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다
2024.11.더불어
11월초 갑자기 겨울로 접어든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부는 새벽녘
어두운 길을 헤드라이트로 밝히며 내 고향 산양면 영운리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도남동 버스종점에서 우리 동네 영운리까지 걸어가는 길은 참 멀게만 느껴졌었다. 동네 초입으로 들어가는 쪽에 군부대 초소가 있었고 지금은 나의 아들또래의 어린 군인으로 보이지만 그때는 너무나 듬직하고 커보였던 군인아저씨들이 그 초소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 초소를 지나서 고개를 돌면 바로 보이는 곳이 담안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도 같은 반 친구들이 여러 명 살고 있었고 유독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았던 영숙이라는 친구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담안 마을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대신에 그곳에 골프장과 리조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주 작기는 하지만 나의 할아버지의 땅도 그 담안에 있었는데 골프장 부지로 편입이 되고 말았다. 리조트가 들어서기 위해 움직임이 있던 그 당시 나는 친구들이 살아왔던 고향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그리고 정작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리조트와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고 싫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러서 영운리에 사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친척들도 대부분 시내로 이사를 나오다 보니 고향에 갈 일이 드물어졌다.
그러다가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다시 내 고향 영운리에 들어선 골프장으로 가게 되었다.
어두스름한 새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그 순간 골프장에서 보이는 우리 동네 바다풍경과 산의 풍경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 마음 안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물결치는 듯했다. 이런 황홀한 광경을 보고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를 감정들이 복잡하게 일어났다.
때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변화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고는 한다. 그럴 때 한쪽을 나쁘게 한쪽을 착하게 나눠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변화의 순간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그 변화를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내 식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장소지만 낯선 건물들이 낯선 지형들이 만들어진 그 곳에서 나는 내 눈 속에 내 마음 안에 고향 영운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들을 듬뿍 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