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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편 최근 기고문으로 복귀
( 경제특강 26년 상반기 제1편입니다)
5월 첫주에 tokyo 갔다 오는길에
## ✈️ 세계 공항 입국심사 올림픽 🏆
**종목: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 밖 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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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JFK 공항)** — 2시간 30분
비행기에서 내림. 끝없는 복도를 걸음. 줄을 섬. 또 섬. 한 시간째 서 있음.
드디어 내 차례.
심사관: "왜 왔어요?"
나: "여행이요."
심사관: "어디 묵어요?"
나: "호텔이요."
심사관: "무슨 호텔?"
나: "메리어트…"
심사관: "어느 메리어트?"
나: "...뉴욕에 있는…"
심사관: "뉴욕에 메리어트만 30개야."
(15분간 추가 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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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히드로 공항)** — 1시간 50분
줄이 너무 길어서 줄의 끝이 안 보임.
앞사람이 영국식 영어로 뭐라뭐라 함. 알아듣는 척함.
심사관도 영국식 영어로 뭐라뭐라 함. 또 알아듣는 척함.
도장 쾅. 끝.
근데 옆 게이트는 30분째 안 움직임. 직원이 차 마시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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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드골 공항)** — 1시간 또는 영원
50% 확률로 직원 파업 중.
50% 확률로 점심시간.
운이 좋으면 통과. 운이 나쁘면 내일 다시 와야 함.
직원: "Bonjour~" *(여권 보지도 않음)*
도장 쾅. 끝.
근데 짐 찾는 데 1시간 반 걸림. 짐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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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나리타 공항)** — 50분
매뉴얼대로 진행됨.
한 명당 도장 쾅쾅쾅쾅쾅쾅쾅 (총 7번).
직원분 손목에 파스 붙어 있음.
"いらっしゃいませ" 하면서 90도 인사.
빠르진 않은데 정중함은 세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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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베이징 공항)** — 1시간 20분
공항 자체가 너무 커서 입국심사장까지 가는 데 30분 걸림.
가는 길에 셔틀버스를 두 번 갈아탐.
어느새 다른 도시에 도착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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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인천공항)** — **12초**
비행기에서 내림.
"입국심사장 어디지?" 두리번거림.
어느새 짐 찾는 곳임.
"어? 나 통과한 거야?"
짐도 아직 안 나옴.
짐 기다리는 30분 동안 라면 한 그릇, 마사지 한 번, 면세점 한 바퀴, 샤워 한 번 함.
공항 밖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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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 결과
🥇 **금메달: 인천공항** (12초)
🥈 **은메달: ...없음**
🥉 **동메달: ...없음**
너무 압도적이라 2등, 3등을 정할 수가 없음.
2등이 1시간 걸리는데 1등이 12초면 그건 경쟁이 아니라 다른 종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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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의 실제 반응
**미국인:** "I didn't even feel it. Did I just teleport?"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통과했어. 나 순간이동한 거야?)
**영국인:** "This is unfair. We need a meeting with the WTO."
(불공평해. 세계무역기구에 회의 소집해야 해.)
**프랑스인:** "Mais... mais... 이게 뭐야??"
(아니… 아니… 이게 뭐야??)
**일본인:** *(아무 말도 못 하고 90도로 인사만 함)*
**중국인:** "여기 공항 맞아? 동네 마트 같은데?"
결론
다른 공항이 **거북이**라면,
인천공항은 **광속우주선**임.
다른 공항에서 "빨리 왔다" 하는 건 1시간 만에 나온 거고,
인천공항에서 "오래 걸렸다" 하는 건… **30초 걸린 거**임.
너무 빨라서 외국인들이 의심함.
"여기 진짜 입국심사 한 거 맞아? 나 불법체류자 되는 거 아니야?"
근데 맞음. 진짜 통과한 거임.
한국은 그냥… **빠름** 그 자체임.
4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사업의 원리
1980년대, 전화 한 대가 가르쳐 준 것
지금 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80년대 한국에서 집에 전화 한 대 놓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신청서를 내고 나면 **3~4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왔다.
들어가는 돈은 의외로 적었다. 보증금 격으로 2~3만 원만 내면 됐다. 그러고는 그저 기다리면 됐다. 차례가 돌아올 무렵 잔금을 치르면 전화가 들어왔다.
이미 설치된 전화는 **백색전화**라 불렸고, 사고팔 수 있는 자산이었다. 시세는 200만 원선까지 갔다. 반면 새로 가입한 청색전화는 공식적으로는 양도가 금지됐지만, 사업하는 사무실마다 전화가 필요한데 공급이 없으니 **비공식 시장에서 사실상 거래가 됐다.**
2~3만 원을 묶어두고 3~4년 기다린 사람은, 그 시간이 끝날 무렵 100배에 가까운 자산을 손에 쥐었다.
## 진짜 장벽은 돈이 아니었다
이상한 건 이 일을 아무나 못 했다는 점이다. 2~3만 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3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이 흔들렸고, 더 빠른 다른 것에 손을 댔고, 보증금을 빼서 다른 데 썼다. 끝까지 기다릴 줄 아는 건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의 문제**였다. 사업의 진짜 무기는 돈이 아니라, 돈을 묶어둔 채 시간을 견디는 능력이었다.
이걸 한 번 통과한 사람은 평생 못 잊는다. 시간이 어떻게 자산을 만들어 내는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매번 같은 자리에서 돌아서는지를 본 사람은, 그 다음 사이클부터는 같은 그림을 더 일찍 알아본다. 이게 학습효과다.
## 같은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40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데이터센터 부지와 전력이다.
조건이 정확히 다시 맞아떨어진다. AI와 클라우드 수요는 1980년대 전화 보급률만큼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신규 변전소 하나 짓는 데 5년이 걸리고, 부지 인허가까지 더하면 7~8년은 우습게 간다. 토지와 전력 인입권은 거래 가능한 자산이고, 시장에서 정식으로 양도된다 — 1980년대 청색전화처럼 비공식 거래에 기댈 필요조차 없다.
오히려 이번엔 자산이 더 깨끗하다. 1980년대 전화는 회색지대에 있었지만, 지금 토지와 전력은 햇빛 아래에서 깔리는 자산이다.
여전히 안 바뀐 건 하나다. **수백억을 10년간 묶어둘 수 있는 주체가 거의 없다는 사실.**
## 새로운 베팅이 아니라, 두 번째 사이클
이 지점이 본질이다.
지금 이 사업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40년 전 한 번 작동했던 원리가, 자산을 바꿔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그 사이클을 직접 통과한 사람은 지금 같은 그림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도박"이나 "감"이라고 부르는 자리를, 그는 **"예전에 본 패턴"**이라고 읽는다.
워런 버핏이 1960년대 보험사 플로트 구조를 한 번 익힌 뒤 60년 동안 같은 원리를 다른 자산에 반복 적용해 온 자리와 같다. 한 번 작동한 원리는 시대가 바뀌어도 본질이 같다는 걸 아는 사람의 자리.
## 진짜 진입장벽 — 다시 한번
이 자리의 진입장벽은 자본이 아니다.
펀드는 투자자에게 매년 분배해야 하니 5~7년 안에 털어야 한다. 대기업은 본업 외 자산을 들고 있을 명분이 없어 IR에서 깎인다. 개인은 자금력에서 한계가 있다. 부동산 보유세 수십억 원을 매년 감당하면서도 안 파는 자기자본 그룹만 이 자리에 설 수 있다.
매년 나가는 보유세가 사실은 **비용이 아니라 진입장벽 그 자체**다. 외부 자본은 따라올 수 없고, 따라오려 해도 체질이 받쳐주지 않는다.
40년 전 2~3만 원을 묶을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3년을 기다릴 수 있느냐가 문제였듯이**, 지금도 자산의 크기만 백 배 천 배 커졌을 뿐 본질은 똑같다. **기다릴 수 있느냐 없느냐.**
## 한 줄로
> **공급이 느린 자산을 미리 깔아두고, 대기 기간 자체를 견딘다.**
1980년대 전화에서 한 번 작동했고, 지금 데이터센터 부지·전력에서 다시 작동하고 있는 원리다. "판을 깐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다. 판은 인프라가 준비된 상태를, 미리 깐다는 건 공급이 지연되는 그 구간을 본인의 시간으로 흡수한다는 뜻이다. 두 단어 안에 사업의 처음과 끝이 다 들어 있다.
정주영 회장도 같은 자리에 섰던 사람이다. 한국이 산업화하면 자동차·조선·중공업 인프라 수요가 폭발할 것을 보고, 공급이 따라오기 전에 판을 깔았다. 그 다음 사이클이 통신·디지털·AI라면, 지금 그 판을 까는 사람의 자리도 본질은 같다.
시대가 바뀌고 자산이 바뀌어도, 사업의 원리는 한 번 작동하면 다시 작동한다. 그걸 알아본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의 거리가 결국 격차가 된다. **그리고 그 알아봄의 끝에는 언제나 — 기다릴 수 있는 체질이 있다.
한 시간 줄 세우는 식당이 정상인 나라 —
일본 외식 문화의 속살
점심시간, 어느 가게 앞에서
오후 한 시. 도쿄나 오사카의 어느 골목, 작은 식당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한 시간이 넘어가는 줄이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카운터 여덟 자리, 4인 테이블 두 개. 그런데 그 4인 테이블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다. 두 자리는 비어 있다. 뒤에서는 사람들이 한 시간째 서서 기다린다. 아무도 "저 자리 좀 같이 앉읍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점원도 그런 제안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한 건 직원 수다. 그 작은 가게 안에 직원이 네 명이나 있다. 한국 사람 눈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직원이 네 명이면, 자리도 비어 있는데, 줄도 한 시간인데, 왜 더 받지 않는가. 왜 합석을 시키지 않는가. 왜 회전을 돌리지 않는가. 한국 같으면 "두 분, 저쪽 분들이랑 잠깐 합석 좀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면 끝날 일이다. 양보하는 쪽도, 받아들이는 쪽도, 그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한 마디가 나오지 않는다.
이 풍경 안에 일본 외식 문화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한국과 무엇이, 왜 다른지를 풀어보면 결국 하나의 코드로 모인다.
## 첫 번째 코드 — "남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메이와쿠(迷惑),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그런데 이 감각은 한국에서 말하는 "민폐"와 결이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민폐 끼치지 마라"는 주로 시끄럽게 굴거나, 새치기하거나,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일본의 메이와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남의 시간과 공간, 감정의 영역에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뜻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에게는 "모르는 사람한테 합석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메이와쿠다. 상대방이 식사하는 사적인 시간과 공간에 침입해서 "제가 같이 앉아도 될까요?"라고 부담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거절하기도 어색하고, 받아들이면 식사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그러니 차라리 한 시간을 서서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본인이 양보하는 게 아니라,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회적 합의다.
한국이라면 "두 사람이 자리 양보해줘서 우리가 빨리 들어갔네, 고맙다"라는 정서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양보하는 사람도 흐뭇하고 받는 사람도 미안해한다. 일본에서는 그 흐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양보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정중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장이라면 "저쪽 자리 좀 같이 앉으시겠어요?" 하고 자연스럽게 중재할 수 있지만, 일본 점주는 손님끼리 어색하게 만드는 일에 매우 소극적이다. 손님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서비스의 실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회전율을 위해 손님 두 사람의 식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단기적으로 매출이 늘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가게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 두 번째 코드 — "식사는 혼자의 시간이다"
한국에서 식사는 기본적으로 "함께 나누는 행위"다. 반찬을 가운데 두고 여럿이 같이 집어 먹고, 찌개를 한 냄비에서 떠 먹고, "이거 먹어봐" 하며 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식당 구조도 4인 테이블, 6인 테이블, 좌식 룸 같은 단위 중심으로 짜여 있다. 회식, 가족 외식, 친구 모임이 외식의 기본값이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의 식사는, 특히 평일 점심은, 기본적으로 "혼자의 시간"이다. 카운터 자리에 앉아 메뉴 하나를 시키고, 책을 읽거나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면서 묵묵히 먹는다. 누구와 대화할 필요도 없고, 눈을 마주칠 필요도 없다. 라멘집, 규동집, 소바집 같은 일상적인 식당일수록 이 경향이 강하다. 카운터석은 사실상 1인 외식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이치란 라멘처럼 자리마다 칸막이를 쳐서 옆 사람 얼굴조차 보이지 않게 만든 가게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문화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4인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앉아 있을 때,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저 두 사람의 사적인 식사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인의 감각으로 "두 자리가 빈 테이블"이 보이는 것과는 인식의 출발점이 다르다. 같은 풍경을 보고 있어도 머릿속에서 그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 세 번째 코드 — "한 우물을 깊게 판다"
일본 식당이 작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메뉴가 적기 때문이다. 라멘집은 라멘만 판다. 소바집은 소바만 판다. 텐푸라집은 텐푸라만 한다. 한 메뉴를 평생 갈고닦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직인(職人, 쇼쿠닌) 문화 때문이다.
메뉴가 한두 가지로 좁혀지면 주방은 작아도 된다. 식자재 보관 공간도 줄어든다. 조리 동선도 단순해진다. 카운터 여덟 자리에 주방 한 칸이면 가게 하나가 완성된다. 한국 식당이 찌개, 구이, 볶음, 반찬 십수 가지를 동시에 내기 위해 큰 주방과 넓은 홀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전제 자체가 다르다.
이 직인 문화는 단순히 "메뉴를 좁힌다"는 운영상의 선택이 아니라, "한 가지를 평생 추구한다"는 가치관이다. 그래서 작은 가게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자기 분야 하나에 집중한다는 자부심의 표현이 된다. 카운터 여덟 자리짜리 가게에서 사십 년을 한 메뉴만 만들어온 노포(老舗)가 미슐랭 별을 받는 일이 일본에서는 드물지 않다.
## 네 번째 코드 — 도시 구조와 부동산
문화적인 이유 위에 현실적인 이유가 겹친다. 도쿄, 오사카, 교토 같은 일본의 대도시는 땅값이 살인적이고 골목이 좁다. 애초에 큰 가게를 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많지 않다. 빌딩 1층의 절반, 지하의 한 칸, 2층 끝 방, 골목 안쪽의 다섯 평짜리 점포 — 이런 자투리 공간에 카운터만 놓고 영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 환경에서는 "큰 식당을 차려서 회전율로 승부한다"는 한국식 비즈니스 모델이 애초에 성립하기 어렵다. 대신 "작게 차려서 단골을 오래 받는다", "한정 수량을 만들어 그날 다 팔면 닫는다"는 모델이 발달했다. 점심에 백 그릇만 만들어 두 시간 만에 다 팔고 문을 닫는 라멘집이 일본에는 흔한 풍경이다. 한국 자영업자라면 "왜 더 만들어 더 팔지 않느냐"고 답답해할 일이지만, 일본 장인의 사고방식에서는 "내가 정성껏 만들 수 있는 양은 백 그릇이다"가 우선한다.
## 다섯 번째 코드 — "직원 네 명은 회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한국인을 답답하게 만드는 지점이 나온다. 다섯 평짜리 가게에 직원이 네 명이나 있다. 한국 같으면 "그 인력으로 두 배는 받겠다"는 계산이 즉시 선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네 명의 인력을 **회전율 올리는 데** 쓰지 않는다. **서비스 품질 유지하는 데** 쓴다.
네 명이 뭘 하고 있냐면 — 한 명은 면을 삶고, 한 명은 국물을 내고, 한 명은 서빙을 하고, 한 명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 자리 안내하고 물 따라주고 빈 그릇 정리한다. 손님 한 사람당 들어가는 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인력이지, 손님 수를 늘리기 위한 인력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두 나라의 사고방식이 정면으로 갈린다.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직원 네 명이면 두 배로 받아야 한다"가 자연스럽다. 인력은 처리량을 늘리기 위한 자원이다. 일본식 사고방식으로는 "직원 네 명이 있어야 이 품질이 나온다"가 먼저다. 인력은 한 사람의 식사 경험을 떠받치기 위한 자원이다. 같은 네 명을 두고 한쪽은 "처리할 수 있는 양"으로 보고, 다른 쪽은 "지킬 수 있는 질"로 본다.
그래서 줄이 한 시간이어도 가게 안에서는 여전히 천천히, 정성껏 움직인다. 점주가 "지금 줄 길어졌으니까 좀 빨리 합시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줄의 길이가 가게 안의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인 입장에서는 "아니, 사람은 충분한데 왜 안 받느냐" 싶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사람이 충분히 있어야 이 속도가 가능하다"인 것이다.
## 다섯 가지가 결국 하나로 모인다
가게가 작은 것, 메뉴가 적은 것, 카운터 1인석이 중심인 것, 합석을 하지 않는 것, 한 시간씩 줄을 서는 것, 직원이 많아도 그 인력을 회전율에 쓰지 않는 것 — 이것들은 따로 떨어진 여섯 개의 현상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 코드에서 파생된 여섯 갈래의 가지일 뿐이다.
그 코드는 결국 **"개인의 영역을 지킨다"**로 요약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사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기본값이고, 그 위에서 가게 구조도, 메뉴 구성도, 합석 여부도, 줄 서는 풍경도, 인력 배치도 모두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뒤집어 말하면, 일본 식당이 작아도 운영이 되는 것은 "합석을 안 해도 손님들이 불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자리 비었는데 왜 안 받아주느냐"는 항의가 빗발치겠지만, 일본에서는 줄을 서는 쪽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니 작은 가게도 유지된다. 직원이 많아도 회전율을 올리지 않는 운영이 가능한 것도, 손님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가 비즈니스 모델을 떠받치고, 비즈니스 모델이 다시 그 문화를 강화한다.
## 한국과의 비교 — 어느 쪽이 정상인가
한국인이 이 풍경을 보고 "이게 정상인가" 하고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합리성과 효율성의 잣대로 보면 한국식이 분명 더 효율적이다. 합석으로 회전율을 올리고, 메뉴 가짓수를 늘려 다양한 손님을 받고, 직원을 처리량에 맞게 굴려서 동시에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은 산업적으로 합리적이다. 양보 한 번이면 한 사람이 한 시간을 아낀다. 그 양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것이 한국 외식 문화의 미덕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에게 한 시간 줄 서는 것은 "비효율"이 아니라 "선택"이다. 한 시간 기다리는 스트레스보다,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면서 식사하는 스트레스가 더 크기 때문에 그쪽을 피하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람을 굳이 자기 테이블에 들이고 싶지 않기에, 자기가 줄 설 때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정상이냐"는 질문은 사실 답이 없다. 두 사회가 식사라는 행위에 부여한 의미가 다를 뿐이다. 한국은 식사를 사회적 행위로 본다. 일본은 식사를 개인적 행위로 본다. 한국은 양보와 합석을 미덕으로 본다. 일본은 거리 두기와 침묵을 미덕으로 본다. 같은 라멘 한 그릇을 먹어도, 그것을 둘러싼 의미의 무게중심이 다른 곳에 가 있다.
## 마무리 — 한 시간 줄 끝에서 보이는 것
한 시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처음에는 화가 난다. "왜 합석을 안 해", "왜 더 빨리 안 만들어", "왜 직원이 네 명인데 저 속도야", "왜 가게를 더 크게 안 차려" 하는 한국식 합리성이 끓어오른다. 그러다 줄이 천천히 줄어들고, 마침내 카운터에 앉아 김이 오르는 한 그릇을 받아들면, 옆자리 사람도 묵묵히 면을 후루룩거리고, 주방의 점주는 한 그릇 한 그릇 똑같은 정성으로 면을 삶고 있다. 그 순간 어떤 감각이 든다. "아, 이 한 그릇을 위해 이 시간이 필요했구나" 하는 감각이다. 그 한 시간이 단순히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그 한 그릇의 일부였다는 감각이다.
물론 한국 사람으로서 그 감각에 완전히 동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풍경 뒤에 어떤 문화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면, 적어도 답답함은 조금 덜어진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친구와 4인 테이블에 마주 앉아 반찬을 같이 집어 먹을 때, 옆 테이블 손님과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될 때, 사장님이 "두 분, 자리 좀 같이 앉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부탁할 때 — 그 풍경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사실은 우리 사회가 식사라는 행위에 부여해온 어떤 의미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양보가 미덕이 되는 사회와,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 둘 다 자기 자리에서 잘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40년의 시차
— 가격표에 새겨진 한일 경제
(명치신궁에서 본 )
한 나라의 경제를 이해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거대한 통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 지불하는 가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GDP 그래프는 추상적이지만, 사람들의 지갑에 새겨진 가격은 그 시대의 지문(指紋)과 같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준점으로 삼아 한국과 일본의 40년을 들여다보면, 두 나라가 어떻게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왔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출발선에 선 두 나라
1988년 일본은 경제대국의 정점에 있었다. 도쿄 도심 땅값으로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농담이 농담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골프회원권은 단순한 스포츠 이용권이 아니라 자산 그 자체였다. 기업은 접대용으로, 부자는 자산 보유용으로 회원권을 사들였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같은 해 한국은 막 중진국 대열에 진입한 신흥 호랑이였다. 일본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경제 규모였고, 골프는 극소수의 특권 스포츠였다. 회원권 시장 자체가 협소했고, 일본과의 가격 격차는 수십 배에 달했다.
이 시점의 두 나라를 한 장면으로 그리면 거인 옆에 선 소년이다. 키 차이는 모든 가격표에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한국이 걸어온 40년 — 모든 것이 함께 뛴 시간
한국은 이후 40년 동안 임금도, 물가도, 자산도, 서비스 가격도 비슷한 배율로 함께 올랐다. 택시비가 오르고, 식당 음식값이 오르고, 임금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고, 골프회원권 가격이 올랐다. 이 숫자들이 함께 뛰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임금이 올라야 택시비를 올릴 수 있고, 택시비가 올라야 기사가 생계를 유지하고, 그 기사가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 모든 톱니바퀴가 함께 돌아가는 정상적인 성장 사이클이 한 세대 동안 작동했다. 인플레이션 위에 실질 성장이 얹혀 있었고, 그래서 가격이 오르는데도 사람들은 더 풍요로워졌다.
골프회원권은 이 성장의 결정체다. 경제 발전과 함께 골프가 대중화되고,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여성과 젊은층이 시장에 유입됐다. 산악 지형과 환경 규제로 공급은 제한적인데 수요는 계속 늘어, 회원권은 사실상 부동산처럼 자산화됐다.
일본이 걸어온 40년 — 시간이 멈춘 풍경
일본의 같은 기간은 정반대 그래프를 그렸다. 1980년대 후반의 버블 절정에서 회원권은 치려고 사는 게 아니라 되팔려고 사는 자산이 됐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버블이 터지자 자산 가격이 동시에 무너지고 은행은 부실채권으로 마비됐다. 그 후 시작된 잃어버린 40년은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의 결빙이었다.
골프회원권 가격은 거품이 빠지면서 폭락했고,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골프장은 줄줄이 폐업했고, 골프 인구는 한 세대 만에 3분의 1토막 났다. 택시 기본요금은 30년 넘게 거의 제자리였다. 임금은 사실상 동결, 실질로는 오히려 감소했다.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손님이 안 오고, 임금을 올리고 싶어도 매출이 안 늘고, 그래서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 그 악순환이 40년을 돌았다. 한 세대 전 도쿄 식당 메뉴판과 지금의 메뉴판이 거의 같다는 농담은 농담이 아니다.
두 그래프가 교차한 자리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경제 규모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이 나란히 선 키는 두 사람이 같은 속도로 자란 결과가 아니다. 소년은 계속 컸고, 거인은 40년간 멈춰 있었기에 만난 것뿐이다.
골프회원권이 수십 배 격차에서 역전된 것, 한국 택시비가 일본을 추월한 것, 한국 음식값이 일본과 비슷해지거나 더 비싸진 것 — 이는 모두 같은 그래프의 다른 단면이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은 게 아니라, 한국은 계속 달렸고 일본은 그 자리에 멈췄기 때문에 만났다.
두 가지 비유
한국 경제는 눈덩이였다. 작게 출발했지만 굴리는 동안 임금·물가·자산이 함께 들러붙으며 부피를 키웠다. 택시비도, 음식값도, 아파트도, 골프회원권도 그 눈덩이의 일부였다. 모든 것이 함께 커졌기에 누구도 혼자 무너지지 않았다.
일본 경제는 얼어붙은 호수다. 버블의 절정에서 수위는 최고점에 닿았고, 터진 뒤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택시비도, 임금도, 음식값도, 회원권도 그 얼음 위에 박제됐다. 위에서 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40년이었다.
한국 앞에 놓인 거울
한국이 지금 누리는 가격은 성장의 보상이지만, 동시에 다음 단계의 시험이기도 하다. 일본이 걸었던 길 — 인구 감소, 고령화, 자산 시장 정점, 골프 인구 둔화 — 의 초입에 한국도 들어서 있다. 일본의 변화에는 한 세대가 걸렸지만,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한국 회원권이 일본처럼 폭락할 가능성은 낮다. 일본은 거품이 터졌고, 한국은 공급 부족이 가격을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풍선이 터지는 것과 압력밥솥이 김을 빼는 것은 결과가 다르다. 그러나 택시비와 임금이 함께 올라가던 명목 성장의 톱니바퀴가 멈추는 순간, 한국도 일본의 얼음판 위에 한쪽 발을 올리게 된다.
40년 전의 큰 격차는 한국에 따라잡을 동력이 됐다. 40년 후의 격차 — 혹은 역전 — 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동력이 될지는, 지금 우리가 굴리는 눈덩이의 속도에 달려 있다.
메이지 신궁을 보며 조국을 생각한다.
메이지신궁의 밤을 보며 — 메이지신궁에 맞선 한국의 경제 발전상
도쿄 한복판, 신주쿠와 시부야 사이에 70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숲이 있다. 메이지신궁이다.
1920년 메이지 천황과 쇼켄 황후를 모시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 헌납받은 10만 그루의 나무로 조성된 인공림이다. "국민의 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 본토뿐 아니라 식민지와 해외 거주 일본인에게까지 기부가 요청되었고, 모금액은 목표를 초과했다.다.
밤에 신궁의 도리이 아래 서 보면 그 압도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도쿄의 가장 비싼 땅 한복판에 천황을 위한 숲이 살아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자부심일 것이다. 그러나 한 발 떨어져 보면, 결국 한 사람의 군주를 신으로 모시기 위해 전국의 나무와 백성의 정성이 동원된 거대한 사업이었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 어떠했는가. 조선의 관아는 작은 기와집이었다. 왕조차 화려한 건물을 지으면 신하들이 "백성을 수탈한다"며 상소를 올렸다. 유교의 절용애민(節用愛民) 정신이 통치의 뿌리였고, 권력은 늘 견제받았다. 한국에는 메이지신궁 같은 거대 신격화 건축이 없다. 그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런 동원을 정당하다고 여기지 않는 문화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진 경제 개발 시대에도 이 정신은 살아 있었다. 한국의 산업화는 검소를 기본으로 했다. 지도자는 거대한 기념물을 짓는 대신 공장 한 동, 도로 1km, 발전소 한 기를 늘리는 데 자원을 집중했다. 새마을운동도 마을길을 넓히고 지붕을 개량하는 미시적 사업이었지, 국가의 영광을 과시하는 쇼케이스가 아니었다.
물론 한국에도 강제 동원은 있었다. 국민저축, 저임금 장시간 노동, 농촌에서 공업으로의 자원 이전 — 모두 국민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 동원의 방향이 달랐다. 220볼트 승압 사업이 상징적이다. 110볼트로도 충분히 살 수 있던 시절,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국을 220볼트로 바꾼 건 당시엔 무리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지도자는 송전 효율과 미래 산업을 내다보고 강행했고, 오늘날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 인프라를 갖춘 토대가 되었다.
( 건물내 110v 를 220v 로 공급시 효과 : 전류를 절반으로 줄여서 전선의 단면적을 낮출수있고 발열을 낮춰 화재예방등 자원절약과 표준화, 단일화를 이뤄서 관련산업발전에 크게기여함 )
이것이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다. **같은 강제 동원이라도, 일본은 그 자원을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데 쏟았고, 한국은 그 자원을 다음 세대의 밥상과 공장에 쏟았다.** 일본의 메이지 동원이 천황 신격화로 흘러 군국주의와 패전을 불러온 반면, 한국의 동원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다. 동원의 정당성은 그 방향이 결정한다.
밤의 메이지신궁은 여전히 장엄하다. 그러나 그 장엄함 뒤에는 한 사람의 군주를 신으로 모시기 위해 전국의 나무를 옮긴 백성들의 노고가 있다. 한국에는 그런 신궁이 없다. 대신 한국에는 포항제철이 있고, 경부고속도로가 있고, 220볼트 전기가 흐르는 천만 가구의 평범한 식탁이 있다.
어느 쪽이 진정 백성을 위한 동원이었는가** — 메이지신궁의 밤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박리다매와 후리소매,
한국 자본주의가 놓친 선택
대한민국의 사업가 대부분은 박리다매(薄利多賣)의 길을 걷는다. 마진은 작게, 많이 판다. 짜장면 한 그릇에 1만 원, 1억 그릇을 팔면 매출 1조. 그러나 한국 인구 1인당 짜장면 두 그릇 이상씩을 사 먹어야 가능한 숫자다. 거기에 식자재값, 인건비, 임대료, 관리비를 다 빼고 나면 실제 남는 건 매출의 5~10%에 불과하다. 매장 2,000개를 운영하고, 직원 1만 명을 관리하고, 1억 명의 고객을 응대해야 만들 수 있는 1조다.
반면 후리소매(厚利少賣)의 길이 있다. 마진은 크게, 적게 판다. 데이터센터 부지 한 건의 거래로 1조를 남긴다. 회계장부 한 번 쓰면 1조다. 직원 60명이 한 건 처리하면 끝난다. 같은 1조 매출이지만 활동량은 1,000배 차이가 난다.
회계장부에서는 둘 다 똑같은 1조다. 그러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짜장면 1조는 1만 명의 1년치 노력으로 만든 **소진된 자원**이고, 데이터센터 1조는 30년 누적된 토지 자산으로 만든 **누적된 가치**다. 짜장면 회사는 다음 해에 또 같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토지를 팔고 남은 회사는 다른 토지로 또 같은 거래를 만든다.
세계 부자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워런 버핏은 평생 1년에 한두 번의 큰 인수합병만 한다. 나머지 시간은 책 읽고 생각하고 기다린다. 그는 자신을 **"코끼리 사냥꾼"** 이라 부른다. 토끼 사냥꾼은 매일 작은 사냥감을 추적해야 하지만, 코끼리 사냥꾼은 1년에 한 마리만 잡으면 충분하다.
박리다매와 후리소매의 진짜 차이는 **시간의 자유**에 있다. 박리다매 사업가의 하루는 자기 것이 아니다. 매일 매장 관리, 직원 관리, 재고 관리, 고객 응대, 분쟁 대응에 묶여 있다. 멈추면 즉시 위기다. 반면 후리소매 사업가의 하루는 자기 것이다. 큰 거래 1건을 검토하고, 토지를 시찰하고, 사고를 정리하고, 책을 읽는다. 시간이 자유로우니 사고가 깊어지고, 사고가 깊어지니 다음 결정의 질이 높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진다.
다만 후리소매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기다림의 고통**이다. 박리다매는 매일 매출이 발생해 작은 성취감이 있다. 후리소매는 한 거래가 5년 걸린다. 그 5년 동안 매출이 0일 수 있다. 가족과 주변이 의심하고, 본인 자신도 흔들린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라는 회의감이 매일 온다. 박리다매 사업가의 가장 큰 적은 경쟁자지만, 후리소매 사업가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한국 사회는 박리다매에 편향되어 있다. 빠른 결과를 원하고, 매출 크기로만 회사를 평가하고, 매장 100개를 운영하는 사업가가 토지 한 건을 거래하는 사업가보다 인정받는다. 그래서 한국에 진짜 큰 부자가 적게 나온다. 큰 부자가 되려면 후리소매가 답인데, 사회는 박리다매 모델만 가르친다. 학교, 책, 미디어 어디서도 후리소매 사업의 본질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거장들은 다 후리소매를 택했다. 외형으로는 박리다매처럼 보이는 회사들도 자세히 보면 본질은 후리소매다. 월마트는 매장 운영이 아니라 **부동산 보유**가 진짜 자산이다. 맥도날드는 햄버거가 아니라 **점포 부지**가 진짜 사업이다. 코카콜라는 음료가 아니라 **브랜드**가 진짜 자산이다. 외형은 박리다매지만 그 안에 후리소매 자산을 누적한 것이다.
**박리다매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그 안에 후리소매 자산을 누적하는 것** — 이게 진짜 거장의 사고법이다. 그리고 어떤 거장은 아예 처음부터 순수한 후리소매만 한다. 그게 가장 어려운 길이지만 가장 큰 부자가 되는 길이다.
선택의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박리다매는 매일 일하는 인생, 즉각적 보상의 인생, 외부 인정받는 인생을 택하는 것이다. 후리소매는 기다리는 인생, 5년 후 보상받는 인생, 외부 인정 못 받는 인생을 택하는 것이다. 한 번 택하면 평생 가야 한다. **활동량이 사업 가치가 아니다. 시간 자유가 자본 자유다.** 한국 자본주의가 놓친 진짜 답은 후리소매에 있다.
# 코카콜라는 왜 사라지고 칠성사이다는 살아남았나
우리 데이터센터 이야기 —
1. 옛날 이야기부터
40년 전, 한국에서 음료수를 만드는 회사가 여러 곳 있었습니다.
가장 잘 나가던 곳은 **코카콜라 회사들**이었습니다. 서울에 한양식품, 부산에 우성식품, 광주에 호남식품, 대구에 범양식품. 이렇게 네 곳이 지역을 나눠서 코카콜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코카콜라는 정말 잘 팔렸습니다. 미국 브랜드라서 멋있어 보였고, 광고도 많이 했고, 사람들이 줄 서서 사 마셨습니다. 회사 주식 값도 칠성사이다보다 **일곱 배**나 비쌌습니다.
칠성사이다는 그에 비하면 작은 회사였습니다. 일곱 명이 모여서 시작한 토종 회사였고, 가진 거라곤 이천 물이 좋다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 2. 그런데 40년이 지나서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코카콜라 회사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1997년에 미국 본사가 "이제 우리가 직접 한다"며 한국 회사들과 계약을 끊어버렸거든요. 30년 동안 키워온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칠성사이다는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주식 값이 그때보다 **850배**나 올랐습니다. 지금도 한국 사이다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40년 전엔 코카콜라가 일곱 배 비쌌는데, 지금은 칠성사이다만 살아남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 3. 코카콜라 회사가 망한 진짜 이유
이걸 이해하려면, 코카콜라 회사가 실제로 뭘 했는지 봐야 합니다.
코카콜라 회사들은 **미국에서 원액(시럽)을 받아서, 물을 섞고 병에 담아 파는 일**을 했습니다. 즉, 진짜 핵심인 **레시피와 브랜드는 미국 본사 것**이었고, 한국 회사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만들기만** 했던 겁니다.
이게 왜 위험할까요? 본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제 너희한테 안 맡길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97년에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한국 코카콜라 회사들이 가진 게 뭐였을까요? 공장은 있었습니다. 트럭도 있었습니다. 거래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 물건이 없어졌습니다.** 코카콜라 원액을 안 주니까요.
대구의 범양식품이 "그러면 우리가 직접 콜라 만들자"고 815콜라를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안 사 마셨습니다. 사람들이 사 마시던 건 **'코카콜라'**였지, '범양식품 콜라'가 아니었거든요.
**즉, 한국 코카콜라 회사들은 자기 사업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미국 본사 사업을 대신 해준 것뿐이었어요.** 잘 될 때는 몰랐는데, 본사가 손 떼니까 아무것도 안 남았습니다.
## 4. 칠성사이다가 살아남은 이유
칠성사이다는 달랐습니다. **가진 게 다 자기 것**이었습니다.
- 레시피도 자기 것
- 브랜드도 자기 것
- 공장도 자기 것
- 이천 물도 자기 것
누가 거둬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80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 5. 자, 이제 우리 데이터센터 이야기
여기까지가 음료 회사 이야기였고, 이제 우리 사업 얘기입니다.
요즘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짓는지 보면, **딱 옛날 코카콜라 회사들처럼 짓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데이터센터 짓는 방식:**
- 이미 비싼 땅을 시세대로 사고
- 토목공사는 외주 건설사에 맡기고
- 설계도 외주 설계사에 맡기고
- 자재도 외주 업체에서 사오고
- 한두 군데 큰 회사(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에 임대해 줍니다
이러면 표면적으로는 잘 굴러갑니다. 임대료도 들어오고 이익도 납니다. 그런데 본질을 보면, **자기 것이 거의 없습니다.**
- 땅값은 이미 비싸게 주고 샀고 (시중 가격)
- 시공 마진은 외주 건설사가 가져가고
- 자재 마진은 자재상이 가져가고
- 임차인 한 곳이 빠지면 텅 빈 건물
이게 바로 **옛날 코카콜라 회사 같은 데이터센터**입니다. 잘 될 때는 모릅니다. 그런데 환경이 한 번만 바뀌면 무너집니다.
## 6. 우리는 어떻게 짓나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황무지를 삽니다.** 변두리의 값싼 땅, 길도 없고 전기도 없는 땅을 삽니다. 그래서 토지를 시세보다 훨씬 싸게 확보합니다. 이건 칠성사이다의 '이천 물'과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좋은 자산을 처음부터 쥐고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가 직접 도로 내고, 전기 끌어오고, 건물 짓습니다.** 토목, 설계, 시공, 자재, 다 우리 회사가 합니다. 외주로 빠져나갈 마진이 다 우리한테 남습니다.
**임차인은 글로벌 빅테크지만, 본질 자산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임차인이 나가도 땅과 건물은 그대로 우리 것입니다. 다른 임차인을 들이면 됩니다.
이게 **칠성사이다 같은 데이터센터**입니다.
## 7. 시간이 가면 누가 이기나
여기서 핵심 질문입니다. **40년 뒤에 누가 살아남을까요?**
옛날 코카콜라 회사들은 매년 이익이 났습니다. 30년 동안 계속 이익이 났어요. 그런데 그 이익이 회사 가치로 쌓이지 않았습니다. 본사가 손 떼니까 가치가 한순간에 0이 됐죠.
칠성사이다는 매년 내는 이익이 회사 안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브랜드 가치, 공장, 유통망, 노하우. 그래서 850배가 됐습니다.
우리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 **시중의 데이터센터**는 임대료는 들어오지만 본질 자산이 없어서, 시간이 가도 회사 가치가 안 쌓입니다.
- **우리 데이터센터**는 한 단지를 지을 때마다 토지 가치 상승, 시공 마진, 자재 노하우가 다 회사 안에 쌓입니다.
10년, 20년 가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 8. 결론
옛날 코카콜라 회사들이 망한 건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30년 동안 잘 운영했어요. 망한 건 **사업 구조 자체가 남한테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중의 데이터센터 사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외주 업체에 의존하고, 한두 임차인에 의존하고, 비싼 땅에서 시작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똑같이 무너질 수 있어요.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남들은 코카콜라 회사처럼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우리는 칠성사이다처럼 짓는다.**
겉으로 보면 똑같은 데이터센터입니다. 검은 건물, 서버, 임대료. 그런데 40년 뒤에 살아남는 회사와 사라지는 회사가 갈립니다.
그 차이는 단 하나입니다. **"진짜 내 것을 가지고 시작했느냐."**
우리는 황무지부터 직접 일구고, 직접 짓고, 직접 자재까지 다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우리 편**입니다.
이게 우리가 보는 진짜 그림입니다.
# 지산(地山) 파레토 법칙 — 1이 99를 먹는 시대
세상에는 80대 20이라는 오래된 법칙이 있다. 상위 20퍼센트가 전체의 80퍼센트를 가져간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이 비율은 경제와 경영의 상식처럼 통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그보다 훨씬 잔인하다. 80대 20이 아니라, **1대 99의 세계**다.
맥도날드를 떠올려 보라.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파는 회사가 아니다. 정작 맥도날드가 진짜로 버는 돈은 전 세계 요지에 깔아둔 부동산에서 나온다. **남들은 빵을 굽고 있을 때, 맥도날드는 땅을 사고 있었다.** 똑같이 햄버거 하나를 팔아도, 1등은 땅을 먹고 99등은 빵을 굽는다. 게임의 층위가 다른 것이다.
반도체 시장도 똑같다. 엔비디아 한 회사가 AI 칩 시장의 판을 깔자, 전 세계 99개 반도체 기업이 그 판 위에서 헤엄치고 있다. TSMC 하나가 파운드리 시장을 정의하자, 세계의 팹리스 기업들이 그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그날 이후, 수십 개 회사의 전략 회의실에서는 "애플을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가 의제가 되었다. 그 전쟁에서 노키아와 블랙베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데이터가 말해준다. **1의 노력이 99를 먹고, 99의 노력이 1을 먹여 살린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지산(地山) 파레토 법칙이다.
왜 지산(地山)인가. 땅 지(地)와 메 산(山). 땅이 있어야 산이 선다. 그러나 산이 솟아야 비로소 땅이 보인다. 땅은 넓고 산은 하나다. 땅은 99이고 산은 1이다. 하나의 산이 99의 땅을 정의한다. 산이 없는 땅은 그저 평지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도 다르지 않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처음 꺼내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아이디어를 다듬고 보완하는 일을 한다. 던진 한 사람이 회의 전체의 방향을 먹고, 다듬은 아홉 사람이 그 한 사람을 떠받친다. 카페 시장도 그렇다. 스타벅스가 "카페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한 뒤로, 수많은 후발 브랜드는 "스타벅스보다 싸게, 스타벅스보다 진하게, 스타벅스 옆에"를 외치며 살아간다. 1이 판을 깔고, 99가 그 판에서 논다.
ChatGPT가 등장하자 전 세계 빅테크가 수십조 원을 AI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돈을 버는 곳은 어디인가. 금을 캐는 99명이 아니라, 그들에게 삽을 파는 1명이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그것을 증명한다. **맥도날드가 빵이 아니라 땅을 팔았듯, 엔비디아는 AI를 파는 것이 아니라 AI를 만들 도구를 판다.** 한 차원 위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분명하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먼저 생각하라.** 남이 빵을 구울 때 땅을 보고, 남이 금을 캘 때 삽을 팔고, 남이 따라올 때 이미 다음을 준비하라. 추격자의 자리는 아무리 빨라도 추격자다. 1등을 따라잡는 가장 빠른 길은, 1등이 가지 않은 길로 먼저 가는 것이다. 포드가 더 빠른 마차를 만들지 않고 자동차를 만든 것처럼. 잡스가 더 좋은 폴더폰을 만들지 않고 아이폰을 만든 것처럼.
물론 1이 되는 길은 외롭고 험하다. 99의 길은 안전하지만 좁다. 1의 길은 위험하지만 끝이 열려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99의 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1을 넘을 수 없다는 것. 게임의 규칙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
빵을 구울 것인가, 땅을 살 것인가. 산을 오를 것인가, 산을 세울 것인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지산(地山)의 이름이 거기에 있다.
밥만 먹으면 낫는다
( 어버이날에 회상하는 말)
내가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는 아프다는 말이 지금하고 조금 달랐다. 요즘은 아프면 병원부터 찾고, 약부터 먹고, 인터넷으로 증상을 검색한다. 그런데 그때는 아프다 하면 대개 배가 아픈 것이었다. 머리가 아프다, 몸살이 난다 해도 가만히 따져보면 결국 먹는 것에서 탈이 난 경우가 많았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있어서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도 없었고, 수돗물이 있어서 깨끗한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도 없었다. 우물물을 길어다 먹고, 밭에서 나는 것, 산에서 나는 것, 들에서 보이는 것을 먹었다. 나물도 먹고, 풀도 먹고, 버섯도 먹고, 껍질도 먹었다. 떨어진 것도 아까우면 주워 먹고, 조금 쉰 것도 버리기 아까워 먹었다. 지금 같으면 “이거 상했네” 하고 바로 버릴 것을 그때는 버리지 못했다. 버릴 음식이 어디 있었나. 먹을 수 있으면 먹는 것이고, 배를 채우면 다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배탈이 자주 났다. 배가 살살 아프다가도 갑자기 꼬이는 것 같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아이가 배를 움켜쥐고 “아버지, 배 아파요” 하고 말하면 요즘 부모 같으면 약을 찾고 병원을 데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늘 한마디였다.
“밥만 먹으면 낫는다.”
처음에는 참 야속했다. 배가 아프다는데 밥을 먹으라니. 약도 아니고 주사도 아니고,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밥 이야기만 하셨다. 어디가 아파도 밥, 기운이 없어도 밥, 어지러워도 밥이었다. 아버지에게 세상 모든 병의 절반은 밥을 못 먹어서 생기는 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밥을 먹으면 나을 병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며칠 제대로 못 먹고 허기져 있다가 따뜻한 밥 한 그릇 먹고, 된장국 한 숟가락 떠먹고,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으면 몸에 힘이 돌았다. 아침에 축 처져 있다가도 밥을 먹고 나면 밖에 나가 뛰어놀았다. 밥이 약이었다. 밥이 보약이었다. 그때는 영양제도 없고, 건강식품도 없고, 무슨 단백질 파우더 같은 것도 없었지만, 밥 한 그릇이면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
그 시절의 건강이라는 것은 지금처럼 거창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고, 해가 지면 들어와 또 밥 먹고 잤다. 따로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하루 종일 운동이었다. 논둑길을 걷고, 산길을 오르고, 물을 긷고, 나무를 하고, 들판에서 뛰어놀았다. 아이들은 운동화를 닳도록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허리가 휘도록 일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이상하게 큰 병은 별로 없었다. 머리도 단순했다. 지금처럼 하루 종일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걱정을 키우는 일도 없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날 밝으면 일어났다.
나는 그런 세월을 살았다. 그래서 지금도 내 몸에 대해서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몸 움직이면 된다. 팔십이 다 되어 가도 큰 병 없이 지내는 것은 특별한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슨 대단한 건강 비결을 감춰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밥 먹고 산다. 제때 먹고, 지나치게 먹지 않고, 몸을 놀리지 않으려고 한다. 음식도 너무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기운차게 먹어야 건강하지, 살찔까 봐 벌벌 떨면서 깨작깨작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 먹을 것은 넘쳐나는데 아픈 사람은 더 많다. 옛날에는 못 먹어서 아팠는데, 지금은 너무 먹어서 아프다. 그것도 밥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엉뚱한 것을 많이 먹어서 아프다. 밥은 대충 먹고, 식사 끝나면 달달한 커피 한 잔 마신다. 커피만 마시면 또 심심하니까 초콜릿을 하나 먹는다. 조금 지나면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저녁에는 빵, 과자, 야식이 기다린다. 하루 종일 입이 쉰 적이 없다.
그러고 나서 말한다.
“이상하다. 왜 살이 찌지?”
“왜 혈당이 높지?”
“왜 몸이 피곤하지?”
나는 속으로 웃는다. 밥을 먹었으면 밥으로 끝내야지, 밥 먹고 또 단것을 먹고, 또 마시고, 또 주워 먹으니 몸이 견디겠는가.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으면 달리면 되는데, 거기에 설탕물 붓고, 기름 또 붓고, 엔진에 엉뚱한 것 넣는 것과 같다. 몸이 고장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다.
현대인은 건강을 너무 많이 배워서 오히려 건강을 잃는 것 같다.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이 영양제가 좋다, 저 운동이 좋다 하면서도 정작 기본은 안 지킨다. 아침은 거르고, 밤에는 늦게 자고, 하루 종일 앉아 있고, 입에는 단것을 달고 산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수치를 걱정한다. 건강은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지켜야 한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하신 “밥만 먹으면 낫는다”는 말은 지금 생각하면 참 큰 말이다. 그 말은 아무거나 먹으라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된 끼니를 먹고, 쓸데없는 것을 덜 먹고, 몸을 움직이며 살라는 뜻이다. 밥 한 그릇을 귀하게 알고,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먹고, 먹은 만큼 움직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가난해서 밥이 약이었다. 지금은 너무 풍요로워서 다시 밥이 약이다. 그때는 밥을 못 먹어 병이 났고, 지금은 밥이 아닌 것을 너무 먹어 병이 난다. 그러니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밥 잘 먹고, 단것 줄이고, 몸 움직이고, 제때 자면 된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밥만 제대로 먹으면, 웬만한 것은 낫는다.
황금거위를 키웁시다
황금거위 우화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교훈에 대해
이솝 우화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매일 황금알을 하나씩 낳아주는 거위가 있었지만, 그 하나로 만족하지 못한 주인이 뱃속의 알을 한꺼번에 다 꺼내려고 거위의 배를 갈랐다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단순한 우화가 오늘날 우리 경제와 노사 관계, 그리고 정치판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루에 황금알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거위 한 마리가 매일 알을 하나씩 낳아주면 그것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신혼부부의 살림에 보탬이 되고, 온 우주에 보탬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에 만족하지 못한다. 뱃속에 더 많은 알이 있을 거라 믿고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 하지만 정작 뱃속에는 알이 될 준비만 되어 있을 뿐, 완성된 알은 없다. 거위를 죽이는 순간 내일의 황금알도 함께 사라진다.
오늘날 정부가 황금알을 더 얻겠다고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이 우화 속 어리석은 주인의 방법이다. 세금을 더 많이 걷고, 기업을 압박하고, 어제는 기업의 투자 활동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황금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다. 법인세는 교환 납세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법인세를 적게 매기면 소득세나 부가세 같은 다른 세금이 자연스럽게 더 걷히게 된다. 기업이 성장하면 늦더라도 결국 사회 전체에 더 큰 보탬이 된다는 뜻이다. 적당한 선에서 황금알 하나를 받는 것에 만족해야지, 뱃속까지 다 꺼내려 들면 일터든 가정이든 분기 박살이 난다.
노동조합 문제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노동조합이 워낙 강력해서 정부가 간섭조차 할 수 없는 구조로 자리잡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정부가 충분히 개입할 여지가 있는 만큼, 정부가 노조를 적절히 견제하고 말려야 한다. 하이닉스 노조처럼 합리적인 선에서 움직이는 경우는 괜찮지만, 삼성전자처럼 노조가 결국 공장 문을 닫게 만드는 지경까지 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것 역시 황금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다. 회사가 무너지면 일자리도 사라지고, 노조원들의 삶도 함께 무너진다.
그렇다면 황금거위의 배를 살리려는 사람은 누구여야 하는가. 바로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이야말로 기업을 키우는 쪽에 서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정치인들은 기업을 죽이고 황금거위 배를 가르는 쪽에 서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두둔하는 쪽에 선다. 왜냐하면 그래야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이런 행태가 더 심해진다.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정치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성난 민심을 들먹이며 기업의 돈을, 부자들의 돈을 세금으로 거둬 쓰겠다고 외친다. 표를 위해 황금거위를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결국 거위가 죽고 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
우리 다 같이 황금거위를 키웁시다. 정부도, 기업도, 노조도, 그리고 정치인들도 적당한 선에서 황금알 하나에 만족하며 거위를 살찌우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표 몇 장에 거위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길게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다.
아마추어 잡담기
글 쓰는 사람들은 대개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비로소 글이 써진다고 한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즐거움이라기보다 두려움이고, 소재 찾기는 늘 따라붙는 숙제인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글로 밥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다.
물류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쓰기가 재미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살아온 시간 자체가 글감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점심때 회사 팀원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밥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가 나온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이야기.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한 일을 굳이 골라서 해온 이야기.
망할 거라던 일을 밀어붙였더니 결국 돈이 된 이야기.
상식대로 안 하고 거꾸로 갔더니 길이 열린 이야기.
예전에는 그저 식사 자리의 잡담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잡담들이 그대로 글이 된다.
한 해 동안 그렇게 쓴 글이 오백 편이 넘는다.
그런데도 소재가 마르기는커녕, 오히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쏟아진다.
글감이 없어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내 행동 원칙은 예전부터 한결같았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한다.
된다, 된다 하는 일은 이미 남들도 다 한다.
그런 일에는 별 재미가 없다.
나는 이상하게 “그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해진다.
안 된다는데?
그러면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살아왔다.
안 된다는 일을 붙잡고 하다 보니 사업도 됐다.
같은 일을 해도 남보다 수익이 훨씬 많이 남았다.
때로는 남들보다 열 배 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돈이 넉넉해지니 자연스럽게 기부도 하게 됐다.
기부 단체 모임에 나가서도 결국 또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안 되는 게 되더라.”
“남들이 안 된다는 데 길이 있더라.”
그러면 거기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결국 내 사는 방식 자체가 글감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된 셈이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보인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은 글감이 없다고 괴로워하고,
글 안 써도 되는 사람은 글감이 흘러넘친다.
세상은 참 이상하게 돌아간다.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글 앞에서 막히고,
글을 안 써도 되는 사람은 글이 자꾸 따라온다.
나는 써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누가 청탁하는 것도 아니다.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쓰고 싶다.
쓰고 나면 또 하나의 경험이 된다.
후배들이 글을 보고 찾아와 말한다.
“회장님, 그 이야기 더 해주세요.”
그러면 또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후배들은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박수를 친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
돈도 안 생기는데 자꾸 쓰게 된다.
내 일상에는 새 아이템이 계속 생기고,
그걸 글로 옮기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이 흐름 자체가 재미있다.
글을 쥐어짜는 사람과,
글이 나를 찾아오는 사람.
같은 글쓰기인데 이렇게 다르다.
마감에 쫓기는 직업 글쟁이들이 조금 안쓰럽다.
나는 그저 살았던 대로, 다르게 살았던 대로, 남들이 안 된다고 한 길을 걸어온 대로 옮겨 적을 뿐인데 이리 즐겁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새어 나오는 잡담을 받아 적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판 없는 회사 이야기 — 명분보다 실리
우리 지산그룹 본사에는 간판이 없습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그냥 지나칩니다.
“여기가 회사 맞습니까?” 하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판이 없으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예전에 비서실이 있던 시절, 회사 입구 근처에 구두 닦는 아저씨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 눈에는 우리 회사가 참 이상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우르르 출근합니다.
점심시간이면 또 우르르 나가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간판은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저씨, 저 회사 뭐 하는 회사예요?”
그러면 아저씨가 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몰라요. 유령 회사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간판도 없고, 홍보도 없고, 시끄럽게 떠드는 일도 없으니 밖에서 보면 수상해 보였겠지요. 사람은 원래 모르면 의심부터 합니다.
옆집 뚜레쥬르 빵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빵을 가져가고 월말에 한꺼번에 결제하기로 했는데, 빵집 주인 입장에서는 불안했던 겁니다.
“저 회사가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겠는데, 월말에 빵값 못 받으면 어쩌지?”
간판 없는 회사가 빵을 외상으로 가져가니, 빵집 주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걱정이 됐을 겁니다. 심지어 거래를 끊을까 고민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빌딩이 사실 우리 지산 소유라는 점입니다.
그 건물 안에는 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같은 큰 기관들도 세 들어 있었습니다. 그분들도 빵집에 와서 빵을 사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저 회사가 뭐 하는 회사인지는 잘 몰라요. 그런데 한 가지는 알아요.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집세는 꼬박꼬박 받아요. 그것도 일 년에 몇백억씩.”
거기에 이런 말까지 덧붙였답니다.
“쿠팡이 경영 실적이 안 좋다고 해서 임대료를 십억이나 깎아줬다더라.”
빵집 주인은 그제야 알게 된 겁니다.
‘아, 저 유령 회사가 그냥 유령 회사가 아니구나. 간판은 없어도 건물주였구나. 조용해도 돈은 받는 회사였구나.’
그 뒤로 다시 거래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더 재미있습니다.
결국 먼저 문을 닫은 건 우리 회사가 아니라 그 빵집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우리를 걱정했는데, 안에서 보니 우리는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은 참 이상합니다.
간판이 크면 큰 회사인 줄 압니다.
차가 번쩍거리면 돈 많은 사람인 줄 압니다.
말을 거창하게 하면 대단한 사람인 줄 압니다.
하지만 실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실속 있는 사람은 굳이 요란하게 자기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진짜 힘 있는 회사는 간판보다 숫자로 말합니다.
진짜 돈 있는 사람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돈을 쓰기보다, 필요한 곳에 조용히 씁니다.
우리 지산도 그렇습니다.
간판은 없지만, 해마다 백억 원 정도는 기부하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뭐 하는 회사냐”고 묻지만, 우리는 조용히 할 일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간판이 아닙니다.
실질입니다.
명분은 남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실리는 내가 실제로 쌓아가는 것입니다.
명분은 말이 크고,
실리는 결과가 큽니다.
명분은 간판을 달고,
실리는 건물을 삽니다.
명분은 “우리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실리는 말없이 임대료를 받고, 세금을 내고, 기부를 하고, 회사를 굴립니다.
사람들은 자꾸 명분을 봅니다.
우리는 실리를 봅니다.
그래서 지산은 간판 없는 회사입니다.
유령 회사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간판은 없어도 됩니다.
실체가 있으면 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결과가 말해주면 됩니다.
그게 우리 방식입니다.
명분보다 실리.
소리보다 실속.
간판보다 내용.
지산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움직이는 회사입니다.
"주인공이 누구냐" —
〈야망의 세월〉이 던진 질문
드라마는 방영 내내 이명박을 영웅으로 그렸다. 위험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영웅, 대통령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나이.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샐러리맨 신화'라는 말이 굳어졌다.
그런데 정작 정주영 회장은 이 드라마를 한 마디로 잘랐다.
> "**작가의 장난이다.**"
그리고 그는 분노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일까지 죄다 이명박이 한 것처럼 미화해버려, 진짜 일했던 직원들이 회사 안에서 머쓱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진짜 풍경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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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라는 사람은 분명 능력이 있었다. 현대건설에 입사해 큰일을 많이 해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현대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정주영이다.** 이명박은 정주영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젓가락질을 잘한 사람이지, 밥상을 차린 사람이 아니다.
사업이라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창업 1세대가 남다른 아이템 하나를 들고 기업을 일으킨다. 그 아이템 위에서 수많은 직원이 일을 한다. 그중에는 이명박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아이템을 들고도 누구는 성공시키고 누구는 실패한다. 그러니 이명박이 정주영의 아이템으로 일을 성공시켰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 **아이템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정주영이다.**
배가 있어야 노를 젓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노를 잘 저었다고 해서 그 배가 자기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주영이 없었다면 이명박이라는 신화도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이 없었어도 정주영은 또 다른 인재를 키워냈을 것이다. 이것이 창업자와 직원의 자리 차이다.
내 입장에서도 똑같다. 지산그룹의 아이템 — 그것은 **회장인 내 아이템**이지, 직원의 아이템이 아니다. 직원이 그 아이템 위에서 열심히 뛰었다 한들, 아이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길을 낸 사람과 길을 걸은 사람을 같은 자리에 놓으면, 그것은 정직한 평가가 아니다.
창업 1세대가 신사업을 일으킬 때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남다른 아이템과 불굴의 노력.** 둘 다 직원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직원은 정해진 길을 잘 걸으면 되지만, 창업자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낸다. 그 차이를 무시하면 〈야망의 세월〉 같은 '작가의 장난'이 자꾸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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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자꾸 화면에 잘 잡히는 사람에게 조명을 비춘다. 드라마는 극적인 인물을 좋아한다. 카메라 앞에서 소리치고, 결단하고, 뛰어다니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그 화려한 활약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창업자의 아이템이 깔려 있다**. 무대를 만든 사람이 따로 있고, 무대 위에서 춤춘 사람이 따로 있다. 박수는 무대 위로 쏟아지지만, 무대를 만든 자의 손길을 잊으면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그래서 〈야망의 세월〉이라는 35년 전 드라마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화면에 비친 사람이 아니라, 화면 뒤에서 묵묵히 그 모든 무대를 차린 정주영. 그 자리를 잊지 않는 것 — 그것이 사업을 보는 어른의 눈이다.
길을 낸 자와 길을 걸은 자, 그 둘을 헷갈리지 않는 것. 거기서부터 진짜 사업의 안목이 시작된다.
주식은 떨어질 때 사는 것이다
내 이름이 "주식"이다 보니, 주식에 관심이 많은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IMF 직후 코스닥은 300포인트까지 갔다. 그런데 그 버블이 꺼지자 300이던 지수가 30까지 곤두박질쳤다. 100으로 시작해 300까지 올랐다가 30이 되니,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수에 0을 하나 슬쩍 붙였다. 30이 하루아침에 300이 된 것이다. 숫자놀음이라는 게 그렇다.
그 300이 또 폭등을 거듭해 지금은 1,200까지 왔다. 그런데 이 1,200은 실제로는 120이다. IMF 직후의 300에 비하면 오히려 내려간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코스닥이 많이 올랐다"고 호들갑이다. 많이 오른 게 아니라, **많이 울린 것**이다. 종을 친 것이지, 산을 오른 것이 아니다.
여기서 배울 점이 있다. **코스피가 6,000을 넘었다.** 숫자만 보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이 숫자가 진짜 우리 경제의 키만큼 자란 것이냐고 물으면, 그건 또 다른 얘기다.
물론 AI 바람이 불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실적이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이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법. 게다가 코스피라는 지수는 전체 주식의 극히 일부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다. 시가총액 6,000조 중에서 1조만 움직여도 지수는 출렁인다. 대주주가 꽉 쥐고 있는 물량을 빼면, 실제로 시장에서 손바뀜되는 주식은 얼마 안 된다. 그 일부의 거래로 가격이 정해지는데, 사람들은 마치 온 나라 경기가 출렁이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그래서 지금 코스피 6,000이 정상이냐, 몇 년 전 2,200이 정상이냐 — 아무도 모른다. 주가란 본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물건이다.
여기서 한마디. **주식은 쌀 때 사는 것이지, 비쌀 때 사는 게 아니다.** 떨어질 때 사는 것이다. 풋옵션보다 콜옵션이 안전한 것도 같은 이치다. 오르는 것은 범위가 크고, ㅔ내리는 것은 범위가 작은 법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양력 12월에 사고, 음력 12월에 팔라.**
양력 12월에는 대주주들이 양도세 때문에 주식을 팔아치운다. 연말 기준일에 일정 금액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양도세 폭탄을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쩡한 종목들도 12월 막바지에 줄줄이 흘러내린다. 세금이 만든 일시적 헐값이다. **그때가 사는 때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 음력 12월, 즉 설 무렵이 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보너스 받은 개미들, 새해 운수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들인다. 돼지들이 살을 찌우려고 사료통에 몰려드는 격이다. 가격은 제풀에 들뜬다. **그때가 파는 때다.**
세금이 만든 헐값에 사서, 군중이 만든 들뜸에 판다. 이것이 사이클의 묘미다.
결국 주식이 주식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주식은 세상이 험할 때, 험한 만큼 깎여 있을 때 사는 것이다.** 코로나가 닥쳤을 때, 전쟁이 터졌을 때, 뉴스가 온통 잿빛일 때 — 그때가 사는 때다. 황금빛으로 빛날 때, 모두가 박수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환호성이 들리면 팔고, 곡소리가 들리면 사라. 이것이 주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평생 곱씹어온 한 줄이다.
토끼와 거북이, 그리고 산을 내려오는 38일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번 무대는 풀밭이 아니라 산이고, 등장인물은 동물이 아니라 후보다. 6월 3일 결승선까지 남은 38일, 용인시장 선거라는 산길에서 붉은 토끼 이상일과 푸른 거북이 현근택이 기묘한 경주를 벌이고 있다.
토끼는 일찍 출발했다. 단수 공천이라는 순풍을 타고 가볍게 산을 올랐다. 3월 초에는 이미 정상 부근에 도달해 있었다.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9%p 넘게 앞섰고, 산 아래 풍경이 까마득했다. 모두가 토끼의 승리를 점쳤다. 27년간 단 한 번도 재선 시장이 나오지 않은 용인이라는 험준한 산을 토끼는 이제 막 정복할 듯 보였다.
그런데 거북이는 한참 출발선에서 머물렀다. 경선이라는 진흙탕을 헤치느라 4월 13일에야 본선 출발선을 끊었다. 토끼가 산정상에 도달했을 무렵 거북이는 이제 막 등산화를 묶고 있었다. 누가 봐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기적은 짧았다. 공천을 받은 지 일주일, 거북이는 토끼의 등을 보았다. 다시 일주일, 거북이는 토끼의 발치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 산정상에서 두 동물이 마주 섰다. 푸른 거북이 43, 붉은 토끼 36 — 오차범위 안에서, 아니 어쩌면 거북이가 살짝 앞선 자세로.
여기서 멈춰 생각한다. 일주일에 일어난 일이라면, 38일이라는 하산 구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빠른 속도로 따라잡혔다는 사실은 토끼의 발이 이미 무뎌졌음을 말한다. 정상에 먼저 닿았다는 자만, 익숙해진 풍경, 길게 누운 그림자. 토끼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산정상 어딘가에서 잠깐의 휴식을 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짧은 낮잠이라 생각하겠지만, 그 사이 거북이는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다.
거북이의 페이스는 사실 빠르지 않다. 하지만 꾸준하다. 출발이 늦었다는 약점을 단 2주 만에 지워버린 그 꾸준함이, 38일이라는 긴 하산 구간에서 진짜 무기가 된다. 산을 오를 때는 폭발력이 필요하지만, 내려올 때는 균형이 필요하다. 가파른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발놀림,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을 견디는 인내. 이런 것은 빨리 달리는 토끼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다.
용인이라는 산은 또한 거북이에게 유리한 지형을 갖고 있다. 정당 지지도라는 바람이 거북이 등 뒤로 분다. 50대라는 단단한 바위가 거북이 발 아래 깔려 있다. 그리고 정권 견제론이라는 비탈은 거북이가 미끄러질 비탈이 아니라, 거북이를 산 아래로 안전하게 인도할 비탈이다. 토끼는 같은 비탈을 거꾸로 올라야 한다. 현직 시장의 행정 성과라는 닻줄에 매달려 한 걸음씩 버티며.
그래도 토끼가 가진 무기는 분명하다. 공약 완료율 87%라는 숫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라는 거대한 풍경, 그리고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묵직한 짐. 이 짐을 지고 토끼가 끝까지 깨어있다면, 38일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시간이다. 문제는 토끼가 깨어있을 수 있느냐다. 일주일 만에 따라잡힌 사실 자체가 이미 토끼에게 잠을 권하는 자장가일 수도 있다. 충격이 클수록 사람은 — 아니 토끼는 — 멈춰 서기 쉽다.
이 우화의 묘미는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솝의 거북이는 이겼지만, 그것은 토끼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토끼가 깨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거북이가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리란 보장도 없다. 38일은 길고, 산은 가파르고, 결승선의 풍경은 아직 멀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주일 만에 9%p의 격차를 0으로 만들고, 어쩌면 역전의 손짓까지 보내는 거북이의 속도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감하게 한다. 짧은 시간에 보여준 것이 결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산을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 길고, 거북이는 이제야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
붉은 토끼는 산정상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푸른 거북이는 어떤 자세로 첫 발을 내딛을까. 38일 후, 용인이라는 산 아래 결승선에서 우리는 답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우화의 결말은 이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용인돌팔이. 한주식의 용인시장전 관전기.
공무원의 도장 하나, 그리고 멈춰선 공사장
옛날 어른들이 그러셨다. "관청 문턱이 닳도록 다녀도 도장 하나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그런데 이게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사업하는 사람치고 이 말에 고개 끄덕이지 않는 사람 없을 것이다.
허가 하나 받자고 서류를 들고 시청을 찾는다. 법에 정해진 처리 기간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댄다. "검토 중입니다", "윗선 결재가 남았습니다", "보완할 게 있어 보이네요."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사업자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현장에는 인부들이 대기하고, 장비 임대료는 매일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허가가 났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허가가 났으면 통보가 가야 일이 시작된다. 4월 30일에 통보해야 할 서류를 담당자가 하루 늦췄다. 단 하루다. 그런데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이어서 주말, 어린이날, 대체공휴일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결국 통보는 5월 6일에야 현장에 도착한다. 공무원에게는 "하루 늦은 것"이지만, 현장에서는 엿새가 날아갔다.
그 엿새 동안 굴착기는 멈춰 있고, 인부들은 손을 놓고 있고, 자재는 쌓인 채 비를 맞는다. 대기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하루 수천만 원, 큰 공사면 수억 원이 그냥 증발한다. 이런 나라에서 수출이 어떻고 글로벌 경쟁이 어떻고 하는 말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더 황당한 일도 있다. 어느 사업자가 겪은 일이다. 담당 공무원이 어린 자녀가 아프다며 매일 조퇴를 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내내. 그 사이 민원 서류는 책상 위에서 잠을 잔다. 사업자가 전화하면 "담당자가 자리에 없습니다"라는 답만 돌아온다. 그렇게 한 달이 지연됐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가슴 먹먹한 뒷이야기가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신문에 작은 기사가 났다. 어느 공무원 부부가 가정 불화로 함께 세상을 등졌다는 안타까운 소식. 사연을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파 조의금 200만 원을 기부 형식으로 보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무원이 바로 한 달간 민원을 묵혀뒀던 그 담당자였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원망과 연민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나는 일이 이렇게도 있구나 싶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제의 본질은 결국 '독점'이다. 민간은 어떤가. 한 거래처가 일을 늦게 하면, "에이, 다음부터는 다른 데랑 거래해야지" 하면 그만이다. 협력업체는 줄을 서 있다. 늦으면 도태된다. 그게 시장이다. 그런데 공무원은 다르다. A시청에서 처리할 일을 B시청에 가져갈 수 있는가? 없다. 우리 동네 인허가는 우리 동네 공무원만이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사업자는 그 공무원의 컨디션, 기분, 가정사, 점심 메뉴까지 받들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옛날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통령 골프 치는 날은 앞 팀도 없고 뒤 팀도 없다." 골프장에 다른 손님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하고, 앞 팀이 플레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게 비워둔다는 것이다. 독점이란 게 그런 거다.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 모두가 멈춰 서야 한다. 공무원의 책상 위에서 벌어지는 일도 본질은 똑같다.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규제 혁파", "민원 신속 처리", "기업 친화 행정" — 청와대에서 외치는 구호는 시청 문턱을 넘지 못한다. 말은 위에서 흐르지만, 도장은 아래에서 찍힌다. 그리고 그 도장 하나가 한 기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IMF 시절 한국전력과 삼성전자의 주가가 둘 다 22만 원 언저리에서 비슷하게 출발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회사의 주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벌어졌다. 한쪽은 세계를 누비며 경쟁했고, 다른 한쪽은 안방에서 독점의 단맛을 봤다. 결과는 정직하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공직사회도 이제는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도장 하나 늦게 찍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라는 것을. 책상 위 서류 한 장이 현장에서는 수십 명의 밥줄이라는 것을. 그 무게를 아는 공무원과 모르는 공무원의 차이가, 결국 이 나라의 미래를 가른다.
# 반도체 시대, 토지 수용 제도를 다시 묻는다
우리 조상들은 땅을 '마지기'로 헤아렸다. 장정 한 사람이 하루에 일할 수 있는 면적을 한 마지기라 했는데, 평야의 너른 땅은 200평, 일손이 더 드는 산골 밭은 100평이 한 마지기였다. 그렇게 김 서방 박 서방이 조금씩 나누어 가진 땅들이 한 평야 안에 뒤섞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 자투리 땅을 사고팔며 재산을 키웠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던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반도체와 데이터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첨단 산업은 너른 부지를 필요로 하는데, 조상 대대로 잘게 쪼개져 내려온 우리 농촌의 토지로는 공장 한 동 세우기도 쉽지 않다.
현행 제도가 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민간 사업자가 인접 토지를 수용하려면 자기 땅이 전체의 60~70%는 되어야 가능하다. 세분화된 농지를 그 정도까지 사 모으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는 전체 수용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개인 사업자에게는 그 길이 막혀 있다. 결국 산업 단지로 전환될 만한 땅이 농지로 묶인 채 방치되고, 지역 경제는 활로를 찾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토지 소유자들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논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거나 마을에 철탑이 들어선다면 주민들이 죽기 살기로 막아섰다. 지금은 다르다. 보상가가 후하게 책정되니 변전소 하나가 들어와도 서로 유치하겠다고 나선다. 지방 경기가 가라앉아 땅을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수용은 오히려 환영받는 출구가 되었다. 조상이 물려준 토지를 지켜야 한다는 정서보다, 제값에 팔아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실용적 판단이 앞선 것이다.
땅 가진 이도 수용을 원하고, 사업자도 수용을 원한다. 그렇다면 막혀 있는 것은 제도뿐이다.
이제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사업자의 자기 토지 보유 요건을 20~30% 수준으로 낮춰 수용을 보다 유연하게 만든다면, 멈춰 선 제조업의 입지 문제도 풀리고, 매매조차 되지 않는 농촌 땅에도 다시 숨이 돌 것이다. 물론 보상의 공정성과 절차의 투명성은 한층 더 엄격해져야 한다.
마지기의 시대에서 반도체의 시대로 넘어왔다. 토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도, 그 토지를 다루는 제도도 이제 그 변화에 맞게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참 좋다**
어제는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역 앞에 동문들이 한 무리로 마중을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왔는가!" 하며 손을 흔드는 친구, 어깨를 툭 치는 친구, 반가움에 말없이 웃기만 하는 친구. 그 얼굴들을 보는 순간, 세월이 한꺼번에 걷히는 듯했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동창회를 시작했다. 음식도 정갈하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친구들이 마주 앉아 어릴 적 별명을 부르며 깔깔 웃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정말 그 시절을 함께 건너온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오후에는 또 다른 학교 친구들과 찻집에 모여 옛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어서 고등학교 동창들과도 만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며 어른들께 인사도 드렸다.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지금이야 서로 웃으며 마주 앉아 있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정말 가진 것이 없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얼마나 멀고 길던지. 기차를 타면 무려 열세 시간이 걸렸다.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도 버스 한 번, 서울역에서 안양까지도 버스 한 번. 그 차비가 18원이었다. 18원이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밥 한 끼를 아끼려고 서울역에서 내리지 않고 일부러 안양역까지 가서 내리곤 했다. 그 한 끼가 그토록 귀하던 시절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공부했고, 세월이 흘러 사업을 시작했다.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돈도 없고, 인맥도 없고, 배운 것도 부족했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마음을 정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자.**
생각해 보라.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돌을 피해 돌아간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이 다칠까 싶어 돌을 치워 준다. 다 훌륭하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를 더 보탰다. 그 돌을 밟고 올라서서, 한 발 더 멀리 가는 길, 즉 **추월차선**으로 들어서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었고, 디딤돌이 추월의 발판이 되었다.
살다 보면 안 되는 일이 참 많다. "돈이 없어서 안 된다", "배운 게 없어서 안 된다", "기댈 데가 없어서 안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바꿨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자."** 이 한 줄이 내 인생을 바꿨다. 부족함은 핑계가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작은 성공들이 하나둘 쌓여 갔다.
이번에 고향에서 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돌아보니, 옛날 고생하던 시절이 마치 흑백 사진처럼 멀어져 있었다. 18원이 없어 안양역까지 걸어 내리던 청년은 이제 흰머리가 성성한 어른이 되어 동창들과 웃으며 식탁에 앉아 있다. 참 묘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그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도 참 좋았다. 꿈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참 좋다. 함께 늙어 가는 친구들이 있고, 지나온 길을 돌아볼 여유가 있고,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참 좋다.
# 후배 사업가들에게 — 안전하게
사업을 키우는 두 가지 원칙
## 들어가는 말
사업을 오래 해 온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한번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남깁니다. 거창한 경영 이론은 아닙니다.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요. 제가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은, 그리고 지금도 지키고 있는 두 가지 원칙입니다.
사업이라는 게 따져보면 단순합니다.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으면 됩니다.** 그게 전부예요.
그런데 사업을 시작할 때 보면, 다들 "들어올 돈이 많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시작합니다. 막상 해보면 어떻습니까. 나가는 돈이 더 많을 때가 너무 많지요. 한 번쯤 다 겪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그런 위태로운 구조의 사업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두 가지 원칙을 지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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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원칙 — 모르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는다
저는 지금 한 열 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지금 하는 일과 관계없는 분야는 절대 벌이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오래 지켜온 철칙입니다.
그럼 어떤 사업을 새로 하느냐.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 **지금 내가 외부에 돈 주고 사 오는 것 — 그것을 내가 직접 하는 것.**
이게 제가 말하는 신사업입니다.
### 집을 짓는 일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집 한 채 지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땅이 있어야 하고, 설계도 해야 하고, 자재도 사야 하고, 장비도 있어야 하고…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것들을 모두 외부에서 사 오면, 그게 다 **나가는 돈**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하나라도 내가 직접 하면, 그건 **안 나가는 돈**이 됩니다. 결국 그만큼이 이익이지요.
여기서 핵심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르는 분야에 새로 사업을 벌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거기에는 손님이 누구인지, 돈이 들어올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사업 안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어차피 매년 발생하는 일이고, 이미 손님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손님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나 자신이지요.
이 차이를 분명히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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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원칙 — 시간을 땅에 묻는다
두 번째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제가 후배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부분입니다.
> **어차피 미래에 쓸 돈이라면, 지금 미리, 작게, 좋은 환경에 심어두라.**
말로만 하면 잘 와닿지 않을 테니,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 나무 한 그루 이야기
집을 짓는 데 2년이 걸린다고 해봅시다. 준공할 때 정원에 큰 나무를 심으려면, 한 그루에 100원짜리를 사야 합니다. 다 자란 나무니까 비싼 거지요.
그런데 만약 2년 전, 그러니까 공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같은 자리에 10원짜리 묘목을 심어두면 어떻게 될까요.
**준공할 때쯤이면 그 묘목이 100원짜리 나무보다 더 크고 싱싱하게 자라 있습니다.**
이게 시간의 힘입니다. 10원으로 100원짜리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거지요. 시간이 그 돈을 대신 키워준 겁니다.
###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지만, 1~2년 뒤에 분명히 쓸 일이 있는 땅이 있다고 해봅시다. 지금 사면 50원, 나중에 사면 그 가격에 못 삽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두는 게 맞지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 **미래에 어차피 지출할 돈을, 시간을 활용해서 지금 더 적은 돈으로 미리 투자하는 것.**
이것이 제가 말하는 "시간을 땅에 묻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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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사례 — 데이터센터 설계 내재화
말로만 하면 와닿지 않을 테니, 제가 요즘 검토 중인 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을 여러 개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 한 개를 지을 때마다 외부 설계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약 **500억 원**입니다. 여러 개를 지으면 매년 수백억, 수천억이 외부로 나가는 셈이지요.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원칙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 첫 번째 원칙을 적용해 보면
설계는 무엇입니까. **내 사업에서 매년 외부에 돈 주고 사 오는 공정**입니다. 데이터센터를 직접 짓는 건 내가 하는데, 설계만 남이 해주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건 내가 해도 되는 일입니다. 모르는 분야가 아니라, 내 사업의 일부니까요.
### 두 번째 원칙을 적용해 보면
지금 회사에 설계 직원이 50명 있습니다. 여기에 50명을 더 채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 추가 50명의 연간 인건비: **약 100억 원**
- 외주로 나가던 설계비: **약 500억 원**
- **매년 절약되는 금액: 약 400억 원**
100억을 미리 내부에 투자해서, 매년 400억이 절약되는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가치는 따로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사업이 본격적으로 커질 때 외부에서 인력을 구하려고 하면, **두 배 세 배 값을 줘도 사람을 못 구합니다.** 다들 가져가 버리니까요.
그때 우리 회사 안에는 이미 경험 있는 인력이 자라 있습니다. **2년 전에 심어둔 묘목이 큰 나무가 되어 있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시간을 땅에 묻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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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후배 여러분이 사업할 때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세 가지입니다.
### 첫째, 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 **"이 일이 내가 지금 어차피 돈 주고 사 오던 일인가?"**
그렇다면 해도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모르는 분야는 들어올 돈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 둘째, 어차피 쓸 돈이라면 미리 쓰십시오. 다만 작게.
> **"나중에 어차피 쓸 돈을, 지금 더 적은 돈으로 미리 투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투자하십시오. 시간이 그 돈을 키워줄 겁니다.
### 셋째, 시작하기 전에 망할 경우부터 계산하십시오
"잘 되면 얼마를 벌까"가 아닙니다. **"안 되면 얼마가 나갈까"**부터 계산하셔야 합니다.
이 구조가 안 맞으면 시작하지 마십시오. 사업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망하지 않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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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맺으며
저는 화려한 신사업이나 새로운 분야 진출 같은 것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아는 일, 이미 매년 돈이 나가고 있는 일, 그 안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 — 이것만으로도 사업은 충분히 커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십시오.** 지금 작게 심은 것이 나중에 크게 자랍니다.
후배 여러분이 큰 한 방을 노리기보다, 새는 돈을 막고 미리 심는 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사업을 하면서 배운, **가장 안전하면서도 결국 가장 빠른 길**입니다.
나는 이걸 수직 계열화/ 라 합니다.
값싼 땅의 재발견 —
안 되는 이유보다 되게 만드는 법
"사업은 뭐가 제일 어렵습니까?" 나는 웃으며 답했다. "돈이요? 아닙니다. 땅이요? 그것도 아닙니다. 진짜 어려운 건 머리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농담으로 듣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데이터센터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전력, 도로, 입지, 면적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20만 평이 필요하다고 치자. 계획관리지역이나 공업지역에서 그만한 땅을 사려면 평당 300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 계산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돈 없는 사람은 오지 마세요." 이게 시장의 첫마디다.
그래서 대부분은 여기서 멈춘다. "돈이 없어서 안 돼." "용도지역이 안 맞아서 어려워." "좋은 땅은 원래 내 몫이 아니야."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포기다. 포기하는 순간, 기회는 옆 사람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세상에는 **비싸고 좋은 땅은 큰 덩어리가 없고, 값싸고 넓은 땅은 덩어리째 굴러다닌다**는 것이다. 용도지역 좋은 땅 20만 평을 한 덩어리로 사려고 해 봐라. 없다. 있어도 이미 주인이 열 명이고, 그중 한 명은 절대 안 판다. 퍼즐 맞추다가 10년이 간다.
반면 시골 산 밑에 가보면 어떤가. 30만 평, 50만 평짜리 덩어리가 평당 30만 원에 누워 있다. "왜 이렇게 싸요?" 하면 답이 똑같다. "쓸모가 없어서요." 용도지역이 안 맞고, 도로가 없고, 전기가 멀고, 경사가 있고. 그래서 값이 싸다. 그래서 아무도 안 산다. 그래서 덩어리째 남아 있다.
바로 여기서 나는 눈이 반짝인다. "쓸모없는 땅"이라는 말이 나는 제일 재미있다. 쓸모가 없다는 건 아직 쓸모를 못 찾았다는 뜻이지, 영원히 쓸모가 없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가는 완성품을 비싸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완성을 싸게 사서 완성시키는 사람이다. 그게 진짜 마진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반박한다. "그래도 용도지역은 못 바꾸잖아요." 나는 되묻는다. "백두산은 못 깎아도, 사람이 그은 선은 왜 못 바꾸나요?" 산을 깎는 건 물리다. 흙과 돌과 중력의 일이라 무겁고, 시간이 걸리고, 돈이 산처럼 든다. 그러나 용도지역은 물리가 아니다. **사람이 연필로 그은 선**이다. 법이고 제도다. 사람이 만든 건 결국 사람이 바꾼다. 절차와 명분만 있다면.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거꾸로 겁을 낸다. 못 바꾸는 산보다 바꿀 수 있는 제도를 더 무서워한다. 땅 경사는 어떻게 깎을지 연구하면서, 용도지역은 하늘에서 떨어진 계명처럼 받든다. 나는 이게 늘 아이러니하다. 진짜 단단한 건 자연이고, 진짜 유연한 건 제도인데, 사람들은 반대로 안다.
그래서 내 질문은 언제나 하나다. "왜 안 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 한 글자 차이가 결과를 완전히 갈라놓는다.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머리가 멈춘다. "어떻게 하면 되나"를 묻는 순간 머리가 돌아간다. 용도지역 변경 절차는? 지자체 설득 논리는? 공공성 명분은? 도로와 전력은 어떻게 끌어올까?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땅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돌아보면 나에게 경쟁력을 준 것도 풍족함이 아니라 부족함이었다. 돈이 넉넉했다면 나도 평당 300만 원짜리 땅을 적당히 사서 남들과 비슷한 사업을 했을 것이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안 보는 땅을 봤고, 조건이 안 맞았기 때문에 절차를 깊이 파고들었다. 부족함이 나를 공부시켰다. 결국 부족함이 기술이 됐다.
세상은 자본이 전부라고 말한다. 맞는 말 같지만 절반만 맞다. 같은 돈으로 누구는 작은 완성품을 사고, 누구는 큰 가능성을 산다. 전자는 돈으로 경쟁하고, 후자는 해석과 구조로 경쟁한다. 장기적으로 누가 이기겠는가? 나는 단언컨대 후자라고 본다. 돈은 복사가 되지만, 안목은 복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긍정은 "잘되겠지~" 하고 팔자 좋게 웃는 낙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 긍정은 차갑고 집요하다. 안 되는 이유를 끝까지 노려본 뒤, 하나씩 넘어갈 방법을 찾는 긍정이다. 돈이 없으면 구조를 짜고, 용도지역이 안 맞으면 절차를 보고, 길이 없으면 길을 낸다. 그 집요함이 곧 희망이고, 그 희망이 사업을 현실로 만든다.
사업은 땅을 사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일이다. 오늘 허허벌판이 내일의 핵심 입지가 되고, 오늘 버려진 땅이 내일의 금싸라기가 된다.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바로 그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땅으로 바뀐다. 나는 그 시차에 베팅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안 될 일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부분은 **안 되는 게 아니라, 아직 방법을 못 찾은 것뿐**이다. 필요한 건 포기의 논리가 아니라 설계의 상상력이다. 돈이 없다고 주저앉지 않는 사람. 조건이 안 맞는다고 돌아서지 않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남는 땅을 쓸모 있는 땅으로 바꾸고, 쓸모 있는 땅을 돈이 되는 땅으로 바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먼저 묻는다. **"왜 안 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한, 길은 늘 다시 생긴다. 남들이 버린 땅 위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일을 그린다.
노동자의 지위는 왜 올라갔는가
불과 60년 전만 해도 노동자의 위치는 매우 낮았다.
논밭이 없는 집 자식은 남의 집에 새끼머슴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일 년 내내 고된 일을 하고도 겨우 쌀 몇 가마를 받는 정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새끼머슴은 젊은 머슴이 되고, 다시 상머슴이 되며 품삯이 올라갔다. 그래도 그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남의 땅에서 남의 농사를 지어 주는 처지였다. 주인은 논밭을 가진 사람이었고, 노동자는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산업이 바뀌면서 세상도 뒤집혔다.
자동차 공장이 생기고, 전자공장이 생기고, 제조업이 커지면서 노동자는 더 이상 남의 집 머슴으로 남지 않게 되었다. 공장에 들어가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쌀 한두 가마, 많아야 열 가마 남짓이 품삯의 기준이었다면, 산업화 이후에는 월급이 생기고 연봉이 생겼다. 노동의 값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 머슴의 일가마 품값이 오늘날에는 수백 가마에 해당할 만큼 커졌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토지를 가진 사람의 처지는 예전만 못해졌다.
한때는 논밭이 있으면 사람을 부려 농사를 짓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농사를 지어도 인건비를 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이 많지 않다. 토지를 가졌다고 해서 자동으로 잘사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땅이 없던 사람이 농촌을 떠나 산업현장으로 들어가고, 공장과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으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주인이 더 나았고 머슴은 어려웠지만, 오늘날 시골의 현실만 놓고 보면 주인보다 노동자가 더 나은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임금이 올랐다는 사실이 아니다.
노동자의 지위가 올라간 이유는 노동을 버려서가 아니라, 노동의 장소와 산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농업이라는 1차 산업에 머물러 있던 노동이 제조업이라는 2차 산업으로, 다시 서비스와 기술 중심의 3차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커졌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산업에 속하느냐에 따라 삶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늘 앞으로 가는 산업을 배워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리는 같다. 시대가 지나가는 일을 붙들고 있으면 결국 뒤처진다. 과거에는 농사일만 배워서는 더 나아질 수 없었다. 그래서 공장으로 간 사람이 올라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제조업, 과거의 단순 기능직, 과거의 방식만 붙들고 있으면 다시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오늘은 반도체, 인공지능, 데이터, 첨단 제조, 바이오, 에너지 같은 쪽으로 산업의 중심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도 그 흐름을 읽고 따라가야 한다.
대한민국 전체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의 비중이 매우 큰 것도 우연이 아니다.
수천 개 기업이 있지만, 결국 국가 경제를 끌고 가는 힘은 시대의 중심 산업에서 나온다. 예전에는 농업이 중심이었고, 그 다음에는 자동차와 전자 같은 제조업이 중심이 됐다. 지금은 반도체와 첨단기술 산업이 중심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느 산업에 몸을 담고 있는가. 나는 과거를 배우고 있는가, 미래를 배우고 있는가.
노동자의 지위 상승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만들었고, 그 변화를 따라간 사람들이 누린 결과였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산업에서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시대의 기술을 붙들고 있으면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일 수 있지만, 앞으로 가는 산업에서 배우고 익히면 노동의 값도 달라지고 삶의 수준도 달라진다.
결국 교훈은 분명하다.
토지를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가 사람의 운명을 가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떤 산업을 배우고, 어떤 분야로 옮겨 가느냐가 사람의 미래를 가른다.
예전 머슴이 공장 노동자로 옮겨가며 지위가 올라섰듯, 오늘의 노동자도 미래 산업으로 옮겨가야 지위가 올라선다.
노동자의 지위는 노동을 버려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선호하는 산업으로 노동을 옮길 때 올라가는 것이다.
공부는 잘했지만 경제는 배우지 못한 리더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리더들은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 교육을 반복해서 받아왔다.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교육이다. 학교에서는 시험문제를 빨리 풀고, 정답을 정확히 맞히고, 좋은 성적을 얻는 아이가 우수한 학생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돈이 어떻게 벌리고, 기업이 왜 투자하고, 시장은 왜 움직이며, 국가경제는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돈 이야기는 어른들 세계의 일로 밀려났고, 학생은 현실보다 성적표에 더 익숙해졌다. 그 결과 우리는 공부는 잘했지만 경제는 잘 모르는 엘리트를 대량으로 길러낸 셈이다.
문제는 이런 교육의 후유증이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는 데 있다. 사회의 지도층에 오르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입시와 시험을 통과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실제 경제의 움직임을 몸으로 이해한 경험은 부족하다. 기업이 왜 규제를 두려워하는지, 투자심리가 왜 중요한지, 일자리가 왜 말이 아니라 자본과 시장에서 생기는지, 금리와 환율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감각이 약하다. 책으로 경제를 배웠을 수는 있어도, 경제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점은 체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 나온다. 기업은 살아 있는 조직인데, 서류 위 숫자처럼 다뤄진다. 투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데, 결정은 끝없이 미뤄진다. 규제 하나가 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는데도, 선의만 있으면 경제가 움직일 것처럼 생각한다. 재정은 결국 누군가가 벌어들인 돈에서 나오는데, 국가의 돈이 마치 무한한 것처럼 쓰려 한다. 성장의 원리는 복잡한데, 분배의 언어만 반복된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경제를 삶의 언어로 배우지 못한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다.
경제교육이란 아이를 돈만 밝히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돈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노동과 자본이 어떻게 만나 부가가치를 만드는지, 저축과 투자와 소비가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돈을 무조건 숭배하지도 않고, 반대로 돈을 막연히 경멸하지도 않는다. 현실을 본다. 시장을 두려워하기보다 이해하려 하고, 기업을 적으로 보기보다 성장의 축으로 본다. 결국 제대로 된 경제교육은 돈 버는 기술 교육이 아니라 사회를 읽는 교육이다.
지금의 리더들이 보여주는 경제 감각의 부족은 우연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학생은 공부만 해라”, “돈 얘기는 나중에 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경제를 배우지 않은 채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어 갑자기 좋은 경제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시험을 잘 보는 능력과 경제를 움직이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제는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국어, 영어, 수학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에게 돈의 흐름, 기업의 역할, 투자와 위험, 세금과 재정, 시장과 규제의 원리를 어릴 때부터 생활 속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기업인도, 공무원도, 정치인도 현실감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미래의 리더를 제대로 키우려면,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부족한 것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현실 경제를 아는 사람이다.
디지털센터를 짓는다는 것, 미래의 자산을 심는다는 것
— 맥도날드와 롯데칠성, 그리고 지산그룹의 긴 안목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흔히 현재의 매출과 이익에서만 읽힌다. 그러나 큰 기업의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힘이 있다. 그것은 본업을 굴리면서 동시에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힘이다. 맥도날드가 그랬고, 롯데칠성이 그랬다. 그리고 지금 지산그룹이 디지털센터 사업을 통해 만들어가려는 길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시장은 오래전부터 맥도날드를 단순한 외식업체로만 보지 않았다. 좋은 자리를 먼저 잡고, 그 위에서 반복 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입지의 가치를 키워온 회사로 봤다. 눈앞의 상품은 햄버거였지만, 그 햄버거가 팔리는 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힘이 됐다. 맥도날드의 경쟁력은 메뉴판만이 아니라, 자리를 읽는 눈과 그 자리를 오래 붙드는 전략에서 나왔다.
롯데칠성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음료와 주류를 생산·판매하는 소비재 기업이다. 그러나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롯데칠성은 단지 음료만 판 회사가 아니었다. 물류와 생산, 유통을 위해 확보했던 부지들이 도시의 확장과 함께 재평가되면서 회사의 자산가치를 함께 키워왔다. 본업이 회사를 버티게 했다면, 자산은 회사의 몸값을 키워주었다. 이 점에서 롯데칠성은 제품을 파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시간을 자산으로 바꾸는 회사이기도 했다.
지산그룹의 디지털센터 사업은 바로 이 두 회사의 공통된 구조를 닮아 있다.
디지털센터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전력, 통신, 보안, 교통, 확장성, 집적성이 모두 맞물려야 가능한 시설이다. 따라서 디지털센터 사업의 핵심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짓느냐에 있다. 디지털센터는 아무 땅에나 들어설 수 없다. 넓은 부지, 안정적 전력망, 장기 확장성, 인허가 가능성, 산업 집적과의 연결성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센터 사업은 운영사업인 동시에 입지사업이다.
이 대목에서 지산그룹이 확보하려는 200만 평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 부지는 단순한 토지가 아니다. 오늘은 디지털센터를 위한 산업용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미래 산업을 담는 전략자산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개발부지로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희소한 산업 인프라 부지로서 별도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과거의 산업이 공장과 물류창고를 필요로 했다면, 미래의 산업은 데이터와 전력을 담을 땅을 필요로 한다. 그 점에서 디지털센터 부지는 21세기형 산업부지다.
기업은 보통 두 번 평가받는다.
한 번은 현재의 실적으로 평가받고,
또 한 번은 미래의 자산구조로 평가받는다.
지산그룹은 지금 디지털센터라는 본업을 통해 첫 번째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대규모 부지를 선점함으로써 두 번째 평가의 기반도 만들고 있다. 오늘은 가동률과 임대율, 고객 유치와 수익성이 중요하겠지만, 십 년 뒤에는 그 센터들이 올라앉은 부지의 가치가 시장에서 새롭게 읽힐 수 있다. 본업은 현금을 만들고, 입지는 미래 가치를 만든다. 큰 기업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가져간다.
그래서 지산그룹의 디지털센터 전략은 단순한 개발사업으로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 산업의 핵심 시설을 구축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 산업의 땅을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로 보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시장은 지산그룹을 “디지털 인프라를 운영하는 회사”이자 “희소한 산업 입지를 장기 보유한 자산형 기업”으로 함께 보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팔면서 자리를 먹었고,
롯데칠성은 음료를 팔면서 땅값을 키웠다.
지산그룹은 디지털센터를 지으면서 미래 산업의 심장을 담을 부지를 선점하고 있다.
오늘의 본업이 내일의 자산을 만든다.
그리고 긴 안목을 가진 기업은, 바로 그 시간의 복리를 이해하는 기업이다.
지산그룹이 지금 짓고 있는 것은 단지 센터가 아니다.
어쩌면 미래의 자산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를 보며,
박정희와 이승만과 리콴유를 함께 떠올린다
삼성전자의 성과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 박정희, 그리고 그 앞에 앉은 기업가 이병철이다. 한 사람은 나라를 일으켜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기업으로 길을 내야 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그 만남이 남긴 결과 가운데 하나다.
1960년대 한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나라였다. 가진 것도 없고, 산업도 약하고, 먹고사는 일부터 막막했다. 그런 시절에 박정희는 기업을 단순히 돈 버는 집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나라를 먹여 살릴 전선의 주력으로 봤다. 현대는 자동차를 만들고, 포스코는 철을 만들고, 삼성은 전자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국은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몸을 바꾸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박정희만 말하면 반쪽짜리 이야기다. 그보다 앞서 이승만이 있었다. 그는 혼란한 시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틀을 세웠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붙들고, 교육의 기반을 넓히고, 나라가 아예 사라지지 않도록 버텼다. 집으로 치면 박정희가 엔진을 단 사람이라면, 이승만은 먼저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운 사람이다. 기초공사 없이 고층빌딩은 못 올라간다.
여기에 리콴유도 떠오른다.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더 작고 자원도 없었지만, 그는 “작은 나라라고 작은 미래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부패를 막고, 공직을 단단히 세우고, 인재를 키우고, 세계와 연결했다. 박정희가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줬다면, 리콴유는 “정교하게 운영하는 힘”을 보여준 셈이다.
세 사람은 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개척기의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개척기 지도자는 평온한 시대의 지도자와 다르다. 인기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그 시대엔 실패하면 욕먹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가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그 시절에서 배울 것도 분명하다.
첫째, 가난한 나라일수록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 다 잘하겠다는 나라는 결국 아무 것도 못 한다.
둘째, 기업은 국력이다. 기업을 무조건 의심하고 누르기만 해서는 일자리도, 세금도, 기술도 안 생긴다.
셋째,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오래 가는 산업정책이다.
넷째, 국가 운영은 구호가 아니라 실력이다. 말 잘하는 것보다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한국은 저절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이승만이 나라의 뼈대를 세우고, 박정희가 산업화의 엔진을 달고, 리콴유 같은 지도자에게서 배울 만한 국가 운영의 감각까지 참고하며 여기까지 왔다.
삼성전자를 보며 다시 생각한다.
과거를 무조건 찬양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가난한 시절 나라를 일으킨 사람들에게서 지금도 배울 게 있다는 뜻이다. 방향을 세우는 힘, 기업을 키우는 감각, 사람을 기르는 인내, 그리고 결단하는 용기.
대한민국에 지금 다시 필요한 것도 어쩌면 바로 그 개척자의 정신인지 모른다.
부자의 돈이 한국에서 돌게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는 이상한 금기가 하나 있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많이 쓰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좋은 학교에 더 많이 기여하고 싶어도 안 되고, 좋은 병원에서 더 비싼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눈치를 봐야 하고, 교통이나 주거에서도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에 늘 불편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겉으로 보면 평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현실은 다르다. 돈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더 좋은 서비스를 찾는다. 국내에서 못 쓰게 하면 외국에 가서 쓴다. 한국 대학에 기부하지 못하면 해외 대학에 기부하고, 한국에서 고급 의료를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면 외국 병원으로 가고, 국내에서 고급 주거와 생활 인프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면 외국 도시로 옮겨 간다. 우리는 평등을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돌 수 있었던 돈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자의 소비를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그 돈이 한국 안에서 더 많이 돌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특권을 무제한으로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돈 있는 사람이 국내에서 더 많이 쓰고, 그 돈의 일부가 사회 전체를 위해 다시 환원되도록 제도화하자는 데 있다.
교육이 그렇다.
지금 한국은 기여입학제라는 말만 꺼내도 거부감이 크다. 물론 무조건 돈으로 대학 문을 열어주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조금 다른 방식은 충분히 가능하다. 일정 수준의 학업 기준은 유지하되, 큰 기부를 통해 장학금과 연구기금, 시설기금을 만드는 구조라면 어떨까. 부자의 돈으로 저소득층 장학금을 늘리고, 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키우고, 학교 재정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다. 돈을 낸 사람은 학교에 기여하고, 학교는 그 자원을 더 많은 학생과 사회를 위해 쓰는 구조라면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이유는 없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는 사람은 더 편하고 더 빠른 서비스를 원한다. 그것을 막는다고 수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고가의 신속진료, 프리미엄 병동, 국제진료 서비스를 국내에서 활성화하고, 그 수익 일부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돌리는 편이 낫다. 돈 있는 사람은 더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그 추가 수익은 일반 국민이 꼭 필요한 의료를 지키는 데 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과 공공의 균형이다.
교통도 그렇다.
비행기는 이미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자리를 탄다. 철도도 같은 발상을 할 수 있다. 일정 좌석은 프리미엄 요금으로 비워두고, 돈을 더 내는 사람은 언제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하되, 그 수익을 일반 좌석의 서비스 개선과 요금 안정에 쓰는 것이다. 돈을 더 낼 사람이 내고, 그 돈이 전체 시스템을 더 좋게 만드는 구조라면 오히려 합리적이다.
이런 발상은 국내 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치안이 좋고, 의료 수준이 높고, 생활 인프라도 안정적이다. 외국의 부자들이 한국에 와서 살고 소비하고 투자하도록 만들 여지가 충분하다. 좋은 주거, 좋은 의료, 좋은 교육, 좋은 문화환경을 갖추고 돈을 많이 쓸 수 있게 하면 그 자체가 국가 이익이다. 왜 외국인 부자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빌딩을 사고 병원과 학교에 돈을 쓰게 두어야 하나. 한국에서 돈을 풀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물론 조건은 있다.
이 제도는 “돈만 있으면 다 된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면 장학금 의무배분이 따라야 하고, 의료면 공공의료 재원 환원이 있어야 하며, 교통이면 일반 이용자의 편익이 함께 늘어야 한다. 핵심은 부자의 소비를 풀어주되,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게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부자의 돈 쓰는 모습을 너무 쉽게 비난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돈은 밖으로 나가고, 국내 교육기관과 병원과 산업은 그 기회를 놓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흐르게 해야 가치가 생긴다. 쓰지 못하게 막으면 그 돈은 다른 나라로 간다.
부자의 소비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소비가 한국 안에서 이뤄지고, 그 혜택이 사회 전체로 번지게 만드는 일이다. 이제는 부자의 돈을 막는 나라가 아니라, 부자의 돈이 한국에서 돌고 한국을 키우게 만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다방에서 틈새 거친 카페 발전사
이게 한 육십 년 전 얘기예요.
육십 년 전에는 지금처럼 카페, 브런치카페, 디저트카페, 이런 고상한 말이 없었어요.
그때는 그냥 전부 다방이야.
차 마시면 다방이고, 음악 나오면 다방이고, 앉아 있으면 다방이고, 하여튼 다방이야.
그런데 이 다방이 그냥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왜냐?
그 시절에는 다방이 소비업종이라고 해서 허가를 안 내줬거든.
그러니까 요즘처럼 “여기 상가 하나 비었네? 커피숍 하나 내자” 이게 아니야.
허가가 없으면 차는커녕 물도 제대로 못 끓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원래 하던 다방이 망해.
그럼 그 허가증이 살아 있어.
그러면 그 허가를 어떻게든 받아다가 다시 하는 식이지.
그러니까 서울 사람은 자꾸 늘어나고, 차 마실 데는 더 필요하고, 연애할 데는 더 필요한데,
허가증은 없고.
그러니 다방 허가증 값이 올라가는데, 이게 웬만한 집 문서보다 더 귀해졌어.
값은 막 오르는데 팔 사람은 없어.
그러니 그때 다방 허가증은 거의 뭐 금송아지 같은 거야.
그 무렵에 어디냐.
세종대하고 건국대 사이쯤 되는 데야.
그때 세종대가 지금 이름이 아니라 수도여사대라고 하던 시절이니까,
한쪽은 여학생, 한쪽은 남학생,
그러면 그 중간 자리는 뭡니까?
그건 학문 연구하는 자리보다 먼저 눈빛 연구하는 자리지.
거기 누가 건물을 하나 지었는데 2층이 비었어.
집주인이 보니까 딱이거든.
“이 자리에 다방 하나 하면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겠다.”
왜 안 오겠어.
건국대 남학생이 오다가 수도여사대 여학생 만나고,
수도여사대 여학생이 가다가 건국대 남학생 마주치고,
말하자면 길목이야, 길목.
그런데 문제는 딱 하나.
허가가 안 나와.
보통 사람이면 여기서 포기하죠.
“에이, 안 되네.”
그런데 장사꾼 머리는 그렇게 안 돌아가.
나는 장사꾼 머리는요, 벽을 보면 돌아갈 구멍부터 찾아.
그래서 그 집에서 꾀를 하나 내준 거예요.
“좋다. 다방은 허가가 없어서 못 한다.
그런데 토스트 파는 건 누가 막냐?
그러면 토스트집을 내세요.
그리고 토스트 사 먹는 사람한테는 커피를 공짜로 한 잔 주세요.”
겉으로는 뭐예요?
토스트집이야.
행정적으로? 토스트집.
실제로? 다방이지.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그때 학생들은 한창 먹을 나이잖아.
지금처럼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오늘은 속이 안 좋아서” 이럴 때가 아니야.
그땐 배가 고파.
차만 마시면 허전해.
그런데 토스트를 줘, 거기다 커피도 줘.
이러니까 학생들 입장에서는
“야, 이건 다방보다 낫다” 이거지.
그래서 이게 희한하게 됐어요.
토스트집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학생들 사이에선 커피집보다 더 커피집 같은 집이 된 거야.
근데 이 집이 잘된 건 토스트하고 커피만이 아니에요.
그 집이 아주 묘한 걸 하나 만들어냈어.
요즘 식으로 하면 이벤트고, 그땐 그냥 장사 수완이지.
그 시절에 여자들 바느질감 넣어놓는 통 있잖아요.
광주리 비슷하기도 하고, 소쿠리 비슷하기도 하고,
하여튼 뭐 자질구레한 거 담아두는 통 같은 거.
거기에다가 연필도 넣고, 지우개도 넣고, 작은 장식품도 넣고,
뭘 이것저것 막 넣어두는 거야.
그러고는 남학생, 여학생이 와요.
데이트 비슷하게 오든, 미팅 비슷하게 오든 오면
“자, 하나씩 집어보세요” 하는 거지.
남학생이 하나 집고, 여학생이 하나 집고,
그런데 같은 짝이 나왔다?
그럼 그날부터 둘이 한 팀이야.
지금으로 치면 아주 촌스러운 게임 같지만,
그땐 그게 얼마나 재밌었겠어요.
괜히 하나 집으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저 앞에 앉은 저 아가씨랑 같은 거 나와라”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 집은 학생들이 와서
토스트 먹고, 커피 마시고,
거기다 짝도 맞추고, 눈도 맞추고,
그러니 장사가 안 될 수가 있나.
나중에는 학교 앞마다 그런 식이 좀 번졌어요.
대학가 가면 뭐 하나씩 장치해 놓고
남녀 학생들이 와서 놀고, 웃고, 짝 맞추고,
하여튼 연애 비슷한 건 거기서 다 배운 거지.
근데 이 집이 더 잘된 데는 또 이유가 있어요.
그 앞에다가 누가 호텔 비슷한 걸 하나 크게 지으려고 했어.
공사가 거의 다 끝나간 거야.
그러면 당연히 그 안에도 커피 마시는 데가 생길 거 아니야.
장사가 분산되지.
그런데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하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지나가다가 그걸 본 거예요.
육영수 여사가 보더니
“저게 뭐예요?”
하니까
“호텔 짓는 겁니다.”
그랬더니
“어린이공원 앞에 무슨 호텔을 짓느냐.”
한마디 했다는 거야.
그 시절엔 참 무서운 시절이야.
요즘 같으면 공청회니 허가니 재심의니 온갖 절차가 있겠지만,
그때는 윗분이 한마디 하면 공사가 멈춰.
진짜 멈춰.
그래서 그 호텔 공사가 중단돼버린 거야.
자,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원래 그 호텔까지 들어섰으면 학생들이 분산됐을 텐데,
호텔이 안 들어서니까 학교 앞에 학생들이 앉아 차 마실 곳은
사실상 그 토스트집 하나뿐이 된 거야.
그러니 이 집이 더 잘되지.
건국대 쪽은 모진동, 세종대 쪽은 화양동인데
그 사이에서 학생들 만나고, 앉고, 먹고, 웃고,
짝도 맞추고, 연애도 시작하고,
그 동네 청춘이 다 거길 한 번씩은 거친 셈이지.
그러니까 그 집은 겉으로는 토스트집인데,
실제로는 다방이고,
소개소 비슷하기도 하고,
사랑방이기도 하고,
대학가 청춘 집결소야.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장사라는 건 허가증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야.
허가가 막히면 끝나는 줄 아는데, 진짜 장사꾼은 거기서 머리를 써.
“다방 안 되면 토스트집 하지 뭐.”
근데 그냥 토스트만 팔면 또 심심하니까
커피를 얹어주고,
짝 맞추는 놀이를 얹어주고,
학생들 심리까지 읽어버리니까
그게 그냥 토스트집이 아니라 시대를 먹는 장사가 되는 거지.
지금 카페들 보면 이름도 멋있잖아요.
무슨 로스터리, 브루잉, 싱글 오리진, 수제 디저트.
그런데 그 시절엔 그런 거 없었어도
토스트 하나, 커피 한 잔,
그리고 “오늘 혹시 누구랑 짝이 될까?” 하는 설렘 하나면
그 집이 대학가를 다 먹어버리는 거야.
그게 장사예요.
허가 못 받아서 망한 게 아니라,
허가 못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영리한 길을 낸 거야.
그래서 나는 그 얘기 들으면 지금도 웃어요.
겉간판은 토스트집인데,
속은 다방이고,
분위기는 미팅장소고,
결과는 대박집이니까.
말하자면 그 집은
토스트를 팔면서 커피를 팔고,
커피를 팔면서 청춘을 팔고,
청춘을 팔면서 장사를 한 집이었어요.
이제는 원화의 단위를 바꿀 때다. (1,000 :1)
대한민국은 세계적 제조업 강국이고, 수출과 금융, 디지털 산업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매일 쓰는 화폐 체계는 여전히 낡은 불편을 안고 있다. 물건값 하나를 보아도 숫자 뒤에 0이 여러 개 붙고, 외국인에게 한국의 가격 체계는 직관적이지 않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익숙함이 곧 효율은 아니다.
지금 원화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다. 1달러가 1,500원 안팎인 현실에서 우리는 늘 큰 숫자로 가격을 말하고, 회계와 계약, 투자 설명에서도 불필요하게 복잡한 자릿수를 감수한다. 1만 원, 10만 원, 100만 원 단위가 일상화된 사회는 국내에서는 별문제가 없어 보여도 국제적 체감에서는 불편하다. 세계 주요 통화가 비교적 간결한 숫자 체계를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다시 검토할 때가 된 것이 화폐 단위 개편, 이른바 리디노미네이션이다. 예컨대 지금의 1,000원을 새 1원으로 바꾸면 숫자는 훨씬 단순해진다. 현재 10,000원은 새 화폐로 10이 되고, 1,000,000원은 1,000이 된다. 환율도 지금의 달러당 1,500원 수준이 아니라 새 화폐 기준으로 1.5 정도가 된다. 물론 화폐 단위를 바꾼다고 국민소득이 늘거나 경제력이 갑자기 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를 표현하는 언어는 훨씬 간결해지고, 가격과 가치에 대한 체감도 국제 표준에 가까워진다.
반대도 충분히 예상된다. 물가 착시가 생길 수 있고, 소상공인과 금융기관, 회계 시스템 전반에 비용이 든다. 국민이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구조 개혁은 처음엔 비용과 저항을 동반한다. 과거 전기 체계를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바꾸는 과정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불편과 반대는 컸지만, 결과적으로 산업 표준화와 효율 개선에 기여했다. 국가 발전은 늘 이런 결단 위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준비다. 화폐 단위 개편은 하루아침에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충분한 공론화, 장기간의 이중 가격 표시, 금융·세무·회계 시스템의 일괄 정비, 편승 인상 단속이 함께 가야 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혼란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준비가 충분하다면, 지금처럼 지나치게 큰 숫자에 기대는 화폐 체계를 영원히 유지할 이유도 없다.
한국은 이미 경제 규모에 비해 화폐 표현 체계가 지나치게 낡은 나라가 됐다. 이제는 “불편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미래 세대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경제 언어 속에서 살아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비효율을 계속 떠안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원화 단위 개편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체계의 현대화 문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미래형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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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집을 여러 채 가지려 할까
다주택자를 향한 비난은 늘 거세다. 특히 공직자나 정치인이 집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으면, 그 비판은 더 심해진다. 공직자는 검소해야 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하며, 부동산으로 이익을 본 흔적이 있으면 도덕성까지 의심받는다. 심지어 다주택 공무원은 승진에도 불이익을 받고, 정치인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집을 여러 채 가지려 할까.
이 질문을 단순히 탐욕의 문제로만 보면 답이 안 나온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돈이 생겼을 때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과 교육을 제대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이나 일반 서민의 경우, 여윳돈이 생겨도 마땅히 굴릴 곳을 찾기 어렵다. 사업에 투자하자니 위험하고, 주식은 변동성이 크고, 산업이나 기업 분석은 어렵다. 반면 집은 눈에 보이고, 전세를 놓으면 현금 부담은 줄어들며,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결국 “집 한 채 더”라는 선택으로 몰린다.
하지만 이 선택이 정말 가장 좋은 투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같은 돈으로 생산적인 기업에 투자하거나, 산업과 사업에 자금을 넣거나, 기술과 혁신에 투자하면 사회 전체의 부가 더 커질 수 있다. 개인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더 큰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집은 물론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집에만 돈이 몰리는 사회는 자본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지 못하고, 결국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런 판단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어릴 때부터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배웠지, 자본을 어떻게 배분하고 어떤 투자에 돈이 살아 움직이는지 배우지 못했다.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것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굴리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후자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 돈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몰라 결국 익숙하고 안전해 보이는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국가 경영은 단지 도덕성과 성실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같은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떤 투자에 돈이 들어가야 국민 전체의 삶이 나아지는지 아는 감각이 필요하다. 눈앞의 비난을 피하려고 자산을 움켜쥐는 사람보다, 돈이 더 큰 생산과 고용, 더 많은 세수로 이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국가 운영에 더 적합하다.
나는 그래서 다주택 문제를 단순한 도덕 비난으로만 몰아가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사회 전체가 부동산에 매달리게 되었는지, 왜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지 못하는지, 그 구조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집이 여러 채이고, 어떤 사람은 집이 하나뿐이다. 그 차이는 단순히 돈이 있느냐 없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투자에 대한 이해, 자본에 대한 철학,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의 차이가 더 크다.
예를 들어 장기적으로 세후 8% 정도의 자본수익을 꾸준히 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집을 여러 채 사서 돈을 묶어둘 이유가 없다. 실제 수익이 15%가 나더라도 생활비와 세금, 비용을 제외하면 8% 정도가 재투자 가능한 자금으로 남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집을 사는 것이 오히려 돈을 놀리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생산적인 투자처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을 아는 사람은 “집이냐 아니냐”보다 “어디에 돈을 넣어야 돈이 살아 움직이느냐”를 먼저 본다.
그런데 정치권은 자주 이 문제를 거꾸로 다룬다. 집을 여러 채 가졌느냐 아니냐만 따지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본이 왜 부동산으로만 쏠리는지, 국가의 금융·산업 구조는 왜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지에는 관심이 적다. 그래서 다주택자는 비난받고, 무주택자는 미덕처럼 포장되지만,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사라진다. 그 사람이 자본을 생산적인 곳에 흐르게 할 능력이 있는가. 국가 전체의 부를 키울 안목이 있는가.
나는 지도자의 자격도 그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소한 이미지나 깨끗한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자산조차 어디에 배분할지 모르는 사람이 국가 자산과 국민 경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는가. 성실함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 위에 자본 감각, 투자 안목, 생산적 자원 배분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도 크고, 국민도 부유해진다.
결국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단순한 다주택 보유 자체가 아니다. 돈이 생기면 모두가 집으로만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 생산적인 투자보다 부동산이 더 쉬운 선택이 되게 만든 제도, 그리고 그것을 고치지 못하는 정치의 무능이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집 몇 채를 가졌느냐보다 먼저 자본을 어디에 흐르게 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부동산에 묶인 사회를 산업과 기업, 기술과 일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국가 경영이다.
원가를 지배하는 기업이 끝내 시장을 지배한다
사업의 승패는
마지막에 얼마에 팔았느냐보다,
처음에 얼마에 만들었느냐에서 갈린다.
시장이 좋을 때는
누구나 강해 보인다.
하지만 금리와 경기가 흔들리고
자산 가치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본질이 드러난다.
그때 살아남는 기업은
비싸게 파는 기업이 아니라
낮은 원가를 가진 기업이다.
지산의 사업 방식은
여기서 일반 회사와 다르다.
많은 기업은
임대료와 매각가격,
캡레이트와 같은
외부 변수에 기대어 사업성을 본다.
그러나 지산은
그 이전을 본다.
토지를 얼마에 확보하느냐.
건축비를 얼마나 줄이느냐.
토목과 공기를 어떻게 다루느냐.
이 구조부터 다르게 만든다.
지산의 강점은
단순한 절감이 아니다.
지산은 PC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 검증한 모델을
반복해서 적용할 수 있다.
같은 품질로,
같은 구조로,
같은 공법으로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현장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 아니다.
공업적으로 생산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짓고,
속도를 높이고,
오차를 줄이는 방식이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건축비가 줄어든다.
공기가 짧아진다.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현장 리스크가 낮아진다.
그리고 총사업비가 낮아진다.
여기에 지산은
토지에서도 강한 우위를 가진다.
남들보다 낮은 가격에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지산은
싼 땅 위에
더 낮은 원가로
더 큰 규모를 올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원가 절감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가가 낮아지면
차입이 줄어든다.
차입이 줄어들면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이자 부담이 줄어들면
경기가 흔들릴 때
버틸 힘이 생긴다.
같은 자본으로
더 큰 사업도 가능해진다.
즉 지산은
원가를 줄여서
채무를 줄이고,
채무를 줄여서
안정성을 높이고,
안정성을 바탕으로
규모를 키운다.
그리고 규모가 커지면
수익 구조는 다시 달라진다.
데이터센터나 대형 시설은
규모가 커질수록
임대 경쟁력이 높아지고,
운영 효율도 좋아진다.
결국
원가는 더 적게 들이면서
수익 기반은 더 커지는 구조가 된다.
이 점이 핵심이다.
지산은
단순히 싸게 짓는 회사가 아니다.
낮은 원가가
낮은 채무를 만들고,
낮은 채무가
큰 규모를 가능하게 하며,
큰 규모가
더 큰 수익을 만든다.
이 선순환 구조가
지산의 본질이다.
그래서 시장이 좋을 때는
상승의 과실을 더 크게 가져갈 수 있다.
반대로 시장이 흔들릴 때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원가 구조가 낮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사업 철학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업의 본질은
화려한 기대가 아니라
확실한 원가라고 생각해 왔다.
나중에 벌 1조 원보다
처음에 아낀 1조 원이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안전하다.
사후 이익은
시장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초기 원가 절감은
이미 확보된 이익에 가깝다.
앞으로 시장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금리도 변하고,
수요도 흔들리고,
자산 가격도 오르내릴 것이다.
그럴수록
기업의 경쟁력은
더 분명하게 갈릴 것이다.
누가 더 높게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낮은 원가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지산은
바로 그 토대 위에 서 있다.
낮은 원가.
작은 채무.
큰 규모.
높은 유연성.
이 구조가
지산의 힘이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이 결국
시장을 이기는 힘이라고 믿는다.
지산그룹 창업자. 한주식.
전쟁과 주가, 그리고 기업가의 눈
중동 전쟁이 터질 때마다 주식시장은 먼저 흔들린다.
지수는 오르고 내리고, 뉴스는 위기를 말하고, 사람들은 당장 세상이 무너질 듯 반응한다. 그러나 시장의 이런 소란을 곧바로 실물경제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전쟁이 늘 모두에게 같은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전쟁은 일본 경제에 특수가 되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경제의 관점에서는 어떤 산업에는 타격이 되고, 어떤 산업에는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한다. 중동 전쟁도 마찬가지다. 유가 상승과 불확실성은 부담이지만, 방산 같은 업종은 반대로 수혜를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전쟁이 누구에게 손해이고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따지는 일이다.
그런데 시장은 이런 구조를 보기 전에 심리부터 흔든다.
주가가 하루 3%, 4% 움직이는 것을 두고 큰일이 난 듯 호들갑을 떨지만, 따지고 보면 그 정도 변동은 한 해 배당 수준과 비슷한 경우도 많다. 하루의 등락이 회사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공포와 기대가 먼저 가격을 흔드는 것이다.
주가는 더구나 회사 전체가 통째로 팔리고 사서 정해지는 가격도 아니다. 전체 주식 가운데 일부만 거래되어도, 그 마지막 가격이 마치 회사 전체의 가치인 것처럼 표시된다. 그러니 시장은 실제보다 더 예민하고, 본질보다 더 요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름이 한주식이다 보니, 주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남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듣는 편이다. 삼십 년 전, 이십 년 전에는 주식을 보고 재미를 본 적도 있다. 지금도 보면 감은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종목을 두고 후배들이 묻으면, 어느 때 사고 어느 때 파는 게 낫겠다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그만큼 주식을 보는 눈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정작 주식을 사고팔아 돈 벌 생각은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지산그룹 주식 100%**뿐이다. 다른 주식으로 시세차익을 노리지 않는다. 배당금이 있든, 보상금이 있든, 굳이 찾아가며 챙기지도 않는 편이다. 돈이란 것이 세상 어딘가에서 돌고 도는 것이라면, 내가 찾지 않은 몫은 결국 다른 누군가의 이익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꼭 내 손에 쥐어야만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는 원래 자기 할 일이 있다.
회사를 세우고, 사업을 키우고, 사람을 먹여 살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런데 눈앞의 보수적 이익, 단기 차익, 쉽게 생기는 돈에 마음을 빼앗기면 본업의 중심을 잃기 쉽다. 주식으로 돈 벌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눈을 본업 밖의 돈벌이에 쓰지 않겠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후배들이 주식 이야기를 하면 나는 가끔 한마디씩 거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시장은 볼 수 있어도, 시장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주가를 읽는 감각과 주식으로 살겠다는 태도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결국 주식시장도, 기업경영도, 전쟁의 영향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소란에 휘둘리지 말고, 그 안의 구조를 읽어야 한다. 시장은 늘 과장하고, 뉴스는 늘 부풀리고, 사람들은 늘 먼저 겁을 낸다. 그러나 기업의 이익은 결국 숫자로 남고, 진짜 실력은 결국 결과로 드러난다.
주가는 심리로 흔들리지만, 사업은 실력으로 남는다.
그래서 기업가는 시세보다 본업을 봐야 한다.
소란보다 구조를 보고, 등락보다 본질을 보는 것, 그것이 결국 오래 가는 것이다.
지산창업자. 한주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