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시와경계》 신인우수작품 당선작 발표
<김용길>
당선작_ 「가난한 무기」, 「봄동」, 「겨울나기」, 「고동」
- 순천 출생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행정대학원 졸업
- 한국경제신문, 동아일보 편집부, 채널A 근무
- 동아일보 지식서비스센터 기획위원 재직 중
_ E-mail : harrisongs@naver.com
저서_ 편집이론서 『편집의 힘 : 단순하고 강력한 삶의 기술』과 영화평론서 『태블릿 PC에 꼭 담을 영화 35』 외.
당선작
가난한 무기 외 3편
마음의 조각도로 풍경을 새긴다
먹물 듬뿍 마셔야 붓끝 밀고 나가듯
연필 종횡무진 문장 끌고 간다
장작 쪼개듯 주어 서술어 엮어간다
봄동
자박자박 눈길 걸어와
아삭아삭 숨쉬는
지난 연인의 날선 스카프
겨울나기
심장의 뜨거운 피뿐이다
왼발 털가슴에 파묻고 오른발로 추위 버틴다
고동
영일만서 올라온 백고동
소리 아릿하다
밤이 낮의 어깨를 다독이는 추분
물결 아련하다
당선 소감
요란 떨 것 없다, 한 줄로만 남으리
어릴 적 어른들은 본인 살아온 게 소설책 열 권으로도 다 쓸어 담지 못한다 했습니다. 풀어내면 한강물 같은 대하소설이라고 했습니다. 유년 시절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주변에 현실의 어른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지하철 타면 절반이 어른입니다. 어른들은 부쩍 말수가 줄었고 눈 감고 졸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제 휴대폰 화면에 종일 파묻혀 삽니다. 세상 떠도는 소식은 넘쳐 나지만 알아듣는 말과 이해되는 글은 줄어만 갑니다. 제각각 중얼대고 있지만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세상의 대합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TV만 쳐다봅니다.
까만 교복을 입고 우체국 계단에 앉아 편지를 써 우표를 정표처럼 붙였습니다. 합격통지서 노란 전보 종이를 품에 안고 청년은 기뻐했습니다. 대학노트에 만년필로 밀고 나가 과제리포트를 제출해 겨우 과락을 면했습니다. 허리에 삐삐를 차고 공중전화 박스 앞에 줄지어 섰습니다. 1000원을 내고 긴급연락 택시 카폰을 써봤습니다. 이제 아무도 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고 소년소녀위인전기 전집는 어린이도서관에서 폐기 처분됐습니다. 헤밍웨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헤밍웨이 베이커리카페엔 종종 갑니다. 시민도서관 열람실 테이블 위엔 인강용 태블릿 화면에 수험서 가득합니다.
살아보니 태평성대는 결코 오지 않나 봅니다. 늘 위기가 닥쳤다고 합니다. 4인 핵가족 패밀리카 시대를 지나 핵개인 각자도생의 SUV를 타고 다녀도 선진국 최첨단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하루 내내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파묻지만 세상은 모르겠고 알 수 없는 어휘만 늘어 갑니다. 1박 2일 잠만 자다 일어나면 이놈의 세상은 저만치서 이별 선언을 획 달려가 버립니다. 늘 따라다니며 징징대고 종종걸음을 쳐야 합니다. 팔자걸음에 여유있는 산책 한 번 힘듭니다. 대기만성 천하태평은 이미 요순시대에 종료됐습니다.
우울하다면 인지장애 검사해보라는 뉴스가 날라오고 심심하면 MBTI 유형이 뭐냐고 합니다. 젊은 사람은 모든 걸 더치패이로 나눠 사랑을 합니다. MBTI 유형으로 궁합을 본다 합니다. 살아갈수록 세상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게 애매하고 아는 것도 모르겠고 모르는 것은 더 모르겠습니다. 소설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시 한 편 읽기 버겁습니다. 자식 카톡 문자는 짧아만 가는데 이해는 안 되고 보내준 사진엔 지들만 웃습니다. 눈은 침침해져 자꾸 안경을 닦습니다 저작력 때문에 치과 호출도 잦습니다. 내시경에 대장 용종도 떼고 지져야 합니다. 인생 근력은 풀어지는데 그나마 만보걷기 스트레칭으로 버팁니다.
그나마 매일의 삶이 궁금하고 처음 보는 풍경이 신기합니다. 볼펜에 수첩은 못 챙겼지만 휴대폰으로 찍고 메모해 둡니다. 단어 2개가 3개로 이어집니다. 띄엄띄엄 어휘는 한 문장으로 변합니다. 구름 파도 수평선 철새 떼 도시의 스카이라인 숲의 사시사철 찰칵 사진과 마음속 호주머니에서 문장 한 줄 꺼내 당신에게 디카시를 보냅니다. 이렇게 기별할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지면 내어준 《시와경계》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
<에바 라티파>
당선작_ 「디카시」, 「보이지 않아도」, 「화려한 밤」, 「기도」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생
-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및 인도네시아 국립대 아랍어학과 석사
- 칼럼니스트(2021-2022년)/웹사이트 terkinni.com/ Hai (하이/한국이야기)
-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인문대학 한국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
_ E-mail : tugasmahasiswabkk@gmail.com
디카시 외 3편
곤충이 내 손을 잡고
함께 시향에 빠지자고
보이지 않아도
매우 작아서
당신은 모를 수도
이 붉은 마음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화려한 밤
붉은 슬픔
머릿속에 그득해
온통 당신일 뿐, 그리워할 뿐
기도
같은 세계
또 다른 우주
다음 생에는
우리 함께 있기를
당선 소감
색다른 위로
당연히 디카시 쓸 때 부담이 갑니다. 디카시를 창작한 경력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잘 쓰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걱정입 됩니다. 또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인 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그렇지만 디카시를 창작하면서 내가 얻은 위로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학생들과 디카시를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하며, 용기 내어 한국의 잡지에 디카시 원고를 보냈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공감과 마음은 디카시로 나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레 등단하여 디카시와 함께 색다른 세계로 나갑니다.
심사평
디카시 발원 20주년에 만나는 두 시인
김종회(문학평론가,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시와경계》 이번 호 신인상 당선작으로 김용길과 에바 라티파의 디카시 몇 편을 선정하여, 새 디카시인의 이름으로 문단에 소개한다. 김용길은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일했고 여러 권의 저서를 낸 관록 있는 문필가다. 에바 라티파는 한국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디카시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의 지부장이기도 하다.
김용길의 디카시 「가난한 무기」는 연필과 칼 등의 필기구가 가지런히 놓인 장면을 찍고 이를 ‘마음의 조각도’라 불렀다. 간략한 사진과 언술이지만, 그 배면에는 어쩌면 시인의 일생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봄동」은 봄배추의 속살을 헤쳐 보이며 ‘지난 연인의 날 선 스카프’를 소환했다. 「겨울나기」는 물속의 돌 위에서 외발로 선 새 한 마리를, 「고동」은 한 자리에서 이마를 맞댄 바다 고동을 두고 주관적 상상력을 작동했다.
에바 라티파의 「기도」는 들꽃 여러 송이를 매개로 우주와 환생을 내다본다. 「문턱」은 디카시 걸개 전시 앞에서 그 시향詩香을 유추한다. 「보이지 않아도」는 식물의 빛깔로 대언代言한 ‘붉은 마음’을, 「화려한 밤」은 달빛 아래 물에 비친 야경에서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비중 있는 두 사람의 디카시 몇 편을 읽으면서, 이들의 전정前程이 보다 활달하고 또 웅숭깊은 디카시의 세계를 펼쳐 나갔으면 한다. 짧은 시의 미학적 가치는 결코 만만치 않다. 디카시는 쓰기가 쉬우나 잘 쓰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바로 이를 뜻한다. 디카시 발원 20주년의 뜻깊은 해에 새롭게 출발하는 두 분께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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