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코스 : 성동 사거리 – 반구정
이제껏 책에서나 남을 통해서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았던 지식을 실제 살아 숨을 쉬는 ‘땅’ 위에서 그 기운을 느끼고 또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느낄 수 있기에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정신 목욕이라고 했다.
경기 둘레길 6코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성동사거리에 다시 섰다. 어제까지는 성동 사거리까지 걸었고 오늘은 성동 사거리에서 걸어간다. 스쳐 가는 우연이지만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이 되어 사랑이 싹튼다.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출발지점에 서니 체인지업 캠퍼스, 헤이리 마을, 프로방스 카페촌을 지나가게 되므로 많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구간이라고 평화 누리길 7코스는 설명해 주고 있다.
체인지업 캠퍼스는 눈에 띄지 않고, 헤이리 마을은 지나가는 방향이 아니어서 시간을 별도로 내야 하므로 지나칠 수밖에 없다. ” 에헤 어이 헤이리 어허허 어허야, 에헤 어이 헤이리 어허허 어허야 “ 영어인 줄 알았던 헤이리가 농부들이 피땀을 흘리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불렀던 농부가의 가사였고 그 의미는 문맥으로 보면 ‘ 좋다, 좋다’라는 뜻이 아닐까?
농부가를 신명 나게 외쳤던 농부처럼. 예술의 진한 향기로 마을을 젖어 들게 한 이 고장에 사는 예술인처럼 이 땅을 걸어가는 우리 도보 여행가들도 ‘왜 이리 좋나, 왜 이렇게 좋노, ’를 외치며 반구정을 향하여 걸어간다.
프로방스 카페촌을 지나 언덕 위에 올라서니 임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눈에 띈다. 강 건너는 물론 북한 땅이다. 누가 가슴 아파하지 않겠는가? 우리 땅을 우리가 마음대로 갈 수 없으면 그게 어디 우리 땅인가? 한, 두 번을 만난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가슴을 치며 흥분이 솟는 것은 왜일까?
다소 격해지는 감정을 달래며 성동리 마을회관을 지나 농로에 진입한다. 할머니 손 잡고 외가 가는 길, 아니면 도시에서 친구 찾아 걸어가는 우리의 어렸을 때의 시골길과 너무도 흡사한 길이다.
농기계 우선도로에 농기계는 다니지 않고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들녘의 한적한 길 탓인지 자전거 애호가들은 쉼 없이 오고 가지만 두 발로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질주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트린다.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로에 이르렀다. 쏜살같이 내 달리는 오늘의 저 자동차는 임진각에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만, 내일의 자동차는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내달리고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통일 자유로를 내 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유로의 근본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며 우리의 소원으로 외쳐 부르는 통일 한국의 자화상이 될 것인데 그날이 언제 오려뇨! 오금리 쉼터에 이르니 자전거 애호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자전거 쉼터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걸어간다. 가는 길은 천변의 제방으로 일자로 뻗어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은 보기만 하여도 맥이 풀리는 길이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가려는데 마음마저 기가 꺽여서는 걸어갈 수 없다.
콧노래도 부르며 흐르는 물과 대화를 건네면 안정과 여유 속에 그 멀던 길도 나도 모르게 도착할 텐데 아쉽게도 경기 둘레길은 마을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일직선을 이루는 길을 걷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 오금리 마을을 지나간다.
우리의 어린 시절 농촌의 마을과 흡사하였다. 가구 수는 손으로 헤아릴 수가 있었고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는 대문도 없는 마을, 전원주택은 아닐지라도 한적한 시골의 마을에서 고즈넉한 정경이란 말이 떠올랐다.
오금리를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는 세월을 느끼게 하는 마을의 상징으로 일컬어도 부끄럽지 않은 향나무가 대문을 이루며 오고 사람들은 반갑게 맞이하고 가는 사람에겐 이별의 아쉬운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또다시 자유로와 만났다. 지유로는 ”서울특별시 가양대교 북단에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자유IC(임진각)까지 연결되는 고속화도로이다. 이름은 도로의 종점인 임진각 경내에 있는 '자유의 다리'에서 따왔으며, 동시에 비슷하게 서울~고양~파주(문산)를 잇는 통일로와 짝지어 '자유 통일'을 상징하기 위해 지었다“< 위키백과에서 퍼옴>
그렇다면 경기 둘레길은 고양시 한강 수계에서 파주시 임진강 수계로 조성되어야 하나 자유로 건너편에는 북한군의 침입을 막는 철책이 설치된 민간인 통제 구역이 되어 한강과 임진강 변으로 걸어갈 수 없어 자유로를 우회토록 경기 둘레길과 평화 누리길을 조성하여 자유로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
문지리 카페를 지나 청풍명월 야영장을 지나며 경기 둘레길은 산길로 인도한다. 이제까지 평지의 시멘트 길과 아스팔트 길로 7km를 걸어왔는데 오르막의 산길로 진입하는 것이다.
처음 걷기 시작하였을 때에는 평지 길을 걷다가 오르막의 산길을 만나면 힘들어하였지만 오래 걷다 보니 시멘트 길을 걷다가 흙길로 걸어가면 오히려 피곤함을 달래주어 걸어가기에는 편안하였고 더욱이 그늘진 길이 되어 가볍게 진행할 수가 있었다.
산을 하산하면 햇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길이 계속될 것 같아 그늘진 산길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맛본 흙길과 헤어져 내포리에 이르니 길가에 카페가 있어 잠시 차 한 잔을 마시며 가야 할 길을 살펴보았다.
가는 방향을 살펴보니 기역자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돌아가는 길이 되어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았다. 차 한잔을 마시고 걸어가는데 안내문에 써 놓은 것과 같이 자동차 통행이 잦은 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가게 되어 위험하였다.
임월교를 건너니 무인 SK 주유소가 있다. 이곳에서 반구정은 좌측의 길로 진행하는데 남은 거리 5.1km를 알린다. 당동리 어린이 공원을 지나 동산 하나를 넘고 또 하나를 넘어도 반구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걷기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예단해서는 아니 된다. 어떠한 돌발 변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다 왔다는 생각은 성급함을 드러내게 되어 즐거움이 짜증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잠시 잃은 평정심을 되찾고 진행할 때 벤치가 놓여 있어 마지막 남은 과일을 먹고 야영장을 지나 도로에 이르니 사목리였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 반구정에 이르렀다. 성동리에서 출발하여 대동리, 만우리, 오금리, 문지리. 낙하리, 내포리, 당동리를 지나 조선의 청백리 황희 정승의 유적지인 반구정에 이르른 것이다.
반구정은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으로 삼아 여생을 보낸 곳으로 임진강 기슭에 세워진 정자로 낙하진에 인접해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하였다.
지금에는 철책이 설치되어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매일 조수 潮水가 지냐고 뭍이 드러나면 하얀 갈매기들이 날아드는데 주위가 너무도 편편하여 광야도 백사장도 분간할 수 없는 황홀한 경치를 자랑하였다고 하였다.
19년간 영의정에게 재임하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천첩賤妾 소생의 천역면제 등 업적을 남기고 원만한 인품과 청렴으로 백성들로 존경을 받은 방촌 황희 선생이 남긴 유훈을 되뇌인다.
吾儕身後事 : 우리 몸이 없어진 뒤의 일은
只守一廉字 : 오로지 청렴 한 글자를 지키는 것이오
崇儉朴抑奢靡 :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억제하는 것이
爲治之先務 : 정치를 함에 먼저 힘써 할 일입니다.
경기 둘레길 6코스 걷기를 마치면서 우리에 앞서 평화 누리길을 완주하신 조용원 회장님의 평화 누리길 7코스를 걸으신 소감을 다시금 읽어 본다.
종주에 도전하라
2016년 2월 4일 입춘날에
세계 속의 경기도
평화 누리길 7코스 헤이리 길을 걷는다
평화 누리길 191km에
2016 종주에 도전하라
홍보물이 눈에 띈다.
07시 출가
07시25분 합정격
07시 29분 2200번 승차
08시 13분 성동 사거리 도착 트레킹 시작
찬바람
목덜미를 스치고
자유로를 끼고
북녘 하늘 바라보며 걸을 때
추수걷힌
논바닥에
웅크린 철새 떼들
인적에 푸드덕 나는 놈
꼼짝 않고
웅크리고 있는 놈들
뒤뚱뒤뚱 걷는 놈들
아침 햇살 맞고
21km를 걸으려니
파김치가 된다.
● 일시 :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맑음
● 동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님
● 동선
- 09시 20분 : 성동사거리
- 10시 50분 : 오금리 쉼터
- 11시 25분 : 문지리 카페
- 11시 50분; 점심
- 13시 20분; 내포리 카페에서 차 한 잔
- 14시 10분; 임월교
- 15시 50분 : 반구정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20.3km
- 소요시간 : 6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