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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간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심심한 생명철학을 강의한다”
이케다 회장은 장래를 응시하고 본격적인 훈도를 시작했다.
‘제3대의 마음’을 ‘진정한 제자’에게 남기기 위해.
“대학부(학생부)에 대한 것은
전부 다이사쿠에게 상담하라”
사제의 호흡에서 생겨났다
‘대학부의 날’은 8월 31일.
이 기념일의 연원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 8월 31일, 이케다 회장이 후사를 맡길 대학부에게 <어의구전> 강의를 시작했다.
<어의구전> 강의를 왜 대학부를 대상으로 하셨을까?
대학부는 이케다 회장과 유대가 강하다. 이케다 회장에게 몰아친 박해의 폭풍우 한복판에서 탄생한 부가 ‘대학부’다. 대학부는 ‘유바리 탄광노조사건’과 ‘오사카 사건’의 와중에 탄생(1957년 6월 30일)했다.
‘울던 아이도 그친다.’ 라고 일컬어졌던 권력을 등에 업고 홋카이도 유바리의 탄광노동조합이 아무 잘못도 없는 학회원을 몰아내려고 획책한 ‘유바리 탄광노조사건’.
그리고 이케다 회장이 선거위반 혐의로 체포, 구류된 원죄(冤罪)사건인 ‘오사카사건’.
이는 모두, 사회를 보다 좋게 만들려고 정치개혁에 일어선 민중에게, 기성권력이 박해의 엄니를 드러낸 사건이다.
실로 법화경에서 설한 ‘삼류강적(三類强敵)’에 의한 ‘황멸도후(況滅度後)의 난(難)’이 분출한 것이다.
이 박해의 폭풍우 속에서 새 시대를 열고자 출범한 것이 대학부였다.
초대 대학부장이었던 시부야 구니히코 씨가 생전에 대학부가 발족한 경위에 대해
회고했다.
“도다 선생님이 대학부를 만들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학부에 대한 일은 전부 다이사쿠에게 상담하면 틀림없네. 나라고 생각하고 다이사쿠에게 물어보게.’
입회한 지 얼마 안 된 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이케다 선생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결성대회를 위한 준비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 등, 전부 이케다 선생님에게 지도받았습니다. 그 속에서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대학부는 이케다 선생님의 구상에서 생겨, 은사와의 ‘사제 일체의 호흡’ 속에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학부를 실질적으로 만든 분은 이케다 선생님이었습니다.”
즉 대학부는 도다 제2대 회장이 만든 ‘최후의 조직’이자 이케다 제3대 회장이 만든 ‘최초의 조직’이다.
이케다 문하의 ‘선구’이기 때문에 사제의 인연이 깊은 대학부가 <어의구전>강의를 받는 대상이 되었다.
◆ 모리이 치요코 씨
대학부를 대상으로 한 ‘어의구전’ 강의를 개시하신 의의에 대해 이케다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일이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회장이 되어 최후에 대학부를 결성하셨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내가 회장이 되어 어디부터 육성할 것인가 생각했을 때, 도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대학부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한 것입니다”라고.
사제란 이렇게나 깊은 것인가. 준엄한 사제의 유대에 감동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제일체의 구전서(口傳書)
<어의구전>은 사제의 중서(重書)라고 일컫는다.
그 까닭은 니치렌대성인이 하신 강술(講述)을 닛코상인이 기록하셨기 때문이다.
이케다 회장은 ‘도다대학’에서 은사 도다 제2대 회장에게 가장 먼저 그 사제의 서(書)에 대한 강의를 받았다.
<수필 신․ 인간혁명>에는 <어의구전> 강의를 받은 일에 관해 이렇게 씌어 있다.
“이 ‘사제일체’의 구전서(口傳書)는 도다 선생님과 내게 특히 추억이 깊은 어서다. 스승 슬하에서 내가 교학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먼저 <어의구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훈련은 엄격했다. 일상적으로 ‘이 어구는 무슨 의미인가?’ ‘어문을 해석해 보라!’ 하고 언제 질문이 날아올지 몰랐다.
매번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지만, 이게 바로 ‘검호의 수행’과 같은 훈련이었구나 하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이케다 회장이 그 사제일체의 구전서 강의를 이번에는 대학부에게 전개하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학부야말로
단 하나의 희망이다
대학부에게 드린다
1962년 4월 대학부는 부원수가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었다. 이케다 회장은 그에 맞춰 대백련화 4월호 권두언에 ‘대학부에게 드린다’를 발표했다.
“우리 대학부가 바로 니치렌대성인의 대불법을 근저로 해서 세상의 대지도자로 성장할 사명을 지닌 단 하나의 희망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우스이 아키오 씨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대학부의 기본지침이 될 ‘대학부에게 드린다’를 집필해 주셨습니다.
“전 학회 청년의 앞길은 청년훈, 국사훈에 명확하다. 청년 중에서도 특히 대학부는 그 선구를 끊어야 할 책임과 자각을 가져야만 한다…”라고 기대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학부훈’이라고 배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되풀이 하여 읽으면서 몸이 떨릴 정도의 긴장을 느끼며 스승의 기대에 어떻게 해서든 응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자각을 새롭게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자
‘대학부에게 드린다.’를 발표한 후, 이케다 회장은 대학부를 직접 훈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부의 한 수뇌가 이렇게 말한다.
“대학부원이 1만 명을 돌파했다고 보고하자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아, 거기까지 왔는가. 그러면 내가 직접 대학부를 본격적으로 훈련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약속대로 우리 대학부 간부 20명 정도를 회장실로 불러 부장회를 여셨습니다.”
제1회 부장회는 5월 23일. 이케다 회장은 말했다.
“대학부에게 힘을 불어넣을 때가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 의견이나 요망사항을 말씀하세요.”
회장은 그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한 대학부 간부가 “학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비판과 중상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라고 질문했다.
회장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대학부 여러분이 열어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악담을 하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정견(定見)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우리 처지가 불리해 보여도 정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회는 강합니다.”
이 대화 속에서 회장은 이런 요청을 받았다. “대학부 간부에게 강의를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회장은 답했다.
“바쁘긴 하지만 충분히 검토해봅시다.”
제2회 부장회는 7월 16일, 회장실에서 열렸다. 이때에도 재차 같은 건의가 나왔다.
“선생님! 어서강의를 해주십시오.” 회장은 말했다.
“총회가 끝나고 봅시다.”
일주일 후에 제5회 대학부총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회장은 또 이렇게 말했다.
“어서를 배독해서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오저(奧底)를 구명하지 못하면 대학부는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에게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함께 공부해 갑시다.”
◆ 하라다 미노루 씨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오저를 구명하지 못하면 대학부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지도에 바짝 긴장하며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이케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오저’가 진짜로 의미하는 바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이론적인 것을 공부한다고 생각했지요. 분명 이론적인 탐구가 없으면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어의구전>을 통해 가르쳐주신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오저’는 ‘사제(師弟)’였습니다.
사제가 없으면 불법은 없습니다. 불법의 최고봉인 법화경은 읽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선생님 강의는 말만 앞서는 우리에게 전 인격, 전 생명을 걸고 불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촉구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로서의 훈도를 통해 ‘오저’를 가르쳐주시려고 하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지금 확실히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오저’는 ‘사제’이고, 사제정신의 진수는 오직 창가의 삼대(三代) 회장에게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 슬하에서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스승의 사상과 철학을 시대정신으로 삼는다. 이것이 학회정신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철저하게 회원을 위해 끝까지 진력하는 일이었습니다.
‘어의구전’의 강의를 하자
학생부 총회를 끝내고 학생부 수뇌가 이케다 회장 곁을 찾아왔다. 재삼에 걸치는 회장강의의 부탁이었다.
이케다 회장은 대학부에게 각별한 마음이 있었다.
“세계제일의 ‘도다대학’에서 배우고 훈도 받을 수 있었던 나는 실질적인 대학부 제1호라고 자부한다.” (수필 인간세기의 빛)
‘도다대학’에서 가장 먼저 <어의구전>강의를 받은 이케다 회장은 대학부 ‘제1호’였다. 회장은 대학부 수뇌에게 말했다.
“대학부에게 <어의구전>을 강의합시다.”
<어의구전>강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그때 한 수뇌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대답을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의구전>은 지금껏 거의 강의된 적이 없는 중서(重書) 중의 중서였습니다.
그렇게 깊고 깊은 법문(法門)을, 아직 신심의 확신도 없고 교학도 미숙한 우리 대학부에게 강의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미래를 응시한, 헤아릴 수 없는 이케다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1회 강의는 8월 31일, 장소는 세이쿄신문사였고 수강자는 남녀대학부 부장 이상 간부 44명이었다.
◆ 오노 유리코 씨
간사이 여자대학부 대표로서 저도 ‘어의구전’ 강의 1기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남학생뿐만 아니라 여학생에게도 평등하게 뜨거운 기대를 걸어 주셨던 것입니다.
당시는 “여자대학생이 많아지면 대학은 신부(新婦)학교로 변하여 나라는 멸망한다”라는 ‘여자대학생 망국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여학생을 매우 소중히 해 주셨습니다. ‘어의구전’ 강의를 받기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간사이 본부에서 교토대학의 신입생 5명과 간담의 기회를 가져 주셨습니다.
5명 중 여대생은 저 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에 입학만 했지 그 뒤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매우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질문했습니다.
“대학부 결성 때, 도다 선생님께서는 ‘반은 박사로, 반은 중역으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여대생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말씀하신 것이니, 무엇이든 자신이 희망하는 분야에서 일류가 되면 됩니다. ‘여대생이니까 이렇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도 일체 없습니다. 착실하게 힘을 기르고 사회의 리더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장래에 대한 시야가 한꺼번에 드넓게 열린 것입니다.
저는 1기생으로서 선생님의 훈도를 착실하게 받겠다고 깊이 결의를 굳혔습니다.
◆ 마츠야마 야스코 씨
강의 전월인 7월 29일, 가나가와의 아시노호(湖)에서 행해진 화양회 연수회에서 이케다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은 간담의 때, 저는 각오를 하고 “본부의 해외부문에 넣어주십시오”라고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미국 항공회사에 근무했던 저는 학생부로 활동에 면려하면서 어학을 살려 학회 속에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진검으로 제목을 올린 끝에 한 부탁이었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저를 보시고 선생님께서는 그 긴장을 풀어주시듯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라고 영어로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일의 상황 등을 들어주시며 “지금 회사에서 분발하세요”라고 타이르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매우 상쾌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1주 후 하계 강습회 때였습니다. 리쿄방으로 불렀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력서를 가지고 오세요”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전 회사를 원만하게 퇴사한 후에 본부직원으로서 채용되게 된 것입니다.
8월 31일에 행해진 ‘어의구전’ 강의는 저에게 있어 실로 새로운 출발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의 여대부원의 갑작스러운 부탁에까지 진검으로 귀를 기울여 주시고, 대학부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육성하려고 해 주셨던 것입니다.
☞ 기획특집 - 사제의 ‘어의구전(御義口傳)’ 강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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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어요 ~^^~
감사히배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