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68년 네로가 사망한 이후 불과 1년만에 네명의 황제가 연이어 황위를 차지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그 네명의 이름은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였습니다. 갈바는 오토에 의해 처형되었고 오토는 비텔리우스의 쿠테타를 보고 자결하였습니다. 비텔리우스는 유대전쟁에서 돌아온 베스파 시아누스에 의해 목이 달아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유대로마 총독이 된 사람이 게시우스 풀로루스였습니다. 이 사람은 돈을 좋아하였던 탐욕의 사람이었고 자신이 다스리던 지역민인 유대인들을 증오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총독 풀로루스 는 세금이 적게 걷힐 때면 예루살렘 성전고에서 17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은을 세금으로 징수했고 총독의 병사들은 예루살렘 시민들을 수시로 폭행하고 있었습니다. 총독 풀로루스에 대한 유대인들의 불만은 봉기가 되어 유대인 반란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AD66년 풀로루스는 총독의 군대를 동원 진압에 나섰고 수많은 유대시민들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AD67년 예루살렘 시민들은 로마군인들을 죽이고 예루살렘을 점령 유대전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혁명의 열기는 헤롯의 통치기간 식을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유대의 주류들인 열심당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민족의 갈길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메시아를 대망하는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입된 시리아에 주둔했던 세스티우스 갈루스의 2천의 군대는 6개월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6천명의 군사를 잃은채 퇴각했고 유대인들은 저들이 버리고 간 무기로 무장을 하고 로마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이때 네로 황제가 유대인 반란을 진압코자 두 번째 파송한 장군이 베스파시아누스였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대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했고 유대제사장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 사람이 요세푸스라는 유대역사가였습니다. 그는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합니다. “당신은 지금 나를 포로로 잡았지만 1년 뒤 황제가 되어 나에게 자유를 줄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되어 네로가 자살한 후 즉시 로마로 귀환한 베스파시아누스는 황제가 되고 AD69년 그의 아들 티투스에게 유대인 반란의 후속 조치를 명합니다. 유대 전쟁은 계속되었고 예루살렘 시민들은 항복을 거부하면서 끝까지 항전합니다. 당시의 참담한 상황은 포로로 잡혔다 로마에 투항한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서 그날에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군에 장기간 포위되었던 예루살렘 성에는 식량난에 빈사 상태를 이루며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태가 발생했고 제사장의 아내가 거지가 되어 먹을 것을 찾아 헤메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은 티투스에 의해 함락되어 수십만명이 학살되었고 9만 7천명이 포로가 되어 로마 속주인 사데 버가모 빌라델피아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구약 성경과 대형 마노라 등 전리품을 챙겼고 메노라를 카피톨리누스 삼신전의 주피터에게 바쳤습니다. 현존하는 티투스 개선문 안쪽에는 로마 병사들이 메노라를 운반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으로 유대인 반란은 진압됩니다. 유대인들은 학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팔렸습니다.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솔로몬성전이 파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회당을 짓고 그 곳에서 율법을 연구하며 회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회당의 중요성이 더욱 더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거든 도망하라고 누가복음 21:20-24절에 경고한 말씀대로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펠라로 피신하였습니다. 이렇게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민족과 성전은 또한번 파괴를 당하였고 기독교도들은 관용했던 로마제국에 핍박을 받으면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환난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