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는, 1950년11월26일~1950년12월13일 동안 함경남도 장진군, 함주군 일대 장진호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미국 해병대가 주축이 된 유엔군이 장진호로 진입하는 동안 호수 위 눈덮힌 산 위에서 흰광목으로 덮어쓰고 위장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의 공격으로 고립되어 30000명 전원이 전멸당할 위기였지만 필사적인 후퇴작전의 성공으로 많은 장병이 전사, 부상 및 실종되어 막대한 피해를 봤지만 당시 현지 주민들의 길 안내(험준한 산이고 눈이 내려 더욱 혹독한 상황에서) 등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까스로 흥남항으로 탈출에 성공한 작전으로 기록돼 있으나 사실상 중공군에 패한 전투입니다.
미군과 UN군도 겨울용 전투복이 마련되지 않아 동사자가 많이 발생한 전투로 그후로 일본에서 제조된 겨울용 전투복이 신속하게 지급된 것입니다.
6ㆍ25 남침전쟁 당시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UN연합군은 한국에 1/5000 지도가 없어 일본에서 발행된 지도를 기본으로 작전을 세우고 전쟁을 치르다 보니 장진호 전투도 공식적으로 일본식 발음으로 "초신호전투, 즉 Battle(전투) of Chosin(장진) Reservoir(호)"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가 병력: 미군(10군단) 산하 UN군 3만 명, 중공군(9병단) 12만 명
*피해: 미군 사망 1029명, 실종 4894명, 부상 4582명, 비전투손실 7338명 총 17843명 손실(동사자 손실 포함) *피해: 중공군 사망 19202명, 비전투손실 28945명(동사자 약 4000명 포함) 총 48156명 손실
*미군이 치른 전투사상 가장 피해가 컸던 전투로 기록되는 치욕의 전투입니다.
*미군이 흥남항에 도착 하자 기다리고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수송전단에 의한 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흥남항에서 미군 10군단과 한국군 1군단과 그리고 피난민 10만여 명이 철수한 작전입니다.
미군사령관이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Almond) 장군은 피난민 수송에는 반대를 했지만 1군단장 김백일 장군 등 한국군 지휘관들은 "피난민을 두고 갈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데리고 걸어서 후퇴하겠다"며 극렬하게 반대 했던 것이다.
당시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의 통역이었던 현봉학(29살) 해군 군수 참모가 철수를 담당하는 에드워드 포니 대령과 함께 중간에 매개체가 되어 알몬드 장군을 끈질기게 설득하니 마침내 "병력과 장비를 싣고 남는 자리가 있으면" 피난민을 태우기로 동의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무려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흥남 부두에서 배를 타고 남으로 피난을 올 수 있었는데 수송전단으로는 피난민 10만 명 모두를 태울 수 없게되자 알몬드 장군은 어쩔 수 없이 미군이 갖고 있던 모든 무기를 바다에 버리며 대신 피난민을 더 태웠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2일 동안 벌어진 흥남철수 작전의 마지막 수송선이 흥남항을 떠난 날이 바로 12월24일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