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묵시록 카이지> <은과 금> <최강전설 쿠로사와>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2000년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작가의 정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세계 속에 뿔뿔이 흩어지라고 뿌려진 씨앗, 그러니까 고립되어라!'
이러한 대사와 함께 시작되는 이 만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패자, 진부하게 말하면 부잣집 아들내미 대신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인간학교라는 소년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는 중학생 가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곳에서 일어나는 어린 자아와 고정된 시스템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 그리고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애쓰는 가이의 모습에서 비춰지는 원죄적 인간의 모습과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실존적 태도 등, 단지 다섯권에 불과할 뿐인 이 텍스트에는 그 무수한 상징성들이 담겨 있다.
단지 흥미로운 성장 만화로서가 아니다. 이 만화는 세상에 홀로 고립되어 던져진 고독한 한 인간이라는 실존적 화두를 다루면서, 진정성을 담고 살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을 빛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참 자유는 무엇인가 등의 주제에 대한 작가 특유의 혜안과 성찰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만큼 호소력 있게 젊은 독자의 각성을 요구하는 진지한 목소리를 울리고 있다.
이 작품이 5권으로 완결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년지에 연재되었던 이 만화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재 중지가 결정되어 조속하게 완결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의 무게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단편 분량이 가져다주는 명확한 함축성과 주장의 세기는 오히려 그 강도가 더해진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사들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작가는 대학시절에 니체에 심취하여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늘상 부당한 힘의 구도가 피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 조건으로 그려지며, 또한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책임지며,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생명력을 이끌어내 대지 위에 우뚝 서는 니체적 인간형이 주인공으로 곧잘 등장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가이의 경우 또한 그러하다.
'나는, 내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렇게 말한다. 냉철한 동시에 내적인 격정에 가득찬 이 선언. 니체를 불타오르며 폭주하는 증기기관차와도 같이 느껴본 적이 있는 이라면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 세계에 수렁처럼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일이라면, 중고등학교의 도덕/윤리 교과서 대신에 이 작품을 주요 인성함양 교재로 채택시키고 싶다. 물론 실존주의의 뉘앙스를 경험해보기 위한 입문서로서도 결코 손색이 없다. '만화'라는 단어에 아직까지도 덧씌워지고 있는 부당한 편견과 가장 최일선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만화는 분명 이 작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