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순례지 개요
금광리 공소는 1887년에 설립된 곳으로 강릉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신자들이 거주했다는 것은 1921년 <경향잡지>에 "영동 교우로 말하면 50-60년 전 병인박해 때에 전라, 충청, 경기도 교우들이 피난하기 위해 영동으로 넘어와 근근이 사는 교우들이다."(1921년 9월 호)라는 기록과 드브레(Deverd) wnryrk 1923년 가을에 이 지역을 방문한 뒤 "병인박해 이후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을 남긴 <서울연보> II, 1924년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병인박해릉 피해 이주한 신자들은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며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이웃에게 신앙을 전파하며 생활하였다.
금광리 공소는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점으로, 1921년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의 부임과 함께 본당으로 설립될 만큼 신자 수가 많았으나, 향후 신자 수의 증가와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1923년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하여 다시 공소가 되었다.
현재 금광리 공소는 논암동 본당의 공소이다. 이곳은 박해를 피해 정착하여 오랫동안 신앙을 지켰던 이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46쪽)(순례확인도장: 공소 내 입구)