우리 믿는 사람이 부패해져 가는 세상을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 부패를
방지하는 것으로 소금의 맛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선에 소금 뿌린다고 영영
부패하지 않는 것입니까? 어느 한계가 있는 것이지 영원히 썩지 않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너희
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신 것이 고작 이런 언제 변해도 변할 것을 말씀하였겠는가 하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것입니까? 언제 변해도 변할 자기 머리를 높이고 믿는다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믿을 때야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지만,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것은 영혼들을 망할 길로
이끄는 자들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뜻과 관계없는 자기 생각들을 내세워서 하나님께 큰 공헌이나 하는 것처럼, 자기
의 말들이 진리나 되는 것처럼, 그렇게 거짓된 것들을 가르치는 데 힘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
패를 척결해 보겠다고, 정의를 실현해 보겠다고 정의감 넘치는 목소리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의 부패를 막아보겠다고, 악을 꾀하는 곳에 가서 악한 일 도모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해서, 사
기꾼에게 가서 사기 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도둑질하는 사람 쫓아다니며 도둑질 못 하게 한다고
해서, 어찌 되었든 부패를 막아보겠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입니까?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 하십니
까? 인간 양심에는 도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교육으로, 교양으
로, 학문으로, 수양으로 그런 죄나 악을 막아보겠다고 하는 그 노력은 인간 역사 속에 끊임없이 있
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부패와 죄는 점점 더 극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 속의 근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껍데기의 것을 아무리 고쳐
보려고 한다 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 속에 의가 없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날 동안은 부패나 죄악은 없어질 수가 없
습니다. 인간 속에 의가 되시는 예수님이 들어오셔야 합니다. 의가 없는 인간 속에 의이신 예수님
이 계셔야만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니'하신 말씀을 부패해져 가는 세상을,
썩어져 가는 세상을 방지하는 것이 소금의 역할이요 맛을 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예수님의 뜻
을 인간 도덕심에 의해 행하도록 하는 인간의 일이요, 예수님과 관계없습니다.
시편 1편의 말씀에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하신 것이
지 '악인의 꾀를 방지하며'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하신 것이지 '죄짓는
것 죄짓지 못하게 방지하는 것이라'하지 않았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하신 것
이지 '그런 자리에 가서 오만을 방지하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도 오셔서 세상 제도 바꾸러
다니신 것 아닙니다. 인간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고 쫓아다니신 적도 없
습니다. 부패가 있는 곳에, 악인들이 꾀를 도모하는 곳에 찾아다니고 쫓아가서 막으신 것 아닙니
다. 헐벗고 굶주린 곳에 찾아다니시며 도와주고 챙겨주러 다니신 것 아닙니다.
이런 인간의 어그러진 모든 어두움의 일들은 곧 의가 없기 때문에, 죄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묶인 저주를 해결하여 풀어주시고 의를 되어주심으로써, 영생하는 생명을 얻게 하고 의로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죄 때문에 우는 자, 죄에서 구원하여 생
명을 주러 오셨다고, 마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목마른 자는 다 예수께 나오면 천국을 주시
겠다고 오라 부르신 겁니다. 이 부르심을 듣고 예수께 나오는 자는 의가 되시는 예수님 자신을 주
시므로 영원한 생명과 안식과 자유의 행복을 주시겠다고 전하시며 부르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먼저 예수님께 나온 우리가 이 같은 '복 있는 자'의 특성들로 소금처럼 맛을 내고 사
는 삶이 돼야 하고 그러므로 믿을 자들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그 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쳐 이르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복 있는 자가 되는 것만이 예수님과 뜻이 같아지
는 것이요,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는 자가 '복이 있나니'의 말씀으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것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없고 세상의 빛도 될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 소
금의 맛을 내고 무엇으로 빛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안에 소금을 두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늘날
교회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니 세상에 나가서 좋은 일, 착한 일 해서 빛을 비추고
맛을 내라고 연결해 주는 것이어서, 구제한다고 봉사한다고 열심히 쫓아다니니 인간이 칭찬받는
일이 되었고, 교회가 세상에 칭송받는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 양심으로 행하는 열심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교회를 나와도 말씀을 따라 살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깊이 알려는 것이 아
니라 교회를 의지하려는 마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를 믿으려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인간 자
기 보기에 좋은 교회이기 때문에 그 좋은 교회 다니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잘 새겨듣고 이해가 되
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16에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신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착한 일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신 일,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착한 일이고, 우리 또한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일을 행하는 것이 착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성전을 다 들으셨으니 더 설명
하지 않아도 알지 않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하신 이것, 심영이
가난한 자에서부터 '복이 있나니'하신 말씀으로 삶이 되었으면 녹아진 소금이 맛을 내는 것처럼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사회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예수님을 비춘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믿음을 분명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구원 얻게 하려고 자기에게 가진 소금을 주려 할 때에 핍박이 있고 비웃
음을 당해도 개의치 않고 소금의 녹아진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의 말씀이 그에게 있는
자는, 예수님을 비추는 빛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는 것이지 숨겨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감
추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는 그것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지 절대로 감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게 핍박도 따르지만, 구원 얻을 사람들에
게는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착한 행실로 보여서, 거기에 구원이 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을 자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하시는 것이,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14,15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말씀하
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만일에 예수님 믿는 자가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하신 그 의의 맛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
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으니 버릴 일밖에 없다. 그러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에 짓밟힐 뿐이다. 맛이
나지 않은 것은 왜냐? 복 있는 자의 조건이 되는 그 영적인 특성들이 없기 때문에 맛이 나지 않는
것이지 않으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이 그에게 없으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버려진 자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단에게 돌려진 것이 되어서 사단에게 앙갚음을
당한다는 것을 밟힐 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심영이 가난한 자부터 시작하여 다 들으셨으니 이 모든 조건이 자기의 의가
되어 세상에 맛을 내는 자로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비추는 빛이 되었습니까? 자기 삶의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비추는 삶이 되었습니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어둠에
서 나와 빛을 비추는 자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성영님이 우리의 능력이 돼 주시면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영님을 의지하고 구하고 찾는 여러분이 되어서 능력을 갖추시고 땅에
서나 아버지 나라에 가서나 큰 상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로써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말씀으로 우리 믿음을 깨우시고 능력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제 6 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p101-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